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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불교 현지사의 불교사적 위상
(2023.12.10. 불교대학 졸업식 자재 만현 큰스님 특별 법문 - 제주 제2본산)
영산불교대학 14기 졸업생, 현지사 제주 제2본산 단청불사에 동참하신 불자
그리고 자재 만현스님의 특별 법회에 와 주신 제주를 비롯
전국 현지사 신도분들 모두에게 격려와 찬사를 드립니다.
삼계의 중생들이 각자 지은 바 업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태어남으로 인해서 겪게 되는, 온갖 형태의 고통, 죽음의 고통까지를,
이 생사의 고통, 생사 문제를 해결한 위대한 어른은, 인류 역사상 오직 한 분,
우리 부처님이십니다. 이 때문에 불교, 정법 불교를 만난다는 것은,
잘하면 금생에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너무도 소중한 황금 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산불교 현지사는 부처님의 정통, 정법 교단임을
우선 모두에서 이를 선언하고 오늘의 법설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자 해서,
불법, 정법을 알고 싶어 많은 시간을 훌륭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고
공부한 바를 깊이 사유했고,
법과 계율, 질서에 타당하게 살려고 1년, 10년···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제는 자랑스런 부처님 제자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반열에 들었다고 평가해서,
나는 여러분을 진정으로 찬탄하는 바입니다.
특히 제2본산 단청불사에 동참하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단청불사는 불보살님을 모셔놓은 법당을 장엄하는 것으로
불보살님처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과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성불의 원인이 되어 언젠가 여러분들도 부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불보살님을 모신 법당을 단청 등으로 장식하여
공덕 짓는 과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불보살님처럼 아름다운 몸과 마음을 얻고
둘째, 부처님의 공덕으로 삼재팔난이 소멸하고 재수 대통하며
셋째, 고위관직에 오르며 사업이 번창하고
넷째, 악인이 단절되고 귀인을 만나며
다섯째, 육근이 청정해지고 병고가 소멸되며
여섯째, 지혜를 갖추어 총명해지고 성불의 인연이 맺어집니다.
단청불사에 동참하신 분들께 이런 큰 공덕을 지었음을
알려드리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다시 이 자리를 빌어 우리 현지사 신도분들,
‘의심하고 따라만 와도 하늘 간다’ 하신 부처님 말씀을 다시 확인하면서,
여러분 모두는, 물론 금생도 보다 잘 살고, 다음생에는 높은 하늘에 나고,
성중하늘에 나고, 아니― 육도윤회생사를 벗어나고,
나아가 상낙아정의 정토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믿습니다.
인생에 대한 <잡비유경>의 부처님 비유 말씀을 소개합니다.
‘어느 곳에서 한 사형수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닥쳐올 형장의 단두대를 생각하니, 죽는다는 것이 너무도 무서워서
탈옥을 결심, 다행히도 도망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당시의 국법은 탈옥한 사형수는, 미친 코끼리로 하여금 뒤를 쫓게 해서
탈옥수를 밟아 죽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미친 코끼리는 무서운 힘으로 그를 뒤쫓아 옵니다.
지금 드넓은 광야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미친 듯이 갈지자로 도망치는 탈옥수 앞에, 하늘도 도왔는지(?)
깊게 깊게 패인 물 마른 웅덩이가 있었고, 마침 우물 밑으로 뻗어내려간
굵직한 칡넝쿨이 보였습니다. 칡넝쿨을 움켜잡고 한두 길쯤 내려가다가
문득 웅덩이 바닥에 입을 딱 벌리고, 한 입에 삼켜버릴 듯, 나그네를 노려보고 있는
한 마리의 커다란 독룡 독구렁이를 발견합니다.
이제는 죽었다고 진땀을 흘리며 떨고 있는데, 그런데 설상가상 그가 움켜잡고 있는
칡넝쿨 밑둥을, 두 마리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면서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는 일단 미친 코끼리는 피한 셈이지만,
이 쥐들이 칡넝쿨 줄기를 다 갉아먹으면 결국 자기는 웅덩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독룡의 밥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 때,
칡넝쿨 가지에서 감로와 같은 꿀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사형수의 입속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 달다, 달아! 아- 인생 살만하구나.’
정법을 만나신 복 많은 오늘의 현지사 신도 여러분!
이 짤막한 이야기 가운데, 사형수는 중생을 비유하고, 감옥은 삼계를,
미친 코끼리는 무상한 세월·무상살귀로, 칭넝쿨은 우리 인생의 생명줄로,
독룡은 지옥·죽음을, 흰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한 방울씩 떨어지는 꿀은
세상의 오욕락을 비유합니다. 사형수인 중생, 우리 인생은 한 방울의 꿀과 같은
세상의 오욕락에 집착하여 무상의 고통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잡비유경>의 부처님 비유 말씀은, 삼계(욕계·색계·무색계), 곧 현상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은, 물론 욕계의 인간 세상에 생을 받아난 사람들은, 돈과 재물을 탐하고,
명예와 출세, 이성과의 사랑에 대한 무서운 집착을 떼지 못하고,
온갖 죄업만 태산같이 지어 놓고 결국엔 죽고야 만다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모습을,
비유 이야기로 잘 들어내 보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의 운명적 삶을, 이렇듯 짧은 이야기로 적절히 표현해 주신,
부처님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사필멸(生死必滅)이라, 무릇 태어난 것은 모두가 예외 없이
죽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 따라서 우리 인간 역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게 돼 있습니다.
생종하처래 · 사향하처거 냐?
인생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냐?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지?―
사람이 죽어, 목숨이 끊어져 버리면, 움직일 수 없고 감각이 없고 생각을 못 하는 송장,
곁에 놔두고 싶지 않은 하나의 나무토막이 돼버립니다.
그럼 죽어버리면 끝일까요?
과연 이 세상뿐일까요? 과연 정신은 인간 두뇌의 산물일 뿐이라는,
유물론의 주장이 진리일까요?
영혼이란 없다는, 지금까지의 불교 주장은 옳은 것입니까, 과연?
만자(滿字) 불교 교단을 만난 여러 현지사 신도 여러분!
큰스님의 특별 법회에, 귀한 법문을 듣기 위해서 저 멀리 육지에서
비행기로 오신 복 많은 우리 신도분들, 현지사 일본분원 신도분들,
오늘의 나의 법문 내용을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이 업을 지어 죽으면, 죄업을 짓고 죽은 이는,
명부에서 온 저승사자가 그를 붙들어 간답니다. 잘 들으세요!
다만 자살을 했거나, 사건 사고로 횡사한 사람들은, 아직 명줄이 남아있기 때문에
명부(저승)에서 사자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중음귀가 되어 중음계(중간계), 4차원 세계에서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고,
춥고 배고프고, 무섭고 외롭고 그리고 사고로 죽을 당시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 사는,
진짜 생지옥에서 지낸답니다.
물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분은 천상천하에 오직 한 분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다음 자기 명이 다해서 죽은 사람의 경우입니다. 궁금하시지요?
명부란 어떤 곳이며, 저승사자는 또 무엇인가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 소위 저세상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럼 천상,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다는 말입니까?
저승사자에 끌려간 사람이, 진짜 ‘나’란 말입니까? 영혼이 있다는 말이네요.
짐승(축생)으로도, 다시 사람(인간)으로도 태어나 올 수도, 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정법과 인연 있는 여기 현지사 신도 여러분!
위에서 말한 ‘인생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등
생(生)의 본질적·궁극적 문제들은, 부처님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인류 역사 이후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모든 인류의 지성인들이 몹시도 알고 싶어 하는
명제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위에서 거론한 일연의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명제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법문으로 대신합니다.
여러분!
차제에 나는 그 오랫동안, 종교의 종교라 자부하는 기존의 불교에서조차
풀지 못하고 있는 두어 가지 ‘종교철학적 과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의 과제는 ‘부처님이란 대성자의 위상과 실체’에 대한 것입니다.
곧 불신관, 소위 삼신설에 관한 이론정립 문제입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부처이기에, 마음만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주장하고,
이렇게 가르쳐 온 것이 그동안의 불교의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경전을 의지하는 교가(敎家) 쪽에서는 이를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는 대안을 내세울 확고한 신념이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 못 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실정이었습니다.
그간의 불교사에 크게 이름을 올린 대학승 대논사들조차도,
‘부처님은 계신다’는 가르침을 내놓은 이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무아속 절대계에 무량광 빛의 인격적 불신 곧 보신부처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이상의 소식 즉 무엇이 부처님 몸을 이루고 있는지?
부처님의 무량한 지혜와 복덕 그리고 무한한 위신력이 가히 만능 자재하다라고 말하는
이유, 또한 법신·보신·화신 삼신, 불신을 구족해야 붓다인 것인데,
삼신이 이루어지는 과정- 등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불신관의 이론 정립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라는 깊은 삼매에 들어야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불신관을 내놓을 수 있는 법인데,
경전 상의 삼신 경문 가지고는 이론 정립이 불충분한 것입니다.
바른 선정·삼매란 정견(正見)을 바탕으로 지계 청정하여, 정념(正念)이 되어야
들 수 있는 법, 부처 없고 지옥·극락 없는 것이며 오직 있는 것은 마음뿐!이라고 하는
수행인에게는, 바른 선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불교 집안에선 깊은 삼매 즉 해인삼매, 대적정삼매에 든
공부인은 없었던 것이라고, 나 자재만현은 감히 단언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탐진치의 삼독심을 떼어버리고, 곧 탐착을 떼어 모든 얽힘(纏)과 속박(縛),
물듦(染)을 여의어야, 육도윤회생사에서 벗어나는 아라한 성자가 되고,
이후 육바라밀행을 하며 부처님을 찾아 칭명염불 정진하여 부처님 가피 받아
정토에 왕생하는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백천생을 보현행으로 지혜와 복덕을 쌓으면 부처님으로부터
불명 수기를 받고 드디어 다음다음 어느 생(生), 부처님 만나 무량광 빛으로
이루어진 붓다의 신비스러운 몸, 법신과 보신, 화신을 무아속 절대계에
얻어 붓다가 된답니다.
이상과 같이 부처님 가신지 2500여년이 흐른, 후오백세 이 시대까지도,
불교의 최고차원의 중요한 핵심 교설, 불신관의 이론 정립은 아직도
그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두 번째의 과제는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무아! 이는 불교 사상의 핵심이 됩니다. 이미 무아행할 정도로 성숙한 선지식이라면
붓다인가 받을 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무아의 해석을 잘못해 왔습니다.
삼계의 중생들은 탐진 번뇌가 다하지 않아, 업을 짓고 업이 남아있어
생사에 윤회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치욕적인 불교사에 하나의 큰 사건을 인용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이 무아의 올바른 의미를 잘 몰라서, 우리 인도 불교는 힌두교에 의해
패망했던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하시지요?
당시의 절대다수의 불교 측 논사들은, 앞에서도 지적했듯
부처님 곧 보신부처님 계심과 그 위신력, 청정법신 부처님의 하시는 일 등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역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주인공, 곧 본체가 영혼체라는 사실도 역시 몰랐습니다.
따라서 경전 상의 일체법 무아를, 그 무아의 참뜻을
크게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현상세계의 일체 모든 법(法)은 인연생멸, 인연따라 생기고, 인연따라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란 있을 수 없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현상세계를 넘어선 본체계(상락아정의 적멸계 포함)까지
그 어디에도 실체를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무아를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도, 보살도 따로 계시지 않고 마음이 부처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무아설의 왜곡, 왜곡된 무아설 때문에, 윤회하는 생사의 주체를 가지고,
불교와 힌두교 간에 치열한 법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힌두교의 이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곧 제1원인이라 보는 범(梵)과
개체화된 아트만(Atman)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교 간의 논전이었습니다.
아트만(Atman)이라는 실체가 (梵의 一部分) 있어서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는
힌두교 측 주장에 대해, 불교 측 논사들은 불교의 왜곡된 무아설을 근거로,
실체가 아닌 심식류(식) 따위가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맞서다가
불합리한 논리의 전개로 당연히 힌두교 측으로부터 제압을 당해,
불교의 진리성이 의심받게 되고, 결국 역사적인 불교의 굴욕적인 패망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은 사자후하건대, 심식류나, 유식 대승불교의 아뢰아식으로는,
결코 그것으로는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하고,
힌두교의 아트만(Atman) 역시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도,
힘주어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식(識)은 찰나생·찰나멸인 것인데
어찌 이것이 지옥을 가는(실체) 주체가 된다는 말이며, 극락을 가고,
또한 육도에 윤회전생하는 주체가 된다는 말입니까?
따라서 본체계의 존재인 그 사람의 근본 실체인 영체가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이며,
힌두교의 아트만 역시 그 사람 영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아와 윤회주체 간의 모순 운운하는 것은 사람의 진짜 주인공,
영체를 몰라서 하는 말이지 모순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두에서 내가 말한, 저승사자에 의해서 묶여가는 바로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기체가 윤회의 주체가 됩니다.
우리의 진짜 주인공 영혼체(영체)가, 짐승으로 지옥·아귀·축생으로
혹은 하늘로 다시 그곳의 명이 다하면 인간으로, 다른 갈레의 세계로
계속 거듭, 영원히 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아니 번뇌가 다하는 그 날까지 영원히 생사를 반복해서,
몸을 받아 가는 주체인 것이라는 것을 불교의 무아사상과 관련 법설할 때마다
세계 불교계를 향해서 사자후하는 것입니다.
윤회의 주체가 되는 우리의 영혼체는, 인연법이 지배하는 현상계의 존재가 아니라,
시공 이전 본체계의 존재로서, 나고 죽는 것이 아닌 영원히 불멸하는 실체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왜곡된 무아설이 대세가 되어,
불교의 진리로서 전 불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실로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교 수행의 요체는, 늙고·병들고·죽는 등, 여러 인간 고통의 제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괴로움, 고통을 부르는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탐착(갈애와 집착)에 있고,
이 탐애와 집착은 이 거짓 몸뚱이를 진짜 ‘나(我)’로 보는 데서 옵니다.
그러므로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히 ‘나’라는 생각을 비우는 일,
‘나(我)’에 대한 집착을 떼 버리면 곧 무아가 되면 우리는 생사고에서,
윤회생사에서 벗어나고, 보살도 붓다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집착은 스스로 자랑하고, 뽐내고, 교만하고, 방일해집니다.
이것을 떨쳐버려야, 미워하지 않으며 근심하지 않으며, 열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거짓 몸뚱이는 ‘나’가 아니라 진짜 ‘나’라는 것은 없다 해서
무아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소중하게 쓰고 있습니다.
<금강경>에서도 내 몸에 대한 주착에서 벗어나 아상을, 일체상을 떠나면
여래를 보고, 붓다까지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법불교의 정법이란 뜻은 ‘나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 ‘나’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고, 윤회고에서 헤매는
저 중생들을 건져 해탈 열반에 들도록 제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종지이며, 부처님의 본회, 뜻인 것입니다.
이상 두 번째의 과제, 무엇이 윤회주체가 되는가 하는 문제 역시 지금까지도
세계 불교는 ‘인간 영혼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아쇼카 대왕이나 카니쉬카 대왕의 출세로 일찍이 불교는 전인도를 석권,
서유럽 그리스까지 그 교세가 욱일승천 무섭게 신장되던 것이
사실상 힌두교와의 법전에서 치욕적인 참패를 당함으로써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선
지금까지도 불교도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깡그리 망한 사실은
여러분이 다 주지하고 있는 바와도 같습니다.
모두가 영산불교의 ‘영체설’과 ‘영체 윤회주체설’을 구세주 이상으로 반겨
정법에 귀의해야 하는데도 역으로 비방, 모함, 온갖 핍박등 법난을 당하고 있으나
결코, 절대적 우주적 진리의 메타종교, 신불교 영산불교 현지사는
사필귀정 무서운 도약으로 지구촌 중심에 우뚝 서서, 수많은 불쌍한 윤회 중생들을
진실로 특별히 구제하는 대장정의 역사만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이 영광스런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화답해 주십시오.
여기서 잠깐 오늘의 중요한 법문 말씀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 말씀 덧붙입니다.
3大 아승기겁을 육바라밀 보현행으로 지혜와 복덕을 쌓아 자기의 주인공 영혼체가
무량광 빛 덩어리 되어, 석가모니부처님 만나 그 가피로 무아 속 절대계에서 자란
자기 불신과의 계합으로 붓다가 됩니다.
1명의 붓다는 우주의 본체와 한 몸을 이루는 무형의 우주적 몸,
법신<불>을 얻기에 겁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간 가운데 존귀한 보물이랍니다.
그 붓다는 법신이라는 몸 외에, 인연 중생들을 해탈 열반으로 이끌 수 있는
불가사의한 위신력을 지닌 32상 80종호의 무량광 빛의 몸,
곧 보신이라는 영원히 멸도할 수 없는 불신을 얻고,
또한 삼계의 무수한 중생국토의 몸뚱이 없는 기체나 영체의 인간들을
교화할 수 있도록 천만억으로 나투어 가는
화신이라는 형태의 몸을 포함, 이 부사의한 3가지 유형의 몸을 지닙니다.
여기 화신<불>은 자기 보신에서 나오고, 임무를 마치면 다시
자기 보신 속으로 흡수해 듭니다.
육체인간이 사는 지구촌에 몸 받아 올 경우, 그 응신(혹은 응화신(불))역시
자기 보신 본불에서 나와 열반에 들 때는 자기 보신 몸속으로 돌아가 흡수됩니다.
복이 많아 이 붓다 교단을 만난 여러 현지사 신도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제껏 해결 보지 못한 위에서 거론한 두 가지 과제 이외,
지금까지의 세계 불교 교단들을 볼 때 완벽한 세계관 하나 정립을 보지 못했음은
여러분이 다 주지하는 바이고, 그리고 지금까지의 불교는(소대승, 밀교까지)
진정한 참 수행법 하나 정착이 안 돼있습니다.
하늘에 나고,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 될 수 있는 참 수행법, 없었습니다.
이쯤 말씀드리고, 이제 모든 이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난 오늘의 세계
모든 인류를 향해서, 진정 사는 길을 간략하게 일러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악도 곧 지옥, 아귀, 축생계로 떨어집니다.
최소한 5계를 지키십시오. 산목숨을 함부로 죽이는 법 아닙니다.
다음은 강도·절도 사기·횡령··입니다.
세 번째로 간음하거나 사음하는 것- 이는 하천한 데로 떨어져 무수히
그 하천한 몸을 받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거짓말, 더욱 대망어를 하는 것은 사실상 가장 무서운 죄로써
무간지옥까지 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술이나 마약류를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위 5계는 범한 정도, 정상에 따라 지옥 등 삼악도에 떨어져 혹독한 고통을,
어떤 경우 수백천만 겁을 그 세계에서 고통받습니다.
일찍이 5계에 대한 말씀을 듣지 못한 이들은, 이 스님의 법문 말씀을 가볍게 듣지 마시고,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하십시오. 이 이상 악도에 떨어지는 일 없도록 깨어나십시오.
그리고 불교 신자들 중, 가끔 범계·금계를 범했다면 부처님 회상에 오셔서
참회 공양 많이 올리십시오. 다시는 파계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평생 5계만 잘 지켜도 인간이나 하늘에 납니다.
그 위 하늘은 10선을 닦고, 탐심을 줄이고, 진애심·성내는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그럼 여기서 참 수행법을 간단히 일러드립니다.
‘음욕심을 내지 말고, 성내지 말고서 최소한 5계를 지키며 착한 사람 되어
부모조상께 효하고 정법에, 부처님께 진실로 귀의해서,
불쌍한 이웃을 도와가며 <금강경> 읽고 간절히 부처님 생각하며,
석가모니불 염불을 합니다. 업장소멸 발원하면서 해탈 열반의 세계에 나기를 발원하고.’
이것이 정법 불교의 수행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금생의 사실상 행복을 위해서, 단란한 가정이 됐으면 싶어
부부 사이의 좌우명을 일러드리는 것이니 꼭 이를 지키시기를 당부합니다.
먼저 남편 된 사람은
1. 아내를 어여삐 여겨야 합니다.
2. 절대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3. 아내가 좋아하는 장신구를 사주십시오.
4. 집안일을 맡기고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5. 아내의 가족들에게 소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아내는
남편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의 일가친척을 잘 거두어야 하고,
항상 공손한 말씨를 써야 하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며,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럼 끝으로, 자재만현은, 나는 오늘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의 불교사적 위상이라는
주제 법문을 통해서 여러 경전 말씀을 따라, 무엇보다 여기 와 계시는 많은 부처님 말씀에
의거, 영산불교 현지사의 태산과도 같은 불교사적 위상을, 세계불교 지성인들을 향해서
이를 천명하는 바입니다.
그럼 항공편 시간 관계로,
내가 쓸 수 있는 법문 시간은 거의 다 돼가기 때문에, 간략히 한 두 말씀 남기겠습니다.
첫째, 영산불교가 탄생하기까지는 마음이 부처라며, 그 어디에도 부처 없다고 하는 등,
지금까지의 불교는 불교의 교리 부처님이 얼마만큼 위대한 어른인지를 잘 몰랐다는 것,
따라서 부처님의 신비스런 몸, 불신관 하나 정립을 보지 못해서,
구체적으로 부처님의 무한한 지혜와 위신력을 알지 못했다는 것,
둘째는, 무엇이 윤회생사의 주체가 되는지, 무아를 잘못 해석하여,
생사의 주체가 없어도 심지어 심식류나 찰나생 찰나멸하는 아뢰아식이
그 주체가 된다고 주장하다가, 아트만 윤회 주체설을 강력히 믿는 힌두교에 의해서,
그들과의 법전에서 참패 당함으로 해서, 무섭게도 세계화 기세로 신장해가던 불교는,
한 사람의 불교 신자도 찾아볼 수 없이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절대무아론이 득세하고 있는 지금의 불교로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산불교 현지사의 불신관 붓다론은 영체론, 영체 윤회주체설과 더불어
힌두교뿐 아니라 세계 종교를 통합하고 미래 인류를 진짜로 구제할
새로운 대안 사상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여러분이, 금생뿐 아니라 다음 세세생생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은 보시,
지계, 염불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쌍한 이웃에게 베풀 줄 알아야
언제나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인색하여 베풀 줄 모르면 지은 복이 없어, 가난하게 태어나 고생고생하는 법입니다.
다음으로 자녀가 소중하고, 남편, 그리고 부모를 사랑한다면 꼭 ‘살도음망주’
이 5계만은 지키도록 하십시오.
세상에 죄는 천만 가지나 되지만 이 다섯 묶음 안에 다 들어옵니다.
죄를 지으면 삼악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이치! 한 번 지옥에 떨어지면
다시 사람 몸 받아나기란 어렵습니다. 끝으로 염불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찾으며 생각하며 갓난아기가 어머님 찾듯 정성껏 염불을 함으로써
지은 죄가 닦아지고 좋은 세계에 난답니다.
<금강경>이라는 경전 독송을 많이 많이 하시면 죽을 때 똥 오줌 누지 않고
잠자듯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설법은 더욱 알찬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나올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붓다의 정법 만자불교 교단
영산불교 현지사
문수의 법왕자 자재 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