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야’와 ‘못 살겠다’가 아니라 ‘미안해요’와 ‘고마워요’를>연중 제27주일(마르10,2~16)
연중 27주일인 오늘 복음은 두 개의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혼인에 대한 이야기와 다음에는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다른 소외받는 사람들에 관한 사회적 배려에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첫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일부일처제와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둘째 이야기에서 주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는 도중에 바리사이들이 등장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의 주제는 이혼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 라는 바리사이들의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되받아 치십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고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규정은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마르10,5)’”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성서구절(신명24,1~4)을 들어
남녀 관계에 관한 내용을 창조 때부터 마련하신
하느님의 뜻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설명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부부의 소명이,
창조 때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이 둘이 함께 어울려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지속하는 것임을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어서 오늘 복음은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마르10,13~16)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10,15).’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제 1독서인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짝 지워 주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를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을 닮은 우리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행복하기를 바라셨고,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속 이어가도록 우리를 짝 지워주셨습니다.
결혼과 가정제도는 하느님이 마련하신 일이기에 신성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작은 현장 교회라고 합니다.
남편, 아내, 자녀들이라는 가정의 구성에는 갑과 을의 구분이 절대 있을 수 없고
서로의 위치와 역할 분담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서로가 동반자이며
하느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해 나가는 작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가 어린이처럼 서로가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서양의 격언에, 바다에 나가는 사람은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아가는 사람은 두 번,
결혼하는 사람은 세 번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3번이 아니라 10번의 기도가 필요하겠지요.
불화가 가득한 가정에서 나오는 소리는 ‘네 탓이야’와 ‘못 살겠다’입니다.
그러나 화목한 가정에서 나오는 소리는 ‘미안해요’와 ‘고마워요’입니다.
오늘 우리는 화답송에서 행복한 가정을 표현하는 시편을 노래하였습니다.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시편128,3).”
이상적인 아내와 자식을 얻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아내를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자식들을 올리브 나무에 비유합니다.
이 두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친근한 상징입니다.
하느님을 뜻을 실천하는 사람의 가정은 바로 이런 가정이 됩니다.
이번 한 주간에도 풍성한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 햇순이 잘 어울리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충만한 가정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네 탓이야’와 ‘못 살겠다’가 아니라
‘미안해요’와 ‘고마워요’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서로를 내어 주는 사랑의 멍에를 잘 메고 갈 수 있게 될 것이며,
사랑이 흘러넘치는 성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나자렛 성가정을 이루어가도록 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