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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투영된 역사서-삼국유사
김은령(시인. 문학박사)
『삼국유사 (三國遺事)』는 무엇인가?
1. 『삼국유사 (三國遺事)』의 탄생.
『삼국유사』는 일연(一然1206~1289)이 철저하게 기획하여 만든 작품(책)이다.
삼국유사를 탄생시킨 사람은 일연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의 5권 머리말에 ‘일연 찬(一然撰)이라는 기록이 있고, 또한 왕력편을 제외한 총138개의 항목 중에서 항목의 말미에 이야기에 대해 일연이 직접 써 붙인 「찬(讚)」이 총 49편이 등장한다.
일연 당시 고려사회는 유교의 이념집단인 문벌권력이 국가를 지배하였다. 국가의 제례의식이나 통치이념이 유교를 신봉하는 사대부로 집결함에 따라 불교의 종교적 의무 및 역할도 사대부의 지배하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에 불교는 민중보다는 지배권력 위주의 교세운영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사찰이 권력층의 개인소유가 되어감에 따라 민중과는 점점 유리되어 갔다. 또한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왕실의 무능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던 상태에서 자신들의 귀의처였던 불교의 타락으로 신앙의 대상을 원시 신앙인 토착신앙으로 귀의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국사의 위치에까지 올라 불교계의 최고지위를 누렸던 일연의 입장에서는 불교의 쇠퇴를 막고, 존속시켜 부흥시켜야 하는 의무와 사명감이 동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존속의 방법으로 현세구복(現世求福), 내세복덕(來世福德)의 이야기로 피폐한 민심을 위무하는 방법과(감통. 효선) 불교사적인 인물(의해, 탑상)을 소급하여 불국토(신라)시대를 희망했다. 『삼국유사』에 현세구복이나 내세복덕을 말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내포된 것도 일연 당시 고려사회의 피폐했던 민중의 삶과 심리를 일연이 불교교리로서 치유하고자 하는 의도적 각색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 교리인 중생구제와 더불어 부처의 법을 전함과 동시에 불교의 존속을 이루고자 하는 일연의 기획작품이다.
2. 일연은 누구인가?
『삼국유사』의 지은이로 알려진 고려시대 승려이며, 국사(國師)를 지낸 인물이다.
일연은 고려 후기의 승려. 경주(慶州) 김씨. 첫 법명은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일연(一然), 호는 목암(睦庵). 법명은 일연(一然).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 출신. 시호는 보각(普覺). 1289년 인각사(경북. 군위군 소재)에서 입적.
일연의 주요 행적을 보면 출생(1206)->해양 무량사에 취학(9세)->설악산 진전사에서 대웅장로(大雄長老)로 부터 구족계를 받고 출가(14세)->선불장에 나아가 상상과(上上科)로 합격. 포산(지금의 비슬산)으로 가서 수도함(22세)->문수보살의 현시를 받고 포산 무주암에 주석. 득도 체험(31세)->선사(禪師)가 됨(41세)->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 주지로 나아감(44세)->대선사(大禪師)가 됨(54)->세왕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감. 선월사에 주석하며 지눌의『修心訣』에 영향을 받아 목우화상 지눌을 승계한 것으로 표방함(56)->영일 오어사. 포산 인흥사에 주석함(59)->왕의 명으로 운해사에서 대장낙성회(大藏落成會) 개최(63세)->왕의 명으로 운문사에 주석. 교권을 주도 함(72세)-인흥사에서 『역대연표(歷代年表)』 간행 함(73세)->왕의 부름을 받고 경주 행재소(行在所)로 감(76세)->왕의 초청을 받고 대궐에서 선문회를 열어 설법함. 왕이 개경의 광명사에 주석하게 함(77세)->국존으로 책봉, 원경 충조(圓徑沖照)라는 호를 받음. 노모 봉양을 핑계로 인각사로 내려 옴(78세)->인각사를 하산소로 정하고, 이곳에서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 번 개최함, 본격적으로 『삼국유사』저술진행(79세)->인각사에서 입적, 보각(普覺)이라는 시호가 내려짐(84세)
3. 『삼국유사』는 어떤 책인가?
『삼국유사』는 우리민족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임과 동시에 문화 예술의 보고처(寶庫處), 즉 -문화가 투영되어 있는 역사서-이다.
이 책은 전5권 9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력 외 138조각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누락된 삼국(고구려. 신라. 백제)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바탕으로 찬술한 인물 위주의 역사서이다. 우리민족의 시조(단군)와 건국신화를 비롯한 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풍속,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 다양한 장르가 총 집합되어 있어 『삼국사기』의 대안서. 역사서. 문학사료집. 민속지. 불교문화사서 등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비록 야사(野史)이기는 하나 정사에서 볼 수 없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비롯하여 사회계층을 이루는 부류가 지도층과 지식인에 한정두지 않고 사회 모든 계층의 속해 있던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가던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종교, 문학, 정신, 미술, 민속, 등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사건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져 있어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함과 동시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어떤 역사가 있나?
- 왕력편: 별책으로 분류해도 좋은 만큼 중국, 고구려, 신라, 백제, 가락, 통일신라, 후고구려, 후백제의 왕대를 엮어 놓았다.
- 기이편: 당군 왕검을 비롯하여 삼한(마한, 진한, 변한) 지역에 존재했던 부족국가 의 존재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역사적 사건이 수록.
고구려는 건국과정과 불교유입, 백제는 무왕(강성했던 시대)의 설화적 이 야기와 후백제의 멸망, 가야는 건국과 멸망까지의 역사적 사실 기록, 신 라의 경우 건국을 비롯하여 인물과 연계하여 통일 신라시기 국내외 정세 및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을 수록.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 역사 정사(正史)에서 배제된 ‘가야’라는 국가의 생성과 연혁 뿐 아니라, 삼국통일의 주역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건과 엮어서 지식과 재미를 선사한다.
- 흥법편: 삼국에 불교가 유입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민족의 불교의 기원과 종교(불 교) 역사를 알려줌과 동시에 민족종교로 불교가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 준 다.
☛어떤 문화가 있나?
- 정신: 호국을 위한 고승들의 행적, 영웅들의 이념, 민초들의 삶 등 기술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충(효.선)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정신문화가 내포 되어 있다.
- 문학: 뛰어난 운문(시)과 산문(소설)이 있다.
속세의 모든 욕망과 쾌락은 꿈과 같이 허망함을 일깨어주는 ‘조신의 꿈’은 소설보다 뛰어난 서사구조와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어 문학성이 뛰어난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향가 14수는 우리 국문학사의 굉장한 사료이다.
★ 향가 14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헌화가(獻花歌), 안민가(安民歌), 처용가, (處容歌)서동요(薯童謠), 혜성가(彗星歌), 제망매가(祭亡妹歌), 도솔가兜率歌),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풍요(風謠), 원왕생가(願往生歌), 원가(怨歌), 우적가(遇賊歌)>
- 미술: 불국사, 통도사, 황룡사 9층탑, 감은사. 등등 책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현존 하는 유적과 유물은 물론 이미 사라진 건축물이나 탑상(塔像)의 존재를 확 인 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통해서 미술. 조각. 건축...등 다양한 장르의 예 술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기록 되어 있다.
- 민속: 보시를 중시한 삶의 자세, 기복적인 성격의 신앙 등 여전히 우리의 삶에 내 포되어 있는 우리민족의 풍습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 tip
책의 구성
왕력 : 삼국사기 연표와는 달리 역대왕의 출생, 즉위, 치세를 비롯하여 저자(일연)의 간 략한 의견도 덧 붙여 있다.
기이: 1. 신라이전 국가의 흥망성쇠, 신화, 전설 등을 기록,
기이: 2. 문무왕부터 경순왕, 부여, 백제, 후백제, 가락국의 내용.
흥법: 고구려-순도/ 백제-마라난타/ 신라-아도/ 원종(법흥왕)과 염촉(이차돈) 이야기.
탑상: 황룡사 9층탑(선덕 때 자장의 의견으로 세움-호국용)/ 분황사(천수대비-눈먼 아 이)/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수행-현신불)/ 낙산사(조신의 꿈)
의해: 의상-선묘, 원효-요석, 해공-오어사, 사복-원효, 자장-문수
신주: 밀본-공주(선덕)병=여우)/혜통-당나라공주 병=용을 항복시킴/ 명랑-밀교
감통: 김현-호랑이/ 욱면(계집종)/ 승천/ 선율-죽었다 깨남(저승세계 경험)
피은: 낭지-구름타고 다님/ 혜현-죽어도 혀만 썩지 않음/ 연회-맨땅에 푸른 연꽃
포산 두 승려-도성과 관기(나무가 서로를 향해 기울어짐)
효선: 불국사-김대성/ 홍효사-손순(아이를 묻다)/ 향득-살을 베어 부모 공양
■ 간행 시기
- 『삼국유사』는 일연의 저작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간행된 시기에 대해서는 일연의 생 존 당시와 사후 2가지 설이 있다.
- 조선 초기도 간행, 고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이 본 은 3·4·5권만 있는데, 권3의 첫 6장까지와 권5의 끝부분 4장이 없는 잔본이다.
- 석남본은 1940년부터 송석하(宋錫夏)가 소장하였던 것으로 왕력(王歷)과 제1권만 남은 잔본으로 소장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삼국유사』의 판본 중 간행 연대가 가장 확실한 1512년 경주에서 간행된 임신본이다.
1512년(중종7) 경주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중간한 『삼국유사』는 중종임신본(中宗壬申 本) 또는 정덕본(正德本)이라고 한다. 이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에 보존되었지만, 전하지 않는다.
- 중종임신본을 인행(印行)한 몇 종의 간행본이 현재 국내외에 전한다. 5권이 갖추어진 완 본인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은 이계복이 판각한 뒤 32년 이내에 인출된 것으로, 훗날 순 암 안정복(安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을 한 때문에 이와 같이 불린다.
(다음 주 강의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