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중앙일보·JTBC 간부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손석희 사장을 비판했다는 지라시가 돌았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날 식사자리에 있었던 간부가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라시에는 손 사장과 JTBC기자들을 깎아내리는 대목도 등장했다.
홍 회장이 "중앙일보,JTBC가 가야할 길은 중도다. 얼마 전 JTBC 손석희 만나 중도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런데 못 알아듣는 것 같더라. 진영논리에 너무 빠져있더라. 팩트에 입각한 취재보도 하라고 했다. JTBC가 MBC, SBS 등 정상화되고 그들을 넘어서려면 중도로 가야하는데...솔직히 편향이 심하다. 나도 ‘한끼줍쇼’ 말고는 안본다. 중도로 가려면 JTBC 기자들이 팩트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데...거기 기자들이 오랜 편향에 젖어서, 팩트 위주 취재를 안해봐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는 것.
손석희 사장이 JTBC에 오면서부터 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편집국 내에 존재해왔으나 JTBC의 ‘성적’이 매년 상승하며 여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번 경우는 JTBC 후배기자들의 취재력까지 폄훼한 대목이 있어 JTBC 기자들도 적잖은 실망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왜 이런 지라시가 등장했을까.
중앙일보 한 기자는 “예전부터 손 사장을 두고 ‘언론인이 아니라 아나운서다’, ‘저널리즘을 모른다’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중앙일보 간부들이 있었는데 신문의 어려운 경영상황이 반영되며 안 좋은 편집국 분위기가 이런 지라시로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20일자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JTBC는 올해 개국 7년 만의 첫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지만 중앙일보는 올해 200억~300억 규모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급감한 삼성 광고 때문이다. JTBC 역시 연평균 100억 규모였던 삼성 광고가 올해 4억으로 급감했지만 중소·외국기업 광고가 붙으며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 중앙일보 편집국 분위기는 최근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흉흉하다. 구조조정 대상 1순위일 수밖에 없는 간부들 입장에선 삼성광고를 복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선 손석희 사장을 JTBC에서 내쳐야 한다.
이 때문에 홍석현 전 회장의 발언을 취사선택해 확대 또는 왜곡하는 방식으로 일부 중앙일보 간부급 인사들이 손 사장 흔들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입지가 위축되면서 결집하고 있는 셈. 하지만 지라시를 받아본 홍석현 전 회장은 자신의 말이 와전됐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홍 전 회장 입장에선 설령 JTBC보도에 불만이 있어도 이를 드러낼 상황이 못 된다. 손 사장이 나가면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중심인 JTBC의 각종 지표들이 얼마나 추락할지 가늠할 수 없어서다. 이번 일과 관련해 중앙일보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손 사장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손 사장은 지금 JTBC에 다녀주고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물론 홍석현 전 회장에게도 딜레마가 있다. JTBC는 손석희 사장이 있어야 돈을 벌고, 중앙일보는 손석희 사장이 없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 쪽 간부들이 계속해서 ‘손석희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사주의 몫이다. 이 때문에 홍 전 회장이 줄어든 삼성광고를 대신할 수 있는 또 다른 수익모델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중앙일보 간부급 기자들의 반발을 예고했던 중앙선데이 논란과 관련해서도 21일 경영진 입장이 전향적으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손석희 JTBC 사장은 21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굉장히 많은 곳에서 제게 지라시를 전하면서 JTBC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전한 뒤 “그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 다만, 우리 기자들의 취재 방향과 취재력에 대한 얘기는 분명히 바로 잡는다”며 심경을 밝혔다. 손석희 사장은 “우리는 신뢰도, 영향력, 공정성, 유용성, 열독률, 심지어는 세트 디자인에서까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1등”이라고 강조한 뒤 “단언코 유사 이래 이런 보도국은 없었다”며 기자들을 독려했다.
JTBC는 최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5년 작성한 반도체업계 역학조사 중간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반도체 여성노동자들의 혈액암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3배 높다”고 보도하는 등 삼성반도체 희귀암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