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친구
강 동 구
동창 친목 모임을 재개한 게 거의 삼 년 만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무너지고 입을 막고 살아온 지 삼 년여 만에 그동안 중단되었던 동창 모임을 알리는 카톡을 날리니 왜 이제야 연락하냐고 원망이나 하듯 모두 들 참석하겠다는 댓글이 빗발친다.
전에는 모임에 얼굴을 자주 보여주지 않던 친구들도 경쟁적으로 이번에는 꼭 출석부에 도장을 찍겠다고 벼르고 있다. 동창 모임의 회장을 맡은 나로서는 친구들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둘러 모임을 주선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1950년생 범띠 우리 세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만은 일을 겪고 살아왔다. 물론 우리 탓은 아니지만 6.25 전쟁통에 태어나 부모님을 가장 힘들게 했고 피난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돌봄도 잘 받지 못한 불행한 세대이다. 우리 형님 세대들도 일본의 압제하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왔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전쟁통에 용케도 살아남아 열 살쯤 될 무렵 4.19 시민혁명이라는 국가적 혼란을 겪었고 5.16 군사혁명을 겪어야 하는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다. 4.19 혁명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5.16 혁명은 초등학교 5학년 12살 때 일이니 기억이 생생하다.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를 누비며 깡패들을 잡아드리고 굴비 엮듯이 엮어 나는 깡패입니다. 라고 쓴 팻말을 목에 걸고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을 학교 게시판에서 사진으로 본 기억이 새롭다.
혁명정부는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혁명공약을 외우게 하고 외우지 못하면 캄캄한 밤중까지 집에 보내지 않아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오는 일도 있었고 의무적으로 학교 어린이 은행에 단 얼마라도 저축해야 했다.
도시락은 잡곡밥을 싸 오지 않고 흰밥을 싸 오면 벌을 받았다. 이른 아침에는 조기 청소라 하여 동내별로 모여 마을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학교에 갔다. 아침 조회시간과 점심시간에는 재건 체조라는 체조를 하며 국가재건이라는 혁명정부의 구호를 주입 시켰다. 공무원들이 입는 근무복은 재건복이라고도 했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 농촌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 있는 학교도 운동장 구석에 퇴비장을 만들어 숙제로 풀을 한 다발씩 학교에 가져가야 했다.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혁명정부의 노력이 애달프기까지 하다.
가뭄이 들면 양동이를 가져와 농촌에 가서 논에 물을 퍼야 했고 여름철에는 산에 가서 송충이를 집게로 잡았다. 송충이에게 쏘이면 팔이 퉁퉁 붓는다. 모내기 벼 베기 등 농촌 일손 돕기에 수시로 참여하였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교실을 증축하는데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일요일에는 소양강에 가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고 평일 날은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건축자재를 나르면서 공부하였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감히 누가 불평하거나 항의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서슬 퍼런 군사정부 시절이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혁명정부는 강압과 인권침해도 있었지만 그래도 국가재건이라는 대명제하에 추진된 경제개발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자란 우리가 이제 종심(從心)을 지나 희수(稀壽)에 가까이 왔으니 세월이 흘러도 많이 흘렀다. 어린 시절 대부분 극심한 가난 속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왔다.
지금은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며 손주들 재롱잔치에 늙는 줄도 모르고 살아오다 코로나라는 괴물 앞에 일상을 빼앗기고 삼 년여 세월을 그리운 친구들 얼굴도 못 보고 지내 오다 만남이 이루어지니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 것보다 더 반가운 모습으로 서로 얼싸안고 기뻐한다.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각자의 사정이 허락지 아니하여 참석하지 못한 친구도 있지만 처음 예정한 날짜를 변경하는 바람에 못 나온 친구도 있다.
회장으로서는 되도록 많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정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만 날이랴? 이제 코로나도 잠잠해졌으니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힘써 보려고 한다.
오늘의 만남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지만. 코로나가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누구인들 알았으랴? 전에도 사스나 메르스도 경험했지만 몇 달 견디면 지나가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도록 전 세계를 고통 속에 몰아넣을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와 마스크도 벗어버리고 정담을 나누는 친구들을 보니 이제야 사람 사는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친구가 많은 사람은 친구가 적은 사람보다 수명이 더 길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옛말이 있다. 친구가 얼마나 좋으면 부모 팔아 친구를 산다는 옛말이 생겨났을까? 부모 형제에게 할 수 없는 말도 친구에게는 할 수 있고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 친구이기에 그런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인생에 친구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황폐할까? 인생의 윤활유 같은 소중한 존재 친구 애정과 우정 둘 중 한 가지를 택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솔로몬이라면 이런 질문에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친구들아 이제 우리 자주 만나서 자기 영감 할멈 흉도 보고 손주들 재롱떠는 자랑도 하면서 이 좋은 세상 재미있게 살자 앞으로 우리가 몇 년이나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우정 변치 말고 우리에게 허락되어 진 소중한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어가며 살자.
천 상병 시인의 귀천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자.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욱 아름다웠노라고.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오타 만은ㅡ많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