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의 외교와 종교정책
(열왕기상 15장 9-15절)
9-10.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사왕은 아비야왕의 아들로서 41년간 장기 통치를 했다. 아사왕의 통치 15년에 애굽의 왕 오소르곤Ⅰ세의 부하 구스 사람 세라 장군이 이끄는 대군의 침공이 있었다. 세라의 군사는 구스 사람, 룹 사람(리비아족속) 및 애굽 부족들 100만의 대군과 300승의 병거를 앞 세우고 침공했는데, 당시 아사왕의 군사는 58만 명에 불과했다. 전투는 마레사에서 접전했으며, 아사왕이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유다 군사들은 블레셋 땅 그랄까지 추격하여 애굽의 군사를 진멸함으로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많은 전리품을 노획하고, 주변 블레셋 성읍을 치고, 많은 짐승과 물건을 얻었다.
애굽과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둔 아사왕은 교만해져서 자기 자신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의 통치 16년 째에 북쪽에 있던 바아사 왕국이 유다 왕국을 침공했다. 바아사왕은 예루살렘 북쪽 약 7km 거리인 라마에 성곽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자기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왕래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왕상15:17, 대하16:1)
유다 왕국의 선왕들이 율법을 떠나 여호와께 범죄하면서 이방 우상을 섬긴 것을 아사왕은 과감하게 제거했다. 남색하는 자와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가증한 우상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그것을 찍어 불에 던져버리고, 태후 자리도 폐하여 버렸다.(왕상15:10-15)
아사왕의 종교개혁은 두 차례 있었는데, 1차 개혁은 백성들이 섬기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찍고 태양 모양의 표식을 없앴으며, 또한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지켜 행하게 하였다.(대하14:2-5)
2차 개혁에 대해서 살펴보면 오뎃의 아들 선지자 아사랴는 세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사왕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를 했다. “이르되 아사와 유다, 베냐민의 무리들아 들어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를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15:2)
아사왕은 이 말을 듣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지심을 깨달았다. 그리고 2차 개혁을 착수하는데, 남색하는 자를 쫒아내고,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여호와의 낭실 앞 단을 중수하였다. 아사왕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를 언약하고”(대하15:12) 언약의 갱신의 증거로 여호와를 부르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선포하였다.(대하15:14)
그리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주범인 어머니 마아가를 태후 자리에서 폐하고, 마아가가 섬기던 목상들을 불살라버렸다. 그러나 산당은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채 남아 있었는데, 여전히 이방신을 섬기는 기회를 남겨두었다고 한다.(대하15:16-17)
아사왕의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에 응답하셔서 아사왕 35년까지 외국의 침략이 없었다고 한다.(대하15:19) 그러나 아사왕이 애굽과의 전쟁에서 아람 왕국에게 원군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 선지자 하나니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음을 비난했다.
원군을 요청할 때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의 곳간에 남은 은, 금을 모두 취하여 뇌물을 보내는 등 비 신앙적인 모습을 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사왕은 선지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학대를 하게된다. 결국 아사왕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발에 중한 병이 들었는데,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에게 의지하다가 통치 41년 째에 병사하고 말았다.
11-15.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유다의 3대 왕 아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은 왕이다. 그런데 그가 다윗이라는 왕의 표준에 부합되는 까닭은 두말할 나위없이 종교 개혁 때문이었다. 사실 우상숭배를 공격하는 것은 곧 여호와 신앙에 전심전력하는 표현과 증거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열왕기는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면 흥하고 거역하면 망한다는 신명기적 역사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도 하나님께 대한 거역의 구체적 표현이 언제나 우상 숭배에 대한 태도는 곧 율법 순종 여부의 시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남색하는 자는 동성 연애자가 아닌 음란한 이교 의식에 동원되는 남창을 가리킨다.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은 아세라, 아스다롯, 밀곰, 그모스, 바알 등이 있다. 아사가 이처럼 우상 숭배를 공격한 것은 모든 종교 혼합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여호와 유일 신앙이라는 전통 노선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 개혁은 오뎃의 아들 아사랴 같은 선지자의 격려를 힘입었다고 한다(대하 15:1-9).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아사의 단호한 개혁 의지를 보여 준다. 즉 우상숭배 공격에 있어 태후라고 해서 그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아가가 태후로서 국가의 정책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 아비얌 때로부터 종교 혼합주의세력의 주동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비얌이 일찍 죽고 손자 아사가 아직 어린 동안 실권자로서 섭정을 실시하였을 것이다. 아사가 마아가를 폐위한 것은 신앙 개혁, 종교 혼합주의 노선의 거부, 왕권의 회복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아사의 철저한 개혁 의지를 감안할 때 그가 이처럼 산당을 남긴 일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산당에서 여호와께 예배드린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아사는 산당을 남기므로서 우상숭배 부활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왜냐하면 본래 산당은 가나안인들이 자신들의 우상 신을 숭배하던 곳이었는바 언제든지 이교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러한 산당에 대한 대대적 파괴 작업이 비로소 실시된 때는 훗날 요시야왕에 이르러서이다.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코데쉬)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코데쉬는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이란 뜻이다. 즉 이는 보통의 물품 중에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따로 떼어 둠으로써 거록하게 된 물품을 의미한다. 역대하 13장 8절에서, 아사 왕은 그의 부친 아비얌이 여로보암과 싸워서 취한 전리품과 역대하 14장 15절에서 자신이 구스인들과 싸워서 얻은 전리품 중에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모두 하나님께 바쳤음을 알 수 있다.
(요약 정리)
열왕기상 15장 9-15절은 대외 전쟁과 종교개혁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사왕은 아비야왕의 아들로서 41년간 장기 통치를 했다. 아사왕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교개혁에 대해서는 아사가 철저한 우상 타파와 신앙 개혁을 단행했다. 아사는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제거했다. 자신의 할머니이자 우상 숭배의 주동자였던 태후 마아가의 지위마저 폐위시켰다. 혈육이나 세상의 체면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하는 결단력을 보여준다. 아사의 개혁은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게 행한 믿음의 결단이었다. 그러나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다고 했다.
신앙에 있어서 열심을 내지만, 신앙의 궁극적인 방향이 흐트러지면, 하나님께서 원하는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신앙이지만, 믿음의 대상과 믿는 신자 간의 영적 괴리 현상이 있는 것이다. 대부분 신자들은 그것을 행동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율법주의적인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서 자기 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영적 괴리 현상은 마치 신성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처럼 보이지만, 그 가교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 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행위를 차단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