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정기 받아 손진담
봄 여름의 지루한 코로나 19 전쟁을 치르는 동안 모든 대면 행사들은 가을로 미루어졌다. 마침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 단계 낮아진 10월 19일은 몇 달 전부터 예약된 과학특강이 수행되는 날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우회 협동조합에서 주관하는 비도시지역 중고등학교 지질자원특강프로그램에 참여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전국에 걸쳐 있는 특강 소외지역에서 강연이 이루어지다 보니 대전에서 당일로 갔다 오기가 어려운 곳이 많았다. 올해는 지리산 서부인 전남의 구례고등학교와 동부인 경남 산청 지리산고등학교가 선정되었으나 팬데믹현상으로 차일피일 강연 일자가 미루어져 왔었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마지막에 위치한 명산이자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수많은 봉우리가 웅장하고 수려하게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총면적이 무려 483.022 km2로서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 경남 하동과 산청, 함양에 걸쳐 있고 최대 높이 1,915m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이산(地異山)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지질학적으로도 ‘지리산 편마암 복합체’라 불리는 광범위한 원생대의 지층들로 구성되어 있어 남한의 지반을 든든히 지탱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머니 산이란 표현이 여러모로 잘 어울린다. 그 어머니 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산청면 단성면의 지리산고등학교가 오늘 강연할 대상이다..
대전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고속도로상 중간지점인 무주 덕유산휴게소에서 잠시 단풍을 만끽하며 쉬었다가, 육십령 긴 터널을 지나니 어느새 경남의 함양 땅에 들어섰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와 대구-광주 88도로가 교차하는 함양은 지리산국립공원 권역이라 고산지대의 가을 정취가 피부로 다가왔다. 다시 남으로 더 달려 터널들을 몇 개 지나니 ‘물, 공기, 토양의 청정지역 산청’이란 거대 간판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가장 중요한 친환경 요소가 이곳에 다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맑아지고 활기가 넘쳐났다. 그간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에서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 위험을 감내하느라 집 밖에만 나오면 마스크로 무장해야만 했던 답답한 순간들이 금세 사라져 갔다. 단성나들목을 빠져나와 지리산국립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남사 예담촌’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지리산고등학교는 지척이라 여가를 이용하여 쉬어가기로 했다.
남사예담촌은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위치한 전통문화 체험 휴양마을로 조선 시대의 사대부 고택이 즐비하고, 골목길 따라 토석 담장에 고색창연한 담쟁이 넝쿨과 향기 그윽한 매화나무, 부부회화나무(선비 나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개천 건너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와 고난 길에 일박한 유숙지, 그리고 독립운동 백 주년 파리 장서기념비와 유림독립기념관도 역사적 자랑거리였다. 남사 마을을 감도는 사수천에는 거대 편마암 노두( 용소 바위와 자라 바위)가 긴 세월 동안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더욱이 굴러온 천변의 큰 자갈들은 옛 담장에 박혀있어 예담촌은 지리산 변성암의 멋진 표본전시장을 방불케 하였다. 가을맞이 여행객들이 골목마다 오가며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고 있었지만, 마스크 착용들이 왠지 어색해 보였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름다운 이 마을에서 맛집으로 이름난 예담원의 한정식으로 오찬을 즐긴 후 예정 시간에 맞춰 학교로 달려갔다.
지리산고등학교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2003년에 학교법인 학림학원에 의하여 자율학교로 설립 인가된 지리산고등학교는 사립. 단설 학교로서 전교생 53명 중 1.2학년 37명이 이번 강연 대상자들이다. 커리큘럼 상 대안학교이다. 교훈은 ‘사랑의 힘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꾼이 되자’이며 ‘받은 만큼 베풀자’라는 신념으로 인성, 봉사 교육을 중시하고 있었다. 전교생이 수업료, 기숙사를 포함하여 전부가 무상교육으로 운영되며, 모든 학생이 주인공이 되어 자율학습 드릴형 수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 행사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지역 여건에 알맞게 기획함으로써 신명 나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음을 행사 유튜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학원 이사장의 교육 경영철학이 남달라 매우 존경스러웠다.
강연은 오후 2시부터 교장실 옆에 마련된 소강당에서 이루어졌다. 모두 들 마스크를 낀 남. 여고생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가지런히 앉아있어 정감이 갔다. 오늘의 강연 주제는 ‘지구환경과 에너지자원’이지만 지리산 일대의 지질환경과 역사도 언급하였다. 지구의 역사 중에서 바이러스의 역사는 모든 동식물의 역사보다 앞서고 있으며, 10억 년 전 지리산 암석이 형성될 때도 존재하였다는 것, 환경에 적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불응자는 도태당하는 엄연한 진리 앞에 인간들의 삶이 너무나 나약하다는 것, 산업화로 인한 물질만능주의가 인간을 다소 편하게는 해주지만 결코 건강과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등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탈도시화로 주거지, 일자리, 교육, 육아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로 로컬리즘(localism)의 교육 전당인 이곳 지리산고등학교에서의 학창 생활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전 국민이 만성피로감에 젖어있지만 잠시나마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청정지역에서 힐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 따라서 오늘 산청에서 보낸 가을 강연 여행은 지리산 정기를 듬뿍 받아 면역성을 배양하고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지리산고등학교의 경영철학과 건전한 학생들을 접하다 보니 코로나시대의 좋은 대안을 찾은 것 같다.
이글을 마감하는 오늘(10월 26일)도 전국의 확진자가 119명이 추가되어 25,955명에 달하며 사망자가 457명에 이르고 보니,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이별하기보다 같이 살아야 할 형편인가 보다!. 더욱이 전 세계의 통계를 보면 확진자가 3천만 명을 넘고 사망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류 존속의 열쇠는 바로 우리 라이프 스타일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의 생활준칙도 중요하지만, 남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공동체 의식의 생활패턴을 강화해가야 하겠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다 같이 베풀며 살자”.
첫댓글 좋은 곳에서 좋은 일 하고 오셨습니다. 작년 10월의 사건을 해를 넘겨 읽게되었습니다. 그동안 숫자들이 너무 바뀌어 생각이 헷갈립니다. 지리산에서 듬뿍 받은 정기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올 한 해 대덕과우회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려운 여건에 있는 지리산고등학교에 다녀오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댓글 주신 분 들 엄청 복 받으실 겁니다. 감사드립니다.
손 회장님! 코로나 난세에 멀리까지 사명감 가지시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