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3:40
새벽을 깨우며 81회 분량의 대하드라마 ‘주몽’의 마지막 회를 보았습니다.
이별은 비겁한 사람의 자기 변명인줄 알았고 만 이런 멋진 이별도 있었습니다.
연타 발 군장의 여식 소서노(한혜진)와 주몽의 만남은 다물 활을 찾아나선
주몽이 부여 왕자들에게 쫓기다가 늪에 빠졌고 소서노에 의해 구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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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걸에게 관심이 생긴 부여 왕자 대소와 삼각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썸이 시작 되었습니다. 고대에는 싸움 하나만 잘하면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던 시대입니다. 저도 고대에 태어날 걸 그랬습니다. 별로 끝 발 없는
왕자와 재벌 2세여인의 썸 싱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어느 날 혼인을 약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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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전쟁에 나갔다가 행불되면서 이들의 사랑에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소서노는 대소의 집요한 애정 공세에 상단의 오라버니인 우태에게 혼인을
하는 것으로 일단 검은 손을 피해갑니다. 한편 주몽은 한나라 군사의 활을
맞고 해모수처럼 강가에 표류되었는데 예천 족장(한인수)에게 발견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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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딸 예소야의 신세를 집니다. 궁으로 돌아온 주몽이 소서노의 소식을
듣고 아마도 분통을 터트렸을 것인데 작가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부여 궁에 갇혀 있는 어머니 유화에게 맡겨진 예소야는 룻과 나오미처럼
시어머니와 궁합이 찰떡궁합입니다. 소서노가 가슴 속에 있었지만 착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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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예소야와 혼인을 하고 초야를 치렀는데
아이가 생겼습니다. 과거에는 혼인이라고 해봐야 평생 서방 얼굴 한번 못 보고
죽는 케이스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한 방에 남자 아이 유리를
임신합니다. 후로 한두 번 목숨 걸고 궁에 갔다가 얼굴 보고 오는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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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꽃을 피웠습니다. 골든타임은 흘러 흘러갔습니다. 주몽이 부여에서
독립해 다물 군과 함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한 포석을 치는데 만나는 사람이
옛 연인 소서노 군장입니다. 이 여자는 주몽이 잘나가나 못나가나 한결같습니다.
요새만 그런 게 아니라 과거에도 여자가 예쁘고 돈도 많으면 누가 말린 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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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운명의 신이 어머니 유화를 아들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혹은 아직 고난의 때가 차지 않았던지. 도망쳐 나오던 유화가 금 와 왕
에게 잡혀 칼에 쓰러집니다. 사랑하는 아내 유화의 주검을 붙들고 오열하는 금 와
왕을 보면서 더럽고 치사한 것이 사랑이라고 껍데기라도 갖고 싶은 남자의 집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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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쪽팔린 눈물이 나왔습니다. 어머니 유화가 죽고 얼굴한번 못 본 아들 유리
마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몽의 좌절은 이제 어쩐답니까? 신은 살아있습니다.
주몽이 불쌍해서 신이 소서노의 남편 우태를 데려갑니다.
이제 현재 스 커 둘 다 돌 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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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뇌섹 남 주몽이 소서노의 후원을 받으며 꿈에도 그리던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누가 왕이 될 것인가’를 놓고 비류 측근들과 다물 군의
대립 속에서 대안으로 소서노와 주몽의 세기의 결혼식이 거행됩니다.
비루한 신세의 예소야가 자기 남자의 결혼식을 바라보면서 눈물짓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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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롭습니다.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서방 각시로 받들겠답니다.”
고려의 왕 건의 혼인정책은 아마도 주몽을 벤치마킹했을 것입니다. 아들 둘
데리고 온 소서노와, 공식 돌 싱인 주몽이 혼인을 해서 나라를 잘 이끌고 나갈
무렵 숨겨진 아들 유리가 등장합니다. 유리 이놈 저자거리 시장잡배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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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티 나게 생겼습니다.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형국이 되면서 소서노의
시름이 깊어만 갑니다. 어느 불금 소서노가 주몽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겠답니다.
첫사랑이었다가 어긋난 사랑 그리고 재결합한 사랑이 원도 없이 행복했답니다.
사랑이 진행형이지만 떠나는 이유가 이제는 비류와 온조의 어미로 살고 싶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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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몽이라면 어떻게 이런 여인을 잊습니까? 나는 오늘 서소노에게 사랑에
대해 한 수 배웠습니다. 사랑은 상대가 편하도록 길을 비켜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소유를 향해 가지만 결코 소유가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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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의 사랑은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미워할 수 있는 자유를 한꺼번에
주는 일입니다.
참말로의 사랑은 역시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머물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따지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바라만 보다가 반쯤만 눈을 뜨고 바라만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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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제가 연애할 때는 상대가 마음에 들면 어떤 식으로든 "'넌 내 꺼야.
'라고 못 박듯이 말했던 것 같습니다. 짧은 영어로 'You are mine.'를 외워
다니며 써먹었는데 '너는 나의 것'이라고 소유대명사를 써서 말하는 것은
마치 상대방을 무슨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이며, 반면에 '너는 내게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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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You belong to me)'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점잖은 표현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용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일반적으로 두 문장은 모두 다 사람
끼리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지극히 당당하게 선포하실 수 있는 분이 딱 한 분 계시는데 바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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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리켜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난 하나님의 소유이니까요. 민수기의 첫 두 장을 통하여
이제 막 가나안으로 본격적인 행군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계수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3장에 와서는 조금 특수한 계수를 모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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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레위 인으로 일 개 월 이상 된 남자"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남자로 일 개월 이상 된 자"를 계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따로 계수하는 이유를 가리켜 그들이 다 "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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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남자'들을
계수했던 앞의 인구조사와는 달리, 3장에서 계수함을 입은 자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섬기는 직분에만 완전히 헌신하도록 구별된 레위 인들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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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를 계수하도록
명하셨는데. 비단 레위인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 중에서도 '처음 난 자' 즉
장자들은 다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내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출애굽 당시 애급의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들을 죽이시던 그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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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규례입니다(13). 그러니까 원래의 원칙을 따지자
면 각 가족의 장자들도 다 성막에 나아와서 평생을 풀타임으로 봉사해야만
마땅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에 장자 한 사람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봉사의 임무를 '레위인 한 사람'으로 "대속"하게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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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져 볼 때 한 가지 차질이 있었습니다. 장자 한 사람 당 레위인
한 사람씩 되어야 앞에 나왔던 '대속'의 계산이 맞아 떨어질 것인데, 문제는
이스라엘의 전체 장자의 수가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었던 것에 반하여
레위인의 전체 숫자는 "이만 이천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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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과 짐승의 첫 새끼의 봉헌(40-43)
장자의 총계(42-45)
속전의 지불을 통한 장자의 대속(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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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백칠십삼 인"이라는 숫자의 차이가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 인을 취하는"
원칙을 따른다면 이 '이백칠십삼 인'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의무를 대속할
길이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남는 숫자의 매명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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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겔" 씩을 취하게 함으로써 그 모자라는 분량만큼을 "속하게" 하셨습니다.
한 세겔은 당시 노예의 몸값이며 6개월 봉급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져야 할 장자가 2만 2천2백7십3명이니 레위
인도 똑같은 숫자가 되어야 계산이 맞을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2백7십3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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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 이 모자라니, 그 대신에 '5세겔 곱하기 273명'에 해당되는 "일천삼백육
십오 세겔"의 "속전"을 그 장자들로부터 거두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속전은 아론과 그 아들들 즉 제사장들에게 주어짐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성소를 위한 일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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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풀타임으로 성막을 위해 헌신할 수 없을 때 그 대신에 물질을 바침으로
써 역시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종교개혁의 모토 중 하나는 “만인제사장주의” 입니다. 우리 모두 레위 인
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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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사망의 노에로 나를 위해서 살았던 인생은 죽었고, 새 생명으로 두 번째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 생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고, 내 모든
소유권을 그분께 양도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며 여정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주셨지만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의 피 값이라는 비싼 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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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 전적으로 존귀한 백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 나는 내 시간 ,재물 등 모든 것을 주께 드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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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urs.'. 이스라엘을 대신해 레위인과 속전을 받으신 하나님,
주께서 대속하신 내 모든 것을 당신 뜻대로 사용하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훈련을 하게 도우소서.
2017.3.5.sun.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