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손가락 하나하나 구부려 셈하는 아이의 계산
고대인이 점토와 손가락을 사용해서 셈을 했던 시대로부터
데카르트의 대수적 계산, 프레게와 튜링에 이은 현재의 컴퓨터까지
인간 사고의 폭을 확장하고 변모시켜 온 계산의 변천사!
인간은 기호를 조작해 결과를 만들어 내기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사고하고, 의미를 길어 내고 계속해서 현실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계산하는 생명’이다.
2021년 제10회 가와이 하야오 학예상 수상작!
우리는 계산 없이는 한순간도 그냥 보낼 수 없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손으로 필산을 하든 컴퓨터를 사용해서 물리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든, 이 행위들은 모두 ‘계산’이라는 절차의 예다.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기호를 조작하는 행위를 계산이라고 한다. 앨런 튜링이 ‘계산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체현하는 튜링 기계를 고안한 이후, 컴퓨터와 로봇에 이어 새로운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계산가능성은 계속해서 확장해 왔다. 손가락으로 셈하던 시대에서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처리하기까지의 엄청난 거리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거리는 인간이 ‘계산’이라는 행위에 생명을 계속 불어넣어 온 역사와도 같다. 과거에는 신체가 맡았던 일을 점점 ‘계산’이 대신하는 시대로, 생명이 주어진 것을 조작하기만 하는 기계와 다름없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
《계산하는 생명》은 수학과 관련한 쉽고 참신한 저술을 지속적으로 발간하고 있는 독립연구자 모리타 마사오가 수학과 신체의 관계를 탐구한 전작 《수학하는 신체》에 이어 계산하는 기계와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해 살펴본 인문 교양서 겸 수학책이다. 이 책은 얼핏 수학 관련 저술인 듯 보이지만, 계산의 변천사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 칸트, 리만, 프레게, 비트겐슈타인, 튜링 등 수학을 통해 사고를 확장했던 사상가들의 이야기들이 흐름에 따라 제시되며 폭넓은 인문적 교양을 다룬다.
🏫 저자 소개
모리타 마사오
수학을 주제로 저작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자칭 ‘독립연구자’. 1985년 도쿄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미국 시카고에서 보냈으며,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일본에서 생활했다. 중학교 시절 당시 도호고등학교 농구부에서 무술가인 고노 요시노리의 저작을 참고로 ‘난바 달리기(오른손과 오른발, 왼손과 왼발을 동시에 움직이는 주법)’를 도입하여 대회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고노의 신체론에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4년 도쿄 대학 문과에 입학, 당시 유행이던 IT 벤처 비즈니스에 흥미를 느껴 실리콘밸리를 여행하는 도중 알게 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사르가소라는 회사의 설립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부터 복잡계물리학을 전공한 스즈키로부터 영향을 받아 수학은 물론 이과 계열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쿄 대학 공학부 시스템창성학과 지능사회시스템 과정을 마친 뒤에는 이학부 수학과에 들어갔으며, 졸업 후인 2010년에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에 수학 도장을 설립했다. 2012년에는 근거지를 교토로 옮겨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전국을 돌며 ‘수학강연회’, ‘어른을 위한 수학 강좌’라는 이름을 단 토크 콘서트를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도 ‘수학연주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수학 토크쇼를 개최하기도 했다. 『개미가 된 수학자』, 『수학하는 신체』, 『수학의 선물』이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7
들어가며 10
제 1 장 ‘아는 것’과 ‘조작하는 것’ 13
제 2 장 유클리드·데카르트·리만 47
제 3 장 수가 만든 언어 87
제 4 장 계산하는 생명 127
제 5 장 계산과 생명의 잡종hybrid 173
참고문헌 197
저자 후기 203
옮긴이의 말 207
📖 책 속으로
생물다양성의 상실에 관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위기에 관해서,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이 지금도 막대한 데이터를 해석하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인류를 총체로 보면, 지구 환경에 관해서 열심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막대한 계산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계산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모습이 마치 〈철학자 축구〉의 철학자들처럼 결론이 나올 때까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
아이가 위험한 도로로 튀어나오려고 할 때 과연 정말로 차에 치일 것인가 혹은 치일 확률이 어느 정도 될까 그것만 계산하고 있어서야 아이를 구할 수 없다. 충분한 이유를 찾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 경우 그것 자체로 윤리를 배반하는 행위가 된다.
인간이 생명체라고 하면 눈앞에서 아이가 도로에 튀어나오려는 모습을 목격하면 생각할 것도 없이 손을 내밀 것이다. 생각하기 전에 패스하는 스포츠 선수처럼 자각하였을 때 바로 아이를 도우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문제 그대로의 responsibility이다. (…)
녹아내리고 있는 빙산과 사라져 가는 생물다양성, 붕괴해 가는 해양 생태계 등 환경 이변에 대해서 우리는 어린 소녀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재빠르게 응답하지 않고 있다. 마치 도로에 튀어나오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차에 치일 증거가 갖추어질 때까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기계처럼 계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
이 책에서는 정확하게 계산 결과를 도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산의 귀결을 의미로 번역하기 위해 수학자들이 많은 개념을 만들어 낸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미 인간이 의미와 개념을 만들어 내는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계산이 계속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
--- p.191-193
두 종류의 언어가 있다.
인용부호 안의 ‘실재’(예컨대 ‘문제풀기’로서의 수학/‘알고리즘’으로서의 수학/우리의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수학)를 만들어 내는 ‘재단사 언어’와 그것을 깨뜨리는 ‘꼬마 언어’(모리타 마사오 선생이 구사하는 언어―굳이 문제 풀기가 아니어도 좋았을 수학/잘 살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수학/새로운 개념 창조의 원천으로서의 수학).
‘재단사 언어’는 모리타 선생이 잘 예증해 주었듯이 이른바 최첨단 연구자들이 각자의 영역에 갇혀서 톱니바퀴를 돌리면서 생산해낸 ‘언어’다. 한편 ‘꼬마 언어’는 그들 최첨단 연구자들 덕분에 철저히 공동화된 ‘자명성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 같은 독립연구자들이 만들어 낸 ‘언어’다. (…) 모리타 마사오 선생이 잘 사용하는 ‘꼬마 언어’들은 “수학의 본질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원천인 수학적 사고다”, “수학의 힘을 빌려서 사람은 언제까지라도 어린아이로 있을 수 있다”, “수학은 의미를 모르게 되고 나서부터가 실로 재미있다”, “계산과 생명은 둘 다 인간을 인간으로 자리매김해 준다” 등등이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 출판사 서평
책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이 흐름에 따라 다채롭게 다뤄진다. 예를 들어 다양한 개념과 방법의 변천사를 다루면서 계산가능성이 확장된 이후 인공지능의 문제에 골몰했던 로봇공학자 로드니 브룩스를 들어 로봇이 어떻게 끝없는 계산에 빠지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지 그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계산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고 시뮬레이션해 보는 현실의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생태학적 자각을 통해 하이퍼 오브젝트 이론을 전개한 티모시 모턴의 사상을 소개한다. 모턴의 논의를 빌어 저자는 하나의 척도에 국한된 사고를 넓히고 생태학적 시각을 확장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다. 이렇게 세상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현실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계산하는 생명’으로서의 인간을 새롭게 그려 보인다.
이 책은 단순한 도구와 기호 조작을 통해서 계산을 확장해 온 인간의 역사가 생명의 가능성을 확장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실생활에서도 편하게 사용하는 기계와 로봇을 새롭게 생각하고, 기후 위기 시대에 반드시 활용해야만 하는 계산과 그것에 따른 인간의 책임 문제까지 관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수학에 관심 있는 중고등학생뿐 아니라 기계의 활용이 일반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실제 수식을 풀어 쓰고 설명해 주면서 계산의 전개 모습과 기하학적 변모를 보여주며, 수학적 방식의 언어가 가지는 장점 또한 일목요연하게 알려 준다. 이를 통해 일반 독자들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을 넘어 세상을 확장하는 수학의 설명 방식에 대한 이해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계산을 통해 세상을 확장하던 예들은 그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보에 지적 자극 또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은 순서에 구애받음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책을 즐길 수 있다.
모리타 마사오는 일본 교토에서 수학 교실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수학의 세계를 탐구하는 독립연구자다. 이미 소개된 한국어판 저서들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수학 연주회’ 등을 통하여 독자들과 여러 차례 만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의 출간은 모리타 마사오의 저작을 기다리던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모리타 마사오는 독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어려운 사상을 한 흐름으로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더구나 계속되는 사유의 흐름 속에서 핵심을 찾아 독자들도 그 흐름을 함께하며 지적 자극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독립연구자 박동섭이 맡았다. 모리타 마사오와 깊이 교류하며 그의 사상적 깊이를 소개하는 데 전력을 다하면서 또한 ‘재단사 언어’가 아닌 ‘꼬마 언어’(이 표현에 대해서는 옮긴이 후기를 참조하라)의 사용자가 자꾸자꾸 늘어나길 바라며, 모리타 마사오의 책을 성심껏 번역 소개하고 있다.
1장 ‘아는 것’과 ‘조작하는 것’에서부터 마지막 장 계산과 생명의 잡종hybrid까지,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새로운 생각을 이끌었는지, 진정한 창의력은 어떻게 등장하는지, 계산의 변천사를 통해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미래를 계산해서 알게 된 위기의 본질과 그 대안에 대해서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