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모 주간지에 3회 연재물로 싣기 위해 탈고한 기사이나 불행하게도 해당 주간지가 폐간하는 바람에 마지막 회가 활자화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매체는 다르지만 공들여 탈고한 기사이니 만큼 햇볕은 봐야겠기에 이곳에라도 처음부터 다시 올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본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100% 실명이며 철저한 자료수집을 통한 기사로 관련분야의 논문 작성이나 종교문제 연구가들에게 적잖은 참고가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기타 다른 분들은 충격과 전율면에서 심령물 이상가는 본 내용을 통하여 우리나라 근세사의 한 단면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용이 길다 싶은 분은 2회로 나누어서 읽으십시오.)
<전문>
“옷을 모두 벗어라.”
좌우로 세 명씩의 시녀를 거느리고 중앙에 정좌한 교주 전용해(全龍海)의 입에서 주술적 힘이 밴 낮고 무거운 소리가 날아들었다. 순이(崔順伊: 당19세)는 순간적으로 상대를 바라보려다 움찔하며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승안의식(承顔儀式)을 치르기 위해 사흘 간의 근신과 목욕재계를 끝내고 이 방에 들어설 때 규칙준수에 서약했던 일, 그리고 교주의 비서라는 두 남자(이순문:李順文, 장서오:張瑞五)가 내린 엄명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첫째. 절대로 대원님(교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말 것.
둘째. 몸에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 것.
셋째. 대원님의 명령에 이론을 달지 말고 복종할 것.
그러나 아무리 대원님의 존재가 하늘같이 지엄하다 한들 순결한 19세 처녀가 어찌 남자 앞에서 쉽게 옷을 벗을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같은 여자라고는 하지만 여섯명의 여자들이 함께 자리한 상황에서―. 순이가 머뭇거리자 순간 교주의 눈꼬리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자신의 절대적 권위에 손상이 갔다고 느낀 것이다.
“무엇하는 게냐. 성스러운 신의 행사에 임하려 하거늘, 지금 몸을 사리는 게냐!”
곧이어 한층 높아진 교주의 목소리가 방안 공기를 뒤흔들었다. 더 이상 망설여서 될일이 아니었다. 순이는 체념한 듯 두눈을 꼭 감고 일어나 하나씩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윽고 19년 동안 사내들 앞에 발목 한 번 내보인 적 없던 수줍은 처녀의 백옥같은 나신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들어냈다. 교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그 나신을 감상하더니 곧 자신도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옷을 벗어던졌다. 짧게나마 순이가 교주 전용해의 얼굴을 본 것은 그때였다. 건장한 체격에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머리가 보통 사람의 곱절이나 됨직한 기형적인 모습의 사내였다.
“누워라.”
다시 교주의 입에서 두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시녀들이 보는 앞에서 거리낌없이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동석한 시녀들의 태도였다. 바로 코앞에서 짐승과도 같은 변태적 성희(性戱)가 어지러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마치 밀랍인형처럼 시선을 아래로 깐채 자세는 물론 표정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순결의 문이 찢겨져 나가는 통증 속에서도 순이의 뇌리엔 불현듯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과 두 동생 영이와 진수―.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재산을 모두 헌납하고 백백교에 귀의하면 무병장수하고 신선 같은 삶을 누린다는―, 그리고 종말에는 모두 구원을 받아 영생한다는 백백교도 장창엽(張昌燁) 노인의 말에 현혹되어 아버지는 고향 양평군 설악면 설곡리의 논 열 마지기와 밭 4천 평을 모두 팔아 헌납했다. 그리고 가족들을 이끌고 이곳 백백교에 들어온 것이 지난 여름(1934년)의 일.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에 온 며칠 후부터 아버지를 비롯하여 가족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을 안내했던 장창엽 노인의 말로는 그들은 지금 경성(京城) 모처에서 함께 모여 살 낙원 건설에 동참 중이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것.
순이는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옛날처럼 가족끼리 모여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순이의 그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한다. 고향은커녕 얼마 후 성적 식상감에 빠진 교주로 하여 정수리를 삽날로 찍힌 채 알몸 그대로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봉암산 중턱에 암매장 될 자신의 운명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토록 그리던 가족들도 벽력사(霹靂使)들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된 지 이미 오래라는 사실 조차도―. 벽력사란 살인을 주 임무로 하는 교주의 심복들을 말함이다.
전대미문의 살인밀교(殺人密敎) 백백교(白白敎).
수백의 여신도를 농락하고 재산을 갈취했으며 350명 이상을 무차별 살해 암장하여 1930년대 세계 10대 뉴스에 올랐던 음학살인(淫虐殺人)의 대 사교 집단. 이 사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59년(철종10년) 쯤으로 그 뿌리를 소급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의 유교는 성리학적 명분주의에 빠져 변화하는 사회에 적극 대처하지 못했고 불교 역시 조선시대 500년 간 정책적으로 탄압 받아왔으므로 새로운 사회를 주도할 역량이 부족했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서학(西學:천주교)의 세력이 날로 팽창하자 경주 사람 최제우(崔濟愚)가 이에 대응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의 기치아래 유(儒), 불(佛), 선(仙)의 교리를 취합 절충하여 ‘동학(東學)’을 창도한다. 이 동학이 무섭게 전파되어 포교 3- 4년 만에 교세가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삼남지방으로 확산 된다.
그러나 얼마 못가 교조(敎祖) 최제우는 혹세무민의 죄로 체포되어 1863년 대구에서 사형에 처해진다. 동학이 불온한 사상적 집단이며 사교라는 이유에서다. 그후 지하에 숨어서 활동하던 제 2대 교조 최시형(崔時亨) 또한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이 주도한 ‘동학농민운동’의 주체로 체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때부터 동학은 3파로 분열되니 천도교, 시천교, 백도교가 그것. 여기서 주목할 것이 바로 백도교(白道敎)이다. 백백교의 근본 모태.
함경남도 문천에서 도를 펴던 평북 영변 출신의 전정운(全廷雲: 당30세)이 1912년 강원도 오성산에서 정식으로 백도교를 출범시켰는데 그 또한 불과 4년여 만에 신도가 1만 명을 넘어선다. 교세가 왕성하고 자신의 입지가 절대적이 되자 그는 오성산에 아방궁을 짓고 젊은 첩 여럿을 거느리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게다가 천성까지 극악무도했던 그는 1916년 애첩 4명을 산채로 생매장하는 잔혹한 범죄도 저지른다. 한데 천제(天帝)께서 잠시 한눈을 파셨던 것일까. 이 사건은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더 흐른 1930년에 가서야 김화사건(金化事件)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전정운이 세상을 뜨고도 10여 년이 더 흐른 뒤.
그가 죽자 백도교 역시 그의 세아들에 의해 3분열 되니 장남 전용주(全龍珠)는 마포구 도화정(桃花町)에 인천교(人天敎)를, 차남 전용해는 경기도 가평에 백백교를, 그리고 3남 전용범(全龍範)은 조금 늦게 장남과 같은 마포구 도화정에 도화교(桃花敎)를 설립 분파한다. 백백교의 전용해는 처음 차병간(車秉幹)이란 사람을 교주로 내세웠으나 얼마후 자신이 2대 교주에 오르면서 정상적 포교를 외면하고 선친 전정운처럼 철저히 밀교(密敎) 형태를 유지한다. 교리의 주 골자도 백도교와 마찬가지로 종말의 날에 대원님이 하강하여 신도들을 영생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
그때가 닥치면 서양은 불로, 동양은 물로 심판 받게 되는데 백백교도들은 대원님께서 그 전에 이미 마련하신 팔도 53곳 본소(本所)에 가서 살다가 물심판의 날이 오면 피수궁(避水宮)으로 옮겨가고, 거기서 기다리면 곧 대원님이 하강하시어 소원에 따라 두 패로 갈라 인도한다. 동해 천리 밖에 둘레 3천 리의 영주땅이 솟아오르는데 그곳에는 봉황과 기린이 놀고 불로초가 자란다. 불로장생하고 싶은 자는 그 영주땅으로 인도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자는 계룡산으로 인도한다. 그곳에서는 대원님이 친히 임금이 되어 그간의 헌금이나 헌신도에 따라 차등하여 벼슬을 내리니 그 대원님이 곧 자신이라는 요지이다. 뿐만 아니라 머잖아 일제가 물러가면 백백교도 중에서 대통령이 나오게 되므로 각 부처의 요직 또한 백백교도들이 맡게 된다고 했다.
허황 되기 짝이 없는 논조였지만 선친 전정운의 잔인하고 변태적인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전용해는 그 교리를 표면에 두고 온갖 착취와 살인과 여체 탐닉에 집착했다. 간부들을 전국 각지에 파견하여 신도를 모은 다음 남자에게는 금품을 헌납케하고 그 처나 딸은 노유(老幼)를 불문하고 자신과 (신의 행사)라는 명분의 육체관계를 치르게 했다. 이 신의 행사는 백백교의 모든 의식 가운데 가장 엄숙한 것으로서 그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구원의 대열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신의 행사를 치를 때면 꼭 첩이나 시녀들이 보는 앞에서 치렀는데 이때도 시녀들은 어떤 동요나 첩으로서의 질투를 보여서는 안되었다. 불경하다 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문초(경우에 따라 죽음까지도)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다시 앞 부분에 서술한 순이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교주 전용해에게 마음껏 유린 당하고 물러나온 순이는 비서 이순문과 장서오에 의해 옆칸의 복마전(伏魔殿) 같은 골방으로 인도 되었다. 이제 그녀는 꼼짝없이 이 곳에 갇혀 밤마다 교주의 노리개가 돼야 하는 것이다. 한편 순이를 내보내고 옷을 추스른 교주 전용해는 요위에 떨어진 몇 점 혈흔을 보고 속으로 매우 흡족해 했다. 또다시 숫처녀라는 전인미답의 성지를 정복했다는데서 오는 만족감이었다. 주위의 시녀들까지 물리고 난 그는 그러나 잊지않고 위엄만은 갖춘 목소리로 밖에 대고 말했다.
“술상을 들이라.”
늘 그러기라도 했던 듯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녀들에 의해 술상이 날라졌다. 그런데 상 위엔 술병과 함께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검붉은 액체가 가득 담긴 대접―. 그것은 다름아닌 노루의 피였고 그 옆에서 뜨거운 김을 피워올리는 것은 노루의 고기였다.
교주는 일단 노루의 피부터 벌컥거리며 들이켰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비리척지근한 그것이 오늘따라 달게 느껴졌다. 오대산에서 생포한 것이라며 어느 여신도가 보낸 몇 마리의 노루. 그 고기와 피를 상식하고부터는 변도 청변(靑便)이 나오는데다 힘도 몰라보게 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벽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노루 사육장을 향해 힐끗 고개를 돌려보고는 술병을 집어들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느덧 내일 있을 또다른 쾌락의 순간을 상상하고 있었다.
‘사내놈 이름이 이기성(李基成)이고 계집은 옥씨(玉氏)라고 했던가? 결혼한 지 3년밖에 안됐다니 아직 피부 하나는 처녀가 부럽지 않겠군.’
평북 영변에서 전답을 모두 처분해 들고 이주해 온 신혼부부인데 교주 자신의 계교로 남편은 백백교 철원 본소에, 부인은 양주 본소에 각각 떨어져 있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본소)라함은 일종의 (성전) 개념으로 경기도 양평의 제1본소를 비롯하여 전국에 10여개 안팎이 있었는데 그중 양주 본소로 신혼인 옥씨 부인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잠시 전 비서 이순문을 떠나보냈던 터였다.
생각할수록 고운 얼굴의 여자였다. 그 정도 인물이라면 몇년을 품어도 쉽게 물리지 않을 것 같았다. 설령 물린다 해도 간부에게 불하를 하면 했지 죽이기는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신의 행사를 치른 여자가 인물이 반반하면 복마전에 가두고 온갖 음탕한 짓으로 희롱하다가 싫증이 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거나 간부들에게 불하해 주곤 했다. 때문에 간부들은 7-8명 씩의 여자를 거느리며 사는 게 보통이었다.
‘가만, 주게 되면 누구를 주지? 이한종? 그래 이한종이 충성심이 남달리 강한 놈인데도 계집은 다른 사람 보다 적게 거느리고 있으니.’
이한종(李漢宗), 그는 양평 제1본소의 책임자로 교주를 위해서라면 죽음까지도 불사할 정도로 충성심 대단한 간부였다. 일례로 수 년 전엔 교주가 하사한 25세 처녀와 살기 위해 자신의 조강지처까지 살해한 인물이었다. 전용해는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머금으며 넘치도록 딸아부은 술잔을 들어올렸다. 경성부 앵정정(櫻井町:현 서울 중구 인현동) 일정목 49번지 전용해의 아지트는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비서 이순문이 양주 본소에서 옥씨를 데리고 나타난 건 다음 날 오후였다. 그런데 이순문은 뜻밖의 보고를 했다. 그토록 알아듣게 타일렀음에도 옥씨가 신의 행사를 완강히 거부하더라는 것이었다. 전용해는 무너지는 체면과 자존심으로 당장이라도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지고 피가 솟구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잠시 후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 시킨 전용해가 이순문을 향해 말했다.
“그 여자를 이리 오라 하라.”
옥씨가 나타나자 전용해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물었다.
“신의 행사를 거부하겠다고?"
“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렇습니다."
교주를 똑바로 보면 안된다는 건 아는지 옥씨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대답했다.
“이유는?"
“저는 지아비가 있는 유부녀입니다."
“흠― 지아비라. 그러면 서방이 없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구나?”
“과부면 재가도 하는데 그렇다면 어찌 대원님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알았다. 알았으니 또 부를 때까지 다시 양주로 내려가 있거라. 자네가 다시 데려다 주게.”
전용해는 옆의 이순문을 향해 그렇게 이르고 방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순간 전용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강제로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가지고는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없다. 좀더 잔인한 수를 써서 그녀를 범해야만 속이 풀릴 일이었다.
잠시후 전용해가 이번에는 심복 중의 심복인 문봉조와 또 한사람의 간부 백옥철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지금 곧장 철원으로 달려가 옥씨의 남편을 그녀가 있는 양주 본소로 이송시키라는 거였다. 다만 본소까지 데려가지 말고 십여 리쯤 못가서 나무에 결박하여 묶어놓고 입에 재갈을 물리라는 것이었다. 자신도 근방에 미리 가있겠다고 하면서―.
문봉조와 백옥철 두 사람은 즉시 철원으로 떠났고 교주의 지시 대로 이튿날 오후 옥씨의 남편을 뒤에서 때려 정신을 잃게 한 후 본소 십 리쯤 전방에 꽁꽁 붙들어매 놓았다.
"대체 왜들 이러시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요?"
정신을 잃었다 되찾은 남자가 큰소리로 따졌다.
"글세 우리는 모르겠어. 우린 대원님이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니까. 대원님께서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지."
그때 바로 지척에서 교주의 목소가 들려왔다. 어제 말대로 그 장소에 미리 와있었던 것이다.
“아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다만 네 여편네가 성스러운 신의 행사를 거부한 죄밖에는.”
그의 등뒤에는 어느새 옥씨와 그녀를 데리고 양주를 두 번씩이나 오르내렸던 비서 이선문이 서있었다. 소나무에 결박당한 남편을 보자 옥씨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부르짖었다.
“여, 여보!... 아, 아니 왜들 그래요. 저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러는 거에요!”
교주가 입가에 비릿하고도 능글맞은 미소를 빼물고 대답했다.
“글세 모두 네 죄 때문이지 네 서방한테는 죄가 없다니까. 예펜네에게 잘못이 있으면 그 대가는 서방이 대신 치러야 한다... 이게 나의 진리고 우리의 법이야.”
그랬다. 전용해의 살해 대상은 첫째가 명령에 불복종하는 자. 둘째가 배신의 기미가 보이는 자. 셋째가 숨어서 불평을 하는 자. 넷째가 재산을 모두 헌납했다 하고 나중에 남은 재산이 발견 되는 자. 다섯째가 심복이 아닌 자로 살인현장을 목격한 자. 여섯째가 탈교 및 밀고가 우려 되는 자 등등이다. 실례로 선천 사는 간부 신도 이덕이란 사람을 보자. 행동이 수상하여 세간을 뒤져보니 조선 총독에게 보내는 밀고 편지의 초안이 나왔다. 전용해가 으뜸 심복인 살인 기술자 문봉조(文奉朝)에게 명하여 그 12촌 친족까지 생매장하고 업힌 아기까지 죽이라 하자 옆에 있던 다른 간부가 아기가 무슨 죄냐며 살려주기를 간했다. 그러자 전용해는 문봉조를 시켜 그 간부 마저 현장에서 살해해 버리고 말았다.
문봉조 또한 잔인하기가 전용해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해서 그 간부를 살해할 때는 포박하여 엎드리게 해놓고 가지고 있던 엽총을 항문에 대고 발사하여 탄알이 머리 꼭대기를 뚫고 나가도록 했다. 이쯤되면 단순히 비밀유지 차원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변태 집단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이런 천인공노할 음학살인의 밀교집단에 걸렸으니 옥씨녀나 그 남편의 말로는 보지 않아도 뻔한 노릇. 교주 전용해가 심복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저 년도 반대편 소나무에 결박하라. 어디 지아비를 향한 정절이 얼마나 강하고 고귀한지 내 몸소 시험해 보리라.”
옥씨녀가 별반 저항이랄 것도 없이 사내들의 억센 손아귀에 이끌려 소나무에 포박을 당하자 교주가 이번에는 옥씨녀의 남편을 가르키며 명했다.
“저놈의 바지를 까내려라.”
그러는 일변 품속에서 ‘오덕도’란 이름의 칼을 꺼내들었다. 수많은 인명살상에 사용되던 그 칼이 햇볕을 받고는 서릿발 같은 광채를 번뜩였다. 그러는 동안 옥씨 남편의 바지와 속옷은 무릎 아래까지 까내려졌고, 아울러 남자의 심벌이 백일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 대체 왜들 이러는 거요. 내가 무슨 죄를 졌으며, 또 내 아내가 죄를 졌다한들 죽을만큼 큰죄를 지진 않았을 것 아니오. 종말에 구원을 받아 영생하게 해준다더니 그런 백백교의 약속이 고작 이런 것이었오?”
그러나 남자의 절규를 듣는둥 마는둥 교주의 입에서는 또다른 명령이 떨어졌다.
“저놈의 연장을 길게 잡아 늘여라.”
이선문이 지체없이 닥아가 남자의 심벌을 고무줄처럼 잡아 늘였다.
“아악! 아, 안됏!”
이쪽의 남자와 반대편에 묶인 옥씨녀의 입에서 동시에 숨넘어가는 듯한 비명이 터졌으나 교주의 칼은 이미 설커덩! 하는 느낌을 자아내며 남자의 심벌을 뿌리도 남지 않도록 단호하게 잘라낸 뒤였다. 남자의 심벌이 한낱 고깃덩어리처럼 땅위에 내팽개쳐짐과 동시에 남자는 하체에서 먹피를 뿜어내며 혼절을 했고, 옥씨녀는 창백한 얼굴로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교주가 그녀에게 닥아가 느릿느릿한 어조로 물었다.
“어떠냐? 이제 네 서방은 사내 구실을 할 수가 없다. 이쯤되면 서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이다. 이제 나와 신의 행사를 치르겠느냐? 그러면 사내 구실은 못할지언정 네 서방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러나 옥씨녀는 숨이 막혀오는지 커억커억 가쁜숨만 몰아쉴 뿐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호. 사내 구실은 못해도 아직 몸뚱어리에 목숨이 붙어 있으니 서방은 서방이란 말이지?”
비아냥거리 듯 그렇게 씹어뱉은 교주가 다시 혼절한 남자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남자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꺾인 고개를 들어올리더니 무청 베듯 간단하게 목줄기를 끊어냈다.
“자, 이젠 정말로 네 서방은 없다. 이젠 내 말 듣겠지?”
그렇게 씨부리며 옥씨녀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한발 먼저 비서 이순문이 낮게 소리쳤다.
“아, 아니. 이년이 이거 혀를 깨물었습니다요.”
그랬다. 어느새 고개를 깊이 떨군 옥씨녀의 입에서는 장미꽃처럼 붉디붉은 선혈이 끊이없이 흘러내리며 땅바닥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잉. 독한 년. 할수 없지. 이봐. 어서 저년 결박을 풀어. 결박을 풀고 옷을 모두 벗겨서 여기 뉘라구. 아직 숨이 다 넘어가지 않았으니 체온도 따뜻할 게야.”
곧 송장이나 다름없는 옥씨녀가 옷을 모두 벗기운 알몸으로 풀밭에 뉘어지자 교주는 주위의 시선엔 아랑곳 없이 자신도 옷을 활활 벗어제꼈다. 그리고는 점차로 식어가는 옥씨녀의 몸 위로 올라가 한바탕 짐승같은 욕정을 뿜어내고는 바지를 추스르며 심복들에게 말했다.
“자네들도 맛좀 보라구. 계집 살결이 여간 매끄러운 게 아니야.”
그처럼 사람 목숨을 파리 보다 하찮게 여기는 희대의 살인마요 변태인 전용해. 그의 이러한 살인행각은 교세가 늘어날수록 정도가 심해져만 갔으니 그것은 교세가 확장된 만큼 감시의 대상 또한 주체하기 어렵도록 늘어난 때문이었다. 따라서 전용해는 간부들을 더욱 극성스럽게 닦달, 전국 본소를 끊임없이 돌게하여 위험 인물들을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 적발된 신도에게는 경성에 가면 훌륭한 백백교 본부가 있을 뿐 아니라 근교에 넓고 비옥한 농토도 있으니 그곳에서 편히 농사를 짓고 살라며 가족과 함께 이주하기를 권한다.
그런 다음 서울역앞 경성 하숙옥이나 청량리의 대흥여관에 묵게 해놓고 간부를 보내 소지한 금품을 모두 맡기라 하여 뺏고 본부나 농장을 안내한다는 구실로 가족들을 분산, 남자는 곧 살해해 버리고 여자는 마음에 들면 교주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간부에게 하사하여 마음대로 욕심을 채운뒤 비밀이 탄로나지 않도록 그 역시 살해해 버리는 것이다. 그처럼 전용해는 여자를 가리는 법이 없어서 그가 유린한 여자는 적게는 12세에서 많게는 50에 이르기까지 나이 차이가 다양했다. 그런 호색한임에도 승안할 때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이는 철저히 자신을 감추려는 행위로서 만약 누구든지 그 얼굴을 똑바로 보는 자가 있으면 심복을 시켜 ‘기도드리게 하라’고 명한다. 그것은 즉 ‘죽이라’는 신호로서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당사자는 봄눈 보다 쉽게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악행이 지나치면 하늘이 반드시 벤다고 했던가. 그처럼 음란하고 잔혹했던 살인마 전용해도 서서히 자신을 옥죄 오는 파멸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발원지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애첩 중 하나인 유정전의 오빠였다.
유정전(당:18세)―. 수 많은 여자를 유린했고 조금만 싫증나도 가차없이 살해했던 전용해가 무려 4년이나 끼고 돈 애첩 중의 애첩. 그것은 그녀의 미모가 빼어난 탓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할아버지에서부터 그녀에 이르기까지 3대가 백백교도인데다 할아버지가 헌금한 재산 또한 적지 않았던 탓이었다. 사태의 발단은 그녀의 할아버지가 임종시에 한 말 때문이었다.
당시 그녀에겐 해주에서 약종상을 하는 유곤룡이란 오빠가 있었는데 이 유곤룡이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그날 할아버지가 힘겹게 토해내는 마지막 말에 충격을 받는다.
“너도 알다시피 이 할애비는 약방을 해서 적잖은 돈을 벌었다. 그 돈을 모았으면 지금 천석추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백백교를 믿는 바람에 오늘 이같은 파산지경에 이르렀으니 쉽게 눈이 감길지 모를 일이다.”
물론 유곤룡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떤 종교에 깊이 빠져있다는 걸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 재산을 아낌없이 헌납할 정도로 깊이 빠져있었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뒤 그는 더욱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되니 다름아닌 자신의 하나 뿐인 여동생 유정전마저 아버지에 의해 교주의 첩으로 바쳐졌다는 사실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친 유곤룡은 그때부터 만사 제쳐놓고 변장을 해가며 양평, 양주, 여천, 화천, 평강, 철원, 안변, 금화 등 백백교 본소들을 탐방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종말론과 감언이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라곤 전 재산을 날리고 처와 딸까지 첩이나 시녀로 교주에게 바친채 본소 주변에서 화전을 일구며 종말을 기다리는 우민한 백성들의 처참한 현실 뿐이었다.
적적적, 의의의, 백백백―.
무병장수하고 멸망의 날에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이 괴주문을 틈만 나면 어둡고 허기진 목소리로 읊조리면서―.
유곤룡은 교주 전용해와 정면으로 대결하리라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호랑이를 굴 밖으로 끄집어내야 할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동생 유정전에게 미리 준비한 인삼과 녹용을 내밀며 교주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백백교도 집안에서 혼자만 믿지 않는 것은 잘못이란 걸 근간에야 깨달았습니다. 이 우매함을 나무라지 마시고 승안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 은혜 백골난망이겠습니다. 작은 정성이나마 3만 원을 헌금할까 합니다.”
애첩 유정전을 통하여 이 말을 전해 듣고 선물까지 받은 전용해는 대단히 흡족해 했다.
“오래비가 약종상을 한다고? 그렇다면 돈도 꽤 벌었겠구나.”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 10만 원 정도는 벌지 않았나 싶습니다.”
순진한 유정전의 대답에 전용해는 입을 쩍 벌렸다. 10만 원―. 당시 조선총독부 총 통감이 타고 다니는 차가 3000원이었으니 10만원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거금이 아닐 수 없는 것.
“알았다. 네 오래비의 정성이 갸륵하니 내 한 번 찾아보리라.”
결국 전용해는 유곤룡의 함정인 줄도 모르고 1937년 2월 16일밤 자정을 기해 살인기술자인 최고 참모 이경득과 문봉조를 대동, 하왕십리 유곤룡의 집으로 향했다. 그 무렵의 전용해 나이 42세. 사전에 규칙준수에 서약을 하고 미리 와있던 동생 유정전과 함께 전용해를 기다리던 유곤룡 앞에 드디어 교주 전용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따지고 보면 우린 피차 처남 매부 지간인데 만남이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전용해가 술상 앞에 앉자마자 농담부터 던졌다. 유곤룡은 속으로 부르르 치를 떨었다. 늙은 놈이 딸같은 어린애를 상납 받아 유린하면서 처남 매부라니, 이런 인간에게 속아 전 재산을 상납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고(思考)가 새삼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제가 너무도 어리석어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여지껏 믿고 계신 백백교의 높은 진리를 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유곤룡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지긋이 눌러 삭히며 공손하게 말했다.
“괜찮아. 늦게라도 깨달았다는 게 중요한 게지.”
전용해는 유곤룡이 딸아올리는 술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입가를 쓱 문지르며 본색을 드러냈다.
“참, 그나저나 그간 약종상을 해서 10만 원을 벌었다지?”
“아직은.... 하지만 3-4년 후면 그리 될 것 같습니다.”
유곤룡의 대답에 전용해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 말이 뺏길까 두려워 뒤로 빼는 듯한 말투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흠, 멀찍이 뒤로 시간을 끄는 품이 행여 헌금으로 내랄까봐 두렵다는 뜻이렷다?”
그러자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곤룡이 날카롭고도 당당한 눈빛을 들어 상대를 쏘아보았다. 대원님인 교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손이며 도전인 셈이었다. 전용해가 돌연 옆자리에 앉은 유정전을 향해,
“얘야. 네 오래비 심통 난 모양이다.”
한 마디 하고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네 이놈! 감히 누구 앞에서 고개를 뻣뻣히 들고 그런 눈으로 노려보는 게냐.”
일갈하는 동시에 항상 품속에 간직하고 다니는 칼 ‘오덕도’를 빼들었다. 얼마전 옥씨녀 부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명 살상에 사용된 칼이었다.
하지만 한발 더 빠른 것은 유곤룡이었다. 술상을 엎으며 튀어오른다 싶더니 그대로 몸을 날려 전용해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노루의 피와 고기로 보신을 해왔다고는 하나 이미 40을 넘긴 초로의 나이에 지금까지 한 일이라고는 술과 색욕질밖에 없던 교주였다. 반대로 유곤룡은 무쇠도 녹일 만한 혈기왕성한 나이에 상대에 대한 증오가 용암처럼 끓고 있던 참이었다. 가슴을 정통으로 차이고 나뒹군 전용해가,
“사람살려!”
하고 소리쳤다. 하늘과도 같은 대원님의 입에서 구차하기 짝이 없는 비명이 볼썽사납게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망을 보던 이경득과 문봉조가 뛰어들어왔다. 방안은 순식간에 치고 받고 밀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러나 전용해나 그 심복들은 알고 있었다. 싸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들이 위험해 진다는 사실을. 곧 사람들이 모여들고 나아가 순사들이라도 들이닥쳐 연행까지 당한다면 자신들의 정체는 물론, 그간의 범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경득과 문봉조가 교주를 들쳐업다시피 하며 그곳을 도망 나왔다. 그러나 유곤룡은 끝까지 따라가며 몽둥이를 휘둘러 기어이 이경득의 이마를 깼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온 전용해는 모든 일이 결딴났음을 예감하고 그길로 차를 대절, 제1본소인 양평군 단월면 행소리로 피신했다. 또한 문봉조 역시 머리가 터진 이경득과 헤어져 또 다른 본소인 영천군 영근면 간파리로 도피한다.
한편 전용해 일당을 놓친 유곤룡은 그길로 하왕십리 주재소로 달려가 신고를 했고 이를 접수한 모리야(盛谷) 순사부장과 구니이(國井) 순사가 그날 밤 새벽 2시 경 앵정정을 급습, 그곳에 있던 전용해의 비서 이순문과 장서오를 검거하여 동대문경찰서로 연행함으로서 본격적인 백백교 검거의 실마리가 된다.
이순문과 정서오가 잡히고 유곤룡의 진술이 뒤따르면서 아버지 유인호와 동생 유정전도 자연스럽게 연행되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들에게서 여신도를 농락하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단순 사이비교 이상의 어떤 낌새를 강하게 받는다.
느낌만으로 큰 ’껀수’를 감지한 경찰은 곧 이 사건을 고등계에 배당한다. 그들의 고문은 가혹했다. 아닌게 아니라 총칼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조선총독부 산하의 순사들 아닌가. 그중에서도 사상범을 주로 다루는 고등계라면 귀신도 돌아앉을 만큼 악명이 높다. 더구나 수사 대상은 고문하다 죽여도 뒤탈이 없는 조선인이다. 유정전의 문초를 맡은 사람은 오끼 형사였다. 잔인하기로 소문난 고문기술자. 손톱 밑을 대나무 꼬챙이로 쑤시거나 치마 속에 손을 넣어 여자의 체모를 잡초 뽑 듯 우드득 뽑아내기도 한다. 엄동설한에 마당에 죄인을 발가벗겨 놓고 찬물을 끼얹어 온몸에 살얼음을 얼리는 것도 그의 주특기.
그는 유정전을 발가벗겨 의자에 앉혔다. 오빠는 곧 국민적 영웅이 되고 동생은 범죄 집단의 일원으로 고문을 받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었지만 어쩔 것인가. 그녀는 두 손을 뒤로 돌려 의자 등받이와 함께 묶여졌다. 발가벗은 두 다리 또한 90도로 벌려 꼼짝 못하도록 의자 다리와 함께 묶여졌다. 여자로선 죽고 싶도록 수치스런 자세일 터다.
“좋게 말할 때 순순히 불면 그 만큼 네 신간이 편해진다. 교주 어딨어? 그리고 교주가 평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 대로 말해.”
오끼 형사가 입에 물고 질겅거리던 꽁초를 되알지게 뱉으며 말했다. 그의 옆에 놓인 화로에서는 숯불이 벌겋게 타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 인두가 꽂혀 붉은색조를 띠어가고 있었다.
그는 일단 시뻘겋게 달아오른 인두부터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무성하고 윤기 어린 유정전의 체모에 살짝 대었다. 지지직― 연기와 함께 노린내가 물씬 피어올랐다.
“아악! 전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몰라? 좋아. 그럼 내 확실하게 기억나게 해주지.”
그는 망설임 없이 이번에는 그녀의 꽃봉오리 같은 유두에 인두를 빠르게 댔다가 떼었다.
“아악! 아아―악! 알았어요. 말할게요. 말하겠어요. 교주가 사, 사람을 죽였어요.”
유정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사실 전용해는 절대 신임하는 사람들만 시켜서 비밀리에 사람을 죽였으므로 유정전은 그의 살인 행위를 실제 본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나도 혹독했던 탓에 그녀는 그렇게 외치고 말았다. 오끼 형사가 귀를 쫑끗 세웠다.
“뭐라구. 사람을 죽여? 언제, 어디서, 누구를, 몇 명이나?”
그러나 막상 외치기는 했지만 유정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그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대법사(大法師)님이나 도유사(道喩使)님은 알거에요. 그분들한테 물어보세요. 전 정말 자세히는 몰라요.”
“뭐, 대법사? 도유사? 그게 누구야?
“대원님이 가장 믿는 분들로 대원님 다음으로 높으신 분들이에요.”
“알았어. 만약 그자들을 잡아서 네 말이 거짓으로 판명나면 그땐 각오해.”
사람을 죽였다는 유정전의 한마디에 경찰은 바짝 긴장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그렇게 해서 며칠 사이로 백백교의 최고 참모인 대법사 이경득, 연천 본소로 피신했던 도유사 문봉조, 북두사자(北斗使者) 김군옥, 용강 본소 책임자 김산욱 등, 남녀 포함하여 100여 명 이상이 줄줄이 잡혀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문초 과정에서 감자 알맹이처럼 줄줄이 들어나는 가공할 살인극이 끝도 한도 없었기 때문. 문봉조 혼자서 치른 살인 횟수 만도 무려 50회였고 김산욱도 30회로 드러난 것이다. 수사의 모든 초점은 이제 각지에 산재한 시체 발굴과 교주 전용해를 찾는 것에 맞춰지고 있었다.
그때 전용해는 양평 제1본소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경성은 어찌 되었을까. 유곤룡 그놈이 분명 경찰에 신고했을 터인데 누가 잡혀 갔을까. 그리고 잡혀갔다면 어떤 진술을 했을까. 그런 불안감을 잊기 위함인지 그의 행동은 더욱 포악하고 잔인해져만 갔다. 파멸을 눈앞에 둔 자의 필사적 몸부림인 셈이었다.
“해순(海順)이랑 손희(孫姬)를 들여보내.”
골방의 전용해가 밖에 대기한 양평 본소 책임자 이한종, 이삼득 형제에게 명령했다. 해순과 손희는 모두 15살의 어린 소녀들로서 전용해가 이곳에 들릴 때마다 잠자리를 함께 하는 이른바 ‘현지처’였다. 곧이어 예쁘장하고 복스럽게 생긴 두 소녀가 다소곳이 들어섰다.
두 소녀는 교주가 입을 열지 않아도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소녀는 일단 누워있는 전용해의 옷을 모두 벗겼다. 그리고는 한 명은 상체를, 다른 한 명은 하체를 각각 맡아 열심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용해는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이번에는 밖에 대고 장자봉(張子鳳)도 들여보내라 명했다. 장자봉은 23살 된 처녀. 그녀가 들어오자 전용해는 세 여자를 모두 벗기고 한바탕 음란지옥을 연출했다. 그래도 쉽게 쾌락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전용해는 밖에 있는 이한종, 이삼득 형제를 들어오라 일렀다. 그리고는 장자봉을 가리키며,
“그대 형제들. 이 여자에게 생각이 있다면 마음 대로 해도 좋다.”
하고 말했다. 한데 그 말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장자봉이었다.
“저는 대원님 이외의 어떤 남자에게도 몸을 허락할 수는 없습니다.”
말이야 갸륵했지만 전용해는 그보다 먼저 자신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다는데 우선 분노가 폭발했다.
"오냐. 죽어도 좋다면 죽여 주마."
전용해는 이한종, 이삼득 형제에게 장자봉을 묶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닥아가 힘껏 그녀의 목을 밟았다. 이윽고 장자봉의 몸이 축늘어지자 이번엔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두 소녀에게 물었다.
"너희들도 내 명령에 복종치 않겠느냐?"
"아닙니다. 대원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그래야지. 여보게들 이 아이들이 좋다 하니 마음 대로 하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두 형제는 소녀를 각각 한 명씩 이끌고 옆 방으로 가려했다.
"아니, 여기서!"
전용해가 소리쳤다. 당장 눈 앞에서 장자봉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형제는 망설임 없이 옷을 벗었다. 분위기와 상황이 이쯤되면 ‘남성’이 쉽게 말을 듣지 않을 터이지만 전용해가 소중히 여기는 어린 소녀들을, 그것도 한 방에서 둘이 한다는 색다른 묘미에 그들의 몸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이윽고 일을 마친 두 형제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전용해가,
“목을 졸라라.”
하고 외쳤다. 형제가 동시에 전용해를 바라보았다.
“어서 조르라니까!”
두 형제는 반사적으로 각각 배 밑에 있는 소녀들의 목을 우악스럽게 누르기 시작했다. 전용해의 마지막 살인극으로 기록될 이 사건, 바로 1937년 2월 21일의 일이었다.
한편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경기도 경찰부의 노무라(野村) 형사과장과 나까무라(中村) 고등과장, 그리고 경무국의 다무라(田村) 보안과장이 수시로 들러 전용해 검거를 독려했다. 하지만 전용해의 행방은 묘연했다. 검거된 문봉조를 통해 그가 양평 제1본소로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형사대를 급파. 현지 인원 포함 100명 가까운 수색조를 편성하여 전용해의 거소와 양평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전용해는 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숨어있던 산막에서 그의 마지막 살인 피해자 장자봉과 해순, 손희의 시신만 추가로 찾았을 뿐이었다.
그 무렵 시체 발굴단 사이에서 좀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임산부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그 시신이 무덤 속에서 아이를 분만했다는 것. 하지만 그러한 현상은 머지않아 과학적으로 확실히 규명이 된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생긴 체내의 가스로 흐물흐물 썪은 살집을 뚫고 태아가 밖으로 밀려나왔다는 거였다.
1937년 4월 7일. 수사는 이제 전용해가 자살했을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체가 발견 되지 않은 이상 수색은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경찰병력은 물론 소방서원과 인근 주민들로 이뤄진 수색조는 용문산 도일봉 일대를 다시 한 번 뒤지기로 했다. 비솔고개 마루턱을 거쳐 해발 1200미터의 용문산을 이잡 듯 뒤지고 올라가는 수색조 틈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터진 것은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찾았다. 여기 시체가 있다!”
수색대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올백으로 넘긴 머리에 지까다비를 신고 양복 저고리를 뒤집어 입은 틀림없는 전용해의 시신이 거기 있었다. 한데 산짐승이 뜯어먹기라도 한 것인지 전용해의 안면은 코를 중심으로 그 아래쪽이 흉측하게 뜯겨져 달아나고 없었다. 오른손엔 칼 ‘오덕도’가 쥐어져 있었고 왼손은 경동맥이 끊어져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사망 추정 시간은 2월 23일 경. 바로 전용해가 장자봉과 해순 등 세 여자를 죽인 이틀 후였다. 경찰은 수감된 이경득과 전용해의 첩 등을 소환, 시신을 확인 시킴으로서 전용해로 최종 결론 지었고 계속 되는 시체 발굴 작업만 남긴 채 수사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검거 인원 200여 명.
그중 살인, 사체유기, 살인강도, 외설, 사기공갈 등의 혐의로 간부들 극형.
살해 된 숫자 350여 명(일각에서는 1000명 이상 추정).
수사기간 11개월.
동원 인력 5000여 명.
수사비용 2만 여원.
수사 서류 3만 장.
그리고 전용해의 두개골은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 지금도 국립수사연구소에 보존되어 있으니 교인들을 영생 구원으로 인도할 대원님 치고는 그 말로가 너무나도 비참한 셈. 한가지 어처구니 없는 것은 백백교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와중에도 가장집물을 처분한 뒤 영생을 꿈꾸며 백백교 본소를 찾아온 사람들이 열 가족이 넘는다 하니 인생사 그야말로 코메디 그 자체라 아니할 수 없겠다. (끝)
<참고문헌>
조선일보 당시 기사
동아일보 당시 기사
브리태니카 및 동아백과사전
소설 백백교 (이문현 저) 자유시대사
이규태 역사에세이 ‘백백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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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시신이 아닌 한 남자의 머리 부위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비밀리에 보관돼 있다!
포르말린 처리로 죽은지 70여년이 지났지만 피부와 머리카락까지 생전 그대로인
이 ‘머리’의 주인공은 사이비 종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
일제 암흑기인 1930년대 터졌던 ‘백백교 사건’! 교주 전용해와 그의 심복 11명은 10년
이런 글은 제발 사실만 적으면 좋겠다긔. -_- "순결의 문이 찢겨져 나가는 통증 속에서도 순이의 뇌리엔 불현듯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표현때문에 글을 읽기가 싫어지고 사실성이 떨어지는 그냥 소설같다는 느낌이 더 드네요. 처음에 철저한 자료수집 과정을 강조한 기사라길래 신문기사 같을 줄 알았더니 -_- 암튼 원문 작성자 사람에게 굉장한 거부감이 드네요. 게다가 논문쓸때 좋은 자료가 될거라고 하는데, 쓸만한 자료는 참고문헌 뿐이네요. ㅎㅎ
전 연예계 성상납도 솔직히 안믿으려고 했거든요??..아니 고위 간부들이 뭣하러 여자연예인들 성상납/갈취를 위해 돈을 그렇게 쓸까... 동물도 아니고 그돈으로 더 좋은걸 잔뜩 얻을수 있을텐데...성을 위해 그따위 추잡한 짓을 할까... 근데 이런글 보면 정말 성욕에 찌들어서 사는 동물같은 남자들도 있구나..... 그래서 연예계 성상납이 현실속에 존재할수 있구나..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우리사회 어떤부분은 참 개같은 세상이네요. 말 그대로.
첫댓글 엔터를사랑해주세요
저걸 다 엔터해야되요??
조낸 무섭다규 ㄷㄷㄷㄷ대체 사이비종교에 빠지는사람들 이해가 안되요
무서워요.. 대체 머리는 왜 보관하는걸까요?
22222222ㅠㅠ
백백교인지 뭔지도 나쁘지만 일제놈들 지들은 뭘잘했어.. 똑같은짓해놓고 지들이 잡긴 또 뭘잡나... 암튼 당시 시대가 너무 힘들고 의지할곳도 없고 희망도 없던 시기인데다가 사람들이 너무 바보같이 순진해서 저런데에 넘어갔었나보네요... 무서워요 너무.....ㅜ.ㅜ
이런 글은 제발 사실만 적으면 좋겠다긔. -_- "순결의 문이 찢겨져 나가는 통증 속에서도 순이의 뇌리엔 불현듯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표현때문에 글을 읽기가 싫어지고 사실성이 떨어지는 그냥 소설같다는 느낌이 더 드네요. 처음에 철저한 자료수집 과정을 강조한 기사라길래 신문기사 같을 줄 알았더니 -_- 암튼 원문 작성자 사람에게 굉장한 거부감이 드네요. 게다가 논문쓸때 좋은 자료가 될거라고 하는데, 쓸만한 자료는 참고문헌 뿐이네요. ㅎㅎ
ㅇㅇ 왜 소설을 쓰는지 모르겠삼;; 웩;;
야설같다규....
저도요.. 굉장한 거부감..솔직히 말하면 진짜 유치하고 더럽네요.
저도 지금 무슨 소설인가 했어요....왕식겁..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근데 머리를 왜 보관할까욜;;;
와 미친놈 소리가 절로나오네요~ 저러 개 찌질이 같은놈 천벌을 받을놈~~
전 연예계 성상납도 솔직히 안믿으려고 했거든요??..아니 고위 간부들이 뭣하러 여자연예인들 성상납/갈취를 위해 돈을 그렇게 쓸까... 동물도 아니고 그돈으로 더 좋은걸 잔뜩 얻을수 있을텐데...성을 위해 그따위 추잡한 짓을 할까... 근데 이런글 보면 정말 성욕에 찌들어서 사는 동물같은 남자들도 있구나..... 그래서 연예계 성상납이 현실속에 존재할수 있구나..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우리사회 어떤부분은 참 개같은 세상이네요. 말 그대로.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222 진짜 웃고있는거 같다...ㄷㄷㄷㄷㄷ
33333333333333
이건뭐...
뷁뷁교
222222222222
진짜 장난아니다.................실화라면 진짜 기리기리 남을사건이네요...전용해나 그백백교이끄는 모든사람들 진짜 고문제대로 해야되는데.ㅠㅠㅠ
십라 토나온다 -_-;;
읽다가 더럽고 무서워서 그만뒀다.......지옥에나 가라!!!!ㅠ0ㅠ!!!
헉 난 빅뱅교로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