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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 고난에 대한 명언
☆ “어둠이 전혀 없다면 사람은 타락이 무엇인지 조금도 알지 못할 것이다. 또 광명이 전혀
없다면 사람은 구원을 전혀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그림자가 어느 정도 보
였다 안보였다 하는 것은 정당할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유익하다.”
☆ “인간에게 있어서 고뇌에 복종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다. 오히려 쾌락에 복종하는 것이야
말로치욕이다.” (세계를 움직인 명언, P.137 - 파스칼)
☆ “대체로 재앙은 적의 간첩과 같이 혼자서 오는 법이 없고 항상 떼를 지어서 닥친다."
☆ “지금이 최악의 사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동안은 아직도 최악이 아니다.”
(세계를 움직인 명언, P.141 - 세익스피어)
▣ 무릎 꿇고 있는 나무
로키 산맥 해발 3천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있어야 합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합니다.
*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입니다.
- 지혜로 여는 아침 중-
▣ 타산지석(他山之石) / 옥은 숫돌로 갈아야...
* 깊은 숲의 학 울음소리
ꡐ타산지석ꡑ이란 글자 그대로 ꡒ남의(他) 산(山)의(之) 돌(石)ꡓ이라는 뜻입니다. 이 성어의 기원은 《시경(詩經)》이라는 책입니다. 아득한 옛적부터 민간과 궁중에 유포된 시들을 공자가 모아 정리했다는 이 시가집(詩歌集)에 <학이 울다(鶴鳴)>라는 시가 들어 있습니다. 그 시는 두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문은 이렇습니다. 번호는 임의로 붙인 것입니다.
깊은 산 연못가에서 우는 학(鶴鳴于九皐)
그 소리 멀리 들판에까지 들려 오네(聲聞于野)
물고기는 연못 속에 깊이 숨어 살지만(魚潛在淵)
때론 나와 놀기도 하지(或在于渚)
저기 저 즐거운 동산에(樂彼之園)
박달나무 한 그루 있고(爰有樹檀)
그 밑엔 수북한 낙엽들(其下有)
남의 산의 돌맹이도(他山之石)
숫돌로 쓸 수는 있지(可以爲錯)
깊은 산 연못가에서 우는 학(鶴鳴于九皐)
그 소리 하늘에 울려 퍼진다(聲聞于天)
물가에 나와 노는 물고기라도(魚在于渚)
때론 연못 깊이 숨어버린다(或潛在淵)
즐거운 저기 저 동산(樂彼之園)
박달나무 한 그루 있고(爰有樹檀)
그 아래 자라는 닥나무들(其下有穀)
남의 산의 돌맹이라도(他山之石)
옥을 다듬기엔 요긴하다오(可以攻玉)
주자(朱子)라는 남송(南宋)의 철학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세운 학문과 철학이 주자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져 조선조의 정통 학문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 정도는 여러분들이 상식으로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선조는 유교경전에 대한 이 분의 해석을 거의 절대적인 존경으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분은 이 시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학과 물고기는 ꡒ경륜과 덕성을 품고 산 속 깊이 숨어 사는 은자들ꡓ을 가리킵니다. 숨어 살더라도 그들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기 마련입니다. 첫구절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타산지석은 ꡒ군자로 하여금 그같은 위기를 시시각각 첨예하게 인식시켜 주는 계기, 구체적으로는 ꡒ소인배, 정상배, 모리배들ꡓ을 가리킵니다.
요컨대 주자는 이 시를 소인들에 둘러싸인 군자가 자기존엄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정치윤리적 상황으로 읽었던 것이지요. 군자는 소인배들과의 실존적 긴장과 정치적 투쟁을 통해 성숙하고 발전해 나갑니다. 그 진실을 주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ꡒ옥으로 옥을 갈 수는 없다. 옥은 숫돌로 갈아야 하는 것이다.ꡓ
* 모범이냐, 전철(前轍)이냐
군자를 연마하기 위해 쓰이는 숫돌은 다름아닌 소인배를 가리킵니다. ꡐ타산에서 나는 돌ꡑ은 분명 ꡐ악역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청대의 유명한 학자인 전겸익(錢謙益)의 《초학집(初學集)》에는 다음과 같은 용례가 실려 있습니다.
강릉(江陵: 중국의 지명)에서 서원(書院)을 허물었다는데 이 또한 타산지석이라, 학문을 논하고 제자들을 모음에 있어 참으로 신중해야 할 것이야.
강릉에서 서원을 허문 사건은 ꡐ본받아야 할 전범ꡑ이 아니라,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ꡐ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전례ꡑ입니다. 그 점을 분명히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타산지석을 ꡐ좋은 모범ꡑ이나 ꡐ성공사례ꡑ로 쓰는 사람도 많이들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적절한 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님네들이 주자의 해석을 근거로 전통과 문화의 의미를 구축해왔다는 현실론에서도 그렇지만, 타산지석을 처음의 뜻인 ꡐ좋은 모범ꡑ이나 ꡐ성공사례로 한정하면 별다른 맛이 없는 덤덤한, 김빠진 맥주같은 경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고사성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심원한 의미, 혹은 상식의 허를 찌르는 의외의 충격같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처음의 해석은 맛이 없습니다. 상식이나 통념을 넘어 별다른 각성이나 충격을 주는 바가 없다는 말이지요. 인간은 선(善)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악(惡)을 통해서도 배우는 법입니다.
나중의 해석을 따를 때 우리는 신선한, 톡 쏘는 듯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훌륭한 인격, 뛰어난 업적에 분발하기도 하지만, 못난 사람, 실패한 사업에서도 삶의 교훈을 얻는 법입니다. 우리가 귀를 귀울일 자세만 갖추고 있다면 아무리 하찮은 사건, 아무리 미미한 생명체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합니다.
주자의 생각대로 역경이야말로 사람을 키우는 힘입니다.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긴장에서 이해했습니다. 도전에 적응하여 혁신하지 못하는 문명과 국가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안정 속에서는 충분히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키워나가지 못합니다. 적절한 자극과 도전, 긴장 없이는 인격의 성숙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ꡒ하늘이 사람을 낼 때는 그 근육과 뼈가 얼마나 튼튼한지 시험해 보는 법이다.ꡓ 무릎이 약한 사람은 일어설 수 없습니다. 이 무더위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
▣ 두 개의 꽃병
영국의 조지 왕은 형인 앨버트 빅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급히 왕위를 이어받은 뒤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과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긴장된 생활에서 오는 불안으로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작은 소도시의 한 도자기 공장에 들르게 되었다. 평소 도자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는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공장을 둘러보았다.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안내된 그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두 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유심히 살펴 보니 두 개의 꽃병은 같은 원료와 같은 타일을 사용하여 무늬까지 똑같은 것이었는데,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 모양을 하고 있는 데 비해 다른 하나는 투박하고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이 공장장에게 물었다.
"두 개의 꽃병이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겠지만 그 느낌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 다르오. 하나는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졌으니 이곳에 전시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하나는 이곳에 두기엔 형편없는 것 같소.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두는 것이오?"
왕의 물음에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어졌고 또 하나는 구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합니다. 저 두개의 꽃병을 나란히 이곳에 전시해 둔 것은 그런 뜻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 송이네 이야기
엄마 송이는 갓 아래에서 떠나려고
준비하는 자식(포자)들을 불렀다.
엄마 송이가 말했다.
"얘들아, 너희는 절대 좋은터를 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왜 좋은 터를 잡지 말라고 하지요?
좋은 터가 좋은 것 아닌가요?"
엄마 송이가 대답했다.
"내가 엄마 갓을 떠나올 때였지.
나는 솔바람이 실어다주는 대로 왔는 데 비해
언니는 굳이 좋은 터를 골라서 내렸단다."
"그런데말이다.
언니는 흙 밖으로 고개를 못내밀고 일생을 마쳤지 뭐니."
아이들은 놀라며 반문했다.
"엄마, 왜 그렇게 되지요?
좋은 터에 뿌리를 내리면 더 잘 자라는 것 아닌가요?"
"아니다. 좋은 조건에서는 한없이 계속 뿌리만 자라는 것이 우리 버섯이란다.
엄마 송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게 오백 살을 먹도록 땅 속에서 뿌리만 크다가 죽은 우리 선조도 있단다."
"흙 밖으로 버섯을 내밀기 위해서는 뿌리의 자람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야해.
송진이나 산성 같은 역경이 곧 땅 위로 자라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지."
송이네 아이들은 다짐했다.
"엄마, 알았어요
역경을 반가워하며 살겠어요.
그래야 우리도 엄마 같은 송이버섯이 되지요."
▣ "자라지 않는 아이"
미국의 여류 소설가 펄 벅 여사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큰 딸 캐롤은 자라지 않는 아이였다. 어제부터인지 지능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정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그녀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딸의 친구들마저 하나 둘 떠나 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펄 벅 여사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그러나 충격이 조금 가라 앉자 그녀는 딸의 장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딸에게 글자 한자라도 더 가르쳐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한 글자를 알면 그 만큼 딸의 지능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 종일 딸 곁에 붙어서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펄 벅 여사는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연필을 쥐고 있는 어린 딸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 이건 잘못 하고 있는 거야. 이 아이는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글자를 깨우치고 나면 이 아이가 행복해질까?"
그제서야 그녀는 글자나 숫자를 무리하게 가르치는 것으로는 결코 딸이 행복해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딸이 뛰어 다니며 밝게 웃던 모습을 생각해 내고 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때부터 펄 벅 여사는 미국 내의 심신 장애아 학교란 학교는 모두 찾아다니며 딸에게 맞는 학교를 찾았고, 마침내 뉴저지 주 빌란드에서 '사랑의 학교'를 찾아냈다. 그 곳은 자라지 않는 딸에게 가장 자기 자신다울 수 있는 권리와 행복할 권리를 줄 수 있는 곳이었다.
* '좋은 생각' 이천일년 이월호에서.....,
▣ 약할 때의 강함
중국의 유명한 전도사 위치만 리는 젊었을 때 몸이 심하게 연약하여 의사로부터 청년시절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몸을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를 드렸다. 한번은 그가 이런 꿈을 꾸었다.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한가운데 이를즈음 큰 바위에 걸려 더 이상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 배가 지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이 바위를 옮겨 버릴까, 그렇지 않으면 물이 불어 네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련?"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하나님, 물이 점점 불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순식간에 바위가 안보일 만큼 물이 불어 올랐다. 그는 그 위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꿈을 깼다. 꿈을 깨고 나서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의 부활의 생명을 넘치게 얻어 그 병을 날마다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의사는 그에게 청년시절을 못넘기고 죽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그는 중국 기독교 역사상 지울 수 없는 큰 발자취를 남기며 80살이 넘도록 살았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에게 고난의 가시가 다가온다. 우리는 이 고난의 가시를 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동기로 삼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애통의 가치
어떤 여자가 자기의 삶을 마치고 사후 세계로 가기 위해서 스탁스위버라뉴 강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 여자는 웨론이라는 요정을 만났다. 요정은 그 여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 강을 건너가기 전에 리틀스 계곡의 샘물을 마시고 가겠는가?"
여인은 물었다. "내가 그 샘물을 마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자 요정은 말했다.
"만약 그대가 리틀스의 샘물을 마시면 세상을 모두 망각하고 이 강을 건널 수가 있다."
"나에게 그 샘물을 주십시오. 나는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다 잊고 싶습니다."
"허나 여인이여, 그대는 동시에 모든 기쁨도 잊을 것이요."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실패를 망각하고 싶습니다."
"여인이여, 하지만 동시에 그대는 성공도 잊을 것이요."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잊고 싶습니다."
"여인이여, 하지만 그대는 동시에 사랑도 잊어버릴 것이요."
한참을 생각하던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샘물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 여인은 마지막 인생 순례의 정점에서 기쁨은 고통을 동반하고, 성공은 실패를 수반하며, 사랑은 상처를 동반한다는 진리를 배울 수가 있었다. 애통은 확실히 가치가 있다.
생명의 양식 중에서
▣ 어부와 해초
어떤 해안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어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이상하게 해초가 많아서 고기를 잡는데 방해가 된다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늙은 어부가 말하기를 "그렇지만 해초가 없으면 새우 새끼도 없단 말이다. 그리고 새우가 없으면 고기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했다. 정말 우리 생활 가운데 해초 같은 장해물이 늘비하게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성도들에게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 팔 없는 천사
레나 마리아는 스웨덴 태생으로 수영선수이며 가스펠 싱어이다. 세 살부터 시작한 수영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스웨덴 국내대회를 휩쓸었고, 서울 장애인올림픽에서 자신의 수영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었고 다리도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비해 절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절망하지 않고 사랑으로 키웠다. 그녀가 물에 친숙하다는 것을 알고 어려서부터 수영을 가르쳤는데, 수영은 천성적으로 약한 그녀의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었고, 그래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긴 호흡의 노래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마스터스 보이스라는 가스펠 합창단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스웨덴 국왕의 도움으로 국제성서학교에 입학했으며, 대중 앞에서 가스펠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세계를 돌며 하나님의 노래를 전했다. 이런 그녀를 옆에서 같이 활동하며 지켜보던 한 남자가 청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지금도 결혼반지를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며 아름답고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 고난 뒤의 새로움
영국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가 쓴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속에 살고 있는 새 한마리가 어느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났
습니다. 그 새는 자기의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산을
향해 날아가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산을 떠나면 죽을 것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으나 그것은 허사였습니다. 폭풍을 이기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
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새는 폭풍이 부는 대로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폭풍을 따라 한참 날아갔습니다. 드디어 폭풍도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눈 앞에는 푸른 초장과 멋진 수풀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나는 것이
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살던 거친 수풀의 산과는 비교가 안되는 훌륭한 수풀과
산이었다는 것입니다.
▣ 3월의 강한 바람
식물학자의 말에 의하면, 겨울이 지난 후 3월의 강한 바람이 불어 올때 나무가지
가 마구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에는 애처로울지언정, 그 강한 바람은 나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초봄의 강한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림으로서 새잎을 내는데 필요한
영양이 위로 잘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뿌리로부터의 영양공급이 겨우내
활동 안한 나무 줄기를 통하여 새싹 부분까지 원활히 잘 올라 가자면 바람에 흔들
리는 운동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한 생활만을 행복이라고 알고 지낸 사람의 일생에 인간으로서의 위대성이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인생길에 거센 바람을 안 맞아 보는 이 없을 것이다. 문제
는 당신의 신앙과 의지가 그 바람을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하는가이다. 범사에 감사
하시라. 주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히 당면하시라.
▣ 고난 뒤에 축복 -존 후랭크린
영국의 존 후랭크린 경이 인솔하는 탐험대가 북극에 도착했을 때
허리에 차고 있던 알콜이 병 속에서 얼어버리는 영하 70도의 극심한 추위였습니다.
추위와 피곤에 지친 대원들은 오두막 속에 들어가서 누워 자려고 했습니다.
이들이 30분 동안만 누워 잠들면 누구나 얼어 죽는다는 것을 잘아는 후랭크린 경은 그들이 잠을 자지 않도록 지시했으나 저마다 "잠을 자지않고 잠시만 쉬겠습니다."라고 하며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후랭크린 경은 대원들을 발로 걷어찼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먹으로 때려주었습니다.
얻어 맞고 멍이 든 사람도 생겼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잠을 못자게 하려는 대장의 무서운 노력으로 대원들은 비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그들을 걷어찬 대장의 발도 아팠을 것입니다.
그들을 때린 대장의 주먹질은 가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을 구해 준 것은 대장의 그 발길질과 주먹질이었던 것입니다.
추위에 얼어 죽기 바로 전에는 정신이 몽롱해지고 구름을 타는 것처럼 평안하고 기분이 좋기 때문에 자기가 얼어 죽는가보다 하면서도 못깨어나고 그대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 만약 내게 다시 한번 생명이 주어진다면 -도스토예프스키
스물 여덟 살의 한 청년이 사형대에 묶여 있었다.
영화 50도의 추위가 청년의 살을 바늘처럼 찔러댔다.
이제 청년에게 주어진 인생 시간은 단 5분.
청년은 가족과 친구를 생각하는데 3분을 사용했다.
그는 28년의 삶에 대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만약 내게 다시 한번 생명이 주어진다면 정말 보람있게 살 텐데…,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다니…"
그때 멀리서 한 병사가 황제의 특사명령을 갖고 달려왔다.
"황제께서 사형집행을 중지하라는 특명을 내렸소."
청년은 극적으로 사형을 면했다.
청년은 그때부터 절대자와 인간의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와 부귀가 있더라도 그것이 신앙에 위배되면 나는 그리스도의 편에 설 것이다."
이 청년이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다.
고난을 경험한 사람은 인생의 진리를 안다.
사람은 행복하고 평안할 때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루이스
루이스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많은 책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역사학 교수요, 평신도 전도자요, 문학가였던 그는 그의 아내의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특별히 이 고통에 대해 많은 글들을 썼습니다.
그중의 한 부분에서 그는 이런 감동적인 증언을 했습니다.
"우리가 쾌락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다가와 내게 속삭이신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다가와 내게 큰소리로 고함지르신다."
쾌락 속에서는 하나님이 가만히 말씀하시니까 잘 들리지 않습니다.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지금 바쁜데요."
그러나 고통 속에서는 하나님이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시니까 잘 들립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고통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큰소리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율하도록 듣게 됩니다.
▣ 고난이 주는 유익
1895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는 비통한 슬픔에 잠겼다. 목화재배로 유명한 이곳에 갑자기 목화바구미가 들끓기 시작했다.
목화수확은 절반으로 줄었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나돌았다. 도시는 삽시간에 실직자와 결식자의 탄식소리에 휩싸였다.
그때 일단의 농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밭에서 목화를 뽑아내고 그곳에 땅콩을 심었다. 농부들은 ‘절망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20년 후, 이곳은 ‘땅콩의 수도’로 불릴 만큼 풍요로운 도시로 변모했다. 엔터프라이즈 마을 입구에 세워진 목화바구미 기념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우리는 목화바구미에 감사한다. 그 날의 시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목회벌레여, 그대들이 준 고난에 감사하노라”
성경의 야고보는 우리에게 말한다.“시련을 만나거든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
▣ 베토벤의 고난
동양인들이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음악에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명작 들은 고통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서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셨기 때문에 베토벤은 11세부터 극장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돈을 벌어야만 했다. 17세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 직 어린 소년이 동생까지 부양해야 했던 것이다. 30 세부터 음악가의 생명인 귀가 이상하기 시작하여 만년에는 완전히 듣지 못했다. 심포니 No.9을 연주했을 때는 박수갈채 뿐이 아니라 큰 소동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이런 관중의 열광 을 옆에 있던 사람에게 주의를 받고서야 알 정도였다.
그는 눈보라가 내리치는 쓸쓸한 밤에 혼자 57세를 일기(일기)로 죽었다. 그의 눈을 감겨준 이는 지나가던 한 나그네였 다.
이런 생활을 보면 베토벤은 불행한 사람 같다. 그러나 아무 도 모르는 넘치는 행복을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괴로움을 뚫고 나아가 기쁨을 발견했다"고.
그의 음악은 대부분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 환희(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베토벤은 젊어서는 신앙이 없었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갔다.
▣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 올랐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
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 솟아 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앗차!! 나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 오를 만큼 강건해 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아멘"
주제 : 고독
▣ 고독명언
아이작 디즈레일리
고독은 열정의 간호원이다. 그리고 열정은 천재의 부모다. 어느 시대건 고독은 부르면 즉시 달려갔다.
헨리 도로우
나는 고독보다 더 절실한 친구를 발견한 것이 없다.
조지 버나드 쇼
홀로 설 수 있는 힘은 어떤 슬픈 고독의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 다.
찰스 램
그대여! 당신은 군중 속에서 뼈아픈 고독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조셉 포트 뉴톤
사람들이 고독한 것은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토마스 울프
그리스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 이 고독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생활 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고독한 인간
1979년 뉴욕에서는 일본의 유명한 사진작가의 카메라 사진 전시회가 있었다. 고독이라는 제호의 사진전이었는데 작가는 부제를 붙여 "한 인간의 고독"이라고 했다. 사진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뉴욕의 뒷골목인 흑인들만이 살고있는 거리였다. 불이 꺼진 석유난로가 있고 새벽년에 뿌옇게 창가를 찾아오는 냉기만이 있는 한 칸 방에 한 노인이 흰벽을 향하여 담요를 뒤집어 쓰고 앙상하게 누워있는데 머리 맡에는 전화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 전화가 바로 사진의 초점이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밀폐된 방안에 외부 세계와의 단 하나의 연결인 가느다란 이 전화선이 놓여 있을 뿐이다.
어김없이 하루에 한 번씩 전화벧이 울렸다. "밤새 별 일이 없으셨습니까?"
이 전화는 자녀들이나 친구들이 아닌 "장의사"의 문의 전화이다. 전화의 응답이 없으면 이 노인이 간밤에 별새한 줄로 알고 앰브란스가 늦지 않게 찾아오도록 조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려는 전화선 하나 외에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이 노인방에서 죽음 앞에 서 있는 이 노인 방에서 죽음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의 고독을 상징으로 한 사진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원인은 죄 때문이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인간은 그 고독의 숙제를 풀지 못할 것이다.
▣ 변신(고독한 인간)
독일의 유명한 작가 카프카(Frahz Kafka)의 작품 중에 [변신]이라는 것이있다. 주인공 글레골은 외판원으로 생업을 이어가며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젊은 가장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의 몸 전체가 다리가 무수히 달린 한마리 벌레로 변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직장에도 물론 못나간다.
그의 흉칙한 모습을 발견한 집안 사람들이 순식간 살벌해 진다. 어머니는 졸도를 하고, 아버지는 그를 방에 가두고는 방문을 잠궈 버리고 말았다. 이제껏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해왔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온 식구의 경멸과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리게 되고, 그레골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허무감과 함께 고독이 휩싸이게 된다. 그의 생활이란 감금된채 갖다 주는 시가사를 받아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날이 갈수록 자신을 저주하며 고독과 열등감의 수렁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날아침 가족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는 그를 발견했고 그들은 애도의 눈물은 커녕 오히려 오랜만에 맞는 해방감을 만끽하듯 식구들이 함께 산책을 즐긴다. 이 작품에서 카프카는 인간의 궁극적인 고독을 강하게 묘사하고 있는것이다. 인간의 영원한 고독을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