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박신양의 ‘제4의 벽’ 그림이야기 표지(왼쪽)와 엠엠아트센터 기획초대전 포스터.
[미술여행=윤상길의 중계석] 화가로 변신한 한국 대표 배우 박신양이 예술에서 철학적 가치를 읽어내는 인문학자 김동훈과 함께 그림 이야기를 담은 <제4의 벽>(민음사 펴냄)을 출간하고, 그 기념 전시회가 오는 4월 30일까지 엠엠아트센터(평택시 포승읍) A동 1~3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파리의 연인>의 로맨틱한 왕자님에서 <싸인>의 냉철한 법의학자까지 철저한 캐릭터 분석으로 유명한 박신양은 <제4의 벽>에서 러시아 유학 시절부터 화가가 되기까지 고통스럽고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여기서 박신양은 “연기할 때 나는 내가 느끼는 만큼만 표현했다. 올곧고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는 마음도 그렇다. 나의 진심만큼만 전달되리라는 심정으로. 연기든 그림이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던져 넣었을 때 비로소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가닿는다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제4의 벽‘ 리플렛에서
책에는 10여 년 동안 그려 온 그림 가운데 131점이 수록됐고, 예술과 박신양의 그림에 대한 인문학자 김동훈의 해설이 이어진다. “예술가는 누구인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림은 어떤 감동을 주는가?”, “우리는 왜 표현하고자 하는가?”에 관한 해설이다.
“그림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림이 주는 감동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라고 박신양이 말하면, “그런 감동을 지닌다면 열등감에 시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라고 김동훈 작가가 응대하는 형식이다.
연극에서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제4의 벽’이라고 한다. 벽이라는 ‘실재’가 ‘현실’에는 없고 ‘상상’ 속에만 있는데도 배우와 관객 모두가 마치 현실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벽이다.
그런데 박신양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제4의 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넘나들 때 또 다른 창조성이 나온다고 여긴다. <제4의 벽>은 박신양 화가 개인의 예술철학에서 예술 일반을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까지 독특한 독서 경험을 체험하게 해 준다.
스튜디오에서 환담을 나누는 박신양(오른쪽)과 김동훈 작가
제4의 벽’을 박신양 작가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제4의 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라고 정의한다. 이와 관련해 김동훈 작가는 “박신양 작가에게 제4의 벽은 ‘실재의 벽’이다. 상상과 현실의 내용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도록 실재의 벽을 이동시킨다. 마치 이분화된 세상이 아닌, 다차원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라고 풀어낸다.
출판사 민음사는 <제4의 벽>을 ‘화가의 진솔한 고백에 담긴 우리 모두의 여정’이라고 전한다. 배우이며 화가인 박신양은 스크린 속의 캐릭터로 인식되는 연예인의 운명과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인간적인 본능 사이에서 결국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무너져 가는 세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 실상을 목격하고자 유학을 핑계로 소련 붕괴 직후 혼란한 러시아로 떠났던 박신양의 학창 시절, 수술을 받은 직후에도 진통제를 맞아 가며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힘겨운 배우 생활, 그리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결국 예술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찾아 나가는 여정이 고통스러우리만치 솔직하고 담백하게 펼쳐진다.
박신양 작가의 작품
작가노트에 박신양은 “너무 그리워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친구 키릴과 유리 미하일로비치 압샤로프 선생님. 2013년인가 2014년인가. 그로부터 매일 밤새 그림을 그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5년쯤 지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밤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고 적었다.
박신양은 이 책에서 “표현의 순간에는 매일 매 순간이 두렵고 막막하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단서가 아닐까? 아픔이라는 칼날은 우리의 무뎠던 인식을 예리하게 벼려 주기도 한다. 모든 시도에 주춤거리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자유를 허용하자”라고 말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이게 그림이냐는 꾸중을 들은 후로 그림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트라우마, 어릴 적에 본 한 편의 영화에 감동하여 배우가 되기로 한 결심, 오가는 대화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한동안 침묵하며 지냈던 학창 시절, 예술 작품에 대해 특별한 감동을 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열등감 등은 모두 박신양 개인이 겪은 특별하고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이다.
박신양 작가의 작품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누구나 한 번쯤 통과했던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나 겪는 고통과 좌절, 모두가 느끼는 감동과 환희도 특별한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된다. <제4의 벽>은 그 여정을 들여다보는 구체적인 독서 경험이 될 것이며, 그 감명은 동명으로 전시되는 엠엠아트센터의 ‘박신양 기획초대전’을 통해 증폭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동훈 작가는 이 같은 박신양의 작가관에 “작가는 언어와 표현이 궁핍한 이 시대에 저승을 향해 나아가는 제사장이다. 저승을 향한다는 것은 기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저 세계를 표현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또한 미지의 운명으로 나아가는 희생양일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박신양은 화가의 자세 또한 배우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길뿐이다.”라며 “누구나 작품을 보면 직감적으로 표현한 사람의 의도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고 말한다.
박신양의 그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림에 당나귀가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그 이유를 “당나귀를 통해 내 짐이 특별히 무겁거나 대단하다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짐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박신양 작가의 작품
이어서 그는 “그리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가가 그 사람이다. 그 노력을 왜 하는가에 대해 어떤 생각과 관심을 가지는가가 그 사람이다. 그 관심에 대한 애정의 지속과 근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진심을 쏟고 있는가가 그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가 품은 열정이 곧 그 사람이다.”라고 덧붙인다.
김동훈 작가는 “온통 자기 치장과 허위와 거짓 마케팅이 판을 치는 시대에 박신양 작가의 이런 고집은 힘겨울 수 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도 막상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은 더 힘들 것이다. 이미 작가의 마음에는 자신의 숙명을 들쳐 메고 제 길을 가는 당나귀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박신양의 당나귀론(?)을 거든다.
김동훈 작가는 박신양을 “구상과 추상의 융합으로 일반 회화의 규칙을 변형한 화가이자, 연극 공연의 실재성을 회화에 도입한 도전적인 예술가”로 평가한다.
고중환 미술평론가는 전시회 <제4의 벽> 추천의 글에서 “박신양 작가는 가면에 가려진 얼굴을 그린다고 했다. 얼굴에 숨겨진 자기를 그린다고 했다. 그리움을 그린다고도 했다. 예술가 신화를 그린다고 했고, 자유혼을 그린다고 했다. ·… 하나같이 그 자체로는 형태도 색깔도 없는 것들이고, 우연적이고 비결정적인 것들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신양 작가의 작품
여기에 “작가의 그림은 순간적으로 그린 그림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그리고 지우고 뭉개고 덧칠하기를 무한 반복한 그림들이 많다.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멈칫하고, 내지르고, 거둬들인 흔적이 여실하다. 매 순간 긍정과 부정이 교차 되고, 확신과 주저가 교직 되는 치열한 과정이 오롯하다.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결국 그 치열한 과정이고 흔적이지 않을까.”라고 덧붙인다.
토마스 만은 예술이 결핍 위로 솟아오르는 무엇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결핍(간절함, 절실함)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고도 했다. 작가의 그림에는 결핍이 있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결핍이 밀어 올린 동력으로 존재의 극적인 순간을, 존재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을 그렸다.
화가이자 배우인 박신양 작가
배우이며 화가인 박신양이 무대에서 또 캔버스에서 나타낸 결핍은 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아픈 사랑의 이야기다. ‘제4의 벽’을 통해 독자는 또 관람객은 아픈 작가가 끌렸을 아픈 이야기에, 아픈 그림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관련기사
태그#박신양배우#박신양작가#인문학자김동훈#제4의벽#출간기념전시회#믿음사#엠엠아트센터#박신양그림이야기제4의벽출간#전시#미술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