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에 삼송제일교회에서 있었던 ‘청목회 신학토론회’ 발제자 신원균 목사님 발제 논문에 담긴 내용과 토론 시 발언(답변)들을 두고 {페북}에 비평과 함께 비난하는 글들이 있어서 {유튜브}에 들어가 신원균 목사님 발제 내용을 들어봤다. 동영상으로 신학 강의나 강설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인내를 가지고 들어본 것이다.
https://youtu.be/2kH6yk1O4Qs
다음은 신원균 목사님 발제 논문1)에서 한 부분으로 위 동영상 ‘1:02:30~1:06:11’을 녹취한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넓게는 칼빈주의자이지만, 오웬처럼 회중파를 추구했기 때문에 장로교적 칼빈주의자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웬이 영국 회중파 선조라면 에드워즈는 미국 회중파 선조 선조입니다. …(중략)… 에드워즈는 분명 개혁주의 신학자이지만 그의 신학은 정통 장로교 신학과 차이가 존재합니다. 또한 그의 연약한, 약한 신학 체계는 그의 제자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한쪽에는 미국의 초기 자유주의 신학인 뉴헤븐 신학의 태동이 됩니다. …(중략)… 최근에 뭐 어떤 목사님처럼 에드워즈를 이단시 취급하고, 이런 것은 잘못된 비판이지만, …(중략)… 예를 들면, 원죄론에서 죄의 전가 종류는 개혁파의 직접 전가론과 펠라기안파의 간접 전가론이 있는데, 간접 전가론은 “원죄의 죄책 전가를 부정하고 부패와 오염만 전가됐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대표적인 현대의 이론입니다. 이런 중요한 재론에, 조나단 에즈워즈 원죄론은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개혁파의 많은 신학자 중 에드워즈의 원죄론이 직접 전가론인지, 간접 전가론인지 평가 논란이 남아 있습니다. 박형룡 박사는 이것을 정리해서, “핫지, 커밍함, 바빙크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원죄의 간접 전가자로 평가했고, 워필드, 존 머레이는 에드워즈를 직접 전가자로 평가, 우리 정통 조직신학을 따라서 정통 조직신학 원죄론을 수용했다고 평가했다.”고 말합니다. 에드워즈 전공자들은 그를 옹호하기 위해서 에드워즈가 직접 전가론자임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개혁파 장로교 신학자들 가운데 바빙크, 핫지, 커밍햄, 이런 분들이 비판했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개혁파 대학자들조차도 에드워즈 원죄론을 평가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에드워즈가 그만큼 원죄론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입니다.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께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 {원죄론}을 간접 전가론으로 평가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므로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 텍스트로 가 보자. 다음은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제3권} 박태현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118쪽~119쪽에서 옮긴다. 영문 이름은 다 적지 않는다.
하지만 개혁주의 원죄론은 이미 옛날의 교리로 여겨졌다. 플라카이우스는 프랑스, 스위스, 영국, 미국 등 어디에서나 수용됐고, 비텐바흐, 엔더만, 슈탑퍼, 휘트비(D.Whitby), 존 테일러(John Taylor), 룰, 피트링가, 페네마 등과 같은 신학자들과 또한 루터파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수용됐다. 미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휘트비(D.Whitby)에 대항해 자신의 유명한 논문 {Original Sin Defended}를 저술했음에도82) 거기서 이미 간접적인 아담의 죄의 전가를 신봉했고, 홉킨스, 에드워즈(Edwards Jr, 1745~1801) 드와이츠, 엠몬스 등의 뉴잉글랜드 신학을 전적으로 플라카이우스 노선과 제휴하게 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어디에서나 수용됐다. 개신교는 자신의 과거에 충실하지 못한 그만큼 로마교로 되돌아갔다.
위 본문 ‘각주 82)’에는 헤르만 리델보스 목사님 부친이자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 제자이신 얀 리델보스 목사님께서 쓰신 논문, {De Theologie van Jonathan Edwards}2)가 적혀 있다. 그런데 ‘클라이드 홀브룩 편집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4권: 원죄론(Original Sin Defended)} 김찬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을 보면, {Original Sin Defended}에서 비평 대상은 존 테일러(John Taylor)다. 즉,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께서는 {Original Sin Defended)}에서 ‘존 테일러 {원죄가 성경의 교리인가에 대한 자유롭고 솔직한 교리 검토}’를 대상으로 삼아 ‘존 테일러 원죄론’을 비평하신다. 그러니까 ‘{Original Sin Defended}(1758년 출판)’에서 비평 대상은 ‘휘트비(D.Whitby)’가 아니다.
{개혁신앙 푸르내} 회원이신 ‘Tr-Re’ 님이 2020년 12월에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내신 사실로서, 휘트비(D.Whitby)와 관련이 있는 인물은 ‘{A Vindication of the Doctrine of Original Sin from the exceptions of Dr. Daniel Whitby} (1711년 출판)’로 소시니안주의와 율법폐기론자들과 싸우셨던 영국 웨일즈 출신 조나단 에드워즈(1629년~1712년) 교수님이시다. 즉, 1682년~1712년에 영국 옥스퍼드 Jesus Collage 총장으로 지내셨던 조나단 에드워즈(1629년~1712년) 교수님이시다.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은 나 같은 범인凡人이 범접할 수 없는 방대한 지식을 가진 분이시다. 그러므로 {개혁교의학}을 쓸 때 착각하실 수 있다.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무분별한 은사주의 오순절 신학’만이 아닌 ‘자유주의 신학’을 태동하게 만든 원조로 몰리는 현실에서, 이 문제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 명예와 관련이 있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즉, 제9계명과 얽혀있는 문제다.
위 녹취에서 보는 대로 신원균 목사님은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을 이단시한 Wolf이철 잘못’을 지적하셨다. 그러나 신원균 목사님도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근거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을 무분별한 은사주의 오순절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태동하게 만든 원조’로 주장하셨다는 점에서 이 주장 역시 Wolf이철 잘못된 비판과 한가지일 뿐이다.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범인凡人으로서 ‘유전 죄로서 원죄’라는 말, 이토록 쉬운 말을 놔두고 “원죄의 직접 전가”니, “원죄의 간접 전가”니 하는 어려운 신학 용어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수년 전, {페북}에서 ‘로마 천주교와 기독교(개신교)는 한 교회다.’는 주장을 담은 글로 {기독교 강요}조차도 읽지 않았음을 드러내셨던 예장 백석 조직신학 000 교수님을 보고 이른바 “깜놀”한 적이 있었는데, 신대원에서 신학을 가르치거나 가르쳤던3) 조직신학 박사라면, ‘과거에 개혁파 장로교 신학자 어떤 이들ㅡ찰스 핫지, 헤르만 바빙크, 커밍햄, 박형룡 목사님ㅡ이 조나단 에드워즈 원죄론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며, 이를 근거로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을 수준 낮은 열등한 신학으로 평가절하하며 터부시하거나 이단시할 때는 과거에 어떤 이들이 그 근거로 삼은 ‘조나단 에드워즈 {원죄론}’에서 그 근거까지 찾아 제시했으면 좋겠다. 특히, {개혁교의학}에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간접적인 아담의 죄의 전가를 신봉했고”라는 진술만 있을 뿐, 그 근거가 되는 조나단 에드워즈 텍스트 제시는 없다는 점에서 신대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조직신학자라면, ‘정말 그러한가?’ 하는 신사의 자세로 제9계명을 명심해 ‘조나단 에드워즈 텍스트’에서 그 근거를 찾아 신학생들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부흥과개혁사에서 펴낸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4권: 원죄론}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 원죄론은 칼빈 선생님 원죄론의 변주(Variation), {기독교 강요}에 적힌 원죄론의 변주이구나.’였다. 다음 글들은 원광연 목사님께서 우리말로 옮기셔서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에서 펴낸 ‘존 칼빈 {기독교 강요}’에서 옮긴다.
《아담은 자신의 멸망 속에 우리를 끌어넣어서 우리를 멸망 속에 있게 만들었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은혜로 우리를 회복해 구원으로 이끄셨다.》 {기독교 강요 제2권} [1장] <6항>에서.
《불순한 씨에서 내려온 우리 모두가 출생할 때부터 죄에 감염돼 있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 제2권} [1장] <5항>에서.
《아담은 그저 인류의 시조만이 아니라 인류의 뿌리였고, 그리해 그의 부패로 온 인류가 부패한 상태 속에 있게 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 강요 제2권} [1장] <6항>에서.
《그러므로 썩은 뿌리에서 썩은 나뭇가지들이 나온 것이요, 그것들이 그 썩은 상태를 거기에서 나온 다른 나뭇가지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녀들이 부모 안에서 부패했고, 그리해서 그들이 그런 질병의 상태를 자기 자녀들에게 다시 옮긴 것이다.》 {기독교 강요 제2권} [1장] <7항>에서.
다음 글들은 부흥과개혁사에서 펴낸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4권: 원죄론}에서 옮긴다.
《죽음과 멸망 아래 처함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고, 의와 칭의와 영생을 얻는 자격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 451쪽에서.
《아담이 자신의 거룩함을 일단 상실해 버린 이후로는 아담의 거룩하지 않음과 부패함이 지속되는 것이 정해진 자연의 경로로 말미암는 것 못지않게, 아담의 후손이 거룩함이 없이 그렇게 부패한 본성으로 태어나는 것도 정해진 자연의 경로로 말미암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나무의 나뭇가지가 바로 그 나무로부터 나오고, 그 나무 안에 있고 그 나무에 속하는 것이 자연의 경로에 일치하는 것 못지않게, 아담의 후손이 아담 안에 있고 아담에게 속하는 것처럼, 아담의 후손이 아담에게서 나오는 것도 정해진 자연의 경로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508쪽~509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의 언약 또는 아담에 대한 규정과 관련해 아담을 다루시는 모든 일에 아담의 후손을 아담과 하나로 보셨다.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을 아담의 후손보다 더 직접 다루셨지만,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온 몸의 머리로서, 전체 나무의 뿌리로서 다루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다루실 때, 모든 가지가 뿌리 안에 있었던 것처럼 모든 인류를 함께 다루셨다.》 51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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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누구ㅡ핫지, 바빙크, 커밍햄, 박형룡, 워필드, 머레이ㅡ는 이렇게 말했다.’ 식으로 이뤄진 글이 논문으로서 가치가 있는가?
2) {페북}에서 예장 고신 황대우 목사님께서 밝히신 사실로, 이 논문 제목에 등장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 뉴잉글랜드(미국)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시라고 한다.
3) 2014년 7월에 행하신 강의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경건은 좋으나, 신학은 그렇지 않아요.” 하셨다는 서철원 목사님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