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나를 부끄럽게 한 아이
고영옥
2학년 국어 수업을 할 때였다. 아침부터 수업 시간에 쩝쩝거리면서 도넛을 먹는 아이가 있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군침을 삼키며 넘봤다. 집중해야 할 아이들까지 흩트려 놓는 배짱에 기가 찼다. 조용히 넘어가려니 수업 중에 자꾸 거슬렸다.
“한○○. 일어 섯!” 화풀이하듯 큰 소리로 아이 이름을 불렀다. 눈을 껌벅이며 일어선 아이는 왜 일어섰는지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수업 방해하는 것이 취미냐며 닦달했다. 얼굴을 숙이고 있는 것이 반성하는지 졸고 있는지 아리송했다. 아무리 야단쳐도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심드렁하게 서 있는 아이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한 후 앉도록 했다.
고개를 숙이고 앉는 것을 보며 뉘우치는 줄 알았다. 못다 한 수업을 하려는데, 이번에는 아이의 몸이 움직였다. 좌우로 기우뚱하더니 드디어 머리 회전까지 했다. 화가 나서 알밤을 한 대 세게 먹였다. 놀라서 지르는 소리가 교실을 들썩거리게 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책상까지 두드리며 배꼽 쥐고 방방 뛰었다.
친구들을 웃음 도가니로 몰아넣고, 진즉 자신은 무덤덤했다. 혼잣말로 뭐라고 궁싯거리더니 이내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공부 시간을 다 망쳐 놓고 새침하게 있는 아이를 보니 살짝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에 서둘러 편지 내용과 봉투 쓰기를 가르쳤다. 웃어른께 쓸 때는 예사말과 높임말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단단히 일렀다. 선생님께 편지를 써 놓고 집에 가는 것으로 겨우 수업을 마쳤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니, 입에서 단내가 나고 침이 말랐다. 언제 아이들의 큰 웃음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냐는 듯 무거운 침묵으로 몸이 더 피곤했다. 책상 위에 얹어놓은 편지가 마지막 일과를 재촉했다.
일일이 편지를 읽었다.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의무적인 인사일지라도 사랑스러웠다. 받는 사람의 이름을 큰 글씨로 번듯하게 쓴 편지 봉투가 눈에 띄었다. ‘존경하는 성은 고씨 함자는 영자 옥자 선생님께’ 너무 유식하게 쓴 것을 보고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그야말로 스승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제자의 끈끈함과 존경심이 어려 있는 보기 드문 글이었다. 군것질 좋아하고 졸기 일쑤인 아이가 이런 멋진 높임말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편지 내용도 일품이었다.
“선생님, 야단쳐 주시고 꿀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에는 할아버지 제사라서 잠을 많이 못 잤습니다. 자꾸 눈이 감겨서 죄송합니다.” 꿀 밤 한 대를 폭력으로 과장하여 신문 기사에 대서특필하고 교사를 무릎 꿇게 하는 세상이다. 이런 가상한 제자가 있었다니! 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사정도 모르고 심하게 닦달만 한 것이 속마음에 걸렸다.
편지를 읽으면서 요놈은 꼭 비행기 한 바퀴 태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과 후 공부를 시작하려는 순간 아이가 숨차게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 웃으며 뒷짐 지고 오는 모습이 상기되어 있었다. “선생님, 이것 드세요.”라며 건네주는 것은 빨아 먹는 분홍색 음료수였다. 머뭇거리고 있는 나의 입에 가져다 밀어 넣었다. 방과 후 공부할 때 마시라고 할머니께서 사 주셨단다.
야단맞고 꿀밤 먹은 아이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갑게 다가왔다. 나를 미워할 만도 한데, 모든 것을 용서했다는 몸짓으로 다가오는 아이 앞에서 부끄러워졌다. 달콤한 분홍색 음료수가 목젖을 타고 내려갔다.
음료수를 한 입 넣고 ‘얼씨구!’ 하며 손을 번쩍 쳐들자, 아이가 껑충 뛰며 내 손바닥에 손을 갖다 포개었다. 손을 꼭 잡고 비행기를 한 바퀴 태웠다. 좋아서 숨넘어가는 웃음은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부모의 사랑에 배고픈 아이였다.
(《수필문예》 제21집, 2022.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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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문예회,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대구수필문예대학 12기 수료.
bluetree11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