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공과를 이야기 합니다. 많은 근대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정치사에 민주,반공,독재,기아,부패,혁명.독립,전쟁 등등이 많이 나옵니다. 지구의 근대사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마 우리 민족이 당한 그 질곡의 처참함은 비길바가 없을정도 입니다.
어떤분은 유태인들의 박해를 이야기 합니다. 고통은 당하는자에게는 비교의 대상이 없습니다. 항상 절대적인 고통이지 남보다 낮거나 적거나 하는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인들에게 가한 잔혹한 짖들은 유태인 말살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수 없습니다. 732부대의 잔학상 말고도 그들이 소위 말하는 동남아 공영권을(수탈이 목적) 위해 건설했던 철도에서 수십만이 죽어갔습니다. 이것은 통계로 잡히지 않을만큼 많았습니다. 군인과 군속 정도만 집계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동남나 정글 깊숙히 강제로 또는 계약으로 동원된 수십만에서 혹은 수백만쯤 되는 유골들이 누워 있습니다. 누구도 정확한 인원을 모릅니다. 전쟁당시 이 민간인들은 노예 그 이하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YTN에서 콰이강의 다리라는 다큐를 보여 주는군요. 한 수용소에서 수천명씩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포로도 있었고 민간인 노동자도 있었고, 포로 수용소에서는 후일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기록된 사실이 있지만 이들 동원된 민간인들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집계가 안된다고 하는데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철도의 건설은 중장비도 없이 거의 인력으로 건설되던 아주 열악하고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게다가 학대와 가혹행위는 이를 추구하는 유효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노동자들은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병이 걸린 몸으로 강제노동을 하다가 노동력을 상실하면 밀림에 버려졌습니다. 고된노동과 학대에다 열악한 식량은 건강을 해치고 열대의 환경하게 이들이 생존하는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일 이었겠습니다. 당시의 포로들 사진을 보았습니다. 뼈만 앙상한 몰골에 제대로 입지도 못한 그들의 참상은 흡사 기아선상의 소말리아 어린이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들의 고난은 그기에 그치지 않았을겁니다.
이 일제의 잔학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남양군도에 설치된 수용소에서는 한국인 징용자에게 포로들 관리를 맡겼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포로들의 증언으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가혹행위자로 처형됩니다. 일제에 청춘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남의나라를 위해 일하다 전범으로 처형됩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불과 수년전에 공개된 이야기 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이야기를 묻어두고 싶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잔학상이 비단 이것 뿐이겠습니까? 이들 일본에 부역하고 일본에 협조하고 동족을 배신한 박정희 일당은 해방후에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권좌를 찬탈 합니다. 그는 그의 전력을 묻기 위해 이 수많은 일본의 잔학행위와 그 역사를 묻어두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우리 현대사가 이렇게 굴절되고 비틀린것은 실로 이승만의 권력욕과 친일의 전력의 덮어 놓으려는 박정희에 의해 공고해 졌다는게 내 생각입니다.
박정희는 그의 전력이 들어나는것을 싫어했고 권좌를 놓기 싫어했습니다. 김종필은 일본과 비밀협상을 통해 이 문제들을 덮는 조건으로 차관을 들여 옵니다. 그 돈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했건 박정희의 팬티를 금으로 했건 그 돈을 받으면서 묻어버린 민족의 피는 이제 너무도 흐릿해져 찾아내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세대의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이 모든것들이 명명백백히 밝혀지기를 기대합니다.
박정희가 경제개발에 총력을 다할수 밖에 없었던것은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일 전력이 있고 배신의 족적도 있고 민주의 정통성도 없는 정권이 그 정권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경재개발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당시의 어려운 나라살림에 이것은 정말 필연의 선택일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박정희 아니라 그 누구라도 피폐한 국가를 재건 하는것은 어쩔수 없는 시대적 요구였다는 말입니다.
독재자의 장기는 이런 부분에서 발현됩니다. 일사분란하게 국가를 통치하는 독재자가 이 개발마져 못한다면 그 자리를 지킬 명분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점에선 전후 국가들중 우리나라가 좋은 여건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근면한 국민과 양질의 노동력이 존재하는 이 국가는 노동자의 고혈을 짜서 전략적으로 힘을 모을수 있는 바탕이 있었던 것입니다.
혹은 여기에 일제시대의 교육이 한몫을 했다는 웃기는 소리를 하는사람도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모르는 무식의 소치입니다. 도올도 말했지만 동학으로 부터 시작된 의식의 깨임은 면면히 흘러서 이어집니다. 상류층은 썩고 비틀렸지만 서서히 민중은 깨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들을 가르치는데는 혼신의 노력을 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면으로 해석될수 있지만 무지의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상당부분 잠재해 있다가 서서히 발현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 중에는 계급상승 욕구도 있엇겠지요. 이런 개인적인 부분의 욕망도 중요한 요소이긴 합니다만 세계 어느나라에도 민중들이 변화의 욕구를 이토록 강하게 품어온 역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우리민족의 피와 땀과 희생을 담보로 하고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박정희의 공이 아닙니다. 그가 아니라 누구라도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엇고 민초들의 바램이었죠. 이것을 박정희의 공이라고 또는 당시의 상황을 몸으로 겪었던 분들이 이야기 하는것은 무지의 소산입니다. 역사를 보지않고 내 경험에 의존한 해석입니다.
역사는 보이지 않지만 면면히 흐릅니다. 박정희가 남긴 개발독재는 무수한 희생과 피를 먹고서야 이제 겨우 바로잡혀져 가는데 이제와 박정희의 방식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는것은 민족사에 죄를 짖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김구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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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소원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세째번 물음에도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이것 하나밖에 없다.
내 과거의 7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달하려고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애탐을 받는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찌기 우리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독립국만 된다면 나는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자가 되어 좋다는 뜻이다. (계속 보기)
정치이념
나의 정치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라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에 달려있다.
자유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자유로운 의사에 오고
자유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에 어떤 일개인,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일개인에서 오는 것을 전재 또는
독재라 하고 일계급에 서 오는 것을 계급독재라 하고
통칭 파쇼라 한다. 나는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계속 보기)
내가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할 민족은 일언이 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大韓)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春風)이 태탕(鋏蕩)8)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9)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의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일본의 이번 당한 보복은 국제적·민족적으로도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
이상에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어니와,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 진 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남기고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옛날 한토의 기자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왔고,
공자께서도 우리민족이 사는데 오고싶다고 하셨으며,
우리민족을 인을 좋아하는 인을 좋아하는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세계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 하지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일이
이루어 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이가 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진 대 아니 이루어 지고 어찌하랴!
나도 일찌기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직접 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 먹기를 빌지아니 할 수 없다.
1947년샛문 밖에서
김구선생이 말씀하신 뜻을 보건대 박정희는 민족의 정기를 훼손한 자 입니다. 전후에 우리는 역사를 청산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연시킨 사람이 이승만이요, 박정희 입니다. 옳음이 옳지않고 정의가 숭배받지 않는 세상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었이 진리인지 이야기 할수 있겠습니까?
또는 그 정의와 진리를 후손에게 무었이라고 가르치겠습니까? 박정희는 독재자 였습니다. 경제개발이 아무리 큰것이라 한들 역사를 후퇴시킨 죄과는 용서받을 수도 용서 받아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역사를 보는 입장이 이렇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박정희를 이야기 할때마다 차마 못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어르신의 아들이 독재에 항거하다 피를 흘리고 죽음을 맞이해야 그것이 잘못된걸 알겠습니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처참한 지경이 되어서야 현실을 깨닳으면 배움은 다 소용없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은 절대로 후손에게 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다소, 연성화된 입맛으로 위장이 약해질뻔 했는데 우렁이님의 좋은글 건강을 위해 맛나게 묵습니다.
우렁이님!
잘 읽었습니다. 우렁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