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民間人)
김종삼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현대시학』 31호, 1971.10)
[작품해설]
이 시는 6.25의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으면서도 전쟁의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목으로 쓰인 ‘민간인’이라는 단어는 관리나 군인이 아닌 ‘보통사람’이란 뜻으로, 남북 분단의 비극이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끼지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배경을 제시하고, 그 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이렇다 할 생각과 느낌을 덧붙이지 않은 채 다만 보여 주기만 할 뿐이다. 그것은 시인이 그 비극적 상황을 비정하리만큼 객관적으로 그려내면서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것인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작 방법은 독자의 상상력을 통하여 더 깊은 생각과 느낌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은 시인에게 기억하기조차 끔찍했던 공포의 사건으로, ‘용당포’라는 지명과 ‘1947년 봄’이라는 시간을 통해 더우 구체화됨으로써, 장장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무서운 사건은 다름 아닌, 전쟁이 발잘하기 전, 북한 주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남북 왕래가 금지된 38선을 넘어 월남을 감행하는 극한 상황에서, 우는 젖먹이 아이까지 바다 속에 던져 넣던 비극적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라는 구절의 ‘수심’은 바로 분단이 가져다 준 비극의 깊이요, 그의 가슴에 각인된 고통과 슬픔의 깊이라 하겠다.
[작가소개]
김종삼(金宗三)
1921년 황해도 은율 출생
일본 코요시마(豊島) 상업학교 졸업
1954년 『현대예술』에 시 「돌각담」 발표하며 등단
1957년 전봉건,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발간
1971년 「민간인」으로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1978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4년 사망
시집 :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공저, 1957), 『본적지』(김광림⸱문덕수와 공저, 1968), 『십이음계』(1969), 『시인학교』(1977), 『북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큰 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1984), 『김종삼전집』(1989), 『그리운 안니 로니』(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