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어떻게 등단을 하였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등단 이후의 시가 참으로 진솔하고 가슴을 울리는 시라면 그것으로
그 시인은 살아있는 것이고, 시인이라 이름하여도 좋을 것이다.
2007년 『시평』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하다
2011년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실천문학사, 2011) 시집을 상재한
임윤 시인을 우리는 만난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성장하였고
그 성장을 바탕으로 울산대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대 연어사업으로 러시아 사할린과 쿠릴열도, 중국 등지를 주유하였다.
그간의 활동을 오래 숙성시켜 곰삭은 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2013년 7월 4일 오후 7시
대구 수성구 수성랜드 내 마사커피(구 비행기 레스토랑)에서
비행기 타고 기내식과 커피를 들며 시 낭송 여행을 떠나려 한다.
염천의 여름을 시원하게 안정시켜 줄 시 낭송회에 회원님을 초대합니다.
좋으신 분, 사랑하시는 분, 같이하고 싶은 분과 함께 오십시오.
비행기 안에서의 낭만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일시 : 2013년 7월 4일 오후 7시
-장소 : 대구 수성구 수성랜드 내 마사커피(구 비행기 레스토랑)
-회비 : 없음. 음식은 직접 구매하셔야 합니다.
-제공 : 『詩하늘』여름호, 시 낭송용 작은 시집
-음악(기타) : 김준영 님
*연락처 : 보리향 010-2422-6796/김양미 010-2824-8346/가우 010-3818-9604
마사커피 053-761-5657
검은 눈동자
-임윤
레닌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눈이 총총한 삿포로나이트클럽
보드카 홀짝거리는 흑요석이
깜빡깜빡 속눈썹으로 획을 긋는다
이반 레브로프 음악에 맞춰 춤추는
형형색색 회전 조명등
바람둥이 러시안 남편을 떠나
포로나이스크에서 기차를 타고 온
아버지 어머니 발음만 기억하는
올가 라는 이름의 카레이스키 여인
유랑의 피가 흐르는 도시에서
그녀는 새까만 집시여인이 된다
병원에 있는 아버지가 쿨럭이고
돌 지난 아이 울음이 귓바퀴에 걸린다
마지막 유목민이 되기 위해
흐느적흐느적 깊어가는 밤
눈동자에 갇힌 어두운 기억 지우려
빙글빙글 춤추는 흑요석 여인
오치 쵸르니예*
* 검은 눈동자
사할린에는 연어가 산다
-임윤
유전에 파일을 박겠다던 사람들이 파문을 긋는 아침
오호츠크 바다 지나 동해로 오는 연어 지느러미 따라
통조림 깡통에 담을 야심찬 기대로
북양에서 쿠릴열도 돌아오는 항해를 떠난 적 있다
사할린 남쪽 KAL 007기가 사라진 곳
홈스크 밤바다에 붉은 불꽃 쏟아 내린 한참 뒤
난생의 꿈을 꾸며 당도한 사할린 땅
강바닥에 그물을 깔고 연어떼가 올라오면
재빨리 끌어 올리는 타워크레인
파닥파닥 튀는 무지갯빛 물방울들
반짝이는 비늘 허공에 뿌리며 파르르 몸부림친다
연이어 들어선 덤프트럭
통조림 공장에 실한 연어를 부려놓자
배가 갈리고 대가리 지느러미도 잘려나간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
여인들이 비닐봉지에 대가리를 담는 저녁 무렵
덜컹, 굳게 닫히는 육중한 철문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모여든 고양이가
어둠 속에서도 어둠의 잔해를 두고 만찬을 연다
지하 술집엔 독하디 독한 보드카를 홀짝거리는
슬라브 여인과 까레이스키 여인
연어 이야길 늘어놓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야릇한 미소만 흘린다
유전에 파일을 박겠다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 채 오늘도 갈팡질팡하고
레닌동상 세워진 공원의 까마귀떼
가아- 가아- 가아- 가아-
목쉰 울음으로 고개 내저을 때
퀭하니 타들어간 연어의 눈을 노려보던, 그들은
홈스크 지하에 묻힌 유전의 녹슨 파일을 보았다
풀밭을 기는 킹끄라뷔
-임윤
킹끄라뷔를 마당에 풀어놓았네
빛이 들지 않는 오호츠크 심해
지독한 수압을 견디며 살아온 그가
지상에 닿아 헐거워진 걸음 절룩거리네
부풀어 오를 듯 가벼운
툭, 긴장이 끊어진 기압
엉금엉금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거북이네
해저에서 짓누르던 생의 무게였다면
날렵한 몸놀림으로 어디든 돌아다닐까
그가 되돌아 갈 곳은
관절에 조여드는 수압이 짓누르는 곳
무미건조한 가을빛은 슬프네
펄펄 끓는 솥단지에
팍팍하게 늘어진 주먹만 한 집게발
발갛게 익어가는 몸 위로
자작나무에서 떨어져 쌓이는 바람
딱딱하게 돋은 가시에 찔려
까마귀 울음 한 올 팔랑거리는 사할린의 늦가을
다리에 달라붙은 이파리가
지상에 남길 마지막 무게인가
까마귀 울음에도 날려갈 것만 같은
생의 껍데기는 너무나 가볍다
김씨*가 함흥으로 돌아가던 날
-임윤
까마귀 울음 찰랑거리고 진눈깨비 내리는 날
자작나무숲은 뽀얀 유리창 너머로 사라지죠
사라진 시야를 헤집는 손가락 그림에서도
숲의 향기는 피어날까요
정말이지 연어 따윈 잊어버리고 싶어
발길 닿는 대로 강둑만 걷자 했는데
모래톱에 일렁대는 녀석들이
샛강의 기억 저장구역을 헤엄치고 있어요
오래전 함흥으로 떠나던 그날에도
오늘처럼 진눈개비 내렸나보군요
저기, 저기 좀 보세요
까마귀가 쪼아대는 은비늘 촘촘히 붙여
성근 지느러미 힘차게 돋아나면
까레이스키 항로를 더듬어봐야죠
김 서린 유리창이 기억에서 흐려져도
출항을 앞둔 비늘만은 뜯어내지 마세요
당신은 해안선 따라 성천강으로
난 먼 바다 회 돌아 태화강에 닿아야 해요
누구에게도 항로를 들키지 말아요
우리들 눈물로 새끼를 부화시킨다는
까마귀들이 자작나무 버짐 속에 숨어있답니다
초점 흐린 능선에 쌓이는 초가을 눈발
오래전 그 머릿비듬처럼 흩날리는
한 장의 기억
“오마니”
* 1950년대 유학이나 모국방문 목적으로 북한으로 간 사할린 한인들은 되돌아오지 못했다 김씨도 이산가족을 찾아 50여년 만에 사할린에 왔다
이도백하에 내리는 눈
-임윤
기차바퀴는 눈보라 가르며 절룩댔다
먹먹한 가슴 덜컹대며
압록강 혈류 따라
구불구불 닿은 이도백하
어스름에 몇 남은 봉창의 등불에 이끌려
조선족 식당이란 미닫이를 민다
집나간 한족 며느리대신
어눌한 모국어 발음의 손녀딸이 음식을 나른다
된장찌개가 반갑고
짜디짠 김치가 달다
노파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지만
젖먹이 때 만주로 이주해온 뒤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단다
서울 어디선가 막노동 한다는
아들 소식은 묘연하단다
키보다 한 뼘쯤 짧은 뒷방에 누우니
맨발이 문턱에 걸린다
새우등으로 웅크린 이도백하의 겨울밤
소나무에 소복한 컹컹 개 짖는 소리
우지직 부러지는 가지에 관절이 시리다
눈발에 묻어 온 차가운 얼굴들이
밤새도록 봉창으로 날아들었다
두만강 푸른 침묵에
-임윤
두만강 푸른물은 어디로 갔나 정강이 잡아끄는 황톳물 건너 가물거리는 민가 몇 채
노 젓던 뱃사공은 어디로 갔나 저녁노을 철썩대는 갈대숲의 저녁연기
국경 넘어온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오지로 팔려간 여인은 여섯 달 만에 더 먼 북쪽으로 팔려갔다네
강을 건너온 군홧발자국들은 무슨 짓을 했나 물고기 꿰듯 쇠꼬챙이에 줄줄이 엮인 사람들, 내님을 싣고 떠난 배처럼 되돌아간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네
북쪽으로 팔려갔던 여인은 떼놈 아이를 가졌다고, 군홧발에 채여 만삭인 배 움켜 쓰러지고 말았네
민둥산 넘은 아이들이 강을 건너오네 잔뜩 겁먹은 눈망울 두리번거리네 젖은 바짓가랑이 움켜쥐고 무작정 대륙으로 뛰어가네 연보랏빛 제비꽃은 지천으로 피었는데
두만강 푸른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내님을 싣고 떠난 배는 언제나 올까 떠다니는 뗏목들만 경계가 지워진 국경을 넘나드는데
그리운 내님이여
출렁이는 내님이여
황사
-임윤
한국에 온지 이십여 년
창경원 벚꽃이 펑펑 터지는 날
봉천동에서 회갑 맞이한 박 씨
막노동으로 굵어진 손마디가 옹골지다
수년 째 식당에 다니는 아내와
칭따오에서 동생 내외 까지 합석한 아침
환갑은 무슨 환갑이냐며 손사래 친다
이른 아침 흑룡강성에서 걸려온 여동생 전화
전화세 나온다며 급히 끊어버려
못내 가슴이 아리다
음지 곳곳에 얼음이 녹아내릴 고향집
이미 수해 전에 죽었을
복술이의 새까만 코가 보고싶다
막소주 받아든 손가락에서
터질듯 물오른 수양버들 피어나고
아직 찬바람에 후들거릴
겹겹이 감싼 봉창을 그려본다
황사에 묻어온 만주 냄새
겨우내 버석거리던 볏짚 소리
봉천동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바깥
활짝 튕겨온 꽃잎이 바람에 날려도
서울은 아직 눈이 시리다
흙먼지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피리 속으로 사라지다
-임윤
이란 소금동굴에서 발견된 천오백년 전 사내, 일그러진 해골 일곱 구멍엔 꼬물거리는 바람이 틀어앉았다네 단숨에 빠져나온 공기가 음계의 시작이었다지 퇴적층이 그어놓은 오선지 위론 암염의 음표들이 반짝거렸다더군 비음 흥얼거리던 구멍마다 잃어버린 시간들로 넘쳐났겠지 사막으로 내통한 이음매가 풀리자 비단길에도 피리소리 흩날렸다 하네 별들은 굽이치던 선율 따라 사구 너머로 곤두박질쳤다나? 그 소리에 놀란 쌍봉낙타 숨구멍이 뻥 뚫렸다더군 신기루를 그려낸 바람의 손가락, 곡선에 걸린 피리소리는 그의 비명이었다 하네
빈 집
-임윤
싸리나무 거슬러 오른 자국마다 숭숭 뚫린 빈집 여러 채, 온몸 부대끼다 벗어난 자리엔 싸리꽃이 환하다 옹송그려 움켜 쥔 마디가 능선 쪽으로 조금씩 허물어진다 날아갈 듯 파르르 떤다 사립문 건너 웃자란 억새들이 삽짝까지 빼곡히 서 있다 기울어진 문짝에 너덜대는 창호지는 색 바랜 시간의 기록인가 바람이 드나드는 벽채에 사선으로 기댄 빛살무늬들, 고원에서 부르는 매미 소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투명껍질 속 그의 모습이 되어본다 팔 다리 감싼 내 등은 갈라지지 않는다 날개도 없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해 툴툴 털고 일어서는 까칠한 목소리, 단맛에 길들여진 벌레처럼 단내 풀풀 나는 산 아래 내려서는 순간, 움켜쥐었던 가지를 떠나 점으로 사라지는 가벼운 울음 한 채
파랑 전복
-임윤
파도치지 않는 바다를 본 적 있는가
부유물에 헐떡이는 치어들
빈 껍질 속 집게가 진저리 치는 걸
때론 바다도
거칠게 휘몰아쳐 바닥까지 뒤집어 놓아야
구석구석 밀려드는 공깃방울에
작은 놈들 숨통이 트인다
적요한 양식장에 혓바닥 힘으로 웅크린 전복
오로지 살기 위해 뻐끔거려야 하는
거품 물면서도 가두리 넘지 못하는 나날
파랑, 파랑, 시퍼런 파랑을 넘어
달랑 빈 껍질 하나 남길 우리들
오체투지 끌며가는 라마승처럼 적조가 쓸고 간 세상 속에서
느릿느릿 바닥을 세워본다
물결 일지 않는 생은 없어
되돌아오는 버스에도 파도는 친다
흔들리지 않으리라, 비틀대지 않으리라
악을 쓰며 당도한 도심
힘주어 바닥 딛는 순간
울컥
속은 뒤집히고 말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파도는 밀려오지 않았다
첫댓글 시 낭송을 원하시는 회원님은 미리 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도백하에 내리는 눈'을 낭독하겠습니다.
'두만강 푸른 침묵에' 찜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노저어 보겠습니다.
접수했습니다. 시나게 저어봅시다.
'사할린에는 연어가 산다'
찜합니다^^
좋습니다. 접수했어요.
저는 파랑전복을 찜합니다
환영합니다. 접수했어요.
낭송하실 분
1. 검은 눈동자
2. 사할린에는 연어가 산다 - 후광 배경자님
3. 풀밭을 기는 킹끄라뷔 - 오순찬님
4. 김씨*가 함흥으로 돌아가던 날 - 지대방 유순예님
5. 이도백하에 내리는 눈 - 가우 박창기님
6. 두만강 푸른 침묵에 - 하모하모 하정철님
7. 황사 -길손 남효만님
8. 피리 속으로 사라지다 - 황태교님
9. 빈집 - 박순희님
10. 파랑 전복 - 뚜버기 박종천님
낭송하실 지원자가 많으면 저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황사를 한번 낭송해 볼까 합니다.
좋습니다. 환영합니다.
"풀밭을 기는 킹끄라뷔" - 오순찬 "피리 속으로 사라지다" -황태교 "빈집"-박순희 시하늘 회원이십니다.
제가 대신 신청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접수했습니다.
낭송을 미리 찜해 주시니 참 마음이 편합니다. ^^ㅎㅎ
김씨*가 함흥으로 돌아가던 날 ... 혀 짧은 제가...ㅎㅎㅎ 낭송하겠습니다. ^^
드디어 순예가 오신다네요. 환영합니다.
그러네요. 드디어 순예님이 오신다네요.ㅎㅎ
그래서 저도 참석요ㅎ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내일 임윤 시인을 만납시다.
비행기는 7시에 떠납니다.
하나 남은 검은 눈동자는
제가 해보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전원 탑승 완료. 비행기는 7시에 떠나도 되겠습니다.
가우회장님께서 보내주신 문자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갑니다.
연타석 홈런에 감사합니다.
잘 살피며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