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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추불두(戶樞不蠹)
여닫는 문지도리는 좀이 아니 먹는다는 뜻으로, 사람도 늘 활동하면 건강할 수 있다는 말이다.
戶 : 집 호(戶/0)
樞 : 지도리 추(木/11)
不 : 아닐 불(一/3)
蠹 : 좀 두(虫/18)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말을 마친 상용이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 허균(許筠)의 한정록(閑情錄)에 보인다.
명나라 때 육소형(陸紹珩)의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도 비슷한 얘기가 실려 있다.
舌存常見齒亡
혀는 남지만 이는 없어진다.
剛强終不勝柔弱
강한 것은 끝내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戶朽未聞樞?
문짝은 썩어도 지도리는 좀먹는 법이 없다.
偏執豈及乎圓融
편벽된 고집이 어찌 원융(圓融)함을 당하겠는가?
강한 것은 남을 부수지만 결국은 제가 먼저 깨지고 만다. 부드러움이라야 오래간다. 어떤 충격도 부드러움의 완충(緩衝) 앞에서 무력해진다. 강한 것을 더 강한 것으로 막으려 들면 결국 둘 다 상한다.
출입을 막아서는 문짝은 비바람에 쉬 썩는다. 하지만 문짝을 여닫는 축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오래될수록 반들반들 빛난다. 좀먹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붙들고 고집을 부리기보다 이것저것 다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 움직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流水不腐, 戶樞不?, 動也)
고인 물은 금방 썩는다. 흘러야 썩지 않는다. 정체된 삶, 고여있는 나날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어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쳇바퀴의 삶에는 발전이 없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 없었으니 앞으로도 잘 되겠지. 몸이 굳어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순간 조직은 썩기 시작한다. 흐름을 타서 결에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 움직이지 않고 정체될 때 바로 문제가 생긴다.
좀먹지 않으려면 움직여라. 썩지 않으려거든 흘러라. 툭 터진 생각, 변화를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강한 것을 물리치는 힘은 부드럽게 낮추는 데서 나온다. 혀가 이를 이긴다.
호추부두(戶樞不蠹)
流水不腐 戶樞不蠹 動也.
여씨춘추에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에 붙은 돌쩌귀가 좀 먹지 않는것은, 늘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물이 정체되어 있으면 썩고 청태가 끼지만 항해하는 배안의 물 통 속에 물은 썩지 않는다. 우리네 삶도 몸이 굳으면 생각이 굳고, 생각이 굳으면 머리도 스톱한다. 따라서 몸도 움직이고, 머리와 생각이 움직여야 한다.
하루에 수십 번씩 열고 닫고 하는 문과 지도리는 좀이 끼일 여지가 없는 것도 쉴라 하면 열고 닫고 쉴까하면 열고 닫히는 덕에 오래 버티는 것이다. 삶이 계획이 없고 정체되면 몸과 마음의 조직이 썩게 마련이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 것이 귀찮아 지지만 그럴수록 움직여야 한다. 좀 먹지 않으려면 문짝 돌쩌귀처럼 들락날락 해야 하고, 썩지 않으려면 저 흐르는 물처럼 쉬지 말고 흘러가야 한다.
야생 토끼 평균 수명은 15년, 집토끼 평균 수명은 5년, 사냥개는 27년, 집에서 기르는 개는 13년이란다. 90세 이상 노인 중 90%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다 아시는 상식이다.
옛날 양생가들은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휴식으로 지나침이 없어야(勞逸適當不要過度)” 오래 산다고 했다.
공자가어에도 “잠자리가 적당하지 못하거나(寢處不適) 음식이 절도 없다거나 (飮食不節) 일과 휴식이 밸런스가 무너지면 병이 걸려 죽는다(勞逸適度者疾共殺之)”고 경고를 했다.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가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면 모든 것이 이루어 지다보니 근육 운동 부족이 건강에 취약을 가져오는 것 같다. 특히 유한 부인들과 택시 기사가 운동 부족이면 몸이 무거워짐은 당연하다.
옛날 사람들은 신체를 이용한 노동이었으나 현대인들은 99%가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이용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다 보니 엉덩이와 허리는 움직이지 않고 머리 쪽으로 열이 오르는 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과학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의 질병을 유도하고 있다면 여우가 지 꾐에 빠져 꼬리를 적신다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머리와 몸을 쓰는 사람이 수명을 연장하고 장수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당나라 때 명의 손사막(孫思邈)은 102세를 살았고, 에디슨은 84세, 톨스토이는 82세까지 옛날 치고는 억수로 장수한 것이다. 고대 희랍의 극작가 소포클레스는91세 때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저술했고, 이탈리아 화가 티샨(Titian)은 그림을 그리다 91세에 붓을 든 채 죽었다고 한다.
위의 사실로 미루어 보면 나이 들수록 밥보다 운동이 필수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손사막의 '천금방'에도 노동을 너무 심하게 해도 좋지 않고 휴식을 너무 오랫동안 취해도 좋지 않다. 양생의 도는 노동은 항상 적당히 하되 너무 피로하게 하지 말고 그저 감당할 만큼만 해야 좋다며 흐르는 물이 썩지 않고 돌쩌귀가 좀이 먹지 않는다는 말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적당한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운동을 권하고 있다.
또 오래보면 피를 상한다 하고, 오래 누워 있으면 기를 상한다 하며, 오래 앉아 있으면 근육이 상하고, 오래 서 있으면 뼈가 상하며, 오래 걸으면 인대가 상한다고 지나친 운동을 경고하고 있다.
방태산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에서 도시 사람은 운동량이 부족하니 병이 들면 심마니를 따라 붙여 보름만 산에 올려 버리면 병이 사라지고, 시골 사람은 과로와 영양이 결핍이니 한 달을 푹 쉬게 하고 잘 먹이면 병이 사라진다고 한다.
소금에 절인 목선도 석어가지만 놀쇠(노를 물고 있는 지도리)는 녹도 쓸지 않고, 비바람에 맞서는 문짝은 쉬 썩지만 문짝을 여닫는 돌쩌귀는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반들반들 빛이 난다(戶朽未聞樞蠹).
끊임없이 몸도 움직이고 생각도 일으켜야 죽는 그날 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물의 정신을 배워라
상용(商用)은 노자(老子)의 스승이다. 상용이 몸이 허약해지고 병마와 씨름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얼마 있으면 세상을 떠나실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노자는 스승 상용을 찾아뵙게 된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스승인 상용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자네는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그렇다면, “치아는 튼튼한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느냐? 라고 묻자 노자는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라고 대답했다.
상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에서 나온다.
노자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서두르지 않고 겸손한 물의 정신을 배우라고 했다. 물은 아낌없이 은혜를 베풀고 신뢰를 잃지 않으며 자랑을 하지 않는다.
세상을 집어 삼킬 듯 한 불도 말없이 잠재우고 세상을 깨끗하게 해준다. 물은 얼 때를 알고 녹을 때를 아는 지혜가 있다. 물은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서 강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어준다. 그 위에 배가 다니며 사람이 살아가도록 고기도 잡게 하고 해초도 따 먹게 한다.
물은 자기의 공은 내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藥水)를 말한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이다.” 라고 했다. 강한 것은 남을 부수지만 결국은 제가 먼저 깨지고 만다. 강한 것을 더 강한 것으로 막으려 들면 결국 둘 다 망한다.
강한 쇠로 만든 문짝은 비바람에 쉽게 썩지만 문짝을 여닫는 축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오래 될수록 반들반들 거리며 부드러워진다. 끊임없이 움직이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다.
물도 말없이 흐르다가 바위한테 부딪히고 나무에 부딪히고 깊은 웅덩이를 만나도 불평 한마디 안하고 여유있게 웅덩이의 물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 갈 길을 가지만 어느 누구에게 원망하지 않는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고 했다. 말없이 자기 할 일만을 하기 때문이다. 流水不腐, 戶樞不?, 動也(유수부패, 호추불두, 동야)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고인 물은 금방 썩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무사안일의 삶은 개인이나 국가에 있어 발전이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이 산다면, 즉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면 승리하는 삶이 될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이권 관계에 있는 자리를 특정인이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고 변화를 싫어하면 그 조직은 퇴보하고 무너진다. 그렇지 않으려면 왕성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도자는 변화를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낮은 곳으로 가기를 싫어하지만 물은 스스로 낮은 곳으로 간다. 그렇지만 바다를 만드는 힘이 있다. 물처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공을 세워서 자랑하고 싶어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고 싶고 지배하고 싶은 것이 상식처럼 되어버린 세상에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교만하여 남을 지배하려고 하면 반드시 군림을 당하거나 지배를 당하게 되어 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과일을 만들어 주는 물은 절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강한 이가 부드러운 혀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라.
노자는 세상을 물처럼 살아야 하는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은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고, 더럽고 추한 곳을 찾으며 낮은 곳을 임하는 겸손의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잡았을 때는 권력이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고 살고 돈이 있을 때는 지난날 내가 어렵고 힘든 때를 생각하라.
생각을 바꾸고 넓히려면 많은 사람과 얘기를 나뉘고 고리타분한 생각을 과감하게 바꿀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 성공 할 수 있다. 고생을 많이 해 본 사람은 눈치가 빨라진다.
강한 것을 물리치는 힘은 자기 자신에게 부드럽게 하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혀가 이를 이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호추불두(戶樞不蠹)
집 문의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람도 늘 활동하면 건강하다는 의미며,또한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문을 여닫게 하는 돌쩌귀와 둥근 쇠 촉 문장부 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 지도리다.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는 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가 돌쩌귀다.
이 성어는 한 글자라도 고칠 것이 있으면 천금을 준다(一字千金)고 호언한 여불위(呂不韋)의 여씨춘추(呂氏春秋) 진수(盡數)편에 나오는 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流水不腐 戶樞不蠹 動也.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에 좀이 슬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形不動則精不流 精不流則氣鬱.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정이 흐르지 못하고, 정이 흐르지 못하면 기가 막혀버린다.
이 호추불두(戶樞不蠹)는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유수불부(流水不腐)와 함께 대구(對句)로 널리 사용하는 유명한 성어이기도 하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내경편 양생의 중요한 비결(攝養要訣)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태을진인 칠금문에서는 '첫째 말을 적게 하여 몸 안의 기를 기르고, 둘째 색욕을 삼가여 정기(精氣)를 기르고, 셋째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어 혈기(血氣)를 기르고, 넷째 침을 삼켜서 오장의 기를 기르고, 다섯째 화를 내지 않아 간(肝)의 기를 기르고, 여섯째 음식을 맛있게 먹어 위기(胃氣)를 기르고, 일곱째 생각을 적게 하여 심기(心氣)를 기른다. 사람은 기로 말미암아 살고, 기는 신(神)으로 말미암아 왕성해지는 것이므로,기를 길러 신을 온전하게 하면 참다운 도(道)를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중에 지킬 만한 것으로 원기(元氣)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였다.
孫眞人曰, 雖常服餌, 而不知養性之術, 亦難以長生也.
손사막은 '늘 복식을 하여도 양성의 방법을 알지 못하면 오래 살기 어렵다.
養性之道, 常欲少勞, 但莫大疲及强所不能堪耳.
양성의 도(道)는 늘 너무 힘든 일을 줄이고 너무 피곤하게 하지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
夫流水不腐, 戶樞不蠹, 以其運動故也.
흐르는 물이 썩지 않고 문의 지도리가 좀먹지 않는 것은그것이 늘 운동하기 때문이다.
養性之道, 莫久行久立久坐久臥久視久聽, 皆令損壽也.
양성의 도는 오래 걷거나 오래 서 있거나 오래 앉아 있거나 오래 누워 있거나 오래 보거나 오래 듣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수명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戶(집 호/지게 호)는 ❶상형문자로 戸(호)는 통자(通字), 户(호)는 간자(簡字)이다. 門(문)의 반쪽을 본뜬 글자이다. 護(호)와 음(音)이 같으므로 입구(入口)를 수호(守護)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❷상형문자로 戶자는 '지게'나 '출입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戶자는 외닫이 문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戶자를 보면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이 그려져 있었다. 양 문을 열고 들어가는 대문이 門(문 문)자라면 戶자는 집 안에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가던 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戶자에서 말하는 '지게'라는 것은 짐을 옮기는 도구인 '지게'가 아닌 '외짝 문'을 다르게 부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戶자는 '외짝 문'을 그린 것이지만 부수로 쓰일 때는 '출입구'나 '집' 또는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러나 肩(어깨 견)자처럼 단순히 글자의 모양만 빌려 쓰는 예도 있다. 그래서 戶(호)는 (1)행정상 사회 조직의 단위인 집. 곧 호적상의 가족으로 구성된 집 (2)칠사(七祀)의 하나. 출입(出入)을 맡은 궁문(宮門)의 작은 신(神)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집 ②지게 ③구멍 ④출입구(出入口) ⑤주량(柱梁: 기둥과 대들보) ⑥방 ⑦사람 ⑧막다 ⑨지키다 ⑩주관(主管)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가(家), 집 궁(宮), 집 옥(屋), 집 저(邸), 집 원(院), 집 사(舍), 집 헌(軒), 집 각(閣), 집 관(館)이다. 용례로는 홋수와 한 집안의 식구를 적은 부책을 호적(戶籍), 한 집안의 주장이 되는 주인을 호주(戶主), 호적 상으로 집의 수효와 사람의 수효를 호구(戶口), 집의 수효 또는 호적 상의 집수를 호수(戶數), 하나 하나의 모든 집을 호호(戶戶), 집집마다 나서서 하는 부역을 호역(戶役), 집마다에 배당된 몫을 호당(戶當), 술을 몹시 많이 마시는 사람을 호대(戶大), 한 집안의 주장이 되는 주인을 호두(戶頭), 봄가을의 두 철로 집집마다 무명이나 모시 따위를 물리어 받던 구실을 호포(戶布),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문호(門戶), 썩 많은 집을 만호(萬戶), 호적 상의 집 또는 작은 촌락의 집 수를 세는 말을 가호(家戶), 가난한 백성을 하호(下戶), 장사하는 사람의 집을 상호(商戶), 창과 문의 통칭을 창호(窓戶), 농사를 짓는 집을 농호(農戶), 사람이 넉넉하고 식구가 많은 집안을 대호(大戶), 세금이나 추렴 따위를 다른 집의 반만 내는 집을 반호(半戶),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으로 빈집이 아닌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연호(煙戶), 집집마다 찾아 다닌다는 뜻으로 마마媽媽를 일컫는 말을 호구별성(戶口別星), 집집마다 찾아 다님을 호별방문(戶別訪問), 앓은 사람이나 늙은이가 겨우 마당에까지만 드나든다는 호정출입(戶庭出入), 각 집이나 집집마다 또는 모든 집을 일컫는 말을 가가호호(家家戶戶), 문을 닫은 선생이라는 뜻으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독서만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폐호선생(閉戶先生), 마음대로 드나들게 터놓음을 일컫는 말을 문호개방(門戶開放), 집집마다 알려주어 알아듣게 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다 아는 것을 이르는 말로 가유호효(家喩戶曉), 문벌이 서로 어슷비슷함 또는 결혼 조건이 갖추어진 상대를 일컫는 말을 문당호대(門當戶對), 한 겨레 붙이나 또는 한 무리 속에서 서로 패가 갈리어 각각 나누어서 따로 문호를 세움을 일컫는 말을 분문열호(分門裂戶), 문을 닫은 선생이라는 뜻으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독서만 하는 사람을 폐호선생(閉戶先生) 등에 쓰인다.
▶️ 樞(지도리 추, 나무 이름 우)는 형성문자로 枢(추)의 본자(本字), 枢(추)는 통자(通字), 枢(추)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집어 넣다의 뜻(收; 수)을 가지는 區(구)로 이루어졌다. 문짝이 회전할 때의 굴대를 받는 구멍으로, 그곳은 문짝의 개폐에 중요한 곳이므로, 전(轉)하여 중요(重要)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樞(추, 우)는 ①지도리(돌쩌귀) ②근원(根源) ③본질(本質) ④가장 중요한 부분 ⑤관건(關鍵) ⑥계기(契機) ⑦고동(기계 장치) ⑧천자(天子)의 지위(地位) ⑨국가(國家)의 정권(政權) ⑩별의 이름 그리고 ⓐ나무의 이름(우)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여러 길 중에서 중심이 되는 요긴하고 중요로운 길을 추로(樞路), 문지도리로 쓰는 돌 곧 대문의 장부를 끼워서 돌 수 있도록 구멍을 판 돌을 추석(樞石), 돌쩌귀를 추철(樞鐵), 기밀의 사무로 주요한 사무를 추무(樞務), 군정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나 기밀을 추밀(樞密), 중심이 되게 가장 요긴하고 종요로움을 추요(樞要), 몹시 중요한 사물 또는 그 중요 부분을 추기(樞機), 사물의 가장 중심이 되며 비밀한 곳을 추오(樞奧), 사물의 운동이나 활동의 중심으로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추축(樞軸), 원의 중심을 권추(圈樞), 문의 지도리를 호추(戶樞),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2품의 벼슬에 오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입추(入樞), 매우 요긴하고 중요함을 홍추(鴻樞),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을 극추(極樞), 문지도리로 문짝을 여닫을 때 문짝이 달려 있게 하는 물건을 문추(門樞),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요추(要樞), 깨진 항아리의 주둥이로 창을 하고 새끼로 문을 단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형용해 이르는 말로 옹유승추(甕牖繩樞), 여닫는 문지도리는 좀이 아니 먹는다는 뜻으로 사람도 늘 활동하면 건강할 수 있다는 말을 호추불두(戶樞不蠹)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蠹(좀 두)는 형성문자로 蠧(두)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橐(탁)의 생략형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蠹(두)는 ①좀(좀과의 곤충) ②나무좀(나무좀과의 곤충) ③쐐기(불나방의 애벌레) ④좀먹다 ⑤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백성을 해롭게 하는 정치를 두정(蠹政), 좀이 먹어서 입는 손해를 두해(蠹害), 남에게 해독을 끼침 또는 그 해독을 두독(蠹毒), 좀먹는 것처럼 해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을 두적(蠹賊), 좀이 먹음을 두식(蠹蝕), 복숭아 나무를 파먹는 벌레를 도두(桃蠹), 책벌레나 좀의 뜻이 바뀌어 함부로 책을 읽을 뿐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을 서두(書蠹), 어떤 사정을 대표하는 우두머리를 사두(邪蠹), 나라를 속이고 백성을 해친다는 기국두민(欺國蠹民)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