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전쟁은 살펴보면 결국 팔레스타인의 주권 싸움이다. 누가 원주인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땅의 원주인 곧 본방인은 따로 있지 않다. 누구나 그곳으로 흘러들어 왔고 이전에 저들도 거기에 있지 않았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의 주인은 결국 하나님이시다. 만드신 분이 주인이다. 그런데 서로 주인행세를 하려고 전쟁을 벌이고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의 욕심과 탐욕은 끝이 없다.
창세기 14장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나오는데 “히브리 사람”이라는 단어다.
(창 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당시 가나안 지역의 패권을 가지고 그 지역 5 부족과 4 부족이 전쟁을 벌였는데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고 소돔에 이주해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이 포로로 끌려간 것이다. 소식을 듣고 아브람은 신속히 특공대를 꾸려서 미처 회군하지 못한 적진에 뛰어들어 기습공격을 해 롯을 구출하고 전리품도 모두 빼앗아 돌아온 것이다. 이때 아브람을 지칭할 때 그 지방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다.
히브리라는 말은 עִברִי(이브리)에서 온 말이다. 다른 편에서 건너온 사람, 강 건너 온 사람이란 뜻이다. 이 말은 아브람이 스스로 붙인 말이 아니라 그 지방의 원주민들이 아브람을 부르는 말이다. 옛날 아주머니들이 서로를 부를 때 보면 “청주댁” “김천댁” 이렇게 불렀다. 그 사람의 고향이나 살던 곳을 지칭해서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아브람을 가나안 족속들은 히브리 사람, 강 건너편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다.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서 이주해 온 이주민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이 땅의 히브리 사람이다. 이방인이라는 말이다. 나그네처럼 와서 나그네처럼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사람들, 아무리 이곳이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잠시 머물다 우리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주권 다툼이나 하고 탐욕스럽게 싸워서는 안 된다. 때론 바보처럼, 때론 아무 욕심도 없는 사람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참 목적지가 있는 사람으로 살다가 가자. 그래서 아브람은 목숨 걸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되찾고 난 다음에 스스로 전리품을 챙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것을 구별한 이후에 모두 나누어 주고 말았다.
(창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창 14: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창 14: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그랬다. 아브람은 이 땅의 재물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는 히브리 사람이니까, 그는 언젠가 돌아갈 사람이니까. 우리도 그래야 한다. 이 땅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세상의 것을 위해 싸우면서 영원한 것은 잃어버리는 사람들은 아닌지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사랑해야 할 것들을 사랑하게 하시고 영원을 사모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