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항공기 신우회 예배순서 (2024.6.12. 수요일)
본문 말씀 : 로마서 12장:1-7절, (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저는 제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말씀 선포 : 온전한 예배 III(Wholistic Worship III)
온전한 예배는 한 마디로 주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뜻합니다. 주님께서 흠이 없다고 인정하시는 예배는 온 교회가 일단 월-일까지의 모든 삶의 현장이 그분의 형상으로 청지기이며 왕같은 제사장임을 인정하고 선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모든 인생 현장이 예배의 장소이기에 함께 모여서 공동으로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모든 성도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주님이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일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모든 사도적 공동체가 주님의 일하심을 깨달을수록 그들이 함께 모여 주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는 온전한 예배는 축제입니다.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온 교회의 예배는 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동일하게 누립니다. 느헤미야 총독은 즐거워하며 주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이 함께 그 축제를 즐기도록 식사를 나누라고 초기 유대인에게 명했으며 그들은 함께 식사를 나누며 주님 백성의 교제를 나눴습니다. 주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사도적 공동체는 그들의 공동예배가 잔칫날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가 명심해야 할 일은 이 모든 축제가 주님 앞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온 교회는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거룩한 일을 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함께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주님을 잊어버리고 예배드리는 일은 괴이한 축제가 됩니다. 출애굽기 저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야웨 하나님을 대면하며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할 삶의 지침을 배우는 동안 그들은 주님을 금송아지로 형상화해 괴상한 예배를 드렸음을 폭로합니다. 신명기 저자는 모세가 이후 2세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때 그 일로 인하여 사십 일동안 온 민족이 주님께 참회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고 말했음을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주님 백성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려고 주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두 돌판을 깨뜨렸음을 전했습니다. 모세는 돌판에 적힌 내용들을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예배하는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낭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예배를 즐기고 있었던 가운데서 모세는 도저히 돌판의 내용들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온 교회는 이처럼 주님 앞에서 드리는 공동 예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서 있다 여기지 않고 드리는 모든 교회의 예배는 자칫 우상숭배가 됩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임재 속에 자신의 그분 백성이 되었음을 확신하는 모든 성도는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온전한 예배를 그분께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동안 유대인이 전혀 살지 않는 지역에 가셔서 구원하셨던 비유대인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유대인이 한 명도 없던 거라사 지역에 가셔서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이를 구속하셨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전혀 교류하지 않던 유대인 한 청년이 와서 광인을 고친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떠나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했죠. 예수님은 흔쾌히 그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는 자기 공생애 사역의 주요 대상이 우선 유대인임을 아셨습니다. 광인이었던 이 비유대인은 예수님을 따라 가고 싶어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그 지역의 공동체에 주님의 증인으로 남겨두셨습니다. 광인이었던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주님의 임재를 선포하며 수많은 비유대인이 이후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로 속하는 초석을 놓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았던 모든 비유대인은 이렇게 유대인을 넘어 비유대인에게까지 퍼져가는 복음의 물결을 준비하는 마중물로서 온전한 예배의 삶을 드리다가 마침내 주님의 임재가 성령님을 통해 비유대인에게까지 확장됐을 때 그들은 유대인 출신의 성도와 더불어 축제 속에 교제를 나누는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임재 앞에 있음을 확신하는 온전한 교회는 시편 122편 저자의 노랫말처럼 주님께 신실하게 반응하며 삽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을 온전히 경외합니다. 그들은 모두 사도 바울의 말처럼 전적인 주님 은혜로 유일하신 하나님의 단일 백성이 된 이들과 생명의 교제를 나눕니다. 바울 사도는 비유대인 출신의 성도가 유대인 출신의 성도를 밀어내고 있던 로마 교회에 전적인 주님 은혜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을 반대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올바른 예배임을 강조했습니다. 거룩한 바울이 로마 교회에 서신을 보냈던 때는 유대인이 점점 비유대인 출신의 성도들이 있는 교회를 밀어내고 있으며 로마 제국도 교회를 위험한 집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이런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주님이 지금 하고 계신 놀라운 일들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축제가 넘치는 공동 예배를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21세기 모든 교회를 향한 권면입니다.
모든 교회가 온전한 축제의 예배를 드리도록 성령님은 각 지체에게 선물을 주셨음을 기억하며 이것을 올바로 사용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온전한 공동 예배를 위해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유일한 은사들을 주셨으니, 공동체가 온전한 예배를 주님께 드리도록 온전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21세기 교회에도 동일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