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따라 읽기 (일곱)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 230601
<68일간의 해외 간담회>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부터 영국의 런던, 일본의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를 오가며 삼성 임직원들과 가졌던 해외 간담회의 주제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해외에서 간담회를 가진 것은 국내라는 우물을 벗어나 넓은 세계를 보자는 뜻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변해야 살 수 있다는 나의 신념을 얘기했다. 나는 개인적 이해가 조직의 이익에 우선하고, 타율과 획일, 이기주의와 흑백 논리, 불신 풍조에 깊이 젖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으며 문제의식조차 못 느끼는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이에 대해 누구의 잘잘못을 들추어내서 벌주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서로 이해하며 변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회장인 나와 임직원들이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말없이 듣기만 하던 참석자들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점차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간부들의 발언이 활발했고 발상 또한 매우 신선했다. 몇 가지를 제안하고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낸 것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7·4제와 라인 스톱(line stop)이다.
7·4제는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근무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해서 남는 시간은 자기 계발에 쓰자는 취지다. 그런데 며칠 후 확인해보니 7·5제로 바꿔서 시행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그때까지 관례적으로 지급하던 시간 외 수당을 안 줄 수 없어서 근무 시간을 1시간 더 늘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7·4제를 하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시간 외 수당을 안 주기로 했단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지금은 1시간 일 더 시키거나, 돈 얼마를 아끼는 게 중요한 시기가 아닌데. 담당 임원을 불러 호통쳐서 본래대로 7·4제를 시행하도록 했다. 시스템을 바꿔서 사람의 의식을 바꿔보자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야속함을 느꼈고, 또 무엇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절감했다.
라인 스톱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산 공정 중에 불량을 발견하면 누구든지 그 라인 천체를 스톱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처음에는 누구도 라인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공정을 멈추고 불량원인을 찾다 보면 그날 목표량을 달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내가 몇 번을 확인한 후에야 제대로 실시되었다. 그러자 불량이 현저히 줄고 품질 개선, 공정 개선의 부수적 효과까지 나타났다. 라인 전체가 서게 되니 모든 사람이 달라붙어 불량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과정에 나타난 효과다.
그리고 임원들을 당분간 현장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월요일과 수요일 이틀만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협력업체나 대리점, 애프터서비스센터에서 고객과 직접 상대하면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피부로 느껴보라는 의도에서였다.
해외 간담회를 통해 1,800명과 350시간 대화했고 사장단과는 800시간에 걸쳐 토의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간담회가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그때는 다들 피곤한 줄도 몰랐다.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하면 8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리고 8월 4일 도쿄 회의를 마지막으로 간담회를 끝냈다.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이래 68일간의 긴 일정이었다. 내가 신경영을 선언하고 ‘신경영 대장정(大長征)’이라고까지 불렸던 간담회를 가진 것은, 구조적인 문제는 그 근본부터 해결해야 하고 그 근본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 글의 원제는 <68일간의 해외 간담회>인데 첫 문장이 우리가 아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이기에 바꾸었다.
* 68일간 1,800명과 350시간 대화했고 사장단과는 800시간 토론회를 가졌다니 꽤 많은 비용이 들었음에 틀림없지만 성과도 그만큼 컸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