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30일 부터 2013년 12월 1일까지 밀양에서
1박 2일, 30시간여 되는 길지 않은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걷고, 땀흘리고, 춤추고, 밥 먹고, 구호 외치며
웃고, 울고, 즐겁고, 감격하고, 기쁘고, 미안하고, 고맙고, 자랑스럽고
여러가지 감정 사이를 오간, 아프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다 담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몇가지만 남깁니다.
밀양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영문도 모른채 산을 올랐습니다.
잔뜩 추울거라 생각하고, 내복에 두툼한 옷을 껴입은 사람들은 흐르는 땀을 훔치며
"추울 것은 예상했지만 더울 것은 예측 못했다." 며 낙엽이 쌓여 미끄러운 산길로 걸었습니다.
수백명이 좁고, 미끄러운 길을 오르다가 결국 200여명을 돌아가고, 공사현장에는 100여명이 당도했습니다.
헬기로 흙과 돌을 이동하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는 경찰이 추위에 떨며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나중에 왜 험한 산길을 두시간 넘게 올라야 했는지 들어보니
"도대체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가 보고싶다." 는 동네 어르신들의 원 때문에 진행된 일정이었습니다.
공사현장은 경찰들이 막고 있어 주민들이 가 볼 수 없었나 봅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공사현장을 확인하며 공사가 진행되는 것에 분노하며 답답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미 깜깜해진 산을 내려오면서 몇몇 사람들은 한전 직원과 경찰들에게 따집니다.
"당신 집이 이곳에 있다면 당신은 송전탑 공사를 계속 하겠나요? 그 안에서 일하는 몇분이라도 가슴이 아파서 못하겠다고 뛰쳐나와야 하는거 아닌가요? 제발 이 공사가 멈추어질 수 있게 해주세요...............도대체 왜 힘없는 밀양할머니들에게 고통을 강요하시나요?....."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우리가 밀양이다> 문화제 장소인 밀양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부른 노래는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우워 주는 것 같았습니다.
밀양에서 대동놀이가 진행된 것은 밀양 역사에 처음이라지요?
문화제는 동네 잔치를 방불케 하는 흥겨운 한마당이었습니다.
멋진 남자 뚜엣 <곱창과 카레>는 힘차고 흥겨운 노래로, 그리고 이어지는 꽃따지의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어느새 우리는 어마어마한 콘서트장에서 신나게 즐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온 풍물패 상쇠 아줌마는 정말 멋져부렀습니다. 부산팀들이 연출한 대동놀이에서 손잡고, 어깨 걸고 뛰며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지요...
송전탑 공사가 중단되고, 다시 밀양역에서 <밀양 송전탑 백지화 축하 잔치>를 여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전국에서 몰려온 1500여명의 인파는 영남의 알프스라는 아름다운 마을 내 집집마다 삼삼오오 흩어져 잠을 자고 다음날, 마을별로 지역별로 나름의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추울거라고 잔뜩 겁먹던 잠자리는 집보다 훨씬 따듯하고 포근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집에서 최고급 이불을 내주고,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광주, 전남은 보라마을에서 마을주민과 간담회를 겸한 집체극을 진행하고 선물을 전달 했습니다.
그 집체극에서 중년의 한 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20년 만에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며 말을 꺼냈습니다.
"그녀는 스무살 먹은 아들과 스물세살된 딸이 있는데 한명은 장애가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언니도 장애아가 두명이고, 작은 언니도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데,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질 때 그 근처에서 사셨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전기를 편리하게 쓰고 있지만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단 한번의 사고로도 한반도 전체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것입니다. 일본은 53기의 원전을 멈추고도 지난 여름 전기 공급에 차질이 없었습니다. 조금 아끼고. 대책을 세우면 더이상 신규원전을 짓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집체극은 "핵발전소 사고는 단 한번의 사고로도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핵없는 사회를 위해서는 지금 밀양에서 진행되는 송전탑 건설이 백지화되고, 현재의 원자력 정책을 수정해야 함을 호소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설치미술가들이 송전탑이 들어서기로 예정된 논에 밀양의 얼굴들을 그려서 탑을 세웠습니다.
강을 끼고 있는 들판에서 우리는 집회를 했는데요. 집회를 시작하기전
문규현신부님이 이치우 어르신 영정 앞에서 기도와 묵상하고 계신 장면입니다.
이치우 어르신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분실자결한 분입니다.
"보상필요없데이~우리는 다만 이 땅을 훼손되지 않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을 뿐이다."는 밀양 어르신들..
문규현 신부님은 그 어르신들을 보며, 청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희망을 봅니다. 이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낙원이고 극락 아닙니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세우지 못하면 더 이상 희망은 없습니다. 우리 반드시 밀양에서 희망을 일굽시다."
마지막 집회를 마무리하며 어르신들께 손수건을 둘러드리며 마무리 합니다.
저 힘없고, 나약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이 살벌한 현장을 지키라고 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고, 아파서 서로 안고, 떨어지지 못하며 모두 눈물을 흘립니다.
한 때 선장을 하셨다는 다부지고 의기양양한 보라마을 한 어르신은
마이크를 잡고 억울함과 분노를 호소하며 "생명을 다 할 때까지 싸울 겁니다."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만
한 편에서 눈빛을 흐리며 또 복잡한 심정을 고백합니다.
"답답합니다. 공권력이 자꾸 치고 들어오니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중압감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집회를 하고있는 100미터 거리에서 몇사람이 모여 또 다른 기자회견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마을 이장님은 "세상에 우리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511만원을 받고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손발이 떨린다. 우리가 이 고생하고 있는데...우리의 고생을 헛일로 만들고 있다. "
밀양의 고통이 밀양만의 것으로 끝날까요? 우리가 바로 밀양입니다. 밀양의 고통이 우리에게 닥쳐올 고통과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765 공사가 멈추지 않는 한 밀양희망버스는 계속 됩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돌아오는 길, 장흥에 귀농해 살고있는 이 진지한 삼십대 부부와 순천탈핵연대 상임대표인 박종택 선생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한 장면을 놓칠 수 없습니다.
이 두 부부는 4년전 편안하고 행복하게 농사지으며 잘 살고 있다가 날벼락같은 후쿠시마 사고를 접하고, 인생이 바뀝니다. 전기도 거의 쓰지않고, 소비도 하지 않는 이 부부는 자기들만 편안하게 살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며 탈핵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두 부부의 1년 수입을 300만원, 그 돈이면 1년 동안 차량유지비에 들어가는 정도의 돈입니다. 300만원으로 1년을 생활하는 부부에게 밀양가는 가는 일은 또 다른 부담인데도, 함께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송전탑 공사가 백지화 되지않는 한 2차 희망버스는 계속됩니다.
첫댓글 박종택 선생님, 건강하신 것 같아 반갑습니다. 정년하신 후로 못 뵈었는데...
다음에는 꼭 함께 하기를...
일전에는 함께 동행해서 좋았는데 이번엔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만나지 못했네. 대신 생생한 글로 만나네요.^^
이사회하면서 저녁문화제와 보라마을 마무리집회 잠깐씩 함께한 터라 만나질 못햇네요. 수고하셨어요^^
희망버스 이번이 1차는 아닙니다. 이미 제가 탔던 희망버스만 이전에 2번이거든요.
여러번 했는데 이번이 크게 모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