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묵어버린 것들이 서랍 속에서 다투어 눈길을 잡는다. 값나가고 고급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내 가족이 한때 소중하게 사용했던 것들이다. 잡동사니라 여겨지는 것들을, 웬만하면 비워 내기로 마음먹는다.
작은 서랍에는 식구들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들이 눈에 띈다. 벼락 맞은 까만 나무 도장과 작고 귀여운 빨간 뿔 도장, 상아색 대리석 도장과 이제 역할을 잃어버린 남편 인감 옥도장이 가죽 주머니에 넣어둔 채로 얌전하다. 색 바랜 예전 주민등록증과 아들의 공군 제대증, 출가외인이 되어버린 딸의 학생증도 보인다. 즐기지는 않지만 특이한 디자인에 끌려 구매했던 액세서리들도 보관해 둔 채로다. 필요에 따라 찍었던 쓰고 남은 여유분 증명사진들이 옛 모습으로 남아있다. 삶을 같이했던 물건들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날들을 고스란히 추억하고 있다.
언제부터 멈추었을까. 오랜 세월 그의 몸 일부처럼 같이했던 손목시계가 더 이상 돌아가질 않는다. 멈춰버린 시계가 떠난 사람의 생처럼 먹먹해 보인다. 그는 검은 가죽 밴드로 바꾸어 줬을 때 시계 줄이 맘에 든다고 아주, 만족해했다. 그랬던 사람의 생도, 아껴 쓰던 시계도 멈추었다. 주인 잃은 시계를 보니 이별은 나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인정받고자 캔버스에 붓질을 해댔다. 쉬지 않는 시곗바늘처럼 그의 붓질도 멈춤이 없었다. 오직 그림 그리기에만 빠져 있는 그를 뒷받침하는 현실이 버거운 줄 몰랐다. 완성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온갖 시름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 순간만은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나에게만 주어진 행복이라 여겼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던 예술가와 내조자의 삶이였다.
아들 개인전 때다. 광주에 떨어져 사는 딸네 가족이 축하차 부산에 왔다. 어린 손자 도균이가 노래를 부르며 갤러리 그림들을 둘러보며 작품마다 동영상 촬영 중이다.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나는 도균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잔잔한 노랫말이 마음을 아련하게 했다. 삼촌 그림을 돌아보는 동안 그림을 그렸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던 걸까. 네 살, 너무 어렸을 때의 이별이었지만 도균이는 특별했던 할아버지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빠보다 먼저 결혼한 딸이 손자를 낳았다. 할아버지가 된 그는 첫 손자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이름 짓기에 유명하다는 철학관을 찾아 지어온 이름이 성에 차지 않았던 그였다. 밤이 새도록 한자 사전을 뒤척이면서 도균이라는 이름을 짓고 나서야 흡족해했다. 까맣고 커다란 눈을 가진 손자의 모습만 떠올려도 그는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긴 팔을 뻗어 깍지를 끼고 팔 그네를 만들어 도균이를 태워 흔들어 주었다. 그의 화실에 들를 때는 팔레트에 짜놓은 물감을 찍어 캔버스에 붓질도 하게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며 다루었던 것들을 손자에게만은 아낌없이 주었다.
그의 팔레트에는 언제나 색색의 물감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물감마다 붓을 꾹꾹 찍어 캔버스에 이리저리 그어댄다. 붓질하는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헤집어 놓은 물감들이 뒤섞여 있는 팔레트를 바라보는 나는 남편이 평소에 붓과 팔레트를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는가를 잘 알기에 초조해졌다.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캔버스에 색색의 물감을 그어놓은 것을 마치 추상 작가의 기막힌 작품이라 추켰다. 자신의 자질을 물려받은 천재적 재능이라 우기며 손자의 첫 그림에 즐거워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딸은 결혼 후로 붓을 들지 않았다. 타고난 소질이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능력도 특별해 보였다. 딸이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좋아하며 기대도 컸었다. 그랬던 딸은 생각과 달리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많이 속상해하며 안타까워했다. 언젠가는 자질을 살려 다시 그림을 그리리라는 희망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 듯했다. 그런 중에 손자의 그림 솜씨에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행복해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다.
서랍 속 멈춰진 시계를 보면 먼 기억 속에서 헤맨다. 도균이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었다. 전화를 걸었다. 도균이에게 ‘할아버지 시계’ 노래를 녹음해서 보낼 것을 부탁했다. 오늘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길고 커다란 마루 위 벽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 / 언제나 정답게 흔들어주던 시계
할아버지 옛날 시계 /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휴대폰 동영상을 반복해서 듣고 다시 듣는다. 노래 가사처럼 할아버지는 떠났다. 시계도 멈춰버렸다. 이제는 제 엄마 키를 훌쩍 넘어버린 손자가 초등학교 육학년이 되었다. 둘째 서율이도 이학년이 되었고 막내 윤슬이는 유치원을 다닌다. 세 명의 손주들이 주는 행복을 남아있는 나만 누린다.
도균이는 내 수필집 《11월의 노랑나비》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자랑한다. 우리 두 부부가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힘든 삶을 살아낸 그림과 글들이다. 먼 훗날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 손자 손녀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대를 이어 예술로 승화된 그림과 글들이 자랑스럽고 존경받는 화가 할아버지와 수필가 할머니로 남겨지고 싶다. 그것으로 세상을 살아낸 더 이상의 보람은 없을 듯 싶다.
오랜만에 따뜻했던 그의 손목을 잡아보듯 시계를 쥐어본다. 온기는 사라지고 윤기마저 잃은 멈춰버린 손목시계를 닦고 또 닦는다. 함께 살아낸 시간이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 풍경 속에는 손자 도균이의 맑은 노랫소리가 배경처럼 잔잔하게 들려온다.
첫댓글
가슴이찡합니다.
데이빗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