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놀라운 성과를 쏟아내는 인공지능의 핵심은 심층신경망이다. 이는 두뇌의 뉴런 시냅스 구조를 모사했다. 그럼 심층신경망의 크기와 속도를 계속 키워나가면 두뇌를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질까? 답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튜링 머신이라는 본질적 한계를 가진 컴퓨터로는 프로그램을 아무리 잘 짜도 두뇌의 다양성(diversity), 병렬성(parallelism), 그리고 유연성(plausibility) 등의 특성을 제대로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두뇌의 구조적 다양성이다. 두뇌에 존재하는 뉴런(신경세포)의 시냅스(신경세포의 연결) 개수는 약 100조에 달한다. 그리고 당신의 두뇌는 100조의 시냅스가 만들 수 있는 조합의 하나를 가지고 있다. 361(19x19)개의 칸을 가진 바둑판에 흑백 돌을 놓는 조합의 수가 우주 전체에 있는 원자의 개수보다 많다. 그런데 100조라면 그 경우의 수 조합이 무한대에 수렴한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조합(combination)의 폭발력이다.
당신을 생각하게 하고 자아를 발현시키는 두뇌 시냅스의 연결 구조는 전 우주 역사를 통틀어 딱 하나만 존재한다.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당신의 두뇌는 유일무이하다. 이런 개별 두뇌의 고유성을 집단 관점에서 보면 다양성이 된다. 흔히 말하는 생각의 다양성이며,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집단 지성의 동력이다.
둘째 동작의 병렬성이다. 위의 구조적인 다양성이 하드웨어에 대한 것이라면, 병렬성은 그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인 소프트웨어에 대한 것이다. 두뇌 동작의 기본 단위는 뉴런(신경세포)이다. 뉴런은 세포의 내·외부에 다르게 분포하는 전해질의 농도 차이를 이용해 활성 전위라는 신호를 만들어 전파한다. 그리고 다른 뉴런으로 활성 전위를 전달하는 지점이 시냅스다. 수많은 뉴런은 다발적으로 활성화되거나 억제된다. 천문학적 수의 스위치가 동시에 점멸하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이런 병렬적 작동에서 인간의 기발한 창의력이 발생한다.
컴퓨터가 튜링 머신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이는 순차적(serial) 처리가 기본 작동 방식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가, 나, 다 세 가지 명령이 있다고 하자. 순차 처리는 말 그대로 가-나-다 순서로, 병렬 처리는 가, 나, 다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병렬처리를 컴퓨터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끌어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라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 이유가 빠른 속도로 병렬 처리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뇌의 병렬처리 수준에 비할 수 없지만, 컴퓨터의 중앙처리 장치(CPU)의 능력은 압도한다. 대신 CPU처럼 유연한 프로그램은 불가능하고 행렬 연산이라는 단순 작업에 특화되어 있다. 거기에 병렬 처리의 어려움은 단순히 명령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각의 처리 결과를 확인하고 종합하는 동기화라는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세세하게 프로그램하지 않고 기본 구조만 만들어 엄청난 데이터로 학습시켜 사용하자는 것이 심층신경망의 기본 개념이다.
하지만 심층신경망을 아무리 비슷하게 구성해도 본질적으로 병렬 처리 방식인 두뇌에 비교되기는 어렵다. 심층신경망의 훈련이 끝나면 동일한 질문에는 동일한 결과만 나온다. 즉 결과적으로는 순차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두뇌는 같은 주제를 생각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론이 나온다. 이는 뉴런들이 매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작동 방식의 병렬성이 시냅스의 구조적 다양성과 결합하면 엄청난 생각의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셋째 구조의 유연성이다. 두뇌의 시냅스 구조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를 유연성이라고 하는데, 어제와 오늘의 두뇌 구조가 다르다는 의미다. 자면서 꿈을 꾸는 이유는 깨어 있는 동안 경험한 기억들이 적절한 시냅스 회로로 다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기 전 공부한 내용이나 그 날의 강렬한 경험들이 장기적인 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재배치된 시냅스 구조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된다. 공부를 잘하려면 잘 자야 한다는 농담 같은 조언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이를 흉내 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간단히 비교하면 두뇌에서는 학습과 추론이 동시 상호 보완적으로 계속 일어나지만, 인공지능에서는 학습과 추론이 분리되어 동작한다. 따라서 심층신경망은 미리 설계된 범위 내에서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두뇌의 특성들이 결합해 만들어 내는 다양성은 개인 차원에서는 생각의 유연성으로, 집단 차원에서는 집단 지성의 진보성으로 발현된다. 우리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지만 두뇌는 예측에 특화된 장기다. 과거 엄혹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이 끝없이 요구되어 왔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생물의 기본 진화 전략이 수십억 년 동안 작동한 결과가 우리 두뇌이다.
반면 인공 지능을 발현시키는 심층신경망은 튜링 머신이라는 근원적 한계를 가진 컴퓨터 위에서 동작하며 획일적이다. 심층신경망을 블랙박스라 표현하는 이유는 훈련을 거치고 나서 답을 도출하는 과정의 정확한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명이 어렵다는 것을 뭔가 신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혼동하면 안 된다.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명확한 수학적 원리에 따라 심층신경망의 연결 구조와 훈련 방법을 설계하고 개발한다.
만약 우리가 이해 못하는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의 고유성이 획득된다면, 동일한 질문에 인공지능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알고리즘과 방법으로 동일한 데이터를 이용해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면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 이것이 컴퓨터가 결정론적 기계라는 의미다. 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원래 컴퓨터는 정확한 계산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1+1의 답으로 가끔 1이나 3도 나온다면 이 컴퓨터를 어디에 쓸 것인가?
하지만 두뇌의 경우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환경, 경험, 공부를 하더라도 시냅스 연결이 다르게 구성된다. 여기에 병렬적 작동으로 상황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시냅스의 재연결이 끝없이 일어난다. 이것이 진정한 복잡계의 창발성이다. 인간 지능의 경이로움은 무한의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자유 의지와 창의력에서 나온다.
물론 인공지능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컴퓨터 발전 초기에 사람 ‘컴퓨터’를 기계가 대체한 것처럼, 인공지능에 특화된 직업 분야는 서서히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기존 교육에서 강조되던 지식의 습득이라는 공부라는 행위와 그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수단에 대한 재평가를 유도할 것이다. 물론 학생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공부가 필요 없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두뇌의 다양성과 창의력을 위해서는 바탕이 되는 시냅스 연결구조 즉, 기본 지식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뇌가 잘하는 것과 인공지능이 잘하는 것은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따라서 두뇌와 인공지능은 상호 보완적이다. 인공지능은 과거의 지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주는 측면에서 유용한 도구이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서 행동의 결과에 대한 예측, 즉 가치 판단에 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두뇌의 영역이다 (주철현 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