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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따라 역사 여행을 함으로써 성경의 첫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악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아브라함과 함께 역사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계보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창세기 11:10~32는 아브라함의 계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노아-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 스룩- 나홀- 데라- 아브라함,나홀,하란
아브라함은 노아의 세 아들 중 셈 계통이고 에벨의 계보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아의 세 아들의 자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노아의 큰 아들 셈에게서 엘람,앗수르,아르박삿, 룻,아람 민족이 나오고 그 아르박삿의 자손 중에서
에벨를 거쳐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둘째 아들 함은 네 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구스, 미스라임(이집트),붓,가나안족을이룹니다.
그런데 성경은 구스의 아들 니므롯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를 세상의 첫 용사이며 용감한 사냥꾼이라 표현하며 시날땅 4개 성읍(바벨, 에렉,악갓,갈레)를 지나 앗수르 땅의 니느웨,르호보딜,갈라,레센에 걸쳐 큰 지역을 다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손자 중 가나안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서 벌거벗은 수치를 당한 후 저주를 받은 인물인데 아마도 말하기 민망한 행위를 노아에게 저지른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노아가 깨어난 후 자신이 벌거벋은 것을 형제에게 말하였던 함이 아니라 그의 넷째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다고 주장합니다. 가나안의 후손은 여부스,아모리,기르가스,히위,알가,신,아르왓,스말,하맛 족속입니다.
노아의 막내아들 야벳의 후손은 고멜, 마곡, 마대,야완 두발, 메섹,디라스인데 그들은 인도 유럽인종의 조상입니다.
성경지리적으로 보면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무르고(창 8:4) 물이 빠진 후 셈족은 남쪽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내려오고, 함족은 서남쪽인 이집트,팔레스타인,북아프리카 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중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셈족의 영토에서 넓은 지역을 정복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벳 자손은 아라랏산의 북쪽과 동쪽으로 이동하여 인도와 유럽인들의 조상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도출처 : 두란노 성서지도 _ 두란노 발간
이제 아브라함이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신 분들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왔다고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처음 하던 때에 갈대가 많은 우르라는 촌동네에서 아브라함이 살았다고 이해하였습니다.그러나 우르는 그런 촌동네가 아니고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꽃피운 지역입니다. 수메르문명은 약 4,000년 전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이집트, 인더스문명 및 그리스문명에 이르기 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닙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창세기에서는 시날땅이라고 불리움)에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때는 BC 3,500년 경이라는게 학계의 다수 의견이며 교과서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 사람들은 우루크, 우르,니푸르,라기사,키시,마리등 성읍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 성읍(도시)국가들은 경쟁과 협력을 통해 발전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 성읍국가들의 중심은 우르크(성경에는‘에렉’으로 기록)였으나 나중에 우르로 이동합니다.
지도출처 : 두란노 성서지도 _ 두란노 발간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을 이용하여 농업을 발전시켰습니다. 관개수로를 이용하였는데 놀랍게도 토기를 이어 파이프와 같은 기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리 농사를 지어 맥주를 인류 최초로 발명하였으며 대규모 신전과 궁전을 지을 정도로 토목, 건축 기술이 발달하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를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점토판에 쐐기문자를 기록하였습니다. 쐐기문자를 외교,교역,행정,교육등에 폭 넓게 사용하였습니다.고고학의 발달로 당시 점토판을 발굴하고 그 문자를 해독하여 당시의 문명을 이해할 뿐 아니라 성경 속의 스토리가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학 및 천문학에도 뛰어났습니다.그들은 우주와 지구의 운행원리 및 시간의 배분등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12진법,60진법을 사용하였습니다.코페르니쿠스 보다 훨씬 전에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1시간 = 60분, 1일 = 12시간 X 2회, 1년 = 12개월 같은 이해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수학적,천문학적개념은 그들의 우주관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들의 신화와 관련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의 수학, 천문학적 지식은 후대 아카드를 이어 바벨론으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들은 학교를 세워 교육을 제도화했으며, 바퀴와 화페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다른 국가들과 외교 및 교역 관계를 가졌는데 역내의 인접 도시국가들을 넘어 멀리 이집트 및 인도까지 관계를 가졌습니다. 인도의 인장이 이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즉 인도 지역까지 이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메르 쇄기 문자
그럼 초고대시대에 이런 뛰어난 문명을 일으키고 확대시킨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이들을 수메르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는데는 BC2,400년경 이들을 정복한 아카드 사람들이 이들을 수메르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학자들이 수메르인, 수메르문명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수메르인들의 기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워낙 뛰어난 문명을 세웠기 때문에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수메르문명이 우리 민족이 세운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메르 연구의 권위자인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박사는 (1897-1990)은 ‘셈족의 나라“란 의미로 사용된 ’셈멜‘이 아카드 사람들의 언어로 ’수멜‘로 모음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수메르인은 셈족이란 의미란 거죠. ’시날’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가쉬의 왕 (구데아)인물상
윤정모 장편소설 <수메르> 표지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조상이 어디서 왔는지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후대에 교육시켜 왔습니다. 출애굽후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호수아는 그들의 조상이 강 저쪽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강은 유프라테스를 말하는 것입니다.(강 = 큰강 곧 유브라데 : 수 1:4)
“옛적에 너희의 조상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수 24:2,3)
아브라함이 살았던 우르는 유프라테스 강 근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라는 용어는 ‘두 강들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에 쓰여진 그리스어 명칭입니다. 좁게는 티그리스와 유프라데스 강 사이 지역을 의미하며, 넓게는 현재의 이라크, 이란, 시리아, 터키 지역 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입니다.수메르 문명의 중심국가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을 떠나게 하여 거룩한 계보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메르인들의 종교를 이해해야 할 듯 합니다.
그들의 종교는 다신교입니다(3,000~4,000개의 신). 그 중에서 중요한 신은 아래와 같습니다.
An(하늘), 안투(안의 아내, 혹은 땅의 신 Ki와 동일로도 봄)- 둘 사이의 아들, 엔릴 Enril (최고의 신)
Ki (땅),엔키Enki (키의 아들, 땅의 지배자) - 두무지(엔키의 아들, 목축의 신)
난나(달) - 엔릴이 공기의 여신 닌릴(Ninril)을 강간해서 낳은 아들.
닌갈과의 사이에서 Utu(태양신),이난나(Inanna사랑과 풍요의 신)을 낳음.
두무지Dumuzi(엔키의 아들, 목축의 신) - Enki와 대지의 여주인 닌키(Ninki)사이에서 낳은 아들로서
이난나의 남편(연인)입니다.
아래 주요 신들의 계보에서 ( )안에 있는 숫자는 60진법을 토대로 한 신들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파란색은 수메르 신들중 7명의 주요 신들입니다.
수메르의 주요 신
이난나와 두무지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난나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신입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지상 뿐 아니라 지하세계에서도 드러내고자 그녀는 지하세계(저승)로 내려갑니다. 지하세계는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에레쉬키갈(Ereshikigal)이 다스리는 세계였습니다. 에레쉬키갈은 이난나의 미모를 질투하여 벌거벗겨 죽입니다. 풍요의 여신 이난나가 지상에 없는 동안 모든 생명체가 성행위를 중단하여 곡식이 메마르고 가축들이 새끼를 낳지 못합니다. 이에 엔키 (Enki)가 중심이 되어 신들이 에레쉬키갈을 설득하여 이난나를 지상으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그러나 지하세계의 법칙에 따라 이난나 대신 저승에 있을 신을 찾아야만 됩니다.여러 신들을 물색해 보지만 적임자가 없습니다. 우연히 남편 두무지를 보게 되는데 그는 이난나가 지상에 없는 동안 슬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일 잔치를 벌이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이난나가 두무지를 지목하여 그가 저승에 있게 됩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두무지가 불쌍해서 이난나가 언니에게 부탁해서 두무지는 일년의 반은 지하에 일년의 반은 지상에 있게됩니다. 두무지가 지상으로 올라와서 이난나를 만나 성행위를 갖게될 때 대지는 비가 내리고 초목은 자라게 되며 가축들도 새끼를 배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슈타르 - 이난나를 계승한 바벨론 여신
근동지방의 기후는 봄과 여름, 건기와 우기가 있습니다. 봄이 되어 비가 내려 대지를 적실 때 씨앗이 싹트게 됩니다. 곡식 뿐 아니라 목초도 풍성해집니다. 봄의 시작을 기념하여 대지에 비를 내리고 풍요와 다신을 기원하며 두무지의 상징 수메르왕과 이난나의 상징인 여사제가 신전 꼭대기에서 신성결혼식을 가지는 종교의식(공개SEX)이 아키투축제입니다. 왕이 성행위 의식을 행할 때 백성들도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백성들도 집단적으로 성행위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종교의식과 관련된 우루크 왕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결한 식물이 흩뿌려진 아름다운 침대에 이난나와 함께 누워 해가 지지 않았으며 밤이 지나지도 않았도다 짐은 열다섯 시간 동안 내리 이난나와 함께 누워 있었노라“
비가 안오고 온 대지가 메마르는 여름은 두무지가 저승에 가 있는 기간입니다. 여름이 시작되면 여인들은 저승으로 떠나는 두무지를 위하여 애곡하는 종교의식을 행합니다. 이는 에스겔서 8장 14절에 나오는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겔 8:14)를 연상하게 됩니다. 수메르의 두무지가 바벨론에 담무스(Tammuz)로
계승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숭배된 것입니다. 수메르인 우상숭배는 지역과 시대를 넘어 계승되었고 토착신과 혼합하여 다양하게 숭배되었습니다. 즉 엔릴과 두무지의 기능이 혼합되어 마두루크, 벨, 바알등으로 숭배되었고 이난나는 바벨론의 이슈타르, 가나안의 아세라, 아스다롯,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로마의 비너스로 숭배된 것입니다.
그들의 신전이 지구라트입니다. 하늘에 있는 신(神)들과 지상을 연결시킨다는 의미로 벽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리고 최상부에 직사각형 신전을 안치한 건축물입니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의 각 도시에 있었으나 거의가 무너져버려 원형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존하는 지구라트가 우르남무의 지구라트 (이라크, 우르 3왕조의 우르남무가 세운 지구라트)와 초가잔빌 지구라트(이란, 고대 엘람왕국에서 세운 지구라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이 지구라트를 통해 바벨탑의 비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출처-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Zig_front_right_side.JPG)
(출처-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Zig_front_right_side.JPG)
(출처-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Zig_front_right_side.JPG)
(출처 - 유네스코 세계유산 센터)
(출처 - 유네스코 세계유산 센터)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11:1~4)
도시화를 통해 풍요를 누리게 된 인간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시화를 통해 필연적으로 인간 사회에 권력과 계급이 등장하게 됩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도시의 유지와 지속적인 풍요를 지켜주는 신을 위한 신전을 짓자고 선동하며 노동력과 재화를 동원하여 대규모 신전건축사업을 추진합니다. 그 선동적인 권력자는 건축사업을 통하여 신의 대리인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며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고 우상숭배를 확장시키게 됩니다. 이 사건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사건은 인간들의 탐욕과 악한 권력자의 교만함이 결합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사건인 것입니다.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이 바벨탑을 건축한 주동자로 니므롯을 지목하였습니다. 그의 의미는 ‘반역’입니다.
이 바벨탑의 원형 또는 실체가 바로 지구라트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 즉 시날 평지에는 돌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돌 대신 그들 주변에 흔한 흙으로 벽돌을 쌓고 타르를 벽돌사이에 넣어 신전을 견고하게 건축하였던 것입니다.수메르 신화와 지구라트에서 볼 수 있듯이 수메르는 우상숭배의 시초이며 우상 숭배의 시조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우르에서 떠나게 하신 이유가 바로 그 땅의 우상숭배 때문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이르러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이르러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소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는니라“ (행 7:1~4)
위의 말씀은 스데반이 순교 당하기 전 공회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과 연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설교의 내용입니다. 스데반은 용기 있는 순교자 이전에 탁월한 신학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율법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감탄하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살았던 땅을 갈대아 사람의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듯 합니다.
갈대아(Chaldea)는 우르가 있던 지역을 아카드어로 ‘Kaldu'라 불리운데서 기원합니다. 갈대아인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BC 1,000년경 무렵으로 아라비아 북부에서 이주해 왔다는 설이 다수 학자들의 의견인바 원래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수메르인,아카드인, 이후 우르를 멸망시킨 아모리인 및 아라비아 북부에서 이주해온 유목민들이 섞여 살며 수메르-아카드로 계승되는 문화적 동질감을 가지는 민족으로 굳혀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약탈’이란 뜻으로 불리우는 바 약탈적인 유목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욥 1:17). 이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BC 612년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신바빌로니아제국을 세우게 된 사실입니다.그들은 수메르와 아카드를 계승한 고바빌로니아를 계승하는 의미로 제국의 이름을 바빌로니아로 명명하였습니다.즉 갈대아와 바빌론은 동의어인 것입니다.
갈대아 = 바빌론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갈대아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겔 12:13)
바빌론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상숭배와 음란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살았던 땅을 ‘갈대아 사람의 땅‘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상징을
말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BC 2,340년경 사르곤이라는 탁월한 군주가 이끄는 유목민 아카드가 수메르 도시국가들을 정복하여 메소포타미아에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우고 도시국가 아카드가 제국의 수도가 됩니다. 사르곤왕이 바로 니므롯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아카드는 BC 2,125년 동쪽의 비문명인이었던 구티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우르가 수메르의 중심국가로 다시 부흥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우르남무왕때에 우르는 전성기를 가지나 오래가지 못하고 BC2,004년경 서쪽의 아모리족과 동쪽의 엘람족의 계속되는 침범으로 우르는 멸망하고 역사에서 수메르인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은 인류 최초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만들었고 다른 문명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명멸했던 여러 제국들은 그들이 수메르와 아카드를 계승하였음을 밝혀왔습니다. 여기서 메소포타미아 패권의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수메르 - 아카드(BC 2,340~2,125) - 우르의 회복(BC2,125~2,004)- 구바빌론(아모리족, 함무라비 왕때 전성기 BC2,004~1,750) -카시드, 히타이트(BC1,750~1,300)-앗수르(BC 1,300~612) - 신바빌론(갈대안인 BC 612~539)-페르시아(고레스 왕의 바빌론 정복 BC 539) - 알렉산더의 동방정벌(BC 330년 페르시아 정복)
아카드왕 사르곤으로 추정되는인물상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시기는 약 BC 2,000년경으로 가나안으로 가기 전에 하란에서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하란과 밧단아람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친척들이 살던 곳으로 동일한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란은 도시이고 밧단아람은 ‘아람의 들’이란 뜻으로 하란을 포함한 보다 넓은 지역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란은 유프라데스 강 북쪽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오래 전부터 경제적으로 부유하였던 도시 문명이 발달하였던 곳입니다.
창 12:1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28:10 :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 25:20 :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신 26: 5 :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내 사라, 조카 롯, 롯의 아내와 두 딸,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사람들(여기에는 나중에 롯을 구한 313명의 용병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임)과 함께 하란은 떠납니다. 성경을 잘 모르던 때에 아브람함이 몇 명의 식구들과 양떼를 몰면서 미개인들이 사는 신대륙 같은 곳으로 떠났을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상당한 규모에 경제력을 갖춘 집단의 족장으로서 하란을 떠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나안으로 가는 길과 가나안에 도착한 후에 이미 고대 문명이 화려하게 꽃피운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들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학리니 너는 복이 될 지라”(창 12:1~2)
지도출처 : 두란노 성서지도 _ 두란노 발간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아브라함은 에블라(Ebla)를 만났을 것입니다. 1970년 시리아 북부에 위치한 2대도시 알레포에서 남쪽으로 50km 위치한 텔마르디흐에서 농부의 괭이질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고대도시 에블라는 셈의 4대 후손 에벨의 성읍으로 추정됩니다. 동남쪽으로 수메르 도시, 북쪽으로 하란, 서쪽으로 지중해 도시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인 이 성읍은 BC 3000년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며, BC 2400년경 전성기를 꽃 피웠습니다. BC 2300년 중반 메소포타미아를 휩쓴 아카드의 침략으로 도시가 불타고 파괴되었는데 왕궁터에서 2만여점의 점토판이 발견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탔지만 점토판은 오히려 불로 인해 더 단단하게 구워져 현대까지 전해져 근동지역의 세계 및 언어를 연구하는 귀한 자료로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에블라는 수메르 도시들 특히 근처의 마리(Mari)와 외교 및 교역 관계를 가졌는데 이와 관련하여 경제, 조세,교역,외교,행정등의 내용을 수메르어와 에블라어로 기록하였으며 특히 수메르어의 사전이 발견되었습니다.
텔 마르흐 에브라 유적
점토판 보관소 복원
점토판 쐐기문자 일부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주요 도시는 다메섹(다마스커스)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 엘리에셀이 다메섹 출신인 것으로 보아(창15:2)아마도 이곳에서 그를 만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다메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한 곳으로 1979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등재보고서에서 “기원전 3,000년경에 세워진 다마스쿠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이,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이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중요한 문화,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다마스쿠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계속적으로 인간이 거주한 도시 중 한 곳이었다”라고 기록하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메섹의 가치는 국제 교통의 요충지라는 것입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양대 문명을 잇는 국제대로는 해안길과 왕의 대로가 있는데 이 모든 길들 연결되는 곳이 다메섹입니다.
지도출처 : 두란노 성서지도 _ 두란노 발간
해안길은 우르가 있던 수메르 도시-에블라-다메섹-하솔-므깃도- 지중해해변-가사-시내반도-이집트를 연결하는 도로로 고대부터 국제도로로 가장 중요하게 이용되어 왔습니다. 므깃도에서 두로,시돈으로 가는 지선과 요단계곡 지역으로 연결되는 지선이 있었습니다. 왕의 대로는 다메섹과 홍해 아카바만의 에시온게벨을 연결하는 도로로서 길하레셋, 디본, 헤르본,암만,길르앗라못등 요단강 오른 쪽 도시들과 아라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도로입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 12:5~6)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에도 그 땅의 주요 도시들을 지나치고 세겜 땅 모레라는 곳에 멈추어 이 곳을 거점으로 가나안 땅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가나안의 경계를 성경은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 였더라” (창10:19)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즉 지중해의 시돈에서 가사 그리고 사해 동쪽 소돔과 고모라 지역까지가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이미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 15:19~21)
가나안의 서쪽인 지중해 해안가에는 두로,시돈, 비블로스라는 고대 문명이 발달하였던 도시들이 있습니다. 즉 페니키아의 주요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페니키아라는 말이 가나안의 다른 말입니다. 페니키아는 오늘날의 시리아와 레바논 해안지대, 즉 지중해 동안을 일컫는 고대 지명 및 문명으로, 주요 도시인 비블로스(Byblos),두로(Tyre), 시돈(Sidon)등은 BC 3,00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가나안 족속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여러 민족이 혼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나안인이라 불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에 종사했으며,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오리엔트 문명을 그리스 지역에 전달하는 중개 역할을 감당하였으며,가나안은 상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서양 알파벳의 모체가 된 페니키아 알파벳을 전달한 문화전달자로서 기여를 하였는데, 그들의 알파벳은 상행위를 신속하고 편리하게 처리하기 위해 표의문자인 쐐기문자를 표음문자화 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라고 불리운 것은 BC1,200년경 그리스인들이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을 포이니키스, 즉 '자(紫)색의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이 곳 사람들이 값 비싼 보랏빛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페니키아의 도시들 **
비블로스 - 레바논
두로- 레바논
시돈 - 레바논
그들의 종교는 바로 ‘바알 숭배’입니다. 바알은 최고의 신 ‘엘(EL)'과 땅의 어머니 여신 ’아세라‘ 사이의 아들로서 LOAD'란 뜻입니다. 그는 바람, 구름, 비를 다스리고 천둥과 번개 속에서 등장하며 소유(owner),풍요와 다산(多産)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아스다롯은 그의 아내이며 아세라와 아스다롯은 수메르 여신 이난나와 이를 계승한 바벨론 여신 이슈타르와 기능이 유사합니다. 아세라 또는 아스다롯과의 성관계를 통하여 바알이 대지를 적시는 비를 내리고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매년 봄의 시작을 기념하는 신년 축전이 있었습니다. 바알을 상징하는 왕과 아세라 또는 아스다롯를 상징하는 신전의 여사제장이 성행위를 하고 백성들도 음행하는 종교의식인데 수메르의 두무지와 이난나의 관계를 상징하는 아키투축제와 유사합니다. 즉 바알숭배의 뿌리는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가 포함된 수메르입니다. 바알 숭배가 가나안에 들어온 시기는 기원전 2,000년경으로 아모리(Amorite)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합니다.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우가리트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입니다. 우가리트 (Ugarit)는 비블로스 위쪽의 지중해 해안가에 위치한 고대도시입니다. 현재 이름은 라스샴라(Ras Shamra)인데,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고대무덤 입구의 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1929년 이래 프랑스 고고학자 세페르등이 발굴하여 기원전 2100년~1200경에 융성하였던 고대도시 우가리트의 존재를 밝혀냈는데 여기서 출토된 많은 점토판을 통하여 당시 중근동 국가들간의 외교 및 역학 관계, 그들의 종교생활, 언어체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점토판의 기록에서 바알, 아세라, 다곤등 우상들의 명칭이 많이 나옴으로써 바알 숭배의 역사에 대해서도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의 지중해변을 따라서 앞에서 설명한 페니키아 도시들이 있었고 요단강 주변을 따라 형성된 물이 풍부하고 농경 및 목축에 적합한 지역에는 하솔,여리고,소돔,고모라,소알등의 성읍이 요단강 북쪽에서 염해(사해) 주변에 걸쳐 있었는데 이들 지역은 BC 8,000년전 이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 흔적이 있으며 BC 4,000년~BC 2,500년경에 고대도시가 발달하였던 흔적이 고고학 발굴에 의하여 밝혀졌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식솔들이 다툰 후에 롯이 선택하였던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사해 동남부의 아르논 강과 세렛 강 사이의 비옥한 지역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인 학설입니다. 이 지역은 해발 900미터의 고원지대에 펼쳐진 광활한 평야 지대로 농사가 잘 되고 목축에도 적합한 지역으로 샘이 많이 있습니다.그렇기에 롯이 보기에 이 지역은 여호와의 동산같고 나일강의 축복이라는 이집트 땅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롯의 눈에 그렇게 좋아 보였던 이 지역은 음란과 타락의 상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9장은 소돔 지역에 동성애가 만연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색자란 뜻의 영어 명사 sodomite는 바로 소돔사람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 13:10)
**요단강 주변의 주요지역들**
헬몬산
훌레호수
갈릴리 호수
사해(염해)
하솔
창세기 14장 1~16절은 당시 근동의 국제정세를 보여줍니다.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주동이 되어 이루어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연합군이 왕의 대로를 이용하여 사해남부- 홍해 아카바만 - 가데스바네아까지 군사원정을 감행하여 호리족속등을 치고 이 지역을 정벌하였습니다. 엘람왕국 주도의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의 정벌 후 호리족속의 세력이 약해진 그 지역에 훗날 에서가 세일산 근처에 자리잡고 에돔왕국의 기틀을 이루게 됩니다.에서는 3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헷족 출신의 2명의 아내와 이스마엘의 딸 : 창 26:34, 창 28:9). 그는 자녀들과 그가 소유한 사람들과 가축, 재물이 풍부해져 가나안 땅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고 이 곳의 원주민인 호리족속과 함께 살며 에돔왕국이 조상이 되었음을 창 36장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친척뻘인 에돔의 기원을 설명한 김에 모압, 암몬 족속의 기원과 그들의 영토도 살펴보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후 롯의 두 딸이 아버지를 술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낳은 아들들이 모압 (큰 딸의 아들)과 암몬(작은 딸의 아들)의 조상이 되었는데 모압의 영토는 염해(사해) 동편의 아르논 강과 세렛 강 사이의 땅으로 ‘모압 평원’이라 부르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암몬의 영토는 아르논 강 북쪽으로부터 요단 동편 산지(Trans-Jordan)의 얍복강 사이입니다.
출애굽 경로 지도인데 에돔,모압,암몬의 지경을 볼 수 있다(지도출처 : 두란노 성서지도 _ 두란노 발간)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중앙산악지대를 따라 브엘세바-헤브론-베들레헴-실로-세겜을 잇는 이길을 따라 대부분 활동하였습니다. 이길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이 주로 이용하였으므로 ‘족장들의 길’이라고 불리웁니다. 당시 가나안 지역에는 이미 풍요로움과 높은 문화수준을 누리는 도시국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족장들의 행보와 관련하여 언급된 가나안 도시들의 숫자는 적습니다.이는 그들이 도시와 떨어져서 족장들의 길을 통해 목축 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의 땅 우르를 떠나도록 명령하신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우상숭배 청정지역 대신에 곳곳에 우상숭배가 우글거리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였는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들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 그들끼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원하시는 게 아니고 세상 속에서 치열한 영적 싸움을 통해 거룩한 정체성을 확인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확장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우측의 요단강 주변 비옥한 땅과 좌측의 지중해 주변에 장사하기 좋은 지역이 아니라 유다 광야의 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 목축지를 옮겨 다니며 언약의 백성으로 순종하는 삶을 추구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세상 속에서 좁은 길을 걷는 삶‘에 대한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족장들의 길’이라 불리는 이 좁은 길을 떠나 기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갔었던 지역이 둘 있는데 ‘애굽’과 ‘그랄’입니다. 이 두 곳 모두에서 공교롭게도 아브라함은 그의 사라를 아내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누이라고 부르는 비겁한 행위를 합니다. 아비멜렉 왕이 있던 ‘그랄’은 가나안 땅의 서남쪽 지중해 해안가 근처의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애굽 즉 이집트를 다스리는 파라오는 당시 최고의 문명과 풍요를 자랑하던 대국의 통치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불렀던 이 두 번의 사례는 좁은 길을 가는 성도들도 물질과 세상의 힘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굴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는 불신앙을 경계해야 함을 영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동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표시하고 있는 지도입니다.
지도출처 : 두란노 성서지도 _ 두란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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