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비스님의 금강경 핵심강좌 제12회 제11. 무위복승분(제십일 무위법의 뛰어난 복덕)
제11. 무위복승분 無爲福勝分
무위반야의 복이 가장 훌륭하다.
<무위의 복이 수승하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인생을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과연 어떤 인생이 가장 훌륭한 인생일까. 어떤 삶이 가장 복된 삶일까. 혹 어떤 사람이 이 세계에 가득한 보물로써 남을 위해 보시를 하고 얻은 보람과 행복을 우리는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큰 찬사를 보내야 하리라. 그러나 어떤가. 그것은 언젠가 끝날 때가 있는 것. 언젠가 소멸할 때가 있는 것. 그러므로 그것은 유위의 행복. 다함이 있는 복덕이라 한다. 완전한 행복은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완전무결한 행복이 있다. 그것은 이 금강경을 가지는 일이다. 반야바라밀을 가지는 일이다. 반야를 모두에게 나누는 일이다. 이 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그 어떤 행복보다도 값진 것이며 영원하고도 완전무결한 행복인 것이다.
제11.무위복승분(제십일 무위법의 뛰어난 복덕)
수보리 여항하중 소유사수 여시사등항아 어의운하 시제
항하사 영위다 부
須菩提 如恒河中 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
恒河沙 寧爲多 不.
”수보리여! 항하의 모래 수만큼 황하가 있다면.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이 모든 항하의 모래수는 진정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언 심다 세존 단제항하 상다무수 하항기사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항하들만 해도 헤아릴 수없이 많은데 하물며 그것의 모래이겠습니까?”
수보리 아금실연고여 약유선남자 선여인 이칠보만이소항하사수 삼천대천세계 이용보시 득복다 부
須菩提 我今實言告汝. 若有善男子 善女人 以七寶滿爾所恒河
沙數 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多 不.
“수보리여! 내가 지금 진실한 말로 그대에게 말한다. 선남자 선여인이 그 항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시한다면 그 복덕이 많겠는가?”
수보리언 심다 세존
須菩提言. 甚多 世尊.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불고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어차경중 내지 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佛告. 須菩提 若善男子 善女人 於此經中 乃至 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의 사구게 만이라도 받고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준다면 이 복이 저 복보다 더 뛰어나다.”
無爲福勝分 第十一
무위복승분 제십일
‘금강경 핵심’이라고 그렇게 타이틀을 걸어서, 지난 번 두 번하고, 오늘 세 번 째 시간인데, 第十一 無爲福勝分(제11 무위복승분)이라, 제11분, 무위복승분 할 차례입니다. 무위복이 수승하다, 이 말이죠. ‘無爲福(무위복)’, ‘無爲(무위)’라고 하는 말 본래 도교(道敎)의 용어지만 불교에서 이끌어다가 잘 쓰고 있습니다.
뭐 그 추상적인 용어는 항상 해석이 구구합니다. 뭐라고 뭐 글자대로 새기면은 ‘함이 없다’ 도대체 ‘함이 없다’는 게 뭐냐? 그래서 설명이 아주 구구하죠.
나는 뭐 없는 것, 없는 데서 말하자면 어떤 이치를 밝혀놓은 것, 없는 것이 근본인데, 그 없는데서 이치를 밝혀놓은 것이고, 또 그래서 결국은 그것은 없는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없다고 하는 이치가, 그렇지만 그 ‘없다’고 하는 이치가, 사실은 이 어떤 ‘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사람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치고 오히려 있는 것 보다도 없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이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에는 사실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 부피를 가지고 지구라든지 태양이라든지 이거는 공간에 비교하면은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되죠.
그와 같이 유형한 것 보다 무형한 것, 있는 것 보다 없는 것이 더 큰 역할을 하고, 크게 좌우하는 것이고, 그래서 있는 것은 전~부 없는 것을 통해서 영위되어 가는 것, 사람도 그렇게 이제 없는 것을 인연으로 해서 없는 것 덕에 있는 것이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없는 것 덕에 있는 것이 살아가고 있다. 얼른 말만 들으면 좀 이상하지마는 그 이치를 우리가 잘 더듬어서 곱씹어보면은 그게 사실은 맞는 말입니다. 그래 여기서는 ‘無爲福(무위복)’이라고 하는 말은, ‘경전의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 ‘금강경의 가르침’을 뜻하는 것입니다.
내용은 뭐 간단한 게 돼놔서 그냥 긴 설명 할 필요가 없는 대목이죠.
第十一 無爲福勝分
제십일 무위복승분
須菩提야 如恒河中所有沙數하야 如是沙等恒河가 於意云何오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하 어의운하
是諸恒河沙가 寧爲多不아
시제항하사 영위다부
須菩提야 如恒河中所有沙數하야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수보리야! 예컨대 항하중에 있는 沙數(사수), 모래 숫자,
如是沙等恒河가 於意云何오
여시사등항하 어의운하오
이와 같은 모래, 이와 같은 모래와 동등한 항하강[等恒河], 강이 있다고 하자, 물론 그 강에도 모래가 다 있는 강입니다. 뭐 모래 빼놓고 강을 말하는 게 아니겠죠.
어떻게 생각하는가[於意云何오]?
是諸恒河沙가 寧爲多不아
시제항하사 영위다부
이 모든 恒河沙(항하사)가
얼마나 많음이 되겠는가[寧爲多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수보리언 심다 세존
但諸恒河도 尙多無數어든 何況其沙리잇가
단제항하 상다무수 하황기사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수보리언 심다
수보리가 말씀 드리되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但諸恒河도
단제항하
다만 저기 저 하나 뿐인 항하강, 그 항하강의 모래 숫자와 같은 항하강이 있다고 했을 때,
尙多無數어든
상다무수
그 항하강 숫자도 어마어마 한데,
何況其沙리잇가
하황기사
그 많은 항하강에 있는 모래이겠습니까!”
尙多無數(상다무수)어든 何況其沙(하황기사)리잇가! 그 말이죠.
그렇습니다. 참, 이런 그 비유를 어떻게 머리가 돌아가서 이런 비유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었는지 참, 대단한 그 안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須菩提야 我今實言으로 告汝호리니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七寶로
수보리 아금실언 고여 약유선남자선녀인 이칠보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하야 以用布施하면 得福이 多不아
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 이용보시 득복 다부
須菩提야 我今實言으로 告汝호리니
수보리 아금실언 고여
“ 수보리야! 내가 진실한 말로써 그대에게 말하겠다.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七寶로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하야
약유선남자선녀인 이칠보 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만약 선남자선녀인이) 금은보화칠보로써, 앞에서 든 그 항하강의 모래숫자와 같이
많고 많은 항하강이 있고, 그 숫자와, 항하강의 모래 숫자와 같은 삼천대천세계에다가 칠보를 가득 채워가지고, 이런 말입니다.
以用布施하면
이용보시
거기에 보시를 사용했다 할 것 같으면은,
得福이 多不아
득복 다부
그 복이 얼마나 많겠는가?”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수보리언 심다 세존
須菩提言하사대
수보리언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심다 세존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죠. 뭐 하나의 항하강에 있는 모래 숫자만치만 칠보로 채운다 하더라도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겠는데 참, 어떻게 보면은 너무 하죠.
예를 들어서, 뭐 해운대 백사장에 있는 모래숫자와 같은 그 숫자, 그 숫자 정도의 지구, 뭐 삼천대천세계, 우리는 잘 모르니까 지구라고 하고, 해운대 그 모래사장에 있는 지구에다가, 금은보화 이 칠보로 가득 채워가지고 보시했다. 아니 그거 다 양보하고, 저 금정산만한 칠보를 가지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선 사업에 썼다 하면 아마 수 십 년, 수 백 년 대서특필로 계속 뉴스에, 신문에, 계속 그 얘기 할 겁니다. 안 그렇겠어요? 금은보화를, 다이아몬드를, 금정산 만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자선 사업하는 데 썼다, 누가, 예를 들어서,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이 참 금강경 이 비유는 비유하는 방법이 참, 기가 막히죠. 아무튼 마,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甚多(심다)니이다 世尊(세존)하!” 그랬어요.
佛告須菩提하사대 若善男子善女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불고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爲他人說하면 而此福德이 勝前福德하리라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佛告須菩提하사대
불고수보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고하사되
若善男子善女人이
약선남자선녀인
“만약 선남자선녀인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이 금강경, 전체거나, 또는 四句偈(사구게)등 만이라도 수지해서,
爲他人說하면
위타인설
爲他人說하면
위타인설
(타인을 위해 설한다면)
그랬어요.
而此福德이 勝前福德하리라
이차복덕 승전복덕
(이 복덕이) 앞에 복덕[以七寶(이칠보)로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하야 以用布施(이용보시)] 보다 수승하다!”
이 勝(승)자, 이게 이제 소위 ‘無爲福(무위복)’, 이게 ‘無爲法(무위법)’이거든요. 진정한 불법은 전부가 ‘무위법’입니다. ‘없음’의 도리예요. 우리가 ‘공문의 도를 얻었다’, 그런 말이 있죠.
초심에도 ‘得道空門裏(득도공문리)라주1), 공문 속에서 도를 얻었다.’‘무위’의 이치, ‘없음의 이치’, 또 우리가 우리 진공묘유니, 반야심경이니 등등 공의 이치를 얼마나 불교에서 많이 합니까? 모든 ‘있음’은 그 ‘없음’이 바탕이 돼 있어서 그래서 있음은 없음을 늘 전제로 하고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된다, 그러죠. 그러면 ‘있음’에 크게 미혹하지 않고, 이끌리지 않고, 거기에 속지를 않는다,
‘있음’에 속지를 않는다.
그게 명예가 됐든, 돈이 됐든, 육신이 됐든, 나이가 됐든, 지식이 됐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 ‘있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은 사실은 ‘없음’이 바탕인데, ‘없음’이 근본인데, 그걸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살면은 그 ‘있음’에 대해서 그렇게 현혹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아니하고 또한 미혹하지 않죠.
미혹하지 아니하면 고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있음’에 미혹하지 아니하면, ‘있음’의 진실을 제대로 이해해서,
“ 그 ‘있음’은, 아, 이 ‘없음’이 모여서 있음이 됐다.”
‘있음’의 본질은 ‘없음’이다. 모든 있는 것은 ‘없음’이 본질이다 이말이야. 그렇게 알면은 그 ‘있음’에 크게 속을 필요가 없죠. 속지 아니하면 고생을 안 합니다. 그게 사랑이 됐든, 미움이 됐든 똑 같애요. 정신적인 ‘있음’이나, 어떤 유형상의, 형상 있는 것의 뭐 물질적인 ‘있음’이나 이런 모든 것도 다~ 사실은 유형한 것하고 똑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치를 말하자면 금강경에서 주욱 설명하는데 그 이치가 참으로 뛰어나다, 이 금강경의 그 ‘있음’의 원리는 늘 이야기했듯이 ‘則非(즉비)’곧 없는 것, 곧 아닌 것, 그것이지마는 그것이 곧 아닌 것이다, 라고 하는 그 ‘則非(즉비)’의 이치가 그와 같이 수승한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금은보화, 산더미만한 금은보화 [以七寶(이칠보)로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하야 以用布施(이용보시)] 보다도 수승하다! 훨씬 수승하다[而此福德(이차복덕)이 勝前福德(승전복덕)하리라], 뭐 항하강의 비유를 들면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머리에 와 닿지 않아요, 가슴에. 금정산 덩어리 정도라고 생각하면은 어느 정도 와 닿을 겁니다. 뭐 다 아는 이야기고,
第十二 尊重正敎分
제십이 존중정교분
제12. 존중정교분(제십이 올바른 가르침의 존중)
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 사구게등 당지차처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개응공양 여불탑묘.
復次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 四句偈等 當知此處 一切世間 天 人 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
“또한, 수보리여! 이 경의 사구게 만이라도 설해지는 곳곳마다 어디든지 모든 세상의 천신,인간,아수라가 마땅히 공양할 부처님의 탑묘임을 알아야 한다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
제일희유지법.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
第一希有之法.
하물며 이 경 전체를 받고 지니고 읽고 외우는 사람이랴!
수보리여! 이 사람은 가장 높고 가장 경이로운 법을 성취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약시경전 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若是經典 所在之處 卽爲有佛 若尊重弟子
이와 같이 경전이 있는 곳은 부처님과 존경받는 제자들이 계시는 곳이다.”.
제12. 존중정교분 尊重正敎分
올바른 가르침은 존중되어야 한다.
<올바른 가르침을 존중하다>
이 세상에는 가르침도 많고 주의주장도 많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 값있는 가르침이며 존중되어야 할 사상인가. 그것은 곧 이 경의 가르침이며, 반야바라밀의 사상인 것이다. 반야는 만유의 진정한 생명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반야를 수지 독송하고 수지 독송하는 사람은 마땅히 높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는 최상의 진리 희유한 진리를 성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자며, 그는 깨어있는 사람이며 그는 참사람이기 때문이다.
제12. 존중정교분(제십이 올바른 가르침의 존중)
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 사구게등 당지차처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개응공양 여불탑묘.
復次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 四句偈等 當知此處 一切世間 天 人 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
“또한, 수보리여! 이 경의 사구게 만이라도 설해지는 곳곳마다 어디든지 모든 세상의 천신,인간,아수라가 마땅히 공양할 부처님의 탑묘임을 알아야 한다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
제일희유지법.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
第一希有之法.
하물며 이 경 전체를 받고 지니고 읽고 외우는 사람이랴!
수보리여! 이 사람은 가장 높고 가장 경이로운 법을 성취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약시경전 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若是經典 所在之處 卽爲有佛 若尊重弟子
이와 같이 경전이 있는 곳은 부처님과 존경받는 제자들이 계시는 곳이다.”.
第十二 尊重正敎分
제십이 존중정교분
復次須菩提야 隨說是經호대 乃至四句偈等하면
부차수보리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當知此處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당지차처 일체세간천인아수라
皆應供養을 如佛塔廟어든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가
개응공양 여불탑묘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須菩提야 當知是人은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이니라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若是經典所在之處는 則爲有佛과 若尊重弟子니라
약시경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第十二 尊重正敎分
제십이 존중정교분
‘正敎(정교)’는 존중 되어야 한다. 참 좋은 말입니다. 제가 금강경에서 좋은 말이라고 늘 기억한는데, ‘正敎(정교)’, ‘바른 가르침’, 그렇습니다. 불교에도요, 무수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뭐 불교 이외의 가르침은 잠깐 덮어 놓고, 불교만 하더라도 무수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 모두가 다 중생을 뭐 건지기 위한 하나의 약방문이고, 방편이라고 하는데에야 뭐 이유를 붙일 수가 없겠습니다만, 그 방편이라고 미명하에, ‘正敎(정교)’가 아닌 것, ‘邪敎(사교)’, 바르지 못한 그런 가르침을 가지고 어쩌면 너무 많이 장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사실은. 팔아먹기도 하고. 또 몰라서 거기에 미혹해 있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이 금강경에서 ‘정교는 존중되어야 한다[尊重正敎]’‘바른 가르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뜻입니다.
第十二 尊重正敎分
제십이 존중정교분
復次須菩提야 隨說是經호대 乃至四句偈等하면
부차수보리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當知此處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당지차처 일체세간천인아수라
皆應供養을 如佛塔廟어든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가
개응공양 여불탑묘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復次須菩提야 隨說是經호대
부차수보리 수설시경
“또 수보리야! 이 경전을 순서를 따라서 설하되, 隨說(수설), 하는 말은 그런 말입니다. 순서를 따라서 이야기를 하되,
乃至四句偈等하면
내지사구게등
경 전체거나 내지 사구게등을, 순서대로 따라서 설할 것 같으면[隨說(수설)],
當知此處는
당지차처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일체세간천인아수라
모든 세상 사람들이 전~부(일체 세간의 천신이나 사람이나 아수라가)
皆應供養을 如佛塔廟어든
개응공양 여불탑묘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고, 존중 찬탄하기를 부처님의 탑묘처럼 해야 된다.
그렇죠.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나면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탑묘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 이거 가지고 안 되겠다 싶어서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죠. 그래 초기에는 탑묘입니다. 이 탑묘 속에는 경이 반드시 들어 있어요. 물론 사리도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리가 없을 때는 경이 사리 노릇을 했습니다. 웬 사리가 그렇게 많겠어요? 탑은 무수히 많은데, 그럼 경을 넣으면 그대로 탑이 돼요. 그래서 경전을 ‘법신사리’이렇게 표현합니다. ‘법신사리’!
경전이야 말로 정말 진짜 부처님이거든요. 부처님의 사리다. 그래서 이제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겁니다.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가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하물며 어떤 사람이, 다 능히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것이겠는가!”
이 경전만 있어도, 아니 경전 다 가 아니고 사구게만 있어도 부처님의 탑묘처럼 우리가 받들어야 하는데,
須菩提야 當知是人은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이니라
수보리 당지시인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若是經典所在之處는 則爲有佛과 若尊重弟子니라
약시경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須菩提야 當知是人은
수보리 당지시인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이니라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성취했다, 무엇을? 최상가는 법을 성취했고, 제일 가는 법을 성취했고, 희유한 법을 성취했다!
나는 이걸 떼어 놓고 봅니다.
最上(최상), 第一(제일), 希有(희유) 이러한 법을 성취했다.
워낙 금강경이 위대하니까 금강경이 이처럼 너무 좋으니까 ‘최상 가는 법이요, 제일 가는 법이요, 희유한 법이다!’이러한 것을 ‘成就(성취)’하는 것이 된다.
若是經典所在之處는
약시경전소재지처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은
則爲有佛과 若尊重弟子니라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곧 부처님이 있음이 되고[則爲有佛則爲(즉위유불)]’, 또 ‘곧 존중제자가 있음 이 된다[若尊重弟子(약존중제자)]’ ”,
이 말입니다. 尊重弟子(존중제자)!
부처님 제자라고 해서 다 해당되는 거 아니에요. 해당시키지 않으려고 ‘존중제자’라고 했어요. 이걸 이제 뭐‘제자를 존중하게 된다’뭐 이렇게도 표현 하지만, 아닙니다. ‘존중할 제자’, ‘훌륭한 스님들’, 뭐 꼭 스님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사부대중이 다 제자죠.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격화가 확실하게 되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존중할 만한 제자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