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5
역사의 오류
나종혁
진로연 소장
1946년과 1949년에 걸쳐서 미국의 비평가 W. K. 윔셋 2세(W. K. Wimsatt)와 먼로 비어즐리(Monroe Beardsley)가 「의도의 오류」(The Intentional Fallacy)와 「감정의 오류」(The Affective Fallacy)를 발표한 지 7~80여 년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과거의 역사주의적 비평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텍스트에는 작가가 존재하고 작가의 의도가 존재하며, 독자도 존재하고 독자의 감정도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당대의 텍스트에 당대의 작가와 독자가 존재한다는 다분히 역사주의적 비평 방법론이다.
그러나 문학 장르로서의 근대 소설과 현대 소설의 경우에는, 문학의 역사가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이르러 세기를 달리하면서, 세기가 다른 텍스트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대단히 생소한 세기 전환적 경험이었을 것이며, 어떻게 한 세기를 넘어서 텍스트가 다음 세기에까지 존재할 수 있는가 의심을 품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세기적 경험을 통해서 역사에 한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는 세기와 세기를 넘는 내재성(內在性)이나 내재적 텍스트가 존재할 것이며, 다른 편으로는 세기와 역사를 초월하는 예술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시대적 역사성이나 역사적 한계를 초월하는 내재성과 예술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문학 분과에서 최초의 과학적 문학 연구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된 신비평(the New Criticism)은 문학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으로 평가되었고, 사실상 영미의 문학 분과 연구의 최초의 시작점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윔셋과 비어즐리의 의도와 감정에 대한 두 가지 오류에 관한 논문은 문학의 과학적 및 제도적 연구 이전의 역사주의 비평과 심미주의 비평에 대한 비판이었다.
본 글에서는 두 개의 논문을 기초로 하고, 20세기 후반기와 21세기 전반기의 새로운 문학적 이론과 경험들을 반영해서 “역사적 오류”(the historical fallacy)라는 제목으로 선대의 논의를 확충, 확대해서 이어가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의도와 감정의 오류는 둘 다 역사주의적 오류에 다름 아니다. 물론 전자가 역사주의적인 언급이고, 후자가 심미주의적 언급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독자 역시 당대의 시대적, 역사적 주체임을 기정사실로 한다면, 둘 다 역사주의적 오류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문학사와 비평사에서 벌어지는 역사의 오류를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하면, 첫째 역사주의의 오류, 둘째 역사의 오류, 셋째 통시성의 오류가 있다.
첫째, 역사주의의 오류(the historicist fallacy)는 역사는 역사 관계가 구조화되어 있으며 구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라고 본다. 이것이 역사주의(historicism)의 근간이다. 이러한 주장으로는 개인이나 사회 또는 지역이나 국가를 개선하거나 발전시키려면 반드시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구조적으로 개인을 개선하려면 사회를 먼저 개선해야 하고, 사회를 개선하려면 국가를 먼저 개선해야 하며, 국가를 개선하려면 세계 구조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개인과 사회, 심지어 국가조차도 그보다 큰 구조나 세계의 구조적 변화 없이는 어떠한 변화나 개선도 바랄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 역사관으로 함몰될 위험이 상존한다.
역사주의의 오류는 역사주의와 인본주의(humanism)를 혼동하는 오류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 전체 또는 과거 특정 시대에 대한 의미 있거나 중요한 사실들의 지식체이다. 간단히 말하면, 역사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는 인간도 아니다. 역사는 지식이거나 지식체이다. 전 역사 시대 또는 구체적인 역사 시대에 관한 지식의 집합체이다. 역사는 지식이고, 인간은 인간성으로 특성화되므로 두 개념은 다른 것이고, 둘을 같이 보는 것이 역사주의의 오류이며, 인본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훼손이다.
인간적 주체 또는 개인적 주체는 역사적 지식과 다르며, 양자를 혼동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역사의 변화 또는 발전을 혼동하는 오류를 범해선 아니 된다. 개인적 주체는 역사의 흐름에서 무시되거나 비하될 수 없으며, 역사의 흐름 앞에서 인간적 주체를 무시하거나 비하한다면, 그것은 명백히 역사주의의 오류이고 인본주의의 훼손이다. 역사를 위해서, 역사주의를 위해서 개인적 주체가 희생되어야 하거나 희생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지나친 역사적 오류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역사주의적 오류는 제거되어야 하고, 개인적 주체를 역사의 흐름에 인계하거나 휩쓸리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며, 역사주의적 오류로부터 인본주의는 수정적으로 분리되고 제외되어야 한다. 역사는 인간이 아니고, 인간에 대한 지식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역사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악용해서는 아니 된다.
둘째, 역사의 오류(the historical fallacy)는 문학 텍스트에 역사가 존재한다거나 문학 텍스트에 역사가 지배소라고 주장하는 오류이다. 텍스트에는 문학적 내재성과 문학적 예술성만이 존재하며, 다른 무엇도 존재키 어렵고, 더더구나 역사성은 텍스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텍스트가 역사로 구성되거나 역사를 구성한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역사의 존재는 역사적 텍스트나 사회 과학적 텍스트에 존재할 것이다.
역사나 역사적 사실로서의 현실이 문학 텍스트에 내재하거나 중심을 이룬다는 믿음은 허위이거나 오류이다.
시인 김소월이 암시하는 ‘옛이야기’는 과거에 구전으로 존재했으나, 역사 이후의 시대, 역사적 사실 이후의 시대에는 더 이상 구전으로 존재치 않으며, 어딘가에 은폐되었거나 비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구전으로서의 옛이야기는 은폐되고 비밀이 되었을 것이며,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만 찾아내기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시대가 변천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고, 그러므로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실이다. 단지 아쉬운 사실일 뿐이다.
인간적 주체의 인간적 삶은 지식체로서의 역사, 사실로서의 역사와 관계 없이 지속되며, 역사나 현실과 관계 없이 문학 텍스트로서 존재한다.
인간의 행복과 역사 또는 역사적 사실은 일치하지 않으며, 그것은 인간과 역사가 일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역사가 인간과 인간의 삶의 질 그리고 행복을 구조화하고 조건화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역사의 관계는 극복 관계이거나 구별 관계이다. 인간은 역사의 한계를 극복해서 개인의 삶을 성취해야 하며, 또한 역사의 흐름에 희생되거나 조건화되지 않도록 구별되어야 하는 극복적 관계이자 구별적 관계에 있다.
문학 텍스트와 관련해서,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삶, 공동체의 삶도 엘리트의 ‘해석 공동체’(interpretative community)나 대중의 독서 공동체에서 존재하며, 이러한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는 역사의 내재화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역사의 내재화는 제외적 소수나 창작 및 상상의 공동체에 한정되고, 인간 전체의 삶과 공동체 전반의 삶에 역사가 내재한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그러나 시대나 시대적 위기에 따라서는 해석 공동체나 독서 공동체가 내재화된 역사적 함의를 강하게 내포하기도 하며, 역사적 함의를 논쟁적으로 노출하기도 한다. 이것은 특수한 시대적 한계를 담보한 공동체에 한하며, 이러한 경향이 모든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건 아니다.
셋째, 통시성의 오류(the diachronic fallacy)이다. 수직적이건 수평적이건, 통시성이건 공시성이건 시간이나 시대를 다루는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시간과 시대를 수직적으로 관통하는 통시성이 역사적으로 보다 더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대한 문학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이 그 특징으로서 통시성이나 통시적 소재가 중요하거나 핵심인 것은 아니다. 시대를 넘고 초월하는 텍스트에 통시성이 중요하다는 전제나 주장은 오류이다. 그것은 공시성에도 마찬가지다.
이상에서 이 글은 의도와 감정을 기초로 한 신비평의 논의를 21세기 지금의 시대로 확대해서 역사의 오류라는 제목으로 역사주의의 오류와 역사의 오류, 그리고 통시성의 오류로 구별하여 논의했다. 의도의 오류는 역사의 오류라고 할 만하고, 감정이나 감정의 오류는 역사주의와 다른 심미주의이지만 역시 역사의 오류가 수반된다.
역사에 대한 연구로서의 역사학은 인간의 시대적 지식체이지만, 역사 자체는 역사학과 달리 역사 나름의 도도한 흐름을 따라 흘러간다. 그러한 역사는 수정적 접근 대상이 아니라 극복 대상이다. 또한 그러한 자율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역사의 흐름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면 구별적 대상이다. 인간성을 역사적 과정과 혼동하거나 심지어 역사의 도구화하거나 문학적 인본주의를 사회과학적 역사주의로 수단화하는 역사의 오류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끝> <2026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