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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트러스트'는 세계의 자연·문화유산의 보존 운동을 펼치는 비영리 국제운동단체이다. 물론 한국내셔널트러스트도 있다(한국내셔널트러스트 (nationaltrust.or.kr)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요즘 꼭 보존해야 할 한국의 문화유산 응모 행사를 펼치고 있다. 일제 침탈과 강탈의 역사 연구와 보존활동을 하고 있는 한 젊은 학예연구사가 부평 '도쿄제강사택'을 신청했다. 해당 응모글에 대한 조회와 추천 및 댓글은 보존 유산 결정에 높은 점수로 반영된다고 한다. 타당하다 생각하면 '추천' 및 댓글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
부평의 ‘도쿄제강사택’은 ‘부평 조병창’과 ‘미쯔비시 철강 사옥’ 등 한국에 몇 개 남지 않은 일제 수탈과 강제 동원의 대표적 유산이다. 요즘 한국은 3.1절에 일장기가 걸리고 일본 전함 '욱일기'에 한국군 장병이 경례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추세면 조만간 35년의 일제 식민지 역사와 유산은 모두 사라질 것 같다.
‘거제 포로수용소’의 잔해와 건물을 보존하지 않았다면 요즘과 같이 대규모 전시관이 설립되었겠는가?. ‘도쿄제강사택’...잘 보존하여 한국인과 세계인에게 침략과 강탈은 나쁜 것임을 확실히 일깨워 주는 소중한 '내셔널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병호 남북교육연구소장·교육학 박사
원문보기 : 부평 검정사택(도쿄제강사택) > 이곳만은 꼭 지키자!
응모유형응모자/단체소개대상지 명칭개요대상지 가치훼손 또는 위험요인보전활동 및 보전방안소유 및 관리현황소유주 동의여부참고자료
개인 |
인천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사라져가는 지역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그 가치를 읽어내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 편찬과 답사, 강의 등으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지역문화유산에 대하여 실질적 보전과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부평 검정사택(도쿄제강사택) |
인천광역시 부평구 마장로395번길 2외 일원.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과 산곡동 경계에는 ‘검정사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제강점기 노동자 주택이 있습니다. 2020년 7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재개발로 검정사택 대부분이 철거되고, 3호만이 남았습니다. 철거되는 순간까지도 어느 회사의 사택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철거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전범기업으로 분류되는 도쿄제강에서 1943년 부평에 공장을 지으면서 사택 87호를 지었습니다.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면서 도쿄제강의 이름을 잊혀지고 건물 외관이 검정색이라는 이유로 검정사택이라고 불렸습니다. 재개발 부지에 포함되지 않은 3호만 남겨졌고, 이 또한 주변 상가 개발로 인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 군수 기지화의 확산에 따른 증거가 되고, 강제동원된 조선인과 한국전쟁 피난민, 산업화 시대 노동자들의 삶이 스며든 이곳이 제 역사를 찾고 보전되기를 희망합니다. 역사적 가치 1. 강제동원 노동자 주택 : 도쿄제강 사택 1930년대 후반부터 인천광역시 부평구 일대는 일본 자본에 의하여 많은 군수산업시설이 들어섰습니다. 전범기업 도쿄제강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도쿄제강은 8월 28일 부평에 ‘조선공장’ 건설을 출원하여 1942년 5월 19일 설립 허가를 받았습니다. 경성에 조선공장 건설 사무소를 세우고 일본 고쿠라공장에서 기사를 초빙하여 건설 위원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1943년 3월 10일, 지진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조선공장 건설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공장 부지는 천상정(川上町, 지금의 청천동) 409번지 63,925평, 사택 부지는 천상정 381번지 12,804평, 공장과 사택을 합하면 76,729평에 달하는 큰 규모였습니다. 도쿄제강에서는 부평에 공장을 건설하여 조선 내 강삭(鋼索) 및 강선류(鋼線類)를 공급하고자 했습니다. 강삭은 케이블카, 로프웨이, 현수교를 건설할 때 사용되는 철강 와이어로 당시 광산용 강삭과 알루미늄 심선(芯線)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도쿄제강은 부평에 공장을 세우고 공장 내외에 사택을 건설했습니다. 공장 내에는 사택 2동과 합숙소 2동이 건립되었습니다. ‘凸’자 형태로 된 사택은 간부급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합숙소는 ‘彐’자 형태 1동과 ‘l’자 형태 1동이 건립되었는데, 당시 신문 기사에서 이곳에 거주하던 어린 공원의 모습이 확인되기도 합니다. 공장 밖에는 가족 단위로 거주하는 사택이 15동 87호 규모로 건설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호 9동, 2호 9동, 4호 15동 등과 목욕탕이 있던 공동생활시설입니다. 일본인 직원들은 주로 1호와 2호에서 살았고, 조선인 공원들은 4호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에 강제동원된 아버지를 따라 이주하였던 구술자에 따르면, 일본인과 조선인의 대우는 가옥에서부터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일본인 사택이 조선인 사택보다 각 호의 규모가 컸던 것을 물론이고, 내부 시설 또한 달랐습니다. 일본인 사택은 구조적으로 북쪽으로 출입문을 내었고, 각 호마다 내부에 목욕탕, 마당에 우물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조선인 사택은 남쪽으로 출입문을 내었고, 모든 가구가 공동으로 1개의 공동 목욕탕을 사용했고, 4개의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현재 조선인 노동자들이 살았던 4호 사택은 모두 재개발로 철거되어 사라졌습니다. 2호 사택 중 반이 잘리고 남은 1호, 그리고 1호 사택 2동이 남았습니다. 해방 이후, 도쿄제강이 운영하던 조선공장은 폐쇄되었습니다. 기존에 이곳에 근무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공장 유지 자치위원회를 조직하여 공장을 운영하였습니다. 1945년 11월 5일 기준, 종업원 80명으로 공장 유지 자치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업 중이었으나, 자재가 2개월 분밖에 남지 않았고, 연로가 부족한 상태이며, 고장난 기계를 수리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군정이 관재령을 공포하면서 1947년을 전후하여 상공부에서 관리인을 임명하고 회사 이름을 동양제강으로 변경하였습니다. 회사 이름의 변경으로 자연스럽게 도쿄제강 사택은 동양제강 사택이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떠난 1호와 2호 사택에는 조선인들이 옮겨 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가치 3.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촌 : 검정사택 한국전쟁으로 공장의 정상화가 힘들어지자, 동양제강 사택 사람들이 공장 기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공장 담장을 뜯어와서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레 공장은 폐쇄되었습니다. 또한 폭격으로 인하여 사택 일부가 파손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전쟁기 부평에 주둔한 미군은 동양제강 공장을 미군부대로 편입시켰다. 이로 인하여 동양제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전쟁 이후 사택 구성원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기존에 거주하던 좌익 세력들이 모두 사택으로 복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비운 것은 다름 아닌 황해도 출신의 피난민들이었습니다. 피난민들은 사택의 지번 381번지를 두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381번지는 훗날 다시 고향을 찾아 38선을 지나 올라갈 수 있는 1번째 집이라는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381번지는 1940년대 초반 이곳이 생겨날 때 이미 부여된 지번이었습니다. 피난민들은 부평에 주둔하던 미군부대에서 콜타르를 구하여 외벽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유의 부산물인 이 검정색 화학물질이 방수에 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도나도 할 것없이 콜타르를 외벽에 바르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이곳을 검정사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검정사택이라는 명칭이 고착화되었습니다. <검은 외형으로 검정사택이라 불리게 된 도쿄제강 사택> 역사적 가치 4. – 산업화시대, 산업 역군의 숙소 1950년대부터 1960년대 검정사택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지금의 한국GM 부평공장의 전신인 새나라자동차공업부터, 전남방직, 신한제분, 한국베어링 등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도 있었고, 소규모 공장도 많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 수출산업공업단지가 부평에 조성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부평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부평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은 저렴하고 공장에 가까운 숙소를 선호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검정사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검정사택에 오래동안 거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생활 여건이 나아지면 좀더 나은 곳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자리는 새로운 노동자들이 채우게 되었습니다. 검정사택은 더 이상 사택이 아니었으나 여전히 검정사택으로 불렸습니다. 1970~80년대 제작한 지도에서도 ‘사택부락’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1976년(좌)과 1987년(우) 지도에 '사택부락'이라 표기된 검정사택> |
대다수의 검정사택이 철거된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전범기업으로 분류되는 도쿄제강에서 1943년 부평에 공장을 지으면서 사택 87호를 지었습니다.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겪으면서 도쿄제강의 이름을 잊혀지고 건물 외관이 검정색이라는 이유로 검정사택이라고 불렸습니다. 재개발 부지에 포함되지 않은 3호만 남겨졌고, 이 또한 주변 상가 개발로 인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1943년 87호 규모로 조성된 도쿄제강 사택은 해방 이후 동양제강 사택을 거쳐, 한국전쟁 이후에는 사택의 기능을 상실한 채 외형이 검다는 이유로 검정사택이라 불렸습니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사라진 곳이 있었고, 1960년대 개인 불하를 통하여 철거 후 새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2009년, 검정사택 일대는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11년 사업 시행 인가가 고시되고 2018년 변경 고시에 이어, 2020년 7월 철거를 시작했습니다. 검정사택은 대부분 재개발사업 부지에 포함되었습니다. 철거 이전까지 49호가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중 46호가 재개발사업 부지에 포함되었고, 나머지 3호가 남게 되었습니다. <철거 전 도쿄제강 사택 항공사진(2020)> 남은 3호는 2호 사택 중에 서쪽 호가 재개발부지에 들어가 잘리고 남은 동쪽 1호, 그리고 1호 사택 2동입니다. 원래 2호 사택으로 조성되었다가 반만 남은 1호는 철거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가 있어 주거 기능은 상실하였습니다. 1호 사택 중 1동은 식당으로 사용하면서 내부 구조가 전면 개조되어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다행히 가게 창고로 이용 중인 나머지 1호 사택은 북쪽으로 낸 현관과 내부 다락 구조 등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남은 사택 중 서쪽면이 절단된 1호> <남은 사택 중 음식점으로 이용 중인 1호> <남은 사택 중 외부 캐노피가 잘 보전된 1호> 문제는 남은 3호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재개발 부지에서는 제외되었으나, 해당 재개발을 이외에도 주변에 여러 건의 재개발이 완료 또는 진행 중에 있습니다. 남은 3호가 여러 재개발 사업 대상지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어서 철거 후 새로운 상업 시설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재개발된 아파트 바로 옆에 남은 3호도 철거 후 새로운 상업 시설이 들어서지 않을까 염려된다> 일제강점기 노동자 주택으로 조성된 이래, 해방과 전쟁, 산업화를 겪으면서 부평의 시간이 새겨진 장소 하나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
1. 보전활동 진행 상황 2019년 ‘부평구 향토문화유산 보호 조례’ 제정 2020년 ‘부평구 향토유산 전수조사 및 목록화 용역’ 보고서 발간 2020년~2021년 부평역사박물관, 검정사택 기록화 사업 진행 2020년 부평역사박물관・대연건축사사무소, ‘부평 검정사택 현황조사 및 현황도면 작성 용역’ 보고서 발간 2020년, 부평역사박물관・대연건축사사무소, ‘부평 검정사택 현황사진첩’ 발간 2020년, 부평역사박물관・세계유산연구원, ‘부평 검정사택 건축자재 시료분석’ 보고서 발간 2021년, 부평역사박물관, “도쿄제강 사택에 담긴 부평의 시간” 발간 2. 향후 보전 방안 공공 매입 또는 장기 임차를 통하여 지역 문화자산으로서의 보전 및 활용 방안의 공론화가 필요 - 지역과 주민의 역사를 담은 마을 박물관으로 활용 - 역사와 문화를 담은 주민 커뮤니티홀로 활용 - 산업유산으로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추진 |
남은 3호는 산곡동 45-56번지, 산곡동 402-10번지, 산곡동 1-7번지입니다. 면적은 각 약 50㎥이고, 각각 개인 소유입니다. 45-56번지는 2호를 반으로 절단하는 공사로 인하여 내부 구조가 불안정합니다. 산곡동 402-10번지는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어 내부를 볼 수 있으나 원형을 찾기 어렵습니다. 산곡동 1-7은 인근 구두 가게에서 창고로 사용하고 있고 외부 구조 및 내부 구조가 잘 남아 있습니다. |
아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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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 부평 검정사택(도쿄제강사택) > 이곳만은 꼭 지키자!
아래는 도쿄제강사택 관련 언론 보도 내용이다.
인천 부평구, ‘도쿄제강 사택에 담긴 부평의 시간’ 발간 - 시정일보 (sij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