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이 제목에 등장하는 두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역사 덕후'들을 흥분시킬 만하며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Munich -The Edge of War, 2021)는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 뮌헨 협정을 둘러싸고 두 옥스퍼드 동창생이 벌이는 외교 전쟁을 그린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뮌헨'이 원작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마각이 유럽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시절, 히틀러를 암살함으로써 전쟁을 막으려 했던 젊은이들과 국지적인 분쟁에 개입하는 일을 피함으로써 더 큰 전쟁을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현실 정치 지도자를 대비시켜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묻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에릭 바냐, 다니엘 크레이그, 제프리 러시 등을 기용해 만든 드림웍스 픽처스 등의 영화 '뮌헨'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 1972년 뮌헨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기습한 데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비밀 작전을 그리며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을 돌아보게 하며 도덕적 딜레마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영어 'edge'를 흥미를 반감시키는 '모서리'으로 옮기지 않고 '문턱'으로 옮긴 것이 눈길을 붙드는 것이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다. 영화의 포인트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를 재평가하려는 데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체임벌린은 흔히 히틀러에게 속아넘어간 아둔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기록되는데 해리스는 '정신승리'에 가깝게 체임벌린이 의도한 대로 세계사가 굴러갔다고 본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체임벌린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이유가 설명된다.
영국인 휴 레갓(조지 맥케이)은 옥스퍼드에서 만난 독일 친구들인 폴 폰 하트만(야니스 니워너), 레냐(리브 리사 프리스)와 진한 우정을 나눴다. 둘이 독일로 돌아간 뒤 레갓은 뮌헨을 찾아간 일이 있는데 하트만은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의 자존심을 되살릴 유일한 지도자라며 떠받들어 둘은 언쟁 끝에 돌아선다.
그런데 히틀러가 체코의 주데덴란트를 침공하려고 준비하던 1938년, 하트만은 우연히 히틀러가 단지 독일의 영토를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독일인의 '생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려 한다고 발언하는 회의록을 입수한다. 그는 유대인 가게에 다윗의 별을 그려놓고, 유대인들에게 걸레로 길바닥을 닦도로 강요하는 나치를 보며 전쟁이 일어나면 더 많은 인명 살상이 벌어질 것을 예감한다.
해서 그는 비밀 조직을 활용해 영국 정부에 히틀러의 야욕을 담은 문서를 레갓에게 전달하겠다며 뮌헨 협정을 체결하려는 체임벌린 총리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한다. 곡절 끝에 하트만은 체임벌린을 만나는데 체임벌린은 '젊은이들의 치기' 쯤으로 받아들인다. 낙담한 하트만은 외신 브리핑을 틈타 히틀러와 마주 앉을 기회를 잡는데...
하트만이 레갓과 함께 체임벌린을 만나는 장면, 하트만이 히틀러와 독대하는 장면 등 10분남짓이 시쳇말로 '순삭'된다고 할 만큼 스릴러로 잘 엮여져 있다. 역사적 사실을 스크린에 잘 옮기기로 정평이 나 있는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슈뵈초브의 솜씨가 빛난다고 할 수 있겠다.
윈스턴 처칠에 견줘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는 체임벌린이 영국이 전쟁을 대비할 시간을 벌어줘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평가는 일종의 '정신 승리'로 비치기도 한다. 또 영국에 1년이란 '짧은 평화'를 가져다줬지만, 주데덴란트 할양으로 얻은 히틀러의 자신감과 권력 집중이 폴란드 침공, 옛 소련 침공, 유대인 600만명 등 1200만명의 무고한 살상을 불러왔다는 점을 지나치기 어렵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두 젊은이의 눈을 통해 히틀러란 괴물, 그 괴물을 상대하는 체임벌린이 어떤 정치 지도자였는지 돌아보며 그들 역시 딜레마에 고민하고 끊임업이 저울질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보는 점도 역사를 서술한 영화로선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는 보기 드문 성취를 올린 이 작품이 조용히 묻혀 있다는 점은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회원들, 꼭 보셨으면 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뮌헨 선수촌 공격을 배후에서 조종한 팔레스타인 명사 11명을 보복 암살하라는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의 '신의 분노'(Wrath of God) 작전을 다루며 증오의 악순환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 역시 원작이 있는데 조지 요나스의 회고록 '복수'(Vengeance, 1984)이다. 제78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 후보로 지명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모사드 출신 애브너(에릭 바나)는 폭발물, 문서 위조, 뒷처리 등을 담당하는 전문가들로 암살 팀을 만든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는 첫 번째 타깃 와엘 즈와이터가 의외로 평범한 시민 행세를 하는 데 충격을 받지만 그를 제거한 뒤 일당은 축배를 들고 춤까지 춘다.
두 번째 타깃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마흐무드 함샤리. 이때부터 애브너 일당은 프랑스인 정보상 루이와 거래하는데 그는 돈이 되면 누구에게나 정보를 팔아넘기는 인간이었다. 곡절 끝에 그를 자동차 폭탄 폭발로 제거한 일당은 세 번째 목표로 키프로스에 체류 중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소련 첩보기관 KGB의 연락책 후세인 아바드 알히르를 암살하려는데 애브너가 얼떨결에 알히르와 마주치게 된다. 교양있고 친절한 알히르의 성품에 탄복했는데 어쨌든 그를 기폭 장치로 살해하고 만다. 폭약의 위력이 예상보다 너무 커 다친 애브너는 루이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느끼게 되고 건너편 방에 묵던 신혼부부 가운데 아내가 실명하자 팀원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루이는 뒤이어 아드완, 나세르, 유세프 3명의 정보를 넘기면서 이들이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다고 알렸다. 늘 애브너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에프라임(제프리 러시)은 유럽 밖의 타깃은 모사드가 직접 잡을 거라며 손을 떼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루이가 자신들의 배후가 모사드임을 알려주는 꼴이라며 일단은 그대로 셋에 대한 암살 작전에 나선다.
조국의 이익을 위해 뛰어든 비밀 작전인데 과연 온당한 일인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동시에 이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암살자들에게 오히려 쫓기게 된다. 덧붙여 위험 인물을 제거하면 그보다 더 위험한 인물로 대체되는 점도 암살팀팀원들을 힘들게 만든다. 이 과정에 동료를 살해한 인물을 순전히 개인적 앙갚음 차원에서 제거하는 팀원도 나온다.
팀원들이 계속 죽어나가자 애브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그리고 에프라임을 찾아가 묻는다. "우리가 제거한 인물들이 모두 뮌헨선수촌 공격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냐"고. 그 답이 궁금한 이들은 넷플릭스에 '뮌헨'을 검색하면 된다. 영화는 뉴욕 맨해튼의 저유명한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을 비추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폭력의 악순환이 9.11과 그 뒤 세계 정세를 만들었다고 스필버그 감독은 얘기하려 했던 것 같다. 그 뒤 20여년,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학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스필버그 감독의 '정치적으로 올바름'(PC) 추구는 영화에 묘사된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고증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떨쳐내지 못했다. 애브너 일당이 아무 잘못도 없는 모로코 웨이터를 타깃으로 오인,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살해했고, 이 때문에 각국 정보기관들이 모사드를 주시하는 바람에 더 이상 작전이 실행되지 않았는데 계속된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영화를 본 뒤 포스터의 여운이 오히려 진하게 남는다. 애브너가 보복을 당할까 싶어 침대에 앉아 밤을 지새는 모습이다. 영화 초반 애브너가 호텔 바에서 '꽃뱀'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여자 킬러'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실제로 KGB 여성 요원의 사례라고 한다. 또 베이루트 작전 때 이스라엘 군인들이 작전에 가담하는데 그 중에 여장을 하고 침투하는 군인이 나온다. 나중에 이스라엘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10대 총리가 되는 에후드 바라크가 실제로 여장을 하고 작전에 참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