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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明이 본 朝鮮의 경제.
Daum Bark 추천 0 조회 1,254 07.05.02 18:44 댓글 3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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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5.02 20:39

    첫댓글 만력제 나라돌아가는 꼴 보면 명인들이 조선 갖고 그런 소리 할 상황이 아니었을텐데.. 쯧쯔

  • 07.05.02 20:55

    그런 명나라 눈에 마저 조선이 한심해 보이니 정말 비참한 일이죠... 에효....

  • 07.05.02 21:10

    뭐 틀린말을 들은건 아니었겠지만 당시 천장, 천병들께옵서 하신 일이 무엇이온지 생각해 본다면야 뭐....-_-; 왜군은 얼레빗이고 명군은 참빗이라...

  • 07.05.02 22:01

    정말로 이해 할려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바퀴 이걸 써서 마차를 만들자는 상소에 유학자랍시고 유교 경전에 나오는 금과옥조중 한 구절을 인용해서 묵살 했다는. 그러고도 나라가 유지가 되었다는것이 미;스테리 입니다. 유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체 중세 유럽의 그것처럼 조선도 그리했던것 아닌지요.

  • 07.05.02 22:37

    조선은 온리원 농업뿐 ~~ -_-;;;

  • 07.05.02 23:12

    하지만, 고구려, 신라, 고려도 국내에서 화폐 경제를 제대로 운용해 본적이 없고, 군사력도 토지를 수여받은 무사집단에 의존했다는 것을 볼 때 반드시 경제력=군사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도 송대에 시장경제의 전단계라고 할만큼 부유했지만, 실질적인 군사력은 꽝이었지요. 조선의 무능함은 평화가 너무 계속되어 실전경험이 적고,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동원할 노하우 자체가 부족한 것이 주요인이 아닐까요?

  • 작성자 07.05.04 17:09

    그 이유는 고대사회는 노예노동력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전쟁을 통해서 획득한 노예들의 노동력이 경제의 근간을 받쳐주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조선은 노예사회는 아니었습니다.전쟁을 통해서 노예를 잡아들인 사회가 아니었죠. 또한 화약무기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네요.

  • 07.05.06 23:36

    사회학에는 무지하기 때문에 조선이 비노예사회였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투력이 비교적 우수했던 의병들의 하급병들은 사족들 휘하의 노비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중세 고려도 전쟁 포로가 노동력의 근간을 이루지는 않았는데, 어째서 전쟁이 나면 항상 조선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는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 작성자 07.05.09 11:33

    향소부곡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말 그대로 천민과 노비들이 주축이 된 사회계층의 거주지대입니다. 여기에 끼지도 못하는 부류가 양수척이죠. 그러나 조선은 이미 자경농민들이 국력의 중추라는 점을 깨닫고 조선초기 노예위주의 지방호족사회를 대폭 바꿉니다. 즉 공노비, 사노비제도를 도입한 것이기야 하지만, 그 수가 고려말의 노비숫자에 비하면 제한적이었죠. 또한 15세기 이후 16~17세기가 되면 화기의 발달로 전투에 변화가 옵니다. 이런 부분도 고려와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고려대의 노비는 전쟁노비보다는 빚을 갚지 못해서, 호족의 수탈로 그렇게 된 것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이 있으니 그정도는 아닙니다.

  • 작성자 07.05.09 11:34

    여기다가 고려는 일종의 능력위주의 사회였습니다. 즉 싸움만 잘하면 어떠한 과거나 뭣이라도 불문이었고, 일종의 무신사회였으나, 조선은 과거제의 정착으로 문신사회가 됩니다. 그러다가 보니 전쟁때의 지휘관도 문신이 종종 맏게되고, 이런 경우 전투력이 무신지휘관을 둔 것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죠. 그런 관직제도의 변화도 있다고 봅니다.

  • 07.05.02 23:20

    조선의 결정적인 약점은 유사시에 대규모 병력을 지휘해야 할 장교 집단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주지 못한데 있어 보입니다. 고려 때까지 무인들은 정식으로 토지를 사여받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군사력, 곧 사병집단을 형성했지요. 이러한 방식은 무신의 난같은 정정 불안의 주요인이 되었고, 조선왕조는 이들을 무과시험을 통과한 공식적인 지배 계급으로 편입시키는 대신 녹봉을 주는 월급쟁이 장교로 만들었지요.

  • 07.05.02 23:26

    병사와 장군 사이에 어떤 유대 관계도 없이 수백년을 평화롭게 지내다가, 100여년 동안 전란으로 단련된 수십만 대군과 맞서야 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요? 몇번 잡아보지도 못한 병장기에, 서류와 딴판인 실제 병력 집계에 난생 처음 보는 지휘관한테 지휘를 받는 관군의 전투력이 수준 이하일 것은 뻔해 보입니다. 결국 관군은 권율같이 개인적인 역량이 탁월한 소수의 지휘관들 외에는 쉽게 와해되는 거죠.

  • 07.05.02 23:41

    앗.. 그렇담 중국에서 조선에게 "너희가 무슨 제주로 수당을 까부셨냐?" 라고 물은 것은 고구려-조선 라인을 중국이 인정했다는거네요? ㅋ

  • 07.05.03 01:36

    부족단위로 쪼갈라져 있는 여진은 눈에 들어왔겠습니까.걔들 입장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것 중에서 그나마 지들 눈에 봐줄만 하니까 그런거죠.

  • 07.05.03 08:16

    =_=... 썩 기분 좋아할 내용은 아닌데요... 비아냥 거린 내용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파드시다니...

  • 07.05.03 00:36

    어째 에커트 같이 자본주의 맹아론 따위 즐드시라는 사람들의 근대주의 시각이랑 맞물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07.05.03 01:34

    왕도 못보는 사초를 일개 장군이 강제로 본다라...그리고 사견으로는 쿠데타로 나라를 엎은 태조,전왕조인 고려의 상공업,무역에 대한 똘기어린 반응.군사력과 경제에 대한 조선의 노이로제로 밖에 생각이 안듭니다.화약무기도 왕권에 위협이 됐는지,어떤 왕은 해당청(화기개발.청?화통도감?)을 폐지도 했지 않습니까.

  • 07.05.03 15:34

    결과적으로 그 고려의 화약무기를 업그레이드 시킨 것도 조선입니다 그리고 고려 백성들의 사는 걸 봤을때 과연 상업을 통한 경제 개발이 꼭 좋다고만 할 수 없다고 봅니다(당시 상업적으로 이익을 내려면 대부분의 경우 사치품을 교역하니까요)

  • 작성자 07.05.04 16:59

    "사치품의 교역=일부 특권층의 부의 집중" 이라는 시각은 반드시 그러지 만도 않습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신흥계층(역관출신 재산가)을 만들어 개혁등을 추진하는 원동력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라는 것은 한 계층만이 향유하는 소수의 물건이 아닙니다. 물건에는관련산업이 있기 마련이고, 관련산업의 발달은 사회전반적인 파급효과를 주기때문이죠. 그리고 조선의 화약무기는 사실 효종이후로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비근한 예로 노획한 수석식 총을 도입할 생각도 못하니까요. 따지고 보면 고려시대의 보다 원시적인 화기류에서 어느정도 발전을 이룬 것이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립주의 때문이죠.

  • 07.05.06 23:43

    정확하게 말하면 도입할 필요성을 못느낀거죠. 하멜 등을 활용해 수석식 총을 제작할 수 있었지만, 굳이 대량 양산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서양제국과 교류면에서 조선과 비교가 되지 않았던 일본도 흑선이 오기 전까지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었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한 국가가 주변국들이 전부 mig21이나 F-4같은 구식 전투기를 쓰는데 일부러 F-22도입 안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07.05.03 15:32

    나라 경제가 크면 뭐하나 당시 중국과 일본 백성들 사는 꼴보면 참...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화폐경제를 처음으로 정착시킨 나라도 조선인데 그리고 상업 진전 시키는 것은 일단 나라의 부가 쌓이게 할수는 있지만 그만큼 빈부격차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콰지모드님 당시 도로 교통은 교통 수단때문에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수운 교통은 효율이 좋았고 조선인들이 많이 활용했죠 그리고 수자리 갈때 함경도까지 가는 경우가 있고 세곡 운반할때 수백리 정도 강과 강 사이에 육로로 운반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세혈관이라는 측면에서는 도로 교통이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 작성자 07.05.09 11:36

    백성이 사는 모습이야 뭐 대동소이하겠죠...ㅎㅎ 문제는 중산층이 있느냐 없느냐죠. 즉 상업활동으로 부를 축적한 역관이 생긴 조선후기에는 이른바 중산층이 생기지만, 조선 전기에는 양반아니면 평민 혹은 천민인지라 모아니면 도인 사회였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중산층이 생기거든요... 중산층이 지금이나 예나 중요하답니다.

  • 07.05.03 18:24

    어차피 그들 눈에 비친 나라.... 조선이 평범할 때는 적어도 농사꾼이 잘사는 세상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너무 조선조 말의 모습이 조선의 전체에 비교해서 착잡합니다. 일본이 잘살았다고요..? 상업이 발달해서 일부 거대상인(무사-사무리이와 결탁한)제외하곤 다 빈곤하게 살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 07.05.03 19:02

    조선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나쁜 것이 사실이기는 한데, 사실 500년 동안 국가를 유지한 것만 봐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조선이 통일신라 이후에는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기도 했고(발해는 잘 모르겠음)... 왕조교체기의 내전은 정말 파괴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중국이 원-명-청 왕조로 바뀌는 동안 국내의 질서를 유지했다는 것 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봅니다.

  • 07.05.03 19:03

    게다가 조선시대는 현대처럼 정부가 국가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여건도 되지 않았고 전근대사회는 현대와 비교하면 워낙 기술혁신이 느린 사회여서 사실 사회나 경제의 혁신이 없었던 이유가 정부 때문이라고 따지기도 힘듭니다. 특히 위에서 언급된 육상교통의 경우는 철도 이전에는 세계 어디서나 정말 엉망이어서 운송은 최대한 수운과 해운을 이용한 것이 사실이고. 조선정부야 그저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겠지요.

  • 07.05.03 19:06

    예를 들면 중국의 경우도 사실 빠르게 기술혁신이 일어난 시기는 송대이고 그 이후 명, 청대의 기술혁신은 대단히 느렸고 그저 지속적인 인구증가로 인해 전체의 경제규모만 커졌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근대화에 실패한 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비유럽국가로 근대화에 빠르게 성공한 나라는 일본 뿐이죠. 특별히 조선만 욕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현대의 지식에 기초해서 판단을 하면 언제나 과거는 어리석어보이죠. 하지만 과거에 얻을 수 있었던 제한된 지식에 기초해서 판단한다면 완전히 어리석었던 것도 없다고 봅니다. 어쨌든 착오가 있었지만 500년간 국내의 질서를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닐까요?

  • 07.05.03 22:12

    고구려때는 무가 흥한 시기에 밖으로 팽창할려는 팽창주의 였을거라 보여지고 조선때는 문이 흥한시기에 쇄국과 보수로 유지되어온 시기라 그러지 않을까요? 간단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 작성자 07.05.04 17:06

    로마는 가도를 만들어서 국가가 팽창한 예입니다. 따라서 예외일수 없죠. 더구나 한 국가가 500년간, 내부정권교체없이 유지되었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 사회는 정체된 사회였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물론 너무 자주 바뀌어도 문제지만요. 그리고 빈부격차때문에 상업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궁색한 핑계같습니다. 너무 부작용만 보니까요. 물류의 발달은 관련산업에 파급효과를 주게되어 있습니다. 그게 원리죠. 면포를 수출한다면, 면화재배농민, 면포를 만드는 사람에게 이득이돌아가고, 염색이 추가되면 염색업자, 염료추출업자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식입니다. 경제는 단편으로 보는 것이 아니니까요.

  • 07.05.12 19:39

    제 소견으로는 우리나라는 조선부터 꼬인거같습니다. 고려의 북방정책도 그런대로 쓸만했지만 조선의 사대부정신은 임진왜란에서까지도 명나라에 기댈정도였으니 조선이 국가의 힘을 상실했다고 볼수있죠

  • 07.05.12 19:39

    제 소견으로는 우리나라는 조선부터 꼬인거같습니다. 고려의 북방정책도 그런대로 쓸만했지만 조선의 사대부정신은 임진왜란에서까지도 명나라에 기댈정도였으니 조선이 국가의 힘을 상실했다고 볼수있죠

  • 07.05.12 19:39

    제 소견으로는 우리나라는 조선부터 꼬인거같습니다. 고려의 북방정책도 그런대로 쓸만했지만 조선의 사대부정신은 임진왜란에서까지도 명나라에 기댈정도였으니 조선이 국가의 힘을 상실했다고 볼수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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