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여행 / 송수경
작년 여름, 부산에 있는 ‘ㅅ’교회의 ‘ㅇ’목사님과 성도들의 도움으로 미국 서부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다양한 지역의 19개 교회 목사 부부가 함께 뉴욕(New York City, NYC), 워싱턴(Washington, D.C), 필라델피아(City of Philadelphia)의 신학교, 박물관, 도시의 대표되는 건물과 유명한 교회를 방문하며 미국인들과 함께 예배하고,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미국여행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간다는 말에 지인들은 무척 부러워했고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처음 여행 일정이 발표되었을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영어였다. 학창 시절에는 그래도 영어 성적이 좋아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척 좀 했는데, 점점 사용하지 않다 보니 이제는 간단한 인사 정도만 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참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결심했지만 시간이 빠르게 지나 여행 날이 다가왔다. 19개 교회 목사 부부가 한 달에 두 번씩 모여 그동안 공부하고 교제해 왔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반 이상이 유학파셨다. 기가 죽었다. 통역을 담당해 주시는 신학교 교수님과 현재 유학 중인 신학생들도 함께 가 영어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교회는 맥린 바이블 교회(Mclean Bible Church)다. 성도 수가 13,000명이나 되는 워싱턴(Washington DC)에서 가장 큰 교회인데, 2017년 론 솔로몬(Lon Solomon) 목사의 은퇴 후, 40대 초반의 젊은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 목사가 담임이 되어 큰 이슈가 되었다.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 목사는 우리의 방문을 매우 기뻐하며 만남을 흔쾌히 허락했다. 책으로만 만날 수 있는 그를 직접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청바지에 티셔츠, 큰 눈과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기는 모습에 ‘교회 오빠’란 단어가 떠올랐다. 약간의 간식을 먹으며 교회 소개와 가족 소개, 목회 철학 등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면이 단단하고 건강하며, 진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라고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하려니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했다. 일일이 악수해주는 그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지만, 머릿속에서만 영어 단어가 떠오를 뿐,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God bless you!” 누군가 축복의 말에 더욱 활짝 웃는 그를 보며, ‘나도 아는 말인데 왜 이렇게 용기나 나질 않지….’ 아쉬움만 남았다.
며칠 뒤,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방문했다.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는 엘시 맥키(Dr. Elie A. McKee)교수의 강연을 통해 종교개혁가 존 칼빈(Jean Calvin)의 삶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는 그레고리 빌(Dr. G. K, Beale) 교수의 「성전」이란 강연을 들었다. 특히, 그레고리 빌(Dr. G. K, Beale) 교수는 우리나라 신학자와 목사들 사이에서 초청하고 싶어 하는 외국 교수 중 손꼽히는 분이신데, 건강이 좋지 않아 여러 번 거절하셨다고 한다. 그런 분의 강연을 코앞에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흥분되든지 피곤함을 진한 커피로 달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범상치 않은 외모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목소리는 분위기를 제압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과 창세기, 다니엘서 등을 비교하며 에덴동산과 이스라엘 성전,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천국을 통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설명
했는데,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신선한 주제의 강연이었다. 한 자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나 영어가 문제였다. 통역이 수준급이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통역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유학파 목사들과 사모들은 이미 통역기를 벗어버리고 교수의 목소리와 표정에 집중했다. ‘영어 공부할걸….’ 후회가 밀려왔다.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현저하게 두 분류로 나누어졌다. 통역이 필요 없이 직접 영어로 질문하는 부류와 한마디도 하지 못하며 듣기만 하는 부류로 남편과 나는 후자였다. 조금 전까지 농담하며 햄버거를 나눠 먹던 분들이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교수와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영어 공부 좀 하지 뭐 했어?” 괜히 남편에게 트집을 잡는다. “그러게…. 너무 놀았나 봐!” 눈치 빠른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는다. 얼마나 공부하면 영어가 저렇게 술술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집에 돌아가면 당장 영어 공부부터 시작하리라 다짐하며, 명강연에 크게 박수를 보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를 때, 사이트 & 사운드 시어터스 (Sight & Sound Theatres)의 뮤지컬(Musical) 「예수(JESUS)」를 보게 되었다.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에 있는 사이트 & 사운드 시어터스(Sight & Sound Theatres)는 라이브 무대에서 성경 이야기를 제작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회사로 미국을 방문하는 기독교인이라면 꼭 방문할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글이 인터넷에 가득하다.
예수(JESUS)의 생애를 뮤지컬(Musical)로 표현했는데, 무대가 웅장하고, 특수 효과와 음악이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압도적이다. 신기한 것은 등장하는 나귀와 개, 돼지도 상황에 맞게 몸으로 연기를 한다. 도대체 어떻게 동물들을 훈련했는지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통역이 없어 속상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일생을 알고 있어서 어떤 장면인지 대충 이해는 되었지만, 대사를 분명하게 알아듣지 못하니 괜히 화가 났다. 영어 자막에서 아는 단어라도 찾으려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는 단어가 나오면 무척 반가웠지만 얼마 못 가 ‘어차피 못 읽을 거 편안히 즐기자!’란 생각에 마음을 접고 의자에 기댔다. 뮤지컬(Musical)이 중반을 넘어설 때 즈음 “인간은 무엇에나 적응하는 동물이다.”라는 누군가의 명언처럼 환경에 적응한 것인지 큰 음악 소리도 특수 효과의 현란함도 눈꺼풀을 이기지 못했다. 영어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서일까? 긴 여행의 피로함 때문일까? 정신을 차리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비몽사몽간에 옆으로 떨군 고개를 남편이 어깨로 받쳐주었다. 그렇게 잠을 자다가 어느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자면 안 돼! 언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겠어! 정신 차리자!’라며 자세를 바로잡는데, 여기저기서 졸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보이며 결말에 다다르고 있었다.
“와!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눈물이 났어!” 영어 실력이 대단한 목사님 한 분이 버스 안에서 감동적인 영어 대사를 여러 번 되풀이하며 말했다. 왠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살짝 얄미워졌다. 그 많은 대사를 다 알아들으셨나 보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무척 부럽다. 그때, “와! 보셨어요? 돼지가 연기하는 거?” 남편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며 버스 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부부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괜한 트집을 잡았다. “자면 깨워 줘야지. 잘 자라고 어깨를 대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 여기 다시는 못 오는데….” 어쩌면 속상해서 스스로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은 트집에도 반응하지 않고,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둘이 꼭 다시 오자!” 하며 다독여 준다. 그렇게 남들이 부러워한 10박 11일의 미국 서부 여행은 영어 공부라는 숙제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20대 초반, 어린이 영어 학원에서 잠시 아르바이트할 때, 늘 자녀와 함께 와서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던 40대 아주머니가 계셨다. 철없던 때라 왜 그 나이에 영어를 공부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문을 두드릴 때, 영어와 글쓰기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많이 고민했다. 우리말이니 더 쉽겠지, 하고 글쓰기를 선택했는데 만만치 않다.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부러움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그 날이 과연 나에게도 올까?
첫댓글 그래도 대단하세요.
글쓰기와 영어 중 고민까지 하신거 보면요.
영어는 제게도 엄청난 숙제네요.
자유여행할 정도의 생활영어가 꿈인데도
시도조차 못하고 있답니다.
영어보다는 글쓰기지요. 잘 선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