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이라는 돼먹지 못한 영화가 세간을 어지럽힌 것 같다. 이승만 찬양의 영화가 개봉되고, 서울 시장인가 하는 놈이 경복궁 옆 송현동 금싸라기 땅에 이승만 기념관을 짓겠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왜 이 시점에 이승만인가? 이명박, 박근혜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한 박근혜의 주요 목표는 주로 박정희 예찬이었다. 박정희 출생 100주년에 맞추기 위해 원래 2018년에 나와야 할 교과서를 한국사만 따로 떼어 2017년에 발행하도록 규정하였다. 그에 앞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로 사실상 채택률 0퍼센트였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도 이승만보다는 박정희를 찬양하는데 주력했던 느낌이었다. 이 두 교과서엔 박정희에 대한 서술 분량이 기존의 교과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윤 정권은 박정희보다 이승만에 더 주력하는 느낌이 든다.
대개 광복 이후 친일 반민족 세력들은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강아지처럼 달라붙었고 결국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 그 후예들은 정치, 언론, 경제 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 면에서도 한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친일 독재 세력은 반공이라는 공통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군부, 경찰, 법조계 등 국민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권력을 쥔 분야에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며 누구도 쉽게 깨뜨릴 수 없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 독재는 이를 보장해주는 특급 도우미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점차 민주주의가 이 땅에 정착하고, 시민 사회가 확대되면서 친일 독재 카르텔에 대한 국민의 비판 의식이 확대되자 위기감을 느낀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이른바 뉴라이트 사관이란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앞세워 일제의 한국 강점을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합리화하고, 이를 토대로 일제에 협력한 친일반민족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촛불혁명이 일어나 박근혜가 탄핵으로 쫓겨나자 친일 독재 세력들은 다시금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언론의 끊임없는 마타도어 속에서 일정정도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정부의 실정과 개혁 실패(특히 검찰 개혁)는 듣보잡의 윤석열이 정권을 잡게 되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자 잠시나마 빈사 상태에 빠진 듯 숨죽이고 있던 친일 독재 카르텔(그 핵심을 나는 조중동, 재벌, 검찰이라고 생각한다)은 다시금 화려한 부활을 꿈 꾸게 되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삼국외상회의 결의안에 신탁통치안이 포함되자 이후 김구 주도 아래 전국적인 반탁 운동이 전개되었다. 친일반민족 세력들은 여기에 적극 가담하여 자신들을 반공 애국 세력으로 화려하게 포장해갔고, 이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 권력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해나갔던 것이다. 이승만의 초대 대통령 취임사를 읽어 보시라. 거기엔 단 한 줄도 항일 독립 운동을 존중하고 애국 선열들을 추모하는 문구가 없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반공'의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이 탄생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 여전히 많은 기득권을 가진 친일 독재 세력들이 독재자, 학살자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면서 항일 독립 운동의 토대 위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친미 반공의 성과 속에서 출현했다고 보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저들이 '건국절'을 내세우고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데는 이러한 저의가 있는 것이다. 1960년의 4월 혁명 당시 아시아 최고 높이를 자랑하던 남산의 이승만 동상은 무너졌다. 러시아에서 스탈린 기념관을 모스크바에, 독일에서 히틀러 기념관을 베를린에 짓는다면 이를 용인할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과를 따지자면 스탈린이나 히틀러라고 공이 전혀 없겠는가? 지금 이승만 기념관을 서울 한복판에 짓겠다는 발상은 무너진 이승만의 동상을 더욱 크게 세우겠다는 것과 진 배 없다. 독재자, 학살자 이승만을 국부 이승만으로 포장하는 것은 저들이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불사불멸의 길을 가겠다는 망상인 것이다.
친일 독재 세력에 뿌리를 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은 지금 굥을 돌격대장으로 앞세워 '건국전쟁'이 아닌 거대한 역사 왜곡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검찰이라는 칼자루를 쥔 현 정권의 무도함을 감안한다면 이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겹고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4월 총선이다. 이번 총선에서 윤 정권을 단호하게 응징하지 못한다면 굥이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다.
둘째는 지금 진행 중이 2022 개정교육과정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이다. 아마 현 정권의 무도함을 감안하여 집필자들이 상당한 자기 검열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필자들은 일단 검정 통과가 목표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저들이 예전에 실패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와 같은 친일 독재 미화의 교과서를 다시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2개 이상의 출판사가 여기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교과서들은 그 질적 수준에 상관없이 검정통과될 것이고, 현장 채택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정권이 어떠한 꼼수를 부릴지는 대략 짐작이 간다(이 문제만 가지고 다시 한 번 글을 쓰려한다).
여하튼 당면 과제는 이번 총선에서 윤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다. 은퇴한 백면 서생 주제에 뭘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글이라도 써보는 것이다. 퇴직을 하니 글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어서 좋다. 정당도 가입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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