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두라.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시더라.
마태복음 15장 14절
위 말씀을 읽으며 사람들은 인도하는 소경을 따르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깨어있는 사람에게서 인도함을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말씀의 뜻을 잘못해석한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해석은 교회 목회자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비롯된 착각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모두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의 뜻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따라가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을 따라간 사람이 모두 구덩이에 빠져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 말씀에서 소경말고 우리가 따라야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해서 몇초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소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따라야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사장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인도하시던 시대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마태복음 27장 51절
지성소는 순번이 된 제사장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의 문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찢어졌습니다. 이는 지성소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됨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지성소는 우리가 기도하는 곳이 지성소가 됩니다. 당신이 기도할때 당신은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목회자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하는 교회의 문화는 예수님의 대속을 생략하고 구약의 연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합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측은 확률적으로는 유리하겠지만 안전하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보더라도 불완전하게 보거나 때로 볼수 없는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 소경인 것입니다.
훌륭한 목회자라고 해도 사람의 인도함에 의지하는 것은 마치 권총에 한 발의 총알을 넣고 돌려 머리에 대고 발사하는 러시안 룰렛을 반복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한 배팅은 반복되다가 결국은 총알이 발사되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반대로 미래를 보시는 분이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총에 총알을 하나도 넣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확률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고 위험해보여도 확실하게 안전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1초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의 합리를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 현명한 것입니다.
이번 홍수로 지하차도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합리로 피할 수고 없는 일이 있고, 또한 사람의 합리로 그것을 비극으로 평가해서도 안됩니다.
당신이 기도하는 곳이 제사장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던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이고, 그 분과 동행하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