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127편*
흑포 허봉선은 마지막 형장으로 끌려갈 때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않았었다.
의금부도사가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는가 물었을 때 거래를 제안했다.
원하는대로 진술을 하는대신에 일행중 한 명을 살려달라고 했다.
흑포 허봉선이 지목한 일행중 한 명은 김경영이었다.
김경영을 풀어주는 대신 스스로 역모를 자백하기로 했다.
흑포의 제안은 즉각 김항국에게 전달되었고 좌의정에 올라 실권을 장악한 이한로 대감에게도 전달되었다.
역모를 자백하고 사죄하는 뜻으로 마지막에 주상전하 만세를 부르겠답니다.
이한로 대감은 즉시 제안을 수락하게했다.
대신에 주상전하 만세보다는 천주님 만세를 부르게 했다.
그래야 참수를 시킬만한 명분이 서는 것이었다.
그길로 김경영은 옥에서 풀려나와 자유의 몸이 되었다.
흑포 허봉선은 풀려나는 김경영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야산 골짜기에서 숨어 살아가는 기리스찬들을 잘 이끌고 내의원 수의가 될 허두겸을 잘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김경영은 풀러나면서 형장으로 끌려가는 흑포 허봉선과 동료들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내 지금은 혼자 살아 돌아가지만 이땅에 기리스도 복음을 전하는데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한편 이대감의 별채에 지연과 함께 잡혀있다시피한 허두겸은 처형이 끝나면 시신 한 구를 인도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의술에 도움이 되는지 몰라도 사람의 몸에 함부로 칼을 들이대는
기리스찬들과 같은 무리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허두겸은 자신이 새남터에 참관하러가는 대신 지연을 보냈다.
내 의술은 여기서 더이상 나갈 수 없으니 네가 대신 보고 오너라.
지연은 참수현장을 지켜보는 것이 두렵기는 했지만 허의원의 지시를 따랐다.
지연이 새남터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구름같은 인파가 처형장을 둘러싸고 있어 발돋움을해도 현장이 보이지 않았다.
지연은 젖먹던힘을 다해 사람들 틈을 헤집고 들어갔다.
드디어 맨 앞자리에 파고들자 관리자들이 가까이 오지말라고 밖으로 밀쳐냈다.
망나니들은 옆에 동이로 준비해놓은 막걸리를 바가지로 퍼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지연은 단번에 흑포 허봉선을 찾아내었다.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흑포도 지연을 알아보았다.
입술만 달짝였는데 지연은 흑포 허봉선의 입술모양만보고 말을 알아들었다.
조선의 젊은이여 밖으로 나가라.
세상은 넓고 배워야할것이 너무 많다.
*명의129편*
지연은 새남터에서 돌아와 사흘동안 별채에 틀어박혔다.
뒷간에 다녀오는 시간이 아니면 식음을 전폐하고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허두겸의윈은 그런 지연을 보고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지연때문에 몸이 단 사람은 좌의정 자리에 오른 이한로 대감이었다.
비어있는 내의원수의 자리에 허의원을 앉히려는데 지연이 식음을 전폐하는 바람에 입궁시일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새로 이조판서자리를 꿰어찬 김항국이 별채로 찾아와 지연을 달랬다.
허허. 낭자. 우리는 모두 소백산 산골출신들이 아니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소백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오.
계절따라 옷을 갈아입는 산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소.
우리들의 인생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산의 모습과 닮지않았소?
지연은 김항국의 말을 듣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정말로 어린 시절 철모르고 지내던 산골소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생각했던 것이었다.
봄이면 짝짓기를 하느라 하루 종일 산새들의 지저귐이 노랫가락처럼 즐거웠었다.
지연은 망니니처럼 산속을 돌아다니며 새와 나비들을 쫒아다니며 놀았었다.
새의 둥지를 찾아내 그 안에 까놓은 새알을 흠쳐와 삶아먹기도 했었다.
지금 어쩌다보니 몸이 한양까지 흘러와 있지만 모든일이 어린 산골시절처럼 즐겁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전 소백산 너럭바위 위에서 심마니 총각과 나누었던 정사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풍기로 내려가 그 소백산 심마니총각과 여생을 소백산 산골에서 지내고 싶었다.
그런 지연의 심정을 눈치챈 것인지 김항국이 지연을 달랬다.
우리가 풍기산골 출신이지만 지금 이나라의 제일 중심부에 와 있지 않느냐.
산골 출신이 아니라도 왕궁에 출입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있는게 아니다.
조선천지에 한다는 의원들이 어디 한둘이더냐.
내의원에 들어간다는것은 명의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의윈으로 나라의 녹을 먹는다는것은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느냐.
꼭 지연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연을 핑계로 입궁을 미루고 있는 허두겸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허두겸이 내의원 수의로 가는것은 예전 실추되었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당시에 아버지 허길준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노론들에게 원수를 갚는 일이기도 했다.
카페 게시글
글밭 나들이
※ 명의 127,128편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