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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은 발견 이선균
그는 솔직하고 거침없다.
보기와 달리 꽤 시니컬하지만 가식없는 대화의 참맛을 아는 사람.
묻고 답하는 대신 듣고 동참하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
현장감 넘치는 생활인 이선균과 마주하다
일탈, 현실이 되다
기독교 집안의 4남매 중 막내. 그림 그리는 누나 따라 화실에 다니고, 초등학생 때부터 형이 듣던 김현식 음악을 접하면서 감성적으로는 또래보다 조금 더 블루하게 자란 것 같다. 어렸을 땐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안하고 "잘한다"는 칭찬에 으쓱했던 무지하게 착한 어린이였다(웃음). 일탈이라면 가끔 마음으로만 꿈꿨을 정도. 그러다 대학 입할 수 처음으로 집 떠나 살면서 혼자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만난 것이 연극이다.
새내기 회원들을 끌어가려고 동아리마다 난리였는데 유일하게 조용했던 연극부에 호기심이 발동해 찾아갔다. 그런데 동아리방에는 낡은 연극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소주 두 짝이 쌓여있었다. 야전점퍼를 입은 복학생 두 명이 날 본체 만체하며 바둑을 두던 분위기가 왠지 좋아 연극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 조명스태프로 일하다가 우연히 펑크 난 배역을 맡으면서 처음 무대에 섰다.
고등학생 때는 울렁증 때문에 발표도 잘 못했던 내가 수백 명을 똑바로 보면서 무언가를 막 토해내는 느낌. 너무 기본이 좋아서 잠까지 설친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살면서 처음 능동적으로 찾아낸 '내 일'이 바로 연기였고, 그걸 찾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연극원에 지원해 합격 통지를 받은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다.
나, 배우가 되다
학교다닐 때는 연습 끝나고 술한잔 하면서 연극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정작 졸업후에는 연극 한 작품 달랑 하고 TV로 옮긴것이 영 편치 않았다. 왠지 현실과 타협한것 같고, 만날 바보같은 역할 맡아서 헤매는게 솔직히 '쪽'팔리기도 했다. 게다가 신인의 설움, 시시각각 느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연기를 그만 두고싶은 마음도 들었다.
'쪽'파는게 직업인데 그 '쪽'파는게 힘들었으니까(웃음). 신인 땐 너무 떨려서 카메라도 못보고 얼어버린 적도 여러 번. 현장이 불편하니까 일단 여러 현장을 부딪쳐봐야겠다 싶어서 작품도 안 가리고 무조건 하다보니 작은 배역에 내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다 돌파구가 된 작품이 영화<알포인트>. 군대를 두 번 갔다 온 것처럼 힘들었지만, 동시에 연극만이 전부는 아니란 것. 영화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걸 배웠다.
연기, 생활이 되다
처음부터 검색어 1위의 스타가 되려고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니까 인기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나에 대해 "긴 무명 끝에..."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던데 정작 스스로는 한 계단씩 꾸준히 밟아왔다고 생각한다. 성격은 무지 급한데 연기에서는 '뜨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목표니까 조급해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하기보다 선택받는 일이 많은 만큼 불안감은 있다. 하나하나가 시험 같고, 시청률을 떠나 누군가 항상 나를 보고 있고. 지금 내 모습으로 다음 작품이 정해지는 것이니까. 그래서 일할 땐 더 예민한 편이다. 평소엔 옷을 입는 것도 까다롭고, 취향이 분명한 편이지만 작품에서는 무조건 역할에 맞게 입는 게 우선이다.
<하얀거탑>에서도 항상 스타일리스트한테 "새 옷 가져오지 말라"고 주문했고, 10회부터는 아예 양복 한 벌만 입고 끝까지 갔다. 그것도 대학 3학년 때 동대문에서 선물받은. 지금껏 한 번도 입지 않은 쓰리 버튼 쥐색 양복으로(웃음). 그래서 나와 비슷한 배역을 맡으면 그냥 내 옷을 입는다. 옷 속에 생활이 묻어나는 건 분명하니까. 대신 작품이 끝나면 헤어숍부터 달려간다. 다소 상징적인 의식인데, 좋은 싫든 이전의 것을 빨리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 둘이 되다
인터뷰할 때 가장 싫은 질문은 "사랑이 뭔가요? 유행가 가사에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 뭘 그렇게 물어보는지(웃음). 사랑이란 설렘? 아니면 어쩌면 노부부의 삶 자체가 진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스무 살 때부터 누군가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때론 바람도 피우고, 여러가지 엇갈린 설렘과 관심들이 오가면서, 또 그 사이 서로 재고 따지고 착각도 하면서 나이 60이 넘을 때까지 함께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여자 친구는 일단 말이 잘 통하고,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때론 서로에 대한 잔소리도 이해하고, 친구처럼 술잔 부딪히며 같이 고민도 나눌 수 있으니까. 지금껏 나 좋다는 사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왔고, 사귈 때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며 지켜보다가 고백하는 편이다. 지금 여자 친구도 4년을 만났는데 가끔 여자 친구가 "진짜 사귄 건 2년이었지"라고 말한다. 그럼 난 "네가 날 2년 동안 잰 거냐?"며 되묻고...(웃음). 언젠가 결혼을 하고 날 닮은 아들이 연기를 하겠다면? 의사나 변호사 되라고 할 거다.(그는 "노후 대비해야죠"라며 큰 소리로 웃었다.)
서른, 그리고 셋을 더하다
연기든 뭐든 '짜치게' 하지 말자는 게 목표. 인생의 큰 계획을 세워놓고 순서대로 사는 성격은 못된다. 작업할 땐 열심히 하고, 아닐 땐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사실 올해 서른셋이라는 숫자가 당황스러울 만큼 나이는 많이 든 것 같은데 철은 아직 안 든 기분이다. 물론 마흔이 되어도 계속 연기를 하고 싶고,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는 선배들, 좋은 감독들과 일하고 싶다.
4월 말부터 오만석, 류덕환과 <우리동네>라는 영화 촬영에 들어가고, 5월 초부터는 윤은혜와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드라마 촬영을 시작한다, 분량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제 조금 알려졌다고 해서 주인공만 하겠다고 욕심부리고 싶진 않다. 무리하면 탈날 게 분명하니까. 내 기준이 명확한 만큼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편이다. 가끔 남의 말을 듣기는 하는데, 결국엔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다만 '짜치진' 않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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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구야..보고싶었어요~~~♥
아...멋지시다...................................
마지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석씨랑 같은 작품해서 완전 좋다긔!!!
멋있어멋있어.......
균님균님♥
조아조아 우리 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