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1
공중 전화기 앞에 서면
공중전화기 앞
망설이는 사람들
어디에 어디에
전화를 거는 건지
나도 따라
한번쯤 걸어보는 건
그래도 누군가
있을지 모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연인들
팔짱 끼고 걷는
거리에 서면
하늘이 뿌옇게 흐리다
사람들 줄지어
드디어 차례가 오면
목적없는 전화 긴 시간의 통화
기다림의 시간 아까워
나도 따라
다이얼을 돌린다
공중전화기 앞에 서면
괜시리 망설여지는 건
그래도
누군가 있을지 모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2
“그리움”이 “허상”에 기대고 있다
그리움이란 단어를 노트 속에 동그란 종이로 접어, 그림이라는 걸 그려본다 새벽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우리에게선 떨어나가지 않은 천국의 시체들이 黎明(여명) 속에 하나둘 살아나고 난, 이 어둠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움이 허상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움츠린 어깨, 더욱 더 움츠리고 “너”라는 좁디좁은 동굴 속으로 빨려드는 그곳은 텅빈 가슴, 아무도 없다 젖무덤의 향내 나는 입술 사이 한숨이 새어나오고, 그․립․다
다이아 색채나는 반짓가락 만지작거리면 허영에 들뜬 마음이 움직인다, 바람이 지나친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 廟塔(묘탑)에 부은 시선들, 너마다 등을 돌려, 야윈 풀들은 꿋꿋하다 그리움은, 없․다
좁은 어둠 사이로 허상이 그리움을 잡아끌고, 살아있는 시체가 묻히고, 몰아치는 폭우가 무덤을 짓밟고 난, 그리움이란 단어 속에 들어가 “허상”에 기․대․고․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3
열대어네 집
내가 그들 곁으로 가면
밥 달라고 아우성
손 닿을세라 부리나케 튕기는
치어(稚魚)들의 몸부림,
먹이인지 적인지
내 살 쪼아대는 그네들의 놀이,
엉겁결에 새 살이 돋았다 사라진다.
시간따라 출렁이는 물결의 삶, 삶들.
약한 고기는 죽어서 힘센 이들의 밥이 되고
힘센 이들의 세월은 길기만 하다,
몸부림 사라진 그들의 오만한 몸짓.
그러나 오늘도
내가 그들 곁으로 가면 밥 달라고 아우성
닿을세라 부리나케 튕기는 성어(成魚)들의 안간힘.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4
마음이 가는 곳에
마음 먹은 대로 가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흘러가는대로
따라서 가다보면 가다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머지 않아 알게 되겠지
구름은 아니더라
세월도 아니더라
나를 일깨우는 건
무엇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더라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실한 마음 하나 안고
그저 가다가 보면은
무엇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되더라
혼자서는 절대로 못해도
서로 도와 가다보면
저절로 알 수 있겠지
모두가 사랑인 날이
언젠가는 오게 되겠지
무엇이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도
마음 가는 대로 흘러흘러
가다보면 가다보면 가다보면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5
비 둘 기
자유를 바라며
날으는
새우리 안의
비둘기.
누군가,
열은 문을
차고 나오려는
날개짓.
푸른 허공
문 사이
흩어지는 그들의
한 맺힌
지저귐.
먹구름
몰려들어
그들을 버린
하늘.
비 뚫고
날아 오르는
새우리 안의
봉우리.
그저 한번
몸부림치던
날개 안의
설레임.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6
네가 사랑이란 놈이냐?
커피
두스푼에 설탕 두스푼?
진한 커피색
조금은 쓴
맛이 있네
그 속에
나같은 너가
보이고 있네
그런 네가
나를 젓고 있어
찻술로 저으면
너가 그속에 흐물거린다
나를 마시고 있는
네가
사랑이란 놈이냐?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7
그 대 로
밤 피어오르듯 별은
어제
그 자리에 빛을 내고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는 사막에
오늘
목마름을 덜어내는
오아시스
사라지듯 기어이,
달아오르는 날빛
내일
또
그대로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8
마 음
맑은 하늘,
눈이 내리고
그 안에
떨어지는 나라면
흐린 하늘,
눈이 내렸고
그 속에 묻혀 사는
그것도 나.
바람 부는 허공.
우뚝 선 눈사람.
거기에
떨고 있는 나라면
밝은 햇살,
시간의 눈빛에
침묵으로 사라지는
그것조차 나.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9
나는 자꾸만 굵어지는 빗방울에 대해서 썼다
해가 지도록
낭송할 詩를 찾지 못해
새벽을 찾아 나는 헤맨다
모모 박사가
나는 詩가 아니므로
<별 세 개가 보였고
창문 밖으론
까치들이 떼지어 날았다>
같은 詩를 써보라고
고개 끄덕이며 눈인사를 했다
새벽을 찾아 갔지만
<별 세 개는 보이지 않았고
창문 밖으론
까치들도 떼지어 날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쓰는 詩는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거라며
눈웃음 가득 머금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모모박사가 말했다, 나는
자꾸만 굵어지는 빗방울에 대해서 썼다
그러자 자꾸
눈물이 내리기 시작했고
나의 쏟아지는 눈물을 바라보는
이맛살 찌푸린 모모박사의 얼굴에서
밤하늘에 없었던 <세 개의 별>과
그 위를 <떼지어 날아가는 까치들>이
자꾸만 굵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0
거울과 나
당신은 멋쟁이, 신사
한낱 그리움으로
그대를 맞겠습니다
저것은 추남,
나의 실망감으로
너를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소리내어 무너지지 않는
부끄러워 보이지 않는
나의 모든 것
이제는 그를 등지어
아쉬움으로 새겨질
너의 겉모양
당신을 떠나는
뒷모습으로
너를 기억하겠습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1
동 행․1
- 水國에서
오늘부터
나의 이름을
비워두기로 합니다
이 여백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바다
몸을 맡겨본다.
어떠한 상처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파도,
어떠한 상처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바람.
그러나 오늘부터
나의 이름은 비워집니다
언제나 오늘부터.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2
동 행․2
- 술취한 자가 술취한 것도 모르고
술에 취해 웃고 있다
난 술취한 자가 왜 웃고 있는지도 모르고
술취한 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술취한 자는
그래도 웃고 있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오늘만이라도
살아내어 보자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를
찬란한 하늘의 꿈,
화사하게 시들고
바람마저 세찬
터엉 빈 바다로 달려
사람들의 숨소리 느껴지는
생채기라도 내어
하루를 지키어내는
저 고운 하늘 저 고운 바다 저 고운
바람이 불러내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살아내어 보자
어쩌면
여엉영 끝나지 않을지 모를.
(사람들은
새벽빛 불어오는 오늘을
내맘대로 걷고 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2
자갈과 바위
1.
그의 주위는 온통 자갈밭이다
때로는 그가 나였으면 하기도,
나이기도 하다
움직일 줄 모르는 최악의 움직임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꿋꿋한 자갈들의 세상은
유동적이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보지 못한다
나를 옮겨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손에 이끌린 자갈 하나가
나의 곁에 와 앉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갈들을 온통 짓밟아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즐거운 그들의 세상에
나도 뛰어놀고 싶다
2.
그들의 가운데에
바위가 있다
때로는 그들이 나였으면 하기도,
나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린 나는
상처 난 몸투성이를 이끌고
바위 밑으로 숨어들었다
지친 몸들을 이끌고
사람들은
바위 틈에 와 앉는다.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은
나의 노력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한
누군가의 몸에 짓눌려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편안한 그의 세상에서
나는 낮잠을 청한다
나도 그처럼
누군가의 휴식이 되고 싶다
3.
나는
바위가 되었다가
자갈이 되기도 한다
나는
바위가 되고 싶기도 하다가
자갈이 되고 싶기도 하다
또 나는
바위가 아니기도 하고
자갈이 될 수 없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