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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도 칼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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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이영일 | 가을이 발갛게 물들었다. 산은 비단 단풍으로만 빨갛지 않다. 사람들 옷차림이 유난히 붉다. 곧 헐벗은 듯 낙엽이 지겠지. 잎사귀 한 올 한 올 죄다 떨어져 흙과 만나 거름이 되리라.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남녘으로 향하는 빠른 발걸음은 허기진 내 마음을 다 채우진 못한다.
황금들판과 남실거리는 억새밭을 지나 쪽빛 바다에 풍덩 안기고 싶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목포 앞바다에 차를 세우고 흑산도로 가야지. 이젠 혼자가 아니어서 좋다. 아내와 해강이 솔강이도 함께 가니 단단히 채비를 하여야겠다.
비금도 도초도 사이를 쏘옥 지나면 물살이 가파르다. 큰 배가 가는 듯 마는 듯 위아래로 요동치면 홍어 잡이 배를 탄다던 몇몇 어른들도 내장이 울렁거려 혼절을 할 게다. 1시간 40분 여 달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흑산도(黑山島)가 왜 검은지 안다.
철마다 흑산은 까맣다. 소나무와 동백으로만 어우러져 꽃이 피어도 온통 칠흑이다. 밤낮 까만 섬을 손암 정약전 선생은 자산(玆山)이라 했다. 현산(玄山)이라 한들 나무랄 일도 못된다. 예리 항에 정박하니 갈매기가 자꾸 내리라 주위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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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도 남문 바위도 보고 오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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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이영일 |
| 그곳을 지나오는 동안 둥둥 떠 있는 섬마다 ‘예리’가 있고 ‘진리’가 있다. 아마도 임금께서 유배를 보내니 두말 않고 노를 저어 흑산으로 향하다 갖은 풍랑을 만나면 아무데고 내려서 “전하 저 흑산도 예리에 잘 도착하였나이다.” “신(臣)은 진리에 내려 님을 그리워하고 있소이다.” 거짓으로 고하였을 터다.
흑산도에 내려도 좋겠다. 동행하는 방송 관계자와 우린 비릿한 내음을 맡는다. 내일 아침 “돌아오마.” 다짐하곤 우릴 내려주고 급물살을 가르며 멀어져 간다. 먼저 현지인들을 만나 안내를 받고 홍어집 탐색에 들어간다. 전복회도 곁들여 술잔이 오간다. 내일 이른 아침 승선 계획을 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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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 보는 작은 어선과 부서지는 바닷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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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아차! 상라봉에 올라 홍도가 붉게 물들어 가는 걸 먼저 보아야지. 택시 같지도 않은 바퀴 큰 차를 타고 급히 달렸다. 하루의 마지막 에너지를 소진하려는 듯 바닷물이 쪽빛에서 구릿빛으로 이내 출렁였다. 곧 바알갛게 타오르겠지. 본 섬에서 홍도(紅島)를 바라보면 늘 그런 모습이었다. 흑산도(黑山島)와 홍도(紅島)는 가까이 있지만 이토록 다르다.
불덩이 속으로 작은 배가 오간다. 미끄러져 간다. 귀가다. 오늘 어황은 어땠을까? 더 이글거리는 쇳물이 용광로 밖으로 흩어져 감싼다. 그 뜨거운 기운이 튀어 오를지도 모른다. 주위로 전복 양식장이 유난히 식욕을 돋운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 횟감 두툼하게 잘라 잔치를 해볼까.
섬섬玉섬 떠 있는 사이로 넓은 바다 밑엔 조기, 멸치, 광어, 우럭이 산다. 전복, 멍게, 해삼, 조개, 새우가 제 영역 넘나들며 쉴 새 없이 입을 놀리겠지. 바위틈엔 김, 파래, 미역, 톳, 메생이가 다닥다닥 붙어 서로 돕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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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 바닷가 해초와 조개가 때묻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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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돕고 살고 있는 무리들 중에 단연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속살이 붉은 생선이 유유히 밑바닥을 훑고 다닐게다. 홍어(洪魚)다. 서울에서 그렇게 홍어에 미쳐 돌아다녔지만 흑산도에서, 배 위에서 툭 잘라 먹는 광경에 합류한다는 사실에 감개무량 그 자체이리라.
홍어는 바다 밑에 사는 모든 것을 주워 먹으며 햇볕 몇 줌 쐬지 않는다. 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싱싱한 이 생선이 무에라고 우린 그걸 잡는 풍경과 바다의 생태, 어부들 얘기를 들으며 배 위에서 술 한잔 걸치러 무작정 흑산도, 홍도로 향하는 것이다. 구경은 다음 일이다.
흑산도만 봐도 감지덕지다. 황홀경이다. 허기를 채우고 흑산도 곳곳을 돌아도 여전히 허전하다. 밤이 깊어지길 기다리다가 몇 순배 돌면 잠을 청해야 새벽녘 홍어잡이 배에 올라 선장이 동행자 모두를 실어주면 저 멀리 어렴풋이 밀려가는 어둠을 깨고 “통! 통! 통!” 싸늘한 아침 시원한 공기를 가득 머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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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 상라봉에서 홍도를 바라보며. 어슴푸레 보이는 곳이 홍도니 지척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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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미끼 없는 다닥다닥 붙은 낚싯줄을 내리고 올린다. 파닥이는 홍어를 건져 올리느라 어부 손길이 더 바빠진다.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연신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아가씨~”를 흥얼거리는 이도 있다..
그때 “파다닥!” 물 위에 떠서 이끌려오는 저 연(鳶)은 무엇인가. 춤을 춘다. 하늘거린다. 다들 그 신기하고 오묘함에 넋을 잃고 있다. 연잎이 나풀거린다. 그래 저게 홍어란 말인가.
“야~” “야!”
해강이 솔강이도 “엄마 아빠 저것이 홍애야?” 할 게 분명하다. 이보다 더 좋은 산교육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난 아이들에게 “그래 저것이 홍어다. 고모가 팔고 우리가 자주 먹는 홍어지. 멋지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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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슲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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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 수컷은 만만한 걸 잘라 던져보자 보채볼 참이다. 즉시 냉장실로 옮기느라 정신없겠지만 도시 촌놈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과 전작이 있는지라 붉은 살점 툭 잘라 주면 좋겠다. 질겅질겅 씹는 그 맛은 또 어떨까. 홍어잡이 체험과 학습은 그렇게 밤을 잊고 시작한다. 알큰해진 기분에 서광이 비치면 바다가 꿈틀대겠지.
홍도를 돌고 다시 배에 올라 흑산 일주를 하면 노곤하던 차에 무엇인들 맛나지 않을까보냐. 2박 3일 중 마지막 날 새벽엔 홍어 경매장을 구경한다. 다시 그 먼 바닷길에 손 흔들면 갈매기 “끼룩끼룩” 우리 다시 만나자며 아쉬워 서울 올라오는 길에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나 <광주김치축제>를 들렀다 오면 이보다 좋은 여행은 없으리라.
이번 수학여행이 끝나면 홍어 책 마무리 하는데 별 무리가 없으리라. 낱낱이 기록하고 눈으로 보고 듣고 그도 모자라면 같이 간 사람들 머리까지 빌려야지. 홍어앳국은 꼭 먹고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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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장고에서 홍어를 꺼내는 순간 붉은 해가 쫘악 비추니 홍어 빛깔 더 붉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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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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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경매 장면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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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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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에 꽤 높은 산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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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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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 예리항에 밤이 찾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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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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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경치 죽인다...울땐 초중고맨날 경주였는데... 부럽따...
홍어내음이 코끝을 찌르는듯 하군요 ^^ 즐거운 여행길 되십시요
퍼갑니다 물론 저작권 까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