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10월 19일 당시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은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과 기자회견에서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에 3백억원이 3개의 차명계좌에 1백억원씩 나뉘어 예치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 돈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 중 일부』라고 주장하고 3개 계좌 중 1개의 계좌 번호와 잔액 조회표를 증거로 제시했다.
박계동 의원의 비자금 폭로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국민들은 6공화국 들어 시행된 대형국책사업에 의혹을 두기 시작했다. 노태우씨 재임 5년 동안에 실시된 주요 대형 국책사업은 군 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과 원전건설사업, 경부고속철도와 영종도신공항 토목공사, 상무대 이전, 군기지 공사, 석유비축기지공사, 화력발전소건설공사 등이었다.
이 기간에 총 14조원이 투입된 율곡사업에서 삼성은 F18에서 기종이 바뀐 F16 전투기 수입권을 확보했고 대우는 잠수함 및 구축함사업과 연관돼 있었다. 총 5조8천4백억원의 공사비로 단군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토목공사의 경우 현대 삼성 대우등이 주요구간을 대부분 나누어 가졌고 총사업비 10조원에 이르는 영종도 신공항사업의 토목공사사업권은 금호와 한진 현대 삼성 한라 대우 등에 넘어갔다. 삼성과 대림 동아 동부 등은 국방부가 실시한 주요 군기지공사사업권을 확보했고 상무대 이전공사를 맡은 기업은 청우종합건설과 현대건설이었다. 석유비축기지건설사업의 경우 선경과 LG 현대 대림 동부등 10개그룹이 나누어 맡았다. 그리고 농어촌공사의 새만금간척사업을 맡은 기업은 대림과 현대 대우이다. 이들 기업들은 하나같이 노씨에게 비자금을 건넨 상위그룹들로 밝혀졌다. 당시 한 언론의보도를 보기로 하자.
국영기업·건설사 소환 줄이을 듯/노씨 수감이후국책사업 본격수사
원전 등 2조8천억원 공사 발주/노씨에 5∼10% 커미션 가능성
검찰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이프라인으로 알려져 온 국책사업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 대형 건설업체와 당시 정부투자기관장에 대한 소환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노전대통령의 뇌물죄 공소시효기간인 90년11월 이후의 정부발주공사와 이 공사를 따낸 기업들이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됐다. 90년 11월부터 노씨가 퇴임하기 전인 92년12월까지 발주된 공사규모 1백억원 이상의 국책사업은 ▲한국전력의 원자력·화력발전소건설사업 7건 8천4백50억원 ▲국방부의 군시설 이전공사 등 6건 6천9백94억원 ▲석유개발공사의 석유비축기지공사 3건 2천6백87억원 ▲농어촌 진흥공사의 새만금간척사업 4개공구 7천2백7억원 ▲수자원공사의 댐건설공사 2건 3천1백3억원등이다. 이들 공사금액은 모두 2조8천4백41억원에 달한다. 노씨가 각 건설업체들로부터 10%씩의 커미션을 받았다면 비자금조성규모는 2천8백여억원에 달하고 5%씩의 커미션을 받았다고 가정하더라도 1천4백억원을 넘어선다. 지난 89년 1천억원규모의 해군잠수함기지 건설사업자로 선정된 대우그룹이 노씨에게 공사비의 10%에 해당하는 1백억원을 커미션으로 건넨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대형 국책사업을 통해 노씨가 챙긴 돈은 사업비의 5∼1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 뒷돈을 건네는 경로는 두 가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나는 대우의 잠수함기지건설사업과 같이 재벌총수가 직접 노씨를 만나 돈을 전달한 경우이고 또 하나의 경로는 발주기관 책임자가 각 건설업체들로부터 커미션을 걷어 노씨에게 전달한 경우다. 검찰은 매 공사때마다 노씨가 직접 건설업체 대표들을 만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상당부분은 각 기관장들에게 모금을 맡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6공 당시 각 기관의 공사는 형식적으로는 조달청을 통하거나 자체적으로 발주하고 낙찰업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돼있었지만 실제로는 사전에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낙찰업체가 선정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전에 커미션액수가 정해지고 공사예정가를 비롯한 주요 정보가 청와대나 발주기관 관계자들을 통해 사전에 업체에 누출돼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업체들은 서로 출혈경쟁을 하는 것보다 청와대의 교통정리 아래 각종 공사를 나눠먹기식으로 분배, 미리 정보를 받아 예정가격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공사를 따낸 후 5∼10%의 커미션을 제공해 공사도 맡고 생색도 내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의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업체들이 커미션을 떼주고 남은 금액으로 공사를 맡다보니 자재를 빼먹고 불량자재를 사용하는 등 부실공사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부실관행을 초래했다. (95년 11월 20일 ㅎ일보)
비자금 파문이 갈수록 확산면서 계열 건설사에 비자금 조성의 상당부분을 의존해오던 재벌그룹들은 좌불안석에 빠졌다. 또한 6공 들어서 세간의 의혹을 살만큼 급성장한 건설업체도 전전긍긍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 농어촌공사가 착수한 대규모 공사는 바로 새만금 간척사업인데 입찰 당시에도 모업체의 고위층 로비설 등이 나도는 등 말썽이 있었다. 이에 대해 농어촌공사는 이는 '3개구간 중 비교적 조건이 좋은 구간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였다.
정부의 대형건설공사는 말이 경쟁입찰이지 실은 권력자가 낙찰자를 지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이 있다. 뇌물을 준 업체들은 이를 충당하거나 폭리를 취하기 위해 불량자재 사용, 설계변경, 중복 하청 등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왔던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뇌물을 챙긴 공사인데 발주기관이나 감독기관이 규정대로 제대로 감리 등 감독 업무를 수행하니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자.
정부의 대형건설공사는 말이 좋아 경쟁입찰이지, 결국 권력자가 낙찰자를 지명했음이 속속 드러났다. 또한 국내건설공사 발주관행과 뿌리깊은 「부패고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내 재벌들로부터 받은 뇌물은 상당부분이 대형건설공사와 관련돼 있다. 「대형공사=리베이트」라는 얘기가 사실로 확인된 것. 이같은 정경유착의 현실에 일반국민들은 물론이고, 건설업계 직원들조차 놀라는 눈치이다. 이번 검찰영장에는 대우 김우중 회장이 사례비로 50억원을 건네준 진해잠수함기지공사를 비롯, 석유비축기지공사, 서해안 해군기지공사, 보령화력발전소건설공사 등 1천억원대가 넘는 대형공사들이 줄줄이 거론됐다. 대형공사를 둘러싼 수주경쟁이 발주기관과는 상관없이 사실상 청와대를 중심으로 전개됐음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6공때 발주한 원자력발전소건설공사를 비롯, 경부고속철도, 영종도신공항, 대규모공단 및 택지개발사업 등 국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거의 모든 관급대형공사들마다 비리의혹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또한 골프장건설과 관련된 비리도 사실로 확인됐다. 대형공사를 둘러싼 뇌물수수는 그에 따른 이권이 엄청나기 때문. 대형공사를 따내기만 하면 회사가 순식간에 급성장세를 탈 수 있고, 경영주는 돈방석에 앉게 된다. 정부공사는 설계변경에도 후해 「밑지는 장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건설업계의 평가이다. 또한 국방관련공사의 수의계약관행은 건설업계의 비리를 초래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사건으로 밝혀진 리베이트규모는 대략 공사액의 3∼5%선. 대우 김회장은 잠수함기지공사의 대가로 공사비 1천23억원의 5%정도인 50억원을 노씨에게 줬고, 석유비축기지공사를 따낸 건설사들은 3%정도를 상납했다. 물론 발주처관계자와 담합에 참가한 이른바 「들러리」회사들에게도 「수고비」를 줘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리베이트총규모는 밝혀진 것보다는 많으리라는 추산이다. 공사수주에 따른 리베이트액수는 많게는 10%에서 대형공사는 3∼5%선에 이른다는 게 정설로 돼 있었다. 또한 이번 사건과 관련된 건설회사들은 공사예정가에 근접한 가격에서 계약을 따내 사전담합의혹도 안고 있다. 정상적인 경쟁으로는 낙찰률 90%를 넘기기가 힘들기 때문에 6공때 공사예정가의 95%를 상회해 수주한 공사에서는 뇌물이 오가지 않았겠느냐 하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동아건설과 대우가 각각 수주한 울진원자력발전소와 월성원자력발전소공사는 모두 98%의 낙찰률을 기록했고, 하동화력 12호기, 일산부천집단에너지전기공사 등은 모두 98∼99%의 높은 낙찰률을 보였다. 국방부가 발주한 9159511시설(평택기지)공사를 비롯, 경남군수정비창 등 5∼6건의 대형공사들도 96%이상의 낙찰률을 보였다. 석유비축기지와 새만금간척사업 1∼4공구, 용담댐공사 등이 97∼98%선에서 업체들에 낙찰됐다.(95년 11월 18일 ㅈ일보 기사)
새만금간척 종합개발사업의 제1공구 공사는 91년 9월 대우가 사업시행자로 낙찰돼 91년 11월28일 기공식 이후 공사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구간에 있어서 준설면허업체에 제한함으로써 특혜시비가 일었다. 당시의 기사를 보자.
전북 새만금 방조제 축조공사 입찰을 둘러싸고 정부가 준설업 면허를 가진 특정업체에게 공사를 주려 한다는 의혹이 업계에서 강력히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최근 농어촌 개발공사가 발주하는 새만금 방조제 2,3,4공구 축조공사에 대한 입찰공고를 내면서 「토건,준설 및 포장공사업 면허 소유업체로 도급한도액 1천5백47억원 이상인 업체」 등으로 입찰요건을 제한했다. 따라서 오는 18일로 예정된 입찰에서는 현재 준설업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대우, 대림산업 등 4개 업체에게만 자격이 주어지게 됐다. 그러나 동아건설산업, 삼성종합건설, 쌍용건설 등 다른 건설업체들은 『정부가 오는 7월 준설업 면허를 신규 발급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새만금 공사 입찰시기를 그 전인 18일 실시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는 것은 특정업체에 입찰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준설업 면허가 3년에 한번 교부되는 것인 만큼 그동안 질질 끌어오던 새만금 공사의 입찰공고를 서둘러 낸 것은 다른 업체들의 입찰기회를 부당하게 박탈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현재 준설업 면허를 가지고 있는 국내 건설업체는 모두 7개 업체이나 한진종건과 한라건설,삼협개발 등 3개 업체는 도급한도액이 입찰자격에 미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만금 방조제 2,3,4공구 공사는 공사비 5천8백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입찰을 앞두고 건설업체간에 치열한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는데,현재 대우가 1공구 공사를 진행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같은 일부 업체의 주장에 대해『새만금 공사는 올해 예산을 배정받은 사업인 만큼 더 이상 공사를 끌 형편이 못되며 특정업체의 준설업 면허 발급을 기다려 입찰을 연기할 수는 더욱 없다』면서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ㅈ일보 1992년 5월 3일자 기사)
결국 18일 실시된 새만금간척 종합개발사업 제2,3,4공구 입찰결과 현대건설,대림산업,(주)대우가 사업시행자로 결정됐다. 준설면허를 가진 토목건축공사업체로서 지난해 도급한도액이 1천5백47억원 이상인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대림, 대우 등 4개업체가 응찰한 입찰에서 2공구는 현대건설이 2천9백15억원, 3공구는 대림이 8백79억원, 4공구는 대우가 2천98억원에 각각 수주한 것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3년 반 후에 터진 비자금 폭로로 이 때의 내막이 드러나게 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현우 전경호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공개되면서 뇌물을 준 만큼 대가를 받은 기업과 파워게임에 헛물만 켠 기업이 극명하게 드러나 쓴웃음을 짓게하고 있다. 뇌물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경우와 돈만 날린 경우로 가장 대조적인 그룹은 대우건설과 동아건설.두 기업 모두 노·이 양씨의 구속영장에 뇌물수수 혐의가 가장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대조적인 것은 대우가 노씨의 구속영장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 반면,동아는 이씨의 뇌물수수행위중 대표적인 경우로 거론됐다는 점. 이는 두 그룹이 대형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잡은 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으로 대우가 노씨와의 직거래를 통해 상당한 반대급부를 얻어낸 반면,동아는 이실장을 통해 로비를 했으나 끝내 밀렸던 것으로 보인다.구속영장에 명시된 두 사람의 뇌물수수과정을 분석해 보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우선 대우 김우중 회장은 91년 5월초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진해 해군잠수함기지를 대우건설이 수주할 수 있도록 해준데 대한 사례로 50억원,같은 달 중순께도 같은 취지로 50억원을 노씨에게 건네 잠수함기지 수주건과 관련해 총 100억원을 상납했다.공사를 수주한 후 사례금으로 건넸다는 점에서 90년 9월 잠수함기지 공사 발주를 하기전 이미 노씨와 대우사이에는 묵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동아 최원석 회장은 89년 12월말께 청와대 별관 안전가옥에서 이실장을 만나 진해 잠수함기지를 수주할 수 있도록 노씨에게 청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데 대한 사례로 1억원을 건넨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결과적으로 같은 건에 대해 노씨는 김·최 두 회장을 모두 만나 인사치레로 건네주는 뇌물을 챙겼지만 대우쪽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결국 이 공사는 대우가 98.8%라는 경이적인 낙찰률로 996억8,200만원에 가져 갔다. 제2라운드는 92년 5월 발주된 새만금간척공사 입찰.14년간 총공사비 1조8,680억원(91년 경상가격 기준)이 투입되는 당시로선 건국 이래 최대규모인 이 사업의 방조제 공사 입찰에는 대형업체들이 사력을 다해 덤벼 들었다. 특히 동아는 건설그룹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계화도 간척지가 바로 새만금지구내에 있어 회사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준설면허를 가진 업체로 입찰자격을 제한,준설면허가 없는 동아는 입찰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 공사도 대우가 1,3공구(3,413억원)를 가져갔고 현대가 2공구(2,915억원),대림이 3공구(879억원)를 가져갔다. 당시 업계에서는 수주가능성이 가장 높은 동아를 의도적으로 따돌리기 위해 「준설면허 조건」을 달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92년 10월 발주된 굴포천방수로 공사도 줄을 잘못 잡아 물을 먹은 경우. 이 때도 동아는 이실장(당시 안기부장)이 밀었고,대우는 청와대에서 직접 밀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대우는 직접공사비를 약 500원 밖에 차이나지 않는 금액으로 맞춰 680억원에 낙찰 받았다. 직접공사비를 귀띔 받았거나 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ㅈ일보 1995년 11월 18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