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와 헌신’의 복음적 해석 이길환 목사
어떤 일을 교회 안에서 내가 다 했는데(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몰라주고 남만 알아주거나 남만 인정하고 칭찬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축복이다.
세상의 조직사회나 이익집단에서는 나의 인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를 홍보하기도 하고, 알리기도 한다. 내 공로와 내 헌신이 내 가치이기에 인정받거나 칭찬받으려고 한다.
세상에서는 그게 직급으로, 보수로, 능력으로, 계급으로 인정받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것은 죄성이고 비교와 평가의 결과다. 반대인 경우는 부러워하거나 질투도 하고 샘도 낸다.
하지만 이건 다 선악과의 독성이요, 바벨론 같은 인간의 속성이요 도시문화의 산물이다. 교회와 천국은 정반대의 세계다. 이걸 생명이라 한다.
성도는 창조의 경륜과 하나님의 목적, 인생의 의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살아계심.. 이 사실을 생명으로, 운명으로 믿는 사람이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나의 그것을 이미 다 아신 바 되었고 이미 계수되었다는 것을!(갈 4:9, 엡 1:4-5) 오히려 세상 사람들처럼 내 공로를 나의 것으로 챙김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안에서는 교만과 죄가 된다.(마 6:5, 16, 단 4:33-34, 37)
그것은 내 ‘자아’를 앞세워 이 사건이나 상황, 현상의 가치를 판단하여 내가 취하거나 버리려는 내 ‘자아’가 스며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 범죄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샘내고, 모함하고, 작당한다. 은밀하게 행하고 은근 떠본다. 자기 희생의 티를 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도 못하고, 되고 싶지도.. 그저 자기 인정만을 추구하며, 교회에서 자기 자신과 약한 자들을 지옥으로 몰아간다.(마 23:15)
어떤 일을 교회 안에서 내가 다 했는데, 나는 몰라주고 남만 알아주거나 남만 인정하고 칭찬하는 경우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주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귀한 성도이고 이거야말로 은혜의 축복이다.
세상에서는 반대의 개념이지만, 교회 안에서는 복음의 길을 가는 산 증거다.(마 20:26-28)
이런 성도를 하나님은 귀히 여기신다.(시 1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