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서
참신성의 가치와 근거의 합리성에 대하여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반갑습니다. 수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수필비평가 권대근입니다. 먼저 연암 문학과 접할 수 있는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수필문학사 강석호 사장님께 사의를 표합니다. 질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질의는 발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 뒤에 나오는 것으로 청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예리해야 토론회의 맛이 나는 법인데, 두 분 발표가 성실한 논고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저의 질의는 단순 질의가 될 것입니다.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고, 등불이어야 하고, 사회를 이끄는 수레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런 관점을 충족시키는 연암 문학은 대단한 의의를 가진다고하겠습니다. 그의 문학론은 우리가 두 분의 논문에서 살핀 바와 같이 그의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연암 문학의 핵심은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 현실을 진실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것은 자기 시대를 직시하고 그 과학적 인식 위에서 당대의 제 모순을 극복하고자 한 것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는 사상사와 문학사에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상과 문학이 근대사상으로 계승되어 개화사상으로 발전되고, 우리 역사에서 근대의 기점이 되고 있는 갑오개혁을 낳았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분의 연암 문학 연구가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두 분 발표 잘 들었습니다. 고미숙 평론가는 연암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창작 동기이기도 한 풍자적 특성을 매우 흥미롭게 조명하여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연암 소설은 수필이다'라고 선언하는 도발적인 제목에 눈길을 두고자 합니다.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우"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높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확실한 근거와 논리의 뒷받침에 의해 합리적으로 주장된 것이라면, 그 가치는 더욱 클 것입니다. <열하일기>는 가히 과학과 문학이 융합된 한 편의 거대한 에세이로서, 그 자체의 연구만으로도 엄청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국문학계에서는 <허생전>을 비롯한 <호질> <열녀함양박씨전> 등은 소설로 분류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고전소설로 분류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일근 교수님의 논문은 이런 현실을 뒤엎는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고 주목을 받는다고 하겠습니다.
연암 문학의 장르 변환 가능성에 대해 발표를 하신 김일근 교수님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부터 연암 문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근자에 와서는 이에 대한 심층 연구에 관심을 쏟고 있는 분입니다. 누구보다도 연암의 문학을 사랑하고, 그 가치를 드높이는 작업을 앞장서서 하고 계십니다. 연암 문학을 심층적으로연구하는 첫 작업에 있어서 장르문제가 간과되고 있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김 교수님의 관점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연암 문학에서 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들을 논증을 통해 '수필'이라고 선언한 용기에 먼저 수필을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박수와 지지를 보냅니다. 김일근 교수님은 논고에서 1932년에 간행된 김태준의 <조선소설사>를 우리 문학계가 문제제기 없이 그대로 답습한 데서 '수필'로 볼 수 있는 작품을 전부 '소설'로 보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아시다시피 발제자는 이미 소설로 알려진 <허생전>과 <호질> 그리고 연암의 마지막 소설로 알려진 <열녀함양박씨전>까지를 포함해 12편의 단편에서 '수필성'을 찾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획기적인 주장이 아니라 어떤 근거로 '그것'이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다라고 말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일근 교수님의 소설로 분류된 연암의 작품에서 '수필성' 찾기 - 그 근거의 토대가 과연 적절한가를 찾아보는 것이 이 논고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리라 믿습니다. 김일근 교수님은 연암의 이른바 12 단편을 1) 내포사상, 2) 표현기법, 3)문학유형으로 나눠 개관하면서, 이들 작품이 주인공의 전기를 위주로 서술되었다는 것, 열전의 문체를 이어 받았다는 것에서 이들 작품의 유형을 "비허구서사체"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해서 일단 이들 작품이 수필이라고 논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논문은 위의 사실에 기초하여 12 단편을 장르적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은 김 교수님이 장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수필이냐 소설이냐의 기준이 합당한가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김 교수님은 픽션이냐 논픽션이냐에 따라 소설과 수필로 갈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픽션은 '허구' '상상'을 주요소로, 그리고 논픽션은 '사실 '체험'을 주요소로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의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장르 분류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준거 설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까 합니다. 사실 장르 구분은 하도 의견이 분분하여 종잡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으나 널리 알려진 조동일의 4분법에 의하면, 장르 구분은 크게 '자아'와 '세계'의 대결 양상에 의해 설정되고, 적게는 기본요소와 제시방법에 따라 규정된다고 하겠습니다. 일반적 기준을 준용해 판단하면, 김 교수님이 수필이라 주장하는 것들은 전부 소설의 특성을 공유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실성과 허구성이라는 단순한 기준만으로 소설적 구조와 성격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는 작품을 수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합리성이 있느냐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허생전>의 경우만 하더라도 전통적 장르 분류 기준으로 서사냐 교술이냐의 근거가 되는 '자아'와 '세계'의 대립 양상 즉 '갈등'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인물과 사건이 기본요소이고, 제시방법이 간접적이면서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 서사적 구조를 가지는 것으로 볼 때, 소설이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장르론 연구의 과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장르론의 합리적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겠고, 국문학계 전체의 의견과 구조를 포용하는 다각적 검토가 이루어져 국문학 자체를 관류하는 질서의 원리가 수립되어 있다면, 이런 문제가 생길 리가 없겠습니다. 김 교수님이 결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저는 이런 소설류의 작품을 수필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리고 우리 우리의 외연을 확대하고자 하는 연구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다'는 주장에는 김 교수님의 논거에도 불구하고, 장르론 구분 준거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회의가 드는 게 사실입니다. 소설이 허구의 세계를 다루지만, 얼마든지 사실의 세계가 창작적 상상을 거쳐 소설의 세계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자전소설’, ‘전기체 소설’ 등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기본요소나 제시방법, 문체와 작품구조 등 장르의 성격에 필수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작품의 한 성격인 '비허구서사체'만을 전제로 해서 '소설적 특성을 가진 작품을 수필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김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