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시장경제학자로서 공직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론적 기반을 탄탄히 갖추고 있으면서 공직에 참여하다 보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발탁한 실권자에게 고언을 하다 보면 그 실권자가 듣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모르는 공상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 벽에 여러 번 막히다 보면 공직에서 일찍 떠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 김재익을 발탁하여 그를 이해하고 전적으로 지원하였던 전두환대통령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최광 장관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장경제학자로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공직자와 일반 대중을 함께 계도하려던 이상을 가졌던 분이다. 김영삼정권의 마지막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하였고 그 전에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2년, 그 후 국회예산정책처 처장 1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2년 반 등의 공직을 맡았다.
최광 장관은 부산고등학교와 서울상대를 졸업한 후 미국 위스콘신대 공공정책학 석사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고, 한국조세학회 회장과 한국공공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최광 장관은 특히 제임스 뷰캐넌 및 고든 털럭과 함께 공공선택론의 대가 중 한명으로 인정받는 맨슈어 올슨의 애제자로 올슨의 3대 저작 중 한권인 “국가의 흥망성쇠”를 집필하는데 참여한 경력이 있다.
최광 장관은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올슨 교수의 학문체계를 기본으로 하여 한국에서 독자적인 재정조세이론을 전개하였고 그것을 실현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현실에서 최광 장관의 논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사고의 폭이 좁고 무지하여 이루지 못한 점들이 많다고 느낀다. 최광 장관의 주장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하려는 노력들이 앞으로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광 장관은 80여권의 저서와 160여편의 논문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중 내가 구하여 읽어 본 몇권의 저서들을 아래에 간략하게 소개한다.
첫째, “경제원리와 정책(2003)”. ‘한국경제의 번영을 위한 경제독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1998년에 저술한 “알기쉬운 경제원리와 올바른 경제정책”이라는 책을 증보한 것이라 할 것인데 최광 장관의 경제이론의 뼈대를 간추린 저서라는 느낌이다.
최광 장관은 이 책에서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기 위한 경제체제의 기본틀로 다음의 일곱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사유재산권의 확립, 둘째 교환 및 거래의 보장, 셋째 경쟁적 시장체계의 구축, 넷째 효율적 자본시장의 구축, 다섯째 통화가치의 안정, 여섯째 효율적이고 공정한 세제의 구축과 세무행정의 과학화, 일곱째 대외개방과 자유무역의 창달 등이 그것이다.
최광 장관은 이 책에서 누누이 기본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수시로 닥치는 현안에 대한 대증요법으로 땜질처방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기본틀을 확고하게 지키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기업을 지도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기업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경기규칙을 확립하고 확립된 경기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위한 재정정책의 과제(2007)”. 이 책은 최광 장관의 전공분야인 재정정책에 대한 논리를 전개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큰 시장 작은 정부가 한국경제의 번창을 보장하는 대안이라는 신념하에 총3부로 집필되었다.
제1부는 ‘정부의 기능과 우리 경제의 문제점’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정부의 기능은 두가지인데 첫째는 보호적 기능으로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기 위한 경제체제의 기본틀을 잘 짜주는 것이고, 둘째는 생산적 기능으로 소위 말하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기능이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정부의 두가지 기능 중 생산적 기능이 강조되어 왔는데 그보다는 시장이 시장으로 작동하기 위한 보호적 기능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2부에서는 국가예산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사고에서 정부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세제 및 재정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31개의 세목을 12개 세목으로 통합할 것과 조세와 사회보험 징수업무를 통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나는 조세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현재 세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하나 최광 장관의 제안이 현실화되어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
세제개편의 주장 중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법인세의 폐지 주장이다. 나는 상속세의 폐지 내지는 이연 주장은 여러 번 들어 보았으나 법인세 폐지 주장은 이 책에서 처음 접하였다. 최광 장관의 혁신적 사고를 엿볼 수 있었다.
셋째, “국가번영을 위한 근본적인 세제개혁방안(2008)”. 이 책은 앞의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위한 재정정책의 과제”의 제3부에서 논한 세제개혁방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시 거론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 세제와 세정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세목의 축소, 법인세 폐지, 상속세 폐지, 증권거래세 폐지, 부동산 보유세의 강화와 거래세의 대폭 인하, 조세와 사회보험을 통합하는 국민납부지원청의 설립 등을 논하고 있다.
넷째,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2009)”. ‘근원적 고찰과 헌법적 실천’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최광 장관은 앞의 저서들에서 조세정책을 비롯한 재정정책을 주로 다루었는데 이 저서에서는 법률제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이 저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그와 필연적으로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정부에 대한 근원적 고찰을 하고 그 고찰을 바탕으로 국가 정체성을 담는 그릇인 헌법에 시장과 정부, 그리고 정부재정이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하여 저술되었다.
현행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은 두가지의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헌법개정이 권력구조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잘못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최광 장관은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사고전환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헌법의 경제조항을 정부보다는 시장을, 사회적 평등보다는 경제적 자유를 우선시하여 경제주체인 개인과 기업의 체질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섯째, “국가 정체성과 나라경제 바로보기(2006)”. 이 책은 ‘양극화의 거짓과 진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최광, 강석훈, 안종범 3인의 공저로 되어 있다. 노무현정권은 참여정부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양극화해소를 주된 정책방향으로 설정하였는데 이 책은 그 양극화라는 프레임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20%의 상층부와 80%의 하층부라는 양분법은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이 아닌 양극화라는 프레임으로 복잡한 경제현상을 단순화시키고 집단이기주의를 부추겨 정치적 소득을 얻으려는 참여정부의 꼼수를 지적하면서 진정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섯째, 맨슈어 올슨의 3부작 번역 “집단행동의 논리(1965), 국가의 흥망성쇠(1982), 지배권력과 경제번영(2000)”.
올슨의 3부작으로 불리는 세권의 책을 최광 장관이 번역하였는데 올슨에 대한 이해는 최광 장관의 경제정책을 이해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보인다. 경제학은 통상 개인과 기업의 개별적인 행동을 예측하는 미시경제학과 국민경제 전체와 정부의 행동을 예측하는 거시경제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올슨은 그 중간에 있는 이익집단의 행동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로 명성을 얻었다.
이익집단들이 추구하는 공통이익은 그 집단구성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공공재이다.
이익집단이 소규모일 때는 공통이익에서 얻는 효용이 그것을 구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노력에 비하여 보다 큰 경우가 많으므로 집단을 구성하기가 보다 용이하다. 그런 소규모의 이익집단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몫을 더 많이 분배받으려는 집단이기주의가 앞서게 되고 그러한 태도는 전체적인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대표적 집단으로 노동조합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익집단이 대규모가 되면 공통이익에서 얻는 효용은 구성원 개인으로 보면 너무나 작기 마련이므로 개인이 그것을 얻으려는 노력을 할 유인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대규모의 이익집단에서 구성원 개개인은 공통이익에 대하여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게 되는데 그러한 태도를 대중의 ‘합리적 무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 등은 국민 모두와 관련되는 공통이익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에 기여하고자 하는 개인은 극소수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대중의 합리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대중을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게 만들 것인가.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특별한 선택적 유인이 있어야 한다고 올슨은 강조한다.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강제나 보상 같은 것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규모와 대규모의 집단행동에 대한 올슨의 혜안은 한국의 우파시민단체의 효율적인 활동방향에 대하여서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