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갈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웨슬리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사회운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많은 설교와 사회적 실천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사회신학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비록 웨슬리의 근본 목적이 개인에 대한 회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회심과 구원은 사회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 종교가 아닌 종교는 알지 못하며, 사회적 거룩함이 아닌 거룩함은 알지 못한다”고/58/ 말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결은 사회적 성결이고, 그것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역동적인 것이다. 즉 기독교인의 완전에 대한 추구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운데서 자신의 일을 따르는 동안 추구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종교이다... 기독교를 고독한 종교로 만드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다.”/59/
웨슬리는 기독교인들이 고립된 생활을 하며 죄인과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그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맛있게 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본분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가 당신과 다른 사람들을 섞어 놓음으로써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모든 은총이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신 이유인 것이다.”/60/ 따라서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경건은 하나님의 구속행위 안에 있는 근원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성화 혹은 기독교인의 완전은 행위로 표현되는 능동적인 사랑의 현존인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선행을 믿음의 열매라고, 교회는 행동으로 가장 잘 규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 인간들의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책임성을 말하면서, “믿음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적에 대한 한 수단이며, 믿음은 사랑하기 위해 있다”/61/ 고 역설한다. 다른 이들을 향한 선한 의지와 그들의 향상을 위한 실천적 봉헌을 강조함으로 그는 복음의 사회적 의미를 제시했다. 카메론(Cameron) 은 이것을 ‘사회적 책임의 침투적 의미’라고 부르고 있다./62/
웨슬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실천은 구체적으로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종교는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
은 삶의 약이고, 부조리한 세계의 모든 악과 인간의 비극 및 악의 완벽한 치료임을
믿는다. 우리는 이 종교가 이 세계에 수립되는 것을 보기 원한다./63/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모순, 악과 불의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사랑이며, 그것은 변혁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웨슬리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즉 오직 변혁주의적 신학만이 성화의 교리와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구원의 특성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웨슬리의 복음 이해이며 구원 이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통주의(orthodoxy) 가 아니라 정당한 실천(orthopraxis) 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웨슬리는 가난의 문제 뿐만 아니라 실업의 문제, 사회복지, 직업윤리, 사회구제와 봉사, 제도의개선, 도덕적 생활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을 논의했고, 또한 그 영역들에서의 변혁을 위하여 구체적인 실천을 운동으로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은 암묵적으로(latently) 사회갈등, 특히 계층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