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한눈에 반하게 되는
영화같은 일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요?
정신분석학자인 융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엔 표면과 내면이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 용어로는 정신의 표면을 '페르소나(persona)'
정신의 내면을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라고 부릅니다.
페르소나는 바로 인간이 쓰고 있는 '사회적인 가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는 변신의 귀재라
때와 장소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옷을 갈아입지요.
여러분은 과연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얼굴을 몇 개나 준비해 놓고
살아가는지요? 엄마로서의 페르소나, 직장인으로서의 페르소나,
친구로서의 페르소나, 연인으로서의 페르소나...
이에 반해 인간 정신의 내면에는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니마'란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말하는 것이고,
'아니무스'는 여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다른 이성에게서 찾게 됩니다.
즉, 남성은 자기 마음속의 아니마와 닮은 여성에게 끌리고,
여성은 자기 마음속의 아니무스에 가까운 남성을 이상형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내 마음속의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융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 믿는 것이, 알고 보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아니마, 아니무스를 밖에서 찾아 헤매는 것일 뿐이라고.
그래서 상대방을 자신의 이상형이라 여겼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사랑의 열정은 급속도로 식어버리게 됩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사랑합니다"란 말 대신
"미안합니다, 오해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상대방에 대한 환상을 품고 '나만의 그'를 만들어
좋아하다가 금세 "알고 보니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며 불평을
해대니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당신을 오해합니다"가 맞지요. 첫눈에 반하는 영화 같은
사랑도 좋겠지만, 오랜 세월 서로를 지켜주고 배려하며
차근 차근 다져나가는 사랑만하겠습니까.
*****위의 글은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샘터라는 책에서 보았던 글인데 옮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