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낼 즘, 지하철 6호선 끝자락에 살았다.
‘봉화산, 봉화산행 열차입니다.’
나는 종착역 하나 전 역에서 내렸다.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그 동네에는 작은 하천이 있었는데, 그 하천을 따라 집과 지하철역 사이를 오가는 길이 좋았다. 그늘 한 자락 없는 여름에는 아주 뜨거워 땀을 뻘뻘 흘리고 매운 바람이 사납게도 불어대는 겨울에는 너무 추워 꽁꽁 언 입김이 나왔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같은 것들이 좋았다.
딱 한 번, 그녀가 그 집에서 자고 간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면서도 또 맨날 할 말이 무지막지하게도 많았다. 일찌감치 수업이 끝나면 해가 아직 벌겋게 떠 있는 시간일랑 아랑곳하지 않은 채 폭음을 하고 귀가했다. 우리가 아이돌 팬덤 안에서 만난 지 4~5년 차였다.모든 동갑내기 팬들과 그렇게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어쩐지 우리는 함께 나이를 먹으며 서로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조금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눈이 좋았고, 굳은 심지와 건강한 마음이 좋았다.
그날은 건대에서 술을 많이 마셨고, 생각보다 금방이라며 호기롭게 우리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내 방에 잠깐 침대가 없던 시절이라 집으로 향하는 길에 침대 없이는 잠을 못 잔다는 그녀가 걱정이었다. 시간이 늦어 슬그머니 들어가, 방으로 숨어들었다. 내 방은 현관에서 제일 가까운 방이었다. 가지고 있는 이불이란 이불은 모조리 꺼내 바닥이 푹신해지도록 깔았더니 나름대로 아늑했다. 나란히 누워서 둘이 또 한참 수다를 떨다가 잠들었는데, 다음날 그녀가 모처럼 거짓말인가 싶을 만큼 개운하게 잤다고 말했다.
일어나서 세수나 겨우 마치고 나온 그녀는, 아침을 먹고 가라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나는 그러면 우리 엄마에게 인사 정도는 하고 가라고 말했다. 사실 엄마에게 그녀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로 되어 있었다. 그날따라 조금 섹시한, 검은색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었던 그녀는 ‘나를 까진 애로 보시면 어떡하지?’ 답지 않은 걱정을 했다. 까진 애가 맞잖아, 괜히 말을 보태다 매를 벌었던 기억까지 선명하다.
불이 켜지지 않은 안방 침대에 누워있던 엄마는 그날도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 엄마. 친구 간대.
- 벌써?
- 안녕히 계세요.
- 어머. 아침 먹고 가지 않고. 넌 친구 밥도 안 챙겨주니?
- 아니에요. 가봐야 해서..
- 그래. 다음에 또 놀러 와라.
가끔 지금의 나를 이렇게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그녀와 한때 내 세상의 중심이었던 엄마가, 그저 그렇게 어렴풋이 어색한 인사만 나눈 사이라는 사실이 이상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 일이란 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나는 6호선의 반대쪽 끝자락에 살고 있다.
‘응암순환, 응암순환행 열차입니다.’
응암역에서 사람이 잔뜩 내리고 다시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쯤에서 가득 올라탄다. 6호선은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어디든 닿게 해주고, 인파도 비교적 한적해서 서울 지하철 같지 않은 느낌이 있다. 정이 들었다. 출근을 하는 날에는 합정역, 약속이 있는 주말에는 상수역, 퇴근하고 그녀를 만나러 갈 때에는 삼각지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곤 한다. 이번 할로윈 밤에는 이태원역에 내리게 될 것이다.평소와는 다른 독특한 화장과 코스튬을 한 채, 즐거운 듯 웃을 그녀의 조그만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서울 시내 지하철 노선과 시내버스들이 닿는 정류장 구석구석에 그녀와 나의 추억들이 스며있다. 세상에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오직 그녀 하나와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어디든 함께 한 시간들로 채워가며 살고 싶다. 행복한 레즈비언으로.
요즘 일상이 너무 바빠
그녀 생각을 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렛세이를 쓸 때만큼은
그녀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분이라 좋아요.
뇌내 단독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