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부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앙 • 성경 • 실천” 信仰・聖書・実践 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에 걸쳐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서 신앙 즉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마다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꼭 종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서 열심히 공부하거나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그로 인해서 자신의 생활,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이는 좋은 일이지요.
또는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시는 분들도 그렇고, 몸에 좋다는 것을 먹는 경우도 그렇겠지요. 무슨 유산균이다 건강식품이다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와 같은 것을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서 건강을 얻을 수 있다거나, 또는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운동도 그렇고 몸에 좋은 건강식품을, 물론 너무 과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만, 적절하게 한다면 몸에도 좋겠지요.
이와 같은 믿음은 한 개인만이 아닙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뭐 여러
가지 이론이나 주장이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알기 쉽게 부국강병, 일단 나라에 돈이 많아야지요.
그래야 국민들도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 산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면 모든 것을 빼앗겨버립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군대 또한 분명히
필요하다고 하겠지요.
풍요로운 나라와 튼튼한 국방, 쉽게 말해서 이 두 가지만 갖추어져 있다면 그 나라는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라고 하겠습니다. 이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들이 어디입니까. 그렇죠.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진국은 어디인가 하면,
여기에는 그 기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전통적인 개념이라고 한다면 G7에 가입된 나라라고 하겠지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입니다. 그리고 근래에 와서는 이외에도 러시아와 중국을 빼놓을 수가 없겠지요.
이 나라들은 경제력이 상당합니다. 거기에 군사력도 남다르지요. 이 중에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은 공식적인 핵
보유국입니다. 지금 전세계에는 핵무기가 15,000에서 17,000개 정도나 있다고 하는데 그 중 대부분이 미국과 러시아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나라들만이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지요. 쉽게 말해서 많은 돈과 튼튼한 국방력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습니까. 전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떨고 있습니다. 지금 현 상황의 심각성을 표현할 방법은 많겠습니다만, 예를
들어서 우리는 2001년 9월 11일에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9.11 테러사건이지요. 여객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돌진하는 장면, 그리고 두 개의 고층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 9.11 테러에서 사망한 사람이 몇 명인가 하면,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사망자가 총 2,997명이었다고 합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요.
이로 인해서 아프가니스탄과의 대립, 오사마 빈 라덴, 이라크 전쟁, 여기에 또 IS등등 복잡한 세계 정세가 얽히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9.11 테러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숫자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이 코로나 때문에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뉴스를 통해서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요즘 미국에서는 거의 매일 하루에 2천 명 정도의 사람이 사망하고
요즘은 하루 4천명 정도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염자가 아니라 사망자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요즘 미국은 거의 매일마다 9.11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에서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모두 2만명 정도라고 하는데, 어제까지의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만 코로나에 의한 누적 사망자
수가 3만 4천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9.11 테러 때는 그 대단한 군사력을 사용할 대상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습니까. 미국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중국이 미국을 공격할 목적을 가지고 미국에 퍼뜨렸다면 또 모를까, 이처럼 질병으로 인한
감염이라고 한다면, 그 대단한 무기를 단 한 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고 군사력도 막강하면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왔을 것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몇 번이나 멸망시킬 수
있다고 할 정도의 수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3천 명, 4천 명 죽어가는 국민들의 목숨을 지킬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꼭 나라 차원에서만 일어나나요? 열심히 공부만 하면 행복해질 줄 믿었는데,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좋은 학교,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좋은 사람과 결혼하기만 하면, 좋은 집과 좋은 차만 얻을 수 있다면 행복한 삶,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는데……인생을 좀 살아본 분들은 사람의 인생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믿는 대상이 잘못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章17節
“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て、信仰に始まり信仰に進ませるからです。「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이 구절을 보면 좀 말씀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를 좀 알기 쉽게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 구절에서의 핵심이라고 하는
부분이지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는 부분인데, 여기서 “의인”이라고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 부분만 알게 되면 다른 부분은 생각보다 쉽게 이해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의인”이란 무엇일까. 세상에서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습니다만, 성경에 의한 의인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고린도후서 10장 18절을 들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8절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自分自身を推薦する人ではなく、主に推薦される人こそ本物です。
이 세상에서 의인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착한 일, 또는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러다 보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사람인 의인인지 아닌지 종종 견해가 갈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대표적인 경우가 정치인들이라고 하겠지요. 정치인 중에서
누가 의로운 정치인이냐 하는 의견은 각 사람에 따라서 분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에 있어서는 그 기준이 분명합니다. 주님이 옳다고 하면 의로운 것이요, 주님이 옳지 않다고 하시면 의롭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21절
“15.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そして人々に言われた。「どんな貪欲にも気をつけ、警戒しなさい。人があり余るほど持っていても、その人のいのちは財産にあるのではないからです。」
それからイエスは人々にたとえを話された。「ある金持ちの畑が豊作であった。
彼は心の中で考えた。『どうしよう。私の作物をしまっておく場所がない。』
そして言った。『こうしよう。私の倉を壊して、もっと大きいのを建て、私の穀物や財産はすべてそこにしまっておこう。
そして、自分のたましいにこう言おう。「わがたましいよ、これから先何年分もいっぱい物がためられた。さあ休め。食べて、飲んで、楽しめ。」』
しかし、神は彼に言われた。『愚か者、おまえのたましいは、今夜おまえから取り去られる。おまえ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
自分のために蓄えても、神に対して富まない者はこのとおりです。」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그 때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학력입니까. 경력입니까. 재력입니까. 아니면 권력이 나를 구원해줍니까.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それが要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この御名のほかに、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は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학벌도 아니요, 경력도 아니요, 재력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를 알게 된다면 오늘 말씀을 좀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오늘 말씀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て、信仰に始まり信仰に進ませるからです。「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옳다고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앞 구절은 어떨까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て、信仰に始まり信仰に進ませるからです。
복음, 알기 쉽게 본다면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이루고자 하시는 뜻,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린다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고, 이 사실을 믿음으로 인해서 신앙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이를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칭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단순히 과거에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사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구주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옳다고 칭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자, 본문 내용을 이해하셨다면, 그렇다면 다음으로 믿음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좀 어려운 문제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좀 어려우신가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과 사랑을 비교해보면 좀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께 힌트가 될 구절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8절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愛は決して絶えることがありません。預言ならすたれます。異言(いげん)ならやみます。知識ならすたれます。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어떻습니까. 이제 믿음이 좀 무엇인지 알 것 같으신가요?
이 구절을 보면 사랑은 상당히 중요하고 그 반면에 믿음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어떻습니까. 예언은 우리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알게 해주시는 것이고 방언은 우리 이 땅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소통이기에 일반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식은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는
세상적인 지식과 신앙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세상적인 지식 중에서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인문과학도 그러고 자연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문이 발전하면 이에
따라서 과거의 지식은 새로운 지식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절대적인 지식은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신앙적인 지식은 그럼 어떻습니까.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11절~14절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女から生まれた者の中で、バプテスマのヨハネより偉大な者は現れませんでした。しかし、天の御国
で一番小さい者でさえ、彼より偉大です。
バプテスマのヨハネの日から今に至るまで、天の御国は激しく攻められています。そして、激しく攻める者たちがそれを奪い取っています。
すべての預言者たちと律法が預言したのは、ヨハネの時まででした。
あなたがたに受け入れる思いがあるなら、この人こそ来たるべきエリヤなのです。
구약에서는 다양한 예언들이 등장합니다만, 그 중 대표적인 예언이 바로 메시야에 대한 예언. 즉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해결해주심으로 인해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서에 구체적인 기록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기존 선지자들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점을 들 수가 있는데, 첫째는 예언된 선지자였다는 점과
둘째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예언된 선지자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구약성경 마지막에 있는 말라기 4장 5절~6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말라기 4장 5절~6절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マラキ書 4章5節~6節
見よ。わたしは、主の大いなる恐るべき日が来る前に、預言者エリヤをあなたがたに遣わす。
彼は、父の心を子に向けさせ、子の心をその父に向けさせる。それは、わたしが来て、この地を聖絶の物として打ち滅ぼす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성경을 살펴보면 구약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으나 먼 훗날에 태어난다는 예언의 성취가 된 선지자는 세례 요한 뿐이었습니다. 말라기가
쓰인 것이 대략 기원전 430년 경이라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는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나이가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본 예언이 있고
400년 이상이 지난 후에 태어난 것이 됩니다.
메시야 전에 엘리야가 온다는 내용은 당시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이 온다는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세례 요한이야말로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점, 메시야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시기 위해 오셨다는 점을 처음으로 알아본
인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34절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その翌日、ヨハネは自分の方にイエスが来られるのを見て言った。「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子羊。
『私の後に一人の人が来られます。その方は私にまさる方です。私より先におられたからです』と私が言った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私自身もこの方を知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私が来て水でバプテスマを授けているのは、この方がイスラエルに明らかにされるためです。」
そして、ヨハネはこのように証しした。「御霊が鳩のように天から降って、この方の上にとどまるのを私は見ました。
私自身もこの方を知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水でバプテスマを授けるようにと私を遣わした方が、私に言われました。『御霊
が、ある人の上に降って、その上にとどまるのをあなたが見たら、その人こそ、聖霊によってバプテスマを授ける者である。』
私はそれを見ました。それで、この方が神の子であると証しをしているのです。」
즉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처음 본 선지자였으며, 그리고 예수님의 역할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던 선지자이자,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처음 알아본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당시 살아있던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비밀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선지자들이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던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유일한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낳은 자, 그러니까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큰 사람이 없다고까지 높이신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반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에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아무리 세상에서 하늘 나라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던 세례 요한이라 하더라도 천국에 대해서는 직접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디로 가는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는 에녹과 엘리야를 제외한다면 천국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죽음을 경험했을 것이요, 하나님 나라의 심판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는 하나 지금 천국에 있는 사람들과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는 마치 서양
사람들을 한 번도 안 본 사람과 본 사람의 차이보다도 크지 않을까 합니다. 옛날에 사진 같은 것도 없을 때, 서양에 갔다 온 사람이
말하기를, 아, 서양에 가보니까, 거기에는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이 노랗고 눈동자가 파란 사람이 있더라……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 봤자 실제로 만나본 사람과, 한번도 서양사람을 만나보지 못하고 단지 설명을 들어본 사람과는 차이가 있겠지요.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쌍둥이가 엄마 뱃속에서 이야기를 한대요. 형 아기가 동생 아기한테, “야, 여기 바깥에는
무척 넓대.” 그러니까 동생 아기가 그런대요. “얼마나 넓은데? 여기보다 넓어?” 그러니까 형이 “그렇다니까 여기보다 엄청 넓대.”
그러자 이 말을 듣고 동생이 “에이, 말도 안돼” 그러더랍니다.
아, 물론 이건 지어낸 이야기지만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천국이라니요. 이는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천국에 가게 된다면 그 때까지 있었던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은 모두 휴지조각이 되고 말겠지요.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지식이나 예언이 아니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만지고 느끼는데 거기에 비할 예언이나 지식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믿음과 소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4장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彼は望み得ない時に望みを抱いて信じ、「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と言われていたとおり、多くの国民の父となりました。
빌립보서 3장 13절~14절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兄弟たち。私は、自分がすでに捕らえたなどと考えてはいません。ただ一つのこと、すなわち、うしろのものを忘れ、前のものに向かって身を伸ばし、
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上に召してくださるという、その賞をいただくために、目標を目指して走っているのです。
자고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望み得ない時に望みを抱いて信じ)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회사원인데 매달
10일에 월급이 들어왔어요. 이번 달에도 10일에 월급이 들어왔으니까 다음 달에도 10일에 월급이 들어올 것이다……이는 믿음이
아니지요.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70살이 넘을 때까지 아들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대요.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천국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어요.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천국에 가게 해주신대요. 이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지요. 그리고 푯대를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는 것, 왜 달려갑니까. 그렇습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모두 감당하고서, 천국에 들어간 다음에는 어떻습니까. 이제는 천국에 대한 믿음이 필요가
없지요. 아, 생일선물을 받을 줄 알고 믿었는데, 정말 받았어요. 그러면 그 이후에도 믿어요? 아니요.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믿을
필요가 없고 감사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랑은 어떻습니까.
로마서 8장 38절~39절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私はこう確信しています。死も、いのちも、御使いたちも、支配者たちも、今あるものも、後(のち)に来るものも、力あるものも、
高いところにあるものも、深いところにあるものも、そのほかのどんな被造物も、私たちの主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神の愛から、私たちを引き離すことはできません。
사랑하는 사람한테 선물을 주었다고 사랑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동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은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믿음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믿음은 천국으로 가는 승차권입니다. 비행기를 타든 전철이나 버스를 타든 배를 타든, 비행기표 같은 승차권이 없으면 탈 수가 없지요.
반드시 승차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떻습니까. 이제 승차권은 필요 없지요.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하늘나라 천국에서 감사와 찬송을 주님께
돌리며, 우리를 위해 예비된 모든 축복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하늘나라 천국에 갈 때까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갖고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는 승차권을 가지고, 천국이라는 푯대를 향해 달려감으로 인하여, 마침내 먼 훗날 주님과
함께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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