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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4장 8절 ~ 14절
O 이것은 시드키야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자유를 선포한 후에 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니라. 8)
This is the word that came unto Jeremiah from the LORD, after that the king Zedekiah had made a covenant with all the people which were at Jerusalem, to proclaim liberty unto them; 8)
그 언약은, 각 사람은 히브리인 남종이나 히브리인 여종을 놓아 자유케 하여 아무도 그들, 곧 자기 형제 유대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9)
That every man should let his manservant, being an Hebrew or an Hebrewes, go free; that none should serve himself of them, to wit, of a Jew his brother. 9)
위 말씀에서 시드키야와 그의 백성이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언약이라는 것은 약속이며, 이렇게 사람사이에서도 맺어지는 것입니다. 사람간의 언약과 하나님과의 언약은 언약은 그 자체로는 같지만 언약의 대상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권능의 하나님과의 언약은 절대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대로 사람간의 언약은 사람이 유한하기 때문에 가변적이고 유한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구원이라는 언약은 언약의 절대적인 완전함이 하나님쪽에만 적용됩니다. 언약의 상대편인 사람의 언약의 모습은 이와 달리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드키야의 사례로 증명이 됩니다. 하나님의 시드키야왕에 대한 계획, 언약을 시드키야왕 자신이 변경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예정론에 대한 의구심은 하나님의 구원의 완전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민족을 노예로 만든 것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입니다. 이스라엘은 동족에 가까운 사마리아인들과 대화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강팍한 습성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조선은 개국 당시에는 천민의 비중이 10% 남짓이고, 대부분이 유입된 북방민족인 만주의 유목민 출신의 백정이 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말기로 가면서 90%이상이 노비와 같은 신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과도한 세금으로 상민보다 노비가 되길 바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조선이 정책적으로 노비를 늘리는 정책을 취한 결과입니다. 상민과 천민이 결혼하면 그 아이들도 모두 천민이 되도록 하였고, 과중한 세금을 물리고 납부하지 못하면 노비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조선의 모습은 조선의 비틀린 개국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조선은 만주족 후손이 왕족이 된 나라입니다. 그들은 당시 고려의 호족중의 하나인 강씨집안의 도움으로 조선의 지배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정당성이나 세력이 없어서 외척과 귀족세력에게 기댈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귀족세력과 결탁하게 됩니다. 고려의 귀족은 사대부로 변신하여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조선인 대부분을 노비로 만들기를 원했고 실행하였습니다.
노비가 90%인 나라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력은 분열되고 부패가 만연하여 매관매직과 뇌물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조선은 그런 기만을 성리학이라는 모순된 지배체제 합리화 하였습니다. 성리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추상적 가치지향철학입니다. 불교는 그래도 일반대중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이념으로 신분이 분리되지는 않았습니다. 성리학은 조선에서 신분제를 유지하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서양의 실존주의 철학과 맞먹는 개똥철학인 것입니다.
당시의 일본과 중국에서도 없었던 사농공상과 공사천(공노, 사노, 천민제도)을 운영하였으니, 지금의 인도가 카스트제도로 인하여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는 것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인도는 같은 민족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동족을 노예로 느끼는 민족성은 우리민족이 가진 악함이며, 그것을 이스라엘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도 독립되지 못했습니다. 중국계와 일본계의 자본과 권력에 의하여 한국은 조종되고 있습니다. 대출로 많은 빚을 얻게 하여 전국민이 빚에 노예가 되어있습니다. 부동산투기로 이 나라는 조선시대의 노비대중의 사회로 퇴행된 것입니다.
언론도 정부도 일본과 중국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김씨 일가도 사실은 일본계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김책이라는 사람은 일본인으로 김씨일가의 장기집권의 조력자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392년 조선의 개국이래 이땅은 독립적인 나라가 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위선적인 모습의 국가는 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사악한 모습은 그냥 풍경처럼 생각하면 될 일이지만, 우리의 육을 손상시키는 백신은 추악한 일입니다. 악인들은 그대로 사람입니다. 일본도 중국도 그들의 악함으로 사탄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결국 악인들도 사탄의 악함에 당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일본과 중국의 실체를 밝히며 더 거대한 악이 선을 위장하여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그 언약에 참여한 모든 고관들과 모든 백성들이, 각기 자기 남종과 자기 여종을 자유롭게 가게하고 더 이상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그들이 복종하여 그들로 가게 하였더라. 10)
Now when all the princes, and all the people, which had entered into the covenant, heard that every one should let his manservant, and every one his maidservant, fo free, tha none should serve themselves of them any more, then they obeyed, and let them go. 10)
이러한 일은 조선에서도 있었습니다. 면천이라는 것입니다. 큰 공을 세우거나 나라의 전쟁의 위기시에 노비들을 풀어주어 나라를 지키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임진왜란시에 천민들을 대거 면천시켰습니다. 전쟁에 나가 죽으라는 것으로 이것은 노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임진왜란⑤…적의 목을 베는 노비, 면천하다 - 아틀라스뉴스 (atlasnews.co.kr)
선조의 속내는 내부였다. 나라를 왜에 넘겨주고 자신은 중국의 제후가 되어 목숨이라도 부지가겠다는 뜻이다. 선조가 본심을 얘기하자 이항복이 자신의 말이 그게 아니라며 한발 물러났다. 이항복은 "신이 말한 것은 곧장 압록강을 건너자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경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고 해명했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내부內附
내부(內附)는 곧 내부(來附)로 ‘와서 복종함’이라는 뜻이므로 선조는 구한말의 고종과 같은 선택을 먼저 할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후에 그들이 돌이켜 자유롭게 놓아주었던 종들과 여종들을 돌아오게 하여, 그들로 남종과 여종으로 복종케 하였더라. 11)
But afterward they turned, and caused the servants and the handmaids, whom they had let go free, return, and brought them into subjection for servants and for handmaids. 11)
조선의 선조와 남유다의 시드키야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급할때는 이순신에 의지하다가 상황이 약간 바뀌면 이순신을 내치는 것과 같습니다. 동족노비들을 풀어주었다가 다시 잡아들인 것입니다. 임진왜란에서 면천이 되었던 조선의 노비들도 다시 기근과 과도한 세금으로 다시 노비로 전락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사람의 언약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과의 언약즉 인도를 받음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시드키야도 왕이고, 선조도 왕이며, 문재인도 대통령입니다. 당시로 보면 가장 권위있는 자들의 언약이 이처럼 허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 “백신접종, 안심해도 돼…부작용은 정부가 책임·보상” - 정책뉴스 | 뉴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korea.kr)
시드키야가 자신의 계산을 고집한 것이나 선조가 조선을 버리고 명의 귀족이 되려함은 오래전의 일들이지만 그와 똑같은 일을 우리는 작년에 목격하였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백신에 대한 보증을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외국계 기업의 불안정한 약을 국가의 수반이 책임을 지겠다고 세일즈를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그는 자신의 약속인 언약을 걷어찼습니다. 사기꾼도 이렇게 뻔뻔하지는 못합니다.
O 그러므로 주의 말씀이 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12)
Therefore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Jeremiah from the LORD, saying, 12)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집트 땅, 종의 집에서 너희 조상을 인도해 내었던 날에 너희 조상들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말하기를 13)
Thus saith the LORD, the God of Israel; I made a covenant with your fathers in the day that I brought them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bondmen, saying, 13)
"너희는 각기 너희 형제 히브리인이 네게 팔렸거든 칠 년이 되는 끝에 그들을 놓아주라. 그가 너를 육 년 동안 섬겼으니, 너는 그를 네게서 놓아 자유케 하라." 하였으나 너희 조상들은 내게 경청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 하였느니라. 14)
At the end of seven years let ye go every man his brother and Hebrew, which hath been sold unto thee; and when he hath served thee six years, thou shalt let him go free from thee: but your fathers hearkened not unto me, neither inclined their ear. 14)
시드키야왕은 형제 히브리인 종들과의 언약을 어긴 것인 줄 알았으나 사실 그는 하나님과의 말씀의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그것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시드키야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한 히브리인 종을 사면 그가 육 년간을 섬길 것이요 칠 년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값없이 나갈 것이니라.
출애굽기 21장 2절
예레미야의 아버지 힐키야를 통하여 주의 율법서를 요시아왕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시드키야왕은 이러한 율법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적용되는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완성하신 본질의 율법이 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7절 38절 39절
위의 두가지는 율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태가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본질의 율법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의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문재인은 자신의 대통령 직분으로 한국인들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그의 죄가 이 세상의 법으로는 합법이 되고, 형식의 율법으로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속였고,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본질의 율법이 오히려 죄에 대하여 빈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형식의 율법으로 적용하려는 교회의 주장에 동의하시면 안됩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그 자체로 율법이 아니나 그것을 사람이 두려움이나 권위로 강제하는 순간 구약의 율법처럼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형식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이루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흘리심을 무효화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본질의 율법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성수와 십일조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아니므로 구원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인 구원의 언약을 우리 스스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사람들과의 언약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 계명과 우리의 자유의지는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우리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 됩니다.
언약이란 한 쪽의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의 언약에 대한 언급하심은 하나님의 언약의 영원한 절대성을 나타냅니다. 그에 반하여 시드키야, 선조, 문재인등의 권력자들의 언약은 그들이 권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지켜지지 않음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나의 구원이라는 언약에서의 변수는 사람인 내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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