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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장 37-43절.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
1. 요한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2장은, 예수님이 7대 표적을 행하신 내용이고, 13-21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2.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1-12장의 결론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숨어서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나라에서 워낙 믿는 사람을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오늘 말씀은 숨어서 믿는 사람들에 대해 평가하시기를, <저희는 하나님의 영광 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불신자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마귀가 저들의 눈을 멀게 하고, 저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7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ough He had performed so many signs before them, yet they were not believing in Him.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Τοσαῦτα δὲ αὐτοῦ σημεῖα πεποιηκότος ἔμπροσθεν αὐτῶν, οὐκ ἐπίστευον εἰς αὐτόν,
so many but of Him signs having done before them, not they were believing in Him
직역하면 ‘그러나 이렇게 많은 그분의 표적들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행하셨으나’(πεποιηκότος)는 완료분사로서(having done) 이미 행하신 사실을 가리키고, ‘믿지 않았다’(ἐπίστευον)는 미완료과서로서(they were believing) 과거에 유대인들이 계속 믿지 않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7대 표적 이외에도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요 20:30)
(1) 예수님은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으나, 요한복음에는 7대 표적만 대표적으로 기록했습니다.
① 2장-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질의 변화)
② 4장- 가나에서 가버나움의 통치자 아들을 살리심 (거리의 초월)
③ 5장–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시간의 초월)
④ 6장- 5병2어의 표적 (양의 초월)
⑤ 6장- 물위로 걸으심 (중력법칙을 초월)
⑥ 9장-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치심(생래적 조건을 초월)
⑦ 11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생사를 초월)
2. 그래서 표적 후에 믿는 자들도 생겼습니다.
요한복음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그러나 이처럼 믿은 사람들은 개별적이었고, 유대민족이 전체적으로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38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But this was to fulfill the word of Isaiah the prophet, who said: Lord,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And who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to?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ἵνα ὁ λόγος Ἡσαΐου τοῦ προφήτου πληρωθῇ ὃν εἶπεν
so that the word of Isaiah of the prophet might be fulfilled that he said
직역하면 ‘그래서 이사야 선지가 말씀한 그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말씀한’(εἶπεν)은 부정과거로서(he said) 과거에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루어지게 하심이라’(πληρωθῇ)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might be fulfilled) 과거에 확실하게 이루어지게 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Κύριε, τίς ἐπίστευσεν τῇ ἀκοῇ ἡμῶν;
Lord, who believed the report of us?
직역하면 ‘주여, 누가 우리의 말(전언)을 믿었나이까?’라는 뜻입니다.
‘믿었나이까’(ἐπίστε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believed) 과거에 확실히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καὶ ὁ βραχίων Κυρίου τίνι ἀπεκαλύφθη;
and the arm of Lord to whom has been revealed
‘나타났나이까’(ἀπεκαλύφ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as been revealed) 과거에 나타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란 이사야 53장 1절 말씀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주의 팔’이란 주의 권능을 가리킵니다.
39절.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they could not believe, for Isaiah said again,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διὰ τοῦτο, οὐκ ἠδύναντο πιστεύειν,
because of this, not they were able to believe
직역하면 ‘이 때문에 그들이 계속 믿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계속 믿을 수 없었다’(ἠδύναντο πιστεύειν)에서 앞의 동사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able) 과거에 계속 믿을 수 없었다는 뜻이고, 뒤의 동사는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believe).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ὅτι πάλιν εἶπεν Ἡσαΐας
for again said Isaiah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사야가 다시 말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말했다’(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과거에 이사야가 말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사야가 다시 일렀다는 말씀은 이사야 6장 9-10절입니다.
이사야 6:9-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 말씀은 예수님도 인용하셨고(마태 13:13-15) 바울도 인용했습니다( 행 28:26-27).
40절.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He has blinded their eyes and hardened their hearts, so that they would not see with their eyes or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be converted, and I would heal them.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Τετύφλωκεν αὐτῶν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καὶ ἐπώρωσεν αὐτῶν τὴν καρδίαν,
He has blinded of them the eyes, and He hardened of them the heart
직역하면 ‘그가 그들의 눈들을 멀게 하셨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멀게 하셨고’(Τετύφλωκεν)는 현재 완료로서(He has blinded)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셔서 지금까지도 눈이 멀어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완고하게 하셨다’(ἐπώρω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hardened) 하나님께서 과거에 유대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신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ἵνα μὴ ἴδωσιν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καὶ νοήσωσιν τῇ καρδίᾳ,
that not they should see with the eyes, and they should understand with the heart,
직역하면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는 뜻입니다.
‘보고’(ἴδωσιν)와 ‘깨닫고’(νοήσωσιν)는 둘 다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they should see, they should understand) 과거에 확실히 보지 못하게 하고, 확실히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을 뜻합니다.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καὶ στραφῶσιν, καὶ ἰάσομαι αὐτούς.
and they should turn, and I will heal them
직역하면 ‘그들이 돌이키지 못하게 하고, 내가 그들을 고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돌이켜’(τραφῶ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hey should turn) 앞소절에 나온 부정어(μὴ)와 함께 ‘그들이 돌이키지 못하게 하고’란 뜻입니다.
‘내가 (그들을) 치료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ἰάσομαι)는 미래형입니다(I will heal).
1. 유대인들이 많은 표적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예수님과 복음을 거절함으로써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 모두 예정된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와와서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비적인 섭리를 로마서 11장에 잘 설명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은혜는 인간의 겸손과 하나님의 긍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 교만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말세에 유대인들도 겸손해지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서 유대인들도 민족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1:30-32.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2.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으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2) 이 많은 표적들을 보고서도, 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했습니다.
요한복음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 많은 표적들을 보았으면, 믿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데, 그 많은 표적을 보고서도 안 믿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뜻입니다.
(3) 그런데, 성도가 이런 이상한 일을 만났을 때, 즉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일을 만났을 때,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에로 돌아가서 조명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해가 안 가는 현상을 보면서, 성경을 상고하다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아무리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표적들을 행하여,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해도, 하나님이 은혜를 안 주시면, 그 심령이 안 열려서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39-40절. <저희가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하나님이 저희 눈을 열어주시지 않았고, 하나님이 저희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은, 내가 유식하고 지혜로워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택 덕분임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마귀가 불신자의 마음을 붙잡고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은 오직 성령님 덕분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6) 그러므로, 마귀 따라 지옥에 가다가, 하나님 은혜로 천국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는 것이며
에베소서 2:2-5. 그 때에 너희가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우리 머리로 이해하려 말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성경의 안목으로 이해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불신자들은 아무리 인격이 좋아 보여도,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줄 아시고, 믿는 성도와 함께 날마다 하나님 모시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찬송가 188장. 무한하신 주 성령 우리 어둔 성품에 생명 빛을 주소서. 보헤사시여
관원 중에도 믿는 사람이 많았으나, 드러내놓고 믿지 못한 것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1절.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se things Isaiah said because he saw His glory, and he spoke of Him.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ταῦτα εἶπεν Ἡσαΐας ὅτι εἶδεν τὴν δόξαν αὐτοῦ, καὶ ἐλάλησεν περὶ αὐτοῦ.
these said Isaiah that he saw the glory of Him, and he spoke about Him
직역하면 ‘그가 그의 영광을 보고 이것들을 말했고, 그에 대해서 말했다’는 뜻입니다.
‘보고’(εἶδεν)와 ‘말했고’(εἶπεν)와 ‘말했다’(ἐλάλησεν)은 모두 부정과거로서(said, saw, spoke) 과거에 확실히 보고, 단호하게 말했고, 확실히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사야가 이사야 6장 9-10절( 요한복음 12:39-40)을 말한 것은 이사야 6장 1-8절에 기록한 대로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가 본 주의 영광은 바로 성육신 이전에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즉 이사야는 이사야 6장 앞부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는데, 바로 그 ‘여호와의 영광’이 ‘주의 영광’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여호와가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이라는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도 성육신 이전의 여호와를 가리켜 예언을 했고(창 22:18, 요한 8:56), 모세도 성육신 이전의 여호와를 예언했고(신 18:15), 다윗도 성육신 이전의 여호와가 썩지 않을 것을 예언했고(시 16:10), 이사야도 성육신 이전의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6:1-8).
42절.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evertheless many even of the rulers believed in Him, but because of the Pharisees they were not confessing Him, for fear that they would be put out of the synagogue;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ὅμως, μέντοι καὶ ἐκ τῶν ἀρχόντων πολλοὶ ἐπίστευσαν εἰς αὐτόν,
nevertheless, indeed even of the rulers many believed in Him
직역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로 관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조차도 그를 믿었다’는 뜻입니다.
‘믿었다’(ἐπίστευσαν εἰς)는 부정과거로서(believed)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ἀλλὰ διὰ τοὺς Φαρισαίους οὐχ ὡμολόγουν,
but because of the Pharisees not they were confessing
직역하면 ‘그러나 바리새인들 때문에 그들은 공공연히 신앙고백을 못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ὡμολόγ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confessing) 계속해서 공공연하게 신앙고백을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동사의 원형(ὁμολογέω)는 ‘동의하다, 고백하다, 공적으로 선언하다’(agree, confess, publicly declar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ἵνα μὴ ἀποσυνάγωγοι γένωνται·
so that not put out of the synagogue they might be
직역하면 ‘이것은 그들이 출교 당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출교 당하지 (않으려고)’(ἀποσυνάγωγοι γένωνται)에서 앞의 단어는 형용사인데(put out of the synagogue), 원형(ἀποσυνάγωγος)은 ‘회당에서 쫓겨난, 출교당한’(expelled from the congregation)이란 뜻이고, 뒤의 동사(γένων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they might be)로서, 믿는 고관들이 출교 당하지 않으려는 단호한 입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유대인의 관원 중에는 니고데모(요 3:1-8)와 아리마대 요셉 같은 그리스도인 신자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2.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유대나라 산헤드린 공회는 정식으로 결의하기를 로마를 따르기로 했고, 예수님을 따르면 출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처럼 출교 처분을 당하면, 모든 신체와 재산권이 다 박탈당합니다.
그래셔 누가 때리거나 죽이거나 재산을 빼앗아 가도, 법적으로 항의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출교당할까 두려워서 공개적으로 예수님 믿는다고 고백을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9:29.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그래서 니고데모나 아리마데 요셉 같은 관원도 공개적으로 예수 믿는 것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43절.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y loved the approval of men rather than the approval of God.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ἠγάπησαν γὰρ τὴν δόξαν τῶν ἀνθρώπων μᾶλλον ἤπερ τὴν δόξαν τοῦ Θεοῦ.
they loved for the glory of the men more than the glory of the God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 보다 사람들의 영광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였더라’(ἠγάπ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loved)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사람의 영광’이란 사람들에게서 받는 영광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따라가면, 비록 죽음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야곱도 그랬고, 요셉도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 감옥살이를 했으나 하나님이 영광을 주셨습니다.
모세도 애굽의 영광을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민족 해방자로서 영광을 주셨습니다.
다윗도 사울왕에게 쫓겨다녔으나 가장 훌륭한 왕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다니엘도 사자굴에 던저졌으나 살아난 하나님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베드로도 감옥에 갇혀 죽을 뻔했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바울도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고,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났고, 수만명이 데모했으나 살아났고, 감옥 생활을 했으나 로마 황실에 전도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 보았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체험한 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2.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의지와 감정으로는 안 받지 못하고, 우리는 죽으나 사나 오직 성령님 충만하여, 항상 성령님의 충만하신 인도를 받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에도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받는 주의 종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여, 항상 성령 충만하시고,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간섭과 보호와 구원과 영광을 체험하시고,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보충 설교>
1. 이사야는 이사야 6장에서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라고 주님이 말씀하시고, 앞에서 인용한 대로 <메시아가 오셔서 복음을 전해도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믿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이상과 같은 말씀을 들었을 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여호와(성육신 하시기 전의 예수님)의 영광을 보면서, 여호와와 대화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56, 58절에서도,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을 섬겼는데, 아브라함이 본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셨고, 예수님은 아브라함을 보셨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영원히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씀했습니다.
2. 이처럼, 이사야는 여호와(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순교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산헤드린 관원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았으나, 드러나게 자신이 예수 믿는 신자임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예수 믿는 사람은 출교시키기로 법률이 공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출교 당하면, 관원의 지위도 박탈당하고, 폐가망신 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 명예와 직장과 가족의 생계를 포기할 수 없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숨어서 믿었습니다.
3.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이처럼 숨어서 믿는 신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사람들에게 관원이라고 영광 받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영광 받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불신앙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숨어서 믿는 관원이 많았으나, 드러내놓고 신앙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 편을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7:45-52)
요한복음 7:50-51.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뒤에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드렸습니다.
4. 이것이 인간 사랑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죽기까지 사랑하셨지만, 우리 인간은 자기의 생명과 가족들의 생계 문제로 핍박과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올바로 증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5. 그러나 <죄 많은 여인>과 <바울 사도>는 주님의 용서와 사랑에 감격하여,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주님께 사랑과 헌신을 바쳤습니다.
(1) 누가복음 7장에는 <죄 많은 여인>의 사랑과 헌신의 모습이 나옵니다.
즉,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께 식사 대접을 한다고 초대했으면서도, 종을 시켜서 발을 씻어드리지도 않았고, 그 흔한 감람유도 머리에 발라드리지 않았고, 의례적인 포옹과 입맞춤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 시몬은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를 크게 감사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 많은 여인>은 자신이 큰 죄인인 줄 깊이 인식하고, 그 많은 죄를 용서받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 많은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처럼 용서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는 사람은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헌신적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7장 47절에서 “많이 사함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고, 적게 사함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2) <바울 사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믿기 전에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을 원수로 생각하여, 스데반을 죽이고, 수많은 신자들을 때리고, 감옥에 가둔 핍박자요, 폭행자요, 훼방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으로 믿고 난 다음에는 180도 변했습니다.
바울의 일생은 가정도 버리고, 죽기까지 헌신과 사랑과 충성을 주님께 바친 삶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1장 20절에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만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4:8.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했습니다.
(3) 이처럼, 나는 죽을 죄인인데, 예수님의 은혜로 영생천국 구원을 얻었다고 감격하는 성도가, 주님께 사랑과 헌신을 바치는 법입니다.
5. 예화- 노(老) 권사님의 헌신
(1) 러시아에, 어느 노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자식들 다 키워서 결혼시키고 혼자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연세가 들어서 돈을 벌지 못하고, 근근이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새벽에 기도를 빠지지 않고 드렸습니다.
(2) 당시 러시아는 국민의 98%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부유했기 때문에, 세상 향락 따라 살고, 교회생활을 조상적부터 믿어온 습관대로, 형식적으로만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향락을 즐기고, 세상 권력과 돈과 향락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 권사님은 날마다 예수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면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3) 그러던 어느 날, 공산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917년의 일입니다.
공산혁명군이 온통 나라를 뒤엎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였습니다.
노 권사님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공산 혁명군이 쳐들어와서, 주일날 교회를 포위하고, 소리쳤습니다.
<이 예수쟁이들아, 예배를 중지하고 나오너라. 대문 밖에 너희가 믿는다는 예수 초상화와 십자가가 있다, 누구든지 나오면서, 예수 초상화와 십자가를 밟고, 침을 뱉으며 나오라. 만일 명령을 거역하면, 총살로 처형하겠다.>
(4) 예배를 드리다가 중단하고 나오는 성도들은 벌벌 떨면서, 공산 혁명군이 시키는 대로, 예수님의 초상화와 십자가를 짓밟고 침을 뱉으면서, 교회당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노 권사님은 주저앉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어찌된 일입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도, 부족하여 이처럼 짓밟히시고, 침을 받으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그러고서는, <나는 이 예수님을 위해서 죽겠으니, 어서 나를 총살시켜다오!>
(5) 공산 혁명군들이 보니, 이 노 권사님이 진짜 예수쟁이였습니다.
다른 교인들은 교인행세를 하면서, 당시 세상 권력과 결탁하여 부자 되고 향락을 누리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부르조아 계급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산 혁명군 대장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너희 중에 진짜 예수쟁이는 이 노인뿐이로구나. 너희들은 모두 가짜로서, 부르조아자들에게 붙어서, 우리 천민들을 착취했구나.>
그러고서는, 노 권사님 외에는 모조리 처형시켰습니다.
(6) 이처럼, 주님을 위해서 죽고자 헌신한 사람은 도리어 살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로마서 12:1-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6. 예화 - 어느 서커스 단원의 헌신
(1) 어느 써커스 단원 한 사람이 재주를 선보이면서, 이 도시 저 도시로 유랑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노인 여 집사님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노인 여 집사님은 교회에서 충성할 뿐만 아니라, 기도원에도 다니면서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여 집사님에게 전도 받은 써커스 단원도, 기도원에 가서 헌신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2) 그래서,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 기도원에는 여러 집사님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각기 집사님들마다 여러 가지 좋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찬양으로 주님을 섬기는 분, 악기를 연주하면서 섬기는 분, 성경공부로 섬기는 분, 그림을 그려서 섬기는 분, 음식을 만들어 식당 봉사를 하시는 분, 청소로 주님을 섬기는 분, 나무를 자르고 길을 보수하면서 섬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써커스 단원은 그런 재주가 없었습니다.
<다들 좋은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 있는데, 나는 뭐람....>
(3)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무척 기뻐하면서, 기도원 예배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날 이후로, 기도원 집사님들이 잠든 후면, 기도원 예배당 안에서 무슨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4) 그래서, 하루는 기도원 원장 목사님이 한밤중에 일어나서, 가만히 예배당 안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예배당 안에 희미한 촛불이 켜있고, 어떤 사람이 쿵쾅거리면서 재주를 넘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서서 두 발로 6개의 공을 굴리기도 하고, 두 손으로 12자루 비수를 던지면서 재주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원장 목사님은 한참을 문틈으로 예배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2시간이 넘도록 온 힘을 다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재주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5) 그때, 원장 목사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써커스 단원은 자기도 주님을 기쁘시게 헌신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고백했습니다.
(6) 그 후로, 원장 목사님은 크게 감탄하고, 기도원에서 써커스 전도대회를 열어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데, 크게 썼다고 합니다.
로마서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25:15-21.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대로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7. 예화 - 노 간호사의 헌신
(1) 구석진 병실에 버려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도 버리고, 의사도 포기한 아이였습니다.
인공호흡기에 마지막 실낱같은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2) 그런데, 은퇴한 노 간호사가 봉사활동을 하던 중, 기력조차 없는 불쌍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나이 많은 간호사는 버려진 아이를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부터 노 간호사는 매일 목욕시키고,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고, 반응이 없어도 찬송가를 불러주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6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3) 그런데, 어느 날 아기를 안고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어디선가 자기가 아기에게 늘 불러주었던 찬송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품에 안고 있던 아기가 찬송가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4) 이렇게 해서, 건강을 되찾은 아이가 바로 <설리반 선생>(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1936년)입니다.
이 설리반 선생은 노 간호사에게서 제 2의 생명을 얻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결혼을 포기하고, 당시에 가장 불쌍한 아기를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5) 설리반 선생님이 돌본 아기가 유명한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년)입니다.
설리반 선생님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배운 <헬렌 켈러>도 역사상 훌륭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린도후서 5:13-15.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 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높은 지위 갖고, 부자이고, 향락 누리는 것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그 은혜를 하루도 잊지 마시고, 생명 다하기까지 주님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시고, 자손들도 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17장>
(1)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 없건만 내 주 앞에 이 적은 것 다 드리니 주 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2) 주 날 위해 보배로운 피 흘리사 그 귀하신 생명까지 다 주시니 내 천한 몸이 생명을 왜 아끼랴
(3) 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 없건만 나 주 위해 드린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4) 날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 예수의 은혜로써 인 치시고 내 모든 것 주의 소유 삼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