2026.09.23(수)_삿10.1-18_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다시 새아침을 시작합니다. 주의 뜻을 따르며 주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주의 보혈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늘에서 주의 양식을 내려 주셔서 나로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아비멜렉의 비극적이고 혼란스러웠던 통치 직후, 도도의 손자 돌라가 사사로 일어납니다. 돌라는 명문 가문 출신도 아니었고 눈에 띄는 군사적 업적도 없던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23년 동안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이끌었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이 남긴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평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세상은 눈에 띄는 명성이나 떠들썩한 일에 주목하고, 그 일에 관계된 사람을 위대하게 여기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작고 이름 없는 이곳에서 신실하게 자기의 직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길르앗 출신 야일이 사사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는 30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들은 30마리의 어린 나귀를 탔으며, 30개의 성읍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가문이 가졌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풍요가 대단했음을 보여줍니다(WBC, POSB).
그러나 야일은 30명의 아들을 두기 위해 모세의 율법이 금지한 '많은 아내 두는 일'을 감행하여 세상과 타협했고, 자녀들에게 통치권을 나눠주는 족벌주의(Nepotism)적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권력을 이웃을 돕는 데 쓰지 않고 자신의 가문의 영화를 위해 축적한 그야말로 전형적인 세속화의 모습입니다(POSB).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역시 이러한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세습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옳은 일이며 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일은 권력을 배분하고 자녀들에게 당시로서는 사치스러운 교통수단을 제공합니다(Jordan / Schneider - WBC 내 인용). 이러한 모습은 풍요롭고 평화가 있는 시대에는 그저 좋아보이나, 곧이어 닥칠 암몬의 침략(10:7)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영적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왕위, 멋진 나귀, 많은 아들은 외적의 침략 앞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NAC, TOTC).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의 통치 기간은 평화로웠고 풍요로웠습니다. 돌라는 23년, 야일은 22년, 합쳐서 4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안정과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안전과 풍요는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마지막을 이렇게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돌라가 죽으매 세밀에 장사되었고",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인간 사사가 죽고 나자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또다시 심각한 영적 타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45년의 평화는 백성들의 마음을 거룩하게 바꾸지 못했고, 사사들의 개인적인 영향력이나 가문의 번영도 이스라엘의 부패한 죄성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땅의 지도자, 곧 인간 사사는 결코 우리를 영원한 죄에서 건져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가 죽으면 그 평화도 함께 끝이 납니다. 그렇기에 사사기는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평강을 주실 '진정한 구원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영적 표지판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이제 6절은 이스라엘이 다시 악을 행했다 라고 말합니다. '다시' 악을 행했다는 것은 죄가 습관화되었음을 나타냅니다.(POSB, WBC) 우리 그리스도인 또한 이미 습관이 된 옛사람의 습성이 아직 남아있다면, 절연히 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패와 타락이 점점 극에 달해 갑니다. 그들은 무려 7개 영역에서 이방신들을 섬기기 시작합니다(WBC/TOTC/POSB). 마구잡이로 신이라 불리는 모든 것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닥치는 대로 세상의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나와 내 가족만 잘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이죠.
진노하신 하나님은 언약을 버린 이스라엘을 서쪽의 블레셋과 동쪽의 암몬 손에 넘기셨습니다. 양쪽에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고, 이스라엘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짓밟히고 억압당했습니다(NAC). 그러나 이 고난은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기 위한 '사랑의 매'였습니다(POSB).
고통에 못 이긴 이스라엘은 구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곧바로 구원해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 말씀하시며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그들의 기도가 당장의 고통만 면해보려는 기만적이고 형식적인 회개였기 때문입니다(WBC, NAC). 우리 역시 내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은 채 형식적인 기도만 드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가식적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심을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단호한 거절 앞에, 이스라엘은 마침내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 앞에 나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회개는 '나를 위해 스스로 계획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겸손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입술의 고백을 넘어 반드시 삶의 행함으로 드러나야 합니다(NAC).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주께 돌아서자,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으로 인해 마음에 탄식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녀의 고통을 차마 오래 두고 보지 못하시는, 참으로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WBC, NAC, POSB).
이스라엘이 회개한 후, 암몬 자손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길르앗에 진을 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께 묻지 않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과연 이 전쟁은 어떻게 될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자녀가 겪는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시고 늘 우리에게 져 주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근심하게 해드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혹시 지금도 다시 세상의 우상을 기웃거리거나, 하나님보다 인간적인 해결책만을 먼저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비참함을 보시고 마음에 아파하시며, 십자가에서 그 모든 고통을 친히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참된 구원자 예수님 만을 우리 인생의 주인이자 왕으로 모실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평강과 참된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 구속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나의묵상.
하나님의 손을 떠나는 것이 죄다. 하나님의 손을 떠나는 것이 악이다. 하나님의 손을 떠나면 그냥 자유를 얻는 것일까?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세 살 아이가 혼자 집을 나가버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결국 죽음을 부르는 일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을 떠나 블레셋과 암몬의 손에 있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떠나는 모든 순간이 그와 같다. 나와 우리 더함교회가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멍에를 짊어지길 원한다. 그것 만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니.
묵상기도.
주님, 하나님을 떠난 모든 순간에도 늘 나를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비참한 삶을 주께서 기억하시고 영생의 복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이 땅을 사는 동안 주의 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며 참된 자유를 누리기 원합니다. 이 땅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주님, 나를 지켜주옵소서. 주님 다시 만나는 날까지 나를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