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格)’ 자와 놀다 / 문무학
‘격(格)’ 자와 놀아본다. 한자로는 참으로 다양한 뜻을 갖는다. ‘격’으로 읽히는 열두 가지의 뜻이 있고 ‘각’으로 읽히는 뜻도 두 개나 된다. 보기에는 복잡하지 않은 글자인 것 같지만 격이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듯 열네 가지나 되는 뜻을 품고 있다. 이를 격, 올 격, 바로잡을 격, 궁구할 격, 겨룰 격, 칠 격, 법 격, 자리 격, 시렁 격, 자품(인품) 격, 가지 격, 격자 격이고, 그칠 각과 막을 각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파자해서 살펴보면 나무 목(木)에 각각 각(各)이다. 나무는 각각 서 있어도 격이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겠다. 나무는 숲을 이루고 있어도 그렇고, 또 그 어느 곳에 외로 서 있어도 보기 싫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파자의 의미가 그대로 살아난다.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은 꿈으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격’ 자 앞에 사람을 불러 모시면 ‘인격(人格)’이 된다.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이지만 ‘사람의 자격’으로 풀어도 괜찮을 듯하다. ‘자격(資格)’ 이란 말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사람 자격하면 누구라도 자격지심(自激之心)이 들긴 하지만… 인격주의(人格主義)란 말도 있다. 칸트 윤리학이 대표적인 것으로 자각적이고 자율적인 인격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사상이다.
‘격’ 자하고 놀면서 ‘성격(性格)’ 이란 말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나 품성” 이다. 이도 심리학적으로는 “환경에 대하여 특정한 행동 형태를 나타내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개인의 독특한 심리적 체계를 가리키는 데, 이는 각 개인이 가진 남과 다른 자기만의 행동 양식으로, 선천적인 기질과 후천적인 영향에 의하여 형성된다. 이게 좋아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다.
‘격’ 자가 들어가는 말 중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진 것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 가 있다. 이게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닌데 그 이유가 뜻이 여러 가지인 ‘격’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주자학에서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끝까지 따지고 파고들어 궁극에 도달함을 이르는 말로 해석하고, 양명학에서는 사물에 의가 있다고 보아 그에 의하여 마음을 바로잡음을 이르는 말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격물이 연구니 이치니 하고 따지니까 철학이나 학문적 용어로 쓰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정치적 용어다. 이상적인 정치 실현의 첫 단계가 격물, 그 다음이 치지,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의 순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정치의 첫 단계가 격물인데 이게 어려우니 정치가 어렵다. 정치인들이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말은 결국 격물이 안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격’자를 따라 다니다가 최근 수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 라는 대사와 접붙이기를 해본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삶은 격 없을 게 뻔하고, 품격을 팽개친 사람들이 판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지적한 것인데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명대사로 꼽힌다. 관객이 몰렸던 이유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방송에서도 《부자의 품격》이라는 특집 방송을 다루기도 했고, 품격을 다룬 책들도 최근 부쩍 많이 출판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품격 경영을 쓴 신성대는 시대 가치가 “국민소득 1만 불까지는 성실, 2만 불까지는 기술, 3만 불은 문화, 그리고 4만 불 이상은 품격” 이라고 썼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촌에 삶의 격과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품격에 관한 책들은 제목 자체가 [품격]인 책을 비롯하여, [인생의 품격], [남자의 품격], [부모의 품격], [변호사의 품격]에 이어 [비서의 품격], [외식의 품격] 등이 있다. 심지어 [잔소리의 품격]도 있는데,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가 잔소리에도 격이 있다고 당당히 외치는 것, 그것이 그야말로 격이 있어 보인다.
이쯤에 이르고 보니 이 ‘격’ 자 앞에 함부로 나설 것이 못 된다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 참, 나하고 친한 격도 있었다. 바로 티격태격 이다. 다른 건 몰라도 티격태격은 나도 좀 할 줄 안다. 특히 마누라와 그렇다. 내 성격은 나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잔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오늘도 볼 일 보고 화장실 전등불 안 껐다고 티격하는 마누라에게 태격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잔소리 듣지 않으려고 그 거리를 줄이려 적지 않은 노력도 했다. 그런 중에 몰라도 될 걸 알아버렸다. 마누라의 잔소리에는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울 때는 담배만 끊으면 잔소리를 듣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담배를 끊어도 잔소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잔소리거리가 담배에서 생활 전반의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도 격 있게 살려면 잔소리와 결별하는 전격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 길은 두 가지가 될 것 같다. 하나는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해도 잔소리거리를 줄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잔소리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 것, 잔소리거리 줄이기는 행동거지 전반에 조심을 하고, 내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잔소리할 때만 마누라를 엄마라 생각하자고 작정했다. 그러면 참을 수 있겠다 싶었다. 실제 적용해보니 성과가 거양(?)되기도 했다.
잔소리하는 마누라 있는 걸 큰 복으로 알라는 비아양이 사방에서 날아들지만 나는 정말 잔소리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아무래도 나의 격은 이 잔소리와 결별해야만 될 것 같은데 참 걱정이다. 격아, 격아, 한 판 잘 놀긴 했다만 나는 진짜 너를 언제 만날 수 있겠느냐. 잔소리할 게 없도록 행동하고, 내성을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아올린 그 때라야 가능하겠지, 이제 정말 티격태격하는 동네가 아니라 인격이니, 품격이니 하는 동네에서 놀고 싶다.
[문무학] 시조 시인, 수필가, 1982년 《월간문학》시조로 등단.
* 시조집 《가나다라마바사》 《낱말》 《벙어리 뻐꾸기》등 다수
문무학 시인은, 575돌 한글날 국어운동유공표창을 받았는데, 시조집 <낱말>을 비롯하여 한글 사랑을 시조로 표현하여 독보적인 시조의 길을 개척하였다. 특히 낱말에 대한 근원적인 천착은 나무의 홀로 선 아름다운 단단함, 나무는 숲이 아니어도 당당하고 품격이 있다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낱말에 대한 남다른 관심, 파자한 글자에 대한 무궁한 전개와 해석이 추종을 불허합니다. 글자에 대한 천착이 아름답습니다. 다양한 수필을 만나는 일은 기쁨입니다. 색다른 수필은 세상의 한 풍경이 될 수도 있지요.
티격하고 태격하며 사는 삶, 뭉근한 정이 느껴지네요. 세상 뭐 그렇게 사는거죠.
첫댓글 품격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동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