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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망상 없는 경지의 시원함 노래
‘나옹화상가송’ 산거 8수 인용해
수행자의 모든 행위 하나가 수행
여유가 있다는 건 열반 얻은 것
냉랭은 망상 없는 경지를 말함
경북 문경 묘적암.
/ 글씨 청오 신용섭(靑吾 申龍燮).
白雲堆裏屋三間 坐臥經行得自閒
백운퇴리옥삼간 좌와경행득자한
磵水冷冷談般若 淸風和月遍身寒
간수냉랭담반야 청풍화월변신한
(흰 구름 덮인 언덕 속에 세 칸 누옥(陋屋)이 있어
/ 앉고 눕고 거닐므로 스스로 한가함을 얻었네.
/ 골짜기 물 흘러가는 소리 반야를 이야기하고
/ 맑은 바람 달과 함께 어울리어 온몸에 그득하네.)
고려 말 고승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 스님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서 출생했다.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대승사에 딸린
공덕산(功德山) 묘적암(妙寂庵)에서 요연(了然) 스님을 찾아가 문하가 되기를 청했다.
요연 스님이 물었다. “너는 무엇 하러 출가하려 하느냐?” 나옹 스님이 답했다.
“삼계를 떠나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오니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 문답을 마친 후 득도하였다.
공덕산은 사불산(四佛山)의 다른 이름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평왕 9년인 587년 사면에 여래의 상을 새기고
붉은 비단에 쌓인 석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하여 사불산이라고 하였다.
주련은 나옹 스님의 시자였던 각뢰와 각련이 기록하고 제자인
환암혼수(幻庵混修)가 교정한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에서
산거(山居) 8수 가운데 네 번째 시문을 인용한 것이다.
퇴(堆)는 단순하게 언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덕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기에
곧 진여의 자리를 말한다. 진여는 무심한 도리를 나타낸 것이므로 흰 구름을 끌어들였다.
옥(屋)은 누옥(陋屋)으로 자기 집을 낮추어 부른 것이다.
삼간(三間)은 세 칸이며 원문은 간(間)이 아니라 한(閒)이다.
간(間)의 본자(本字)가 한(閒)이기에 문제가 되진 않는다
. 세 칸 누옥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건물에 머무르며
수행함에 장애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훌륭함을 보여 준다.
앉고 눕고 하는 좌와(坐臥)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줄여서 표현한 것으로
거수투족(擧手投足)이라고 한다. 수행자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수행이라는 뜻이다.
수행에 있어 행주좌와를 강조하는 것은 심수(心隨) 때문이다.
이를 심수전법(心隨轉法)이라고 하여 중생의 마음 씀에 상응해 작용하는 법을 말한다.
스스로 한가함을 얻었다는 것은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 말하고 행함에
걸림이 없기에 이를 일러 한가하다고 하는 것이지
어떤 일에 대하여 여유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마침내 열반을 얻는다’고 했다.
간(磵)과 간(澗)은 같은 의미로 계곡의 시내를 말한다.
따라서 간수(磵水)는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제법 많은 사람이 영령(泠泠)이라는 오류를 범한다.
원문은 영령(泠泠)이 아니라 냉랭(冷冷)이다.
차가울 냉(冷) 자와 맑은소리 령(泠) 자를 착각하면 안 된다.
여기서 ‘차다’라는 뜻인 냉랭은 번뇌 망상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산골짜기 물소리가 반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무진법문(無盡法門)이라는 뜻이다.
선사는 흰 구름과 계곡의 물소리도 예사롭게 보지 아니하고 반야의 경지로 보았다.
이것은 법안(法眼)을 갖춘 것이다.
법안이 없으면 법(法)을 노래하지 못하고 정(情)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맑은 바람인 청풍(淸風)은 마음의 번뇌를 날려 보내는 법풍(法風)을 말한다.
화월(和月)은 달과 어우러진다는 표현이다. 달은 법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어서 차다는 의미를 지닌
한(寒)은 여러 뜻이 있지만 가득하다,
넉넉하다는 만(滿)과 같이 쓰일 때도 있다. 또 차다는 뜻으로 볼 때는
기분이나 느낌이 깨끗하고 시원한 모양을 나타내 ‘산뜻하다’보다
큰 ‘선뜻하다’라는 표현으로 쓰였다. 이는 앞서 노래한 분별과 망상을 떠나
참다운 실상을 꿰뚫는 지혜인 반야의 도리를 깨달아 얻으면
법신을 구족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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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적암(妙寂庵)
1339년 나옹왕사 출가 사찰
주소: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산 8번지
묘적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에 속하는 대승사(大乘寺)의 산내암자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 말기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말기에 나옹(懶翁)이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로 유명하다.
나옹이 처음 이 절의 요연(了然)을 찾아 중이 되기를 청하였을 때,
요연은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나옹이,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마는,
보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습니다.”고 한 뒤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물었다. 요연은 자신도 알지 못하니
다른 고승을 찾아가 물어볼 것을 권하였다. 뒷날 나옹이 도를 깨닫고
다시 이 절로 돌아와서 회목 42그루를 심었으며,
그 뒤 나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절에 찾아왔다.
나옹으로 인하여 이 절은 조선 후기까지 불교의 한 성지(聖地)로 부각되었다.
1668년(현종 9) 성일(性日)이 중건하였고, 1900년 취원(就圓)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여러 기의 부도가 있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9호이며
나옹화상 영정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8호이다.
<답사 노트>
※영덕불교사암연합회 집행부 스님들과 함께 나옹왕사 출가 사찰인
묘적암을 동행 순례하기로 하였다. 나옹왕사 불적답사를 봉행하기로
서원을 세우고 영덕에서 벗어나 가는 첫 번째 사찰이다.
영덕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여 대승사까지 144㎞로서 3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대승사 부처님을 참배하고 묘적암을 향하였다.
윤필암 입구에서 약 400m 올라와서 주차를 하고 묘적암에 들렀다.
스님께서 정진하고 있어 조용히 관세음보살과 나옹화상 진영에 삼배를 하고
도량을 둘러보았다. 1862년(철종 13년) 기록한 나옹화상의 행적과
900년(광무 4년)에 석두거사(石頭居士) 김병선(金炳先)이 기록한
묘적암 중수기를 살펴보았다. 또 전각 좌측에 건물 한 동이 있는데
‘일묵여뢰(一默如雷)’1라는 글씨가 적혀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서예가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 1909~1999)선생이
1977년에 쓰신 현판 글씨라 한다.
스님께서 정진하고 있어서 동행한 영덕불교사암연합회 집행부 스님들과
함께 묘적암 도량을 나왔다. 하산하는 길에 우물에서 물 한 잔하고
마애여래좌상 전에 삼배를 드린 후, 전날 준비한 나옹왕사의
‘고루가(枯髏歌)’ 일부를 읽고 내려 왔다.
이 마른 해골이여,
지금 이것이 마른 해골임을 모르면 어느 겁에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리.
이 물건이 뜬 허공 같음을 알아야 하네.
몇 천 생이나 생사에 윤회하면서 잠깐도 머물지 않고
사생육도 쉼 없는 곳을 돌아왔다 다시 가면서 몇 번이나 몸을 받았나.
축생이나 인천으로 허망하게 허덕였던가.
먹이 구해 허덕이나 마음에 차지 않아
이기면 남을 해쳐 제 몸을 살찌우다가 엄연한 그 과보로 업을 따라 태어나네.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내 뼈는 어디에 흩어져 있는가.
이 세계나 다른 세계에 남김이 없이 오며 가며 흩으면서 그치지 않았으리.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권하노니 그대는
머리 돌려 빨리 행을 닦아라.
전생의 과보가 모든 장애 되리오.
원명한 본바탕 성품바다는 맑으니라.
본적(本寂)
겁겁(劫劫)에 당당하여 바탕 자체가 공(空)하건만
가만히 사물에 응하면 그 자리에서 통하네
원래 한 점도 찾을 곳이 없건만
온 세계도 옛 주인을 감추기 어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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